반포 GS자이에 살고 있던 후배가 이사를 결심했다. 리만 사태 때 3.5억 전세를 주고 들어간 35평 아파트의 전세값은 차근차근 올라서 마지막 계약을 갱신할 때는 6.5억이었다. 최근 전세값은 더 올라서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집주인은 8억으로 올려달라고 했다. 후배는 떠나기로 했고, 그 집은 8.3억에 전세계약이 체결되었다. 11-12억 정도에서 거래되고 있는 집의 전세가격이 8-9억이면 전세/집값 스프레드는 70%정도 된다. 이렇게 스프레드가 계속해서 타이트해진 이유는 물론 사람들이 집을 사지 않으면서 그 집에 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기간 금리는 꾸준하게 하락했다. 동일한 월세수입에 상응하기 위해서 전세 가격을 올려야 하는 건 집주인 입장에서 당연한 일이다. 2007년 말 6%였던 3년 국고채 금리는 지금 3%가 안 된다. 금리는 반토막이 났다. 같은 이자를 수취하기 위해서는 두 배의 원금이 필요하다.
2007년 미국의 부동산 시장이 무너지기 전까지 전세계 부동산 가격은 동반 상승했다. 글로벌한 현상이었다는 뜻이다. 물론 이런 상황은 많은 집없는 사람을 슬프게 만들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은 "집값을 잡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이룰 수 없는 약속이었고, 해서는 안 되는 약속이었다. 집안의 벌레를 없애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집을 불에 태워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약속을 지키진 못했지만, 그래도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한 미시적 대책은 좀 늦긴 했어도 비교적 잘 세워서 실천한 셈이었다. 다만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엔 역부족이어서 노무현의 경제정책에 대해서 사람들은 지금도 야박한 평가를 내린다.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부동산 가격의 움직임은 국지적 현상으로 바뀌었다. 특히 글로벌한 가격의 동조화는 사라졌다. 하지만 크게 봤을 때 여전히 글로벌 부동산 시장은 나쁘지 않았다. 우선, 위기와 무관하게 꾸준히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던 국가들이 있다. 스위스, 이스라엘, 그리고 벨기에 같은 나라들이다. 위기 때 잠시 가격이 하락했지만 반등해서 위기 때보다 가격이 더 높아진 국가들도 있다. 노르웨이나 캐나다 같은 나라들이다. 위기 때는 가격이 하락했지만, 지금은 반등해 거의 위기 수준으로 회복한 스웨덴이나 호주 같은 나라들도 있다. 반면, 여전히 부동산 시장이 고전하고 있는 국가들이 있다. 미국과 영국이 그렇고, 유로존 국가 중에서 채무로 고생하고 있는 아일랜드, 그리고,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이 그렇다.
부동산 가격을 이야기할 때 인구구조의 변화를 말하는 것은 부질없다. 그런 요인은 짧으면 10년, 길면 30년 정도를 두고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그건 마치,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서 조세정책을 쓰는 것과 비슷하게 뜬금없다. 부동산 보유세의 실효세율을 다른 국가들과 비슷하게 맞추는 것은 세율을 정상화하는 의미는 있어도 그것 자체가 가격을 하락시키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보유세율은 높지만 부동산 가격의 상승폭은 무시무시했었다. 금리와 소득 같은 거시적 요인이 훨씬 막강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 많은 나라에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거나 안정화되거나 반등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도 통화정책 때문이다. 특히 자국의 통화정책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의 통화정책 때문이다. 미국, 일본, 영국, 그리고 유럽 중앙은행이 모두 극단적으로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쓰고 있다. 미국이 0%까지 금리를 내리고 세 차례의 양적완화 정책을 쓰는 동안 우리나라의 시장 금리도 반토막이 났다. 무지막지한 유동성이 채권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왔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주식시장은 유동성 랠리를 한 적이 없다. 금융위기 때 주식시장을 빠져간 돈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2007년의 상황도 그렇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려서라도 집값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중앙은행은 세상에 있는 수 많은 금리중에서 단 하나의 금리(우리나라의 경우 7일 짜리 레포금리)만을 결정할 수 있을 뿐이다. 경제의 펀더멘탈과 괴리되는 금리정책을 사용하면, 금융시장은 그런 정책에 일드커브 역전과 같은 현상으로 반응한다. 그런 현상이 있으면 곧 경제는 침체에 빠지고, 중앙은행은 다시 금리를 내릴 수 밖에 없게 된다. 지난 10년 간의 우리나라 경제의 모습을 보면, 주식이든 채권이든 심지어 부동산이든 미국 금융시장의 그것들과 크게 괴리되지 않는다. 미국 주식이 오르면 우리 주식도 거의 올랐고, 미국 금리가 빠지면 우리 금리도 거의 빠졌다. 이렇게 높은 상관관계의 이면에는 독립적일 수 없는 통화정책이 있다. 한국의 통화정책이 미국에 독립적이기 어려운 이유는 물론 경제의 의존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수 년간 한국의 대중 의존도가 커지면서 중국 경제의 하드랜딩 가능성과 우리나라 금융시장에 줄 수 있는 충격이 논의됐다. 그러나 중국 경제는 하드 랜딩하지 않았고, 중국 주식시장이 폭락하는 시기에도 한국 주식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중국에 의존도가 높아진 것처럼 보여도 아직 시장이 고려하는 것은 한국 경제의 미국에 대한 의존도일 뿐이다. 이렇듯 높은 의존성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세계 경제가 그렇고, 우리가 조금 더 심할 뿐이다.
미 연준은 2015년에야 금리를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이 시기까지는 낮은 금리를 유지할 것이란 뜻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나라든 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위해서 금리를 인상하기는 쉽지 않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경제에 대한 충격을 감수해야 한다. 안 그래도 통화가 절상되고 있는 마당에 기름을 끼엊는 꼴이 된다. 노르웨이나 캐나다 그리고 스웬덴 같은 국가들이 LTV 관리와 같은 미시적 대책에 치중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연준이 예상하는 것처럼 비상시에 사용한 극단적으로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출구전략을 실시할 때 우리는 어떤 상황일까? 미국의 경우처럼 개인 채무 문제를 털고 부동산 시장의 반등과 함께 금리를 인상할 수 있을까? 미국과 달리 개인 파산 형태로 가계부채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면, 소득 증가로 부채의 부담을 상쇄할 수 있을까? 가계부채 문제로 내수의 한계가 분명한 마당에 수출이 공격적으로 좋아지지 않는한 그것 마저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만약 가계부채 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채, 경제가 회복된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할 때, 한국은행이 상대적으로 미온적으로 반응할 수 밖에 없다면, 어떤 현상이 금융시장에 일어날까?
아무래도 새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할 시간은 3년 정도 남은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