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November 27, 2012

싸이, 성공의 이유 그리고 전략

싸이의 이 옥스포드 강연 클립을 듣고 놀랐다.  내가 지금까지 본 누구보다도,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왜 성공했는지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싸이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싸이의 음악은 (cool)’하지 않고 (fun)’하다.  그래서 지금의 성공이 아닌 현상이 가능했다.  싸이가 말한다.  사람들은 재밌있는 것을 원한다.  하지만 가수들은 멋있어 보이길 원할 뿐 재미있게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뚱뚱한 외모와 평범한 가창력으로 게다가 몇 번의 대형사고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아이돌들이 점령한 한국 가요계에서 12년 간 살아 남을 수 있었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도 역시 싸이 자신이다.  싸이의 생존은 우연이 아니라 필사적인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내가 작곡한 곡을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팔았다.  하지만 실패했다.  나는 나를 팔기 시작했다.  작은 성공이 시작되었다." 



이번 앨범 보다 더 웃기는(more ridiculous) 것이 다음 목표라는 싸이의 전략은 최선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나는 그의 다음 모습이 (fun)’할 뿐 아니라 (cool)’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잘생긴 인간은 머리를 넘기고, 화장을 하고, 옷을 잘 입고, 무엇보다도 입을 다물고 있으면 한 척 할 수 있다. 멍청한 인간도 잠깐 정도는 지적인 척 할 수도 있다.  (심지어 논쟁을 피하고 토론에 도망가서 사람들을 속이고 선거에 이길 수 있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를 가짜로 웃길 수는 없다. 누군가를 웃게 만드는 데는 진짜 재능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그게 음악을 통해서라면 엄청난 재능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것 자체로 유니크하다.  그건 진짜 해 보인다.

Saturday, November 24, 2012

안철수의 양보에 대한 생각

안철수가 후보를 사퇴했다.  안철수가 아니면 박근혜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 그리고 안철수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낀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일일 것이다.  안철수의 모순은 박근혜를 이길 가능성은 문재인에 비해서 훨씬 높지만 단일 후보가 되기는 어렵다는데 있었다. 당선 가능성은 훨씬 높지만 후보가 되지는 못하는 모순은 물론 그가 평판에 바탕을 둔 무소속 후보이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좋은 평판으로 지금의 위치에 오른 사람이고, 단일화 후보가 되지 않고 선거를 완주하는 것은 좋은 평판을 없애 버린다.  그는 그런 선택을 할 수 없다.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아왔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단일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으면 안철수는 알아서 후보를 사퇴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안철수는 합리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정치에 뜻이 있다면, 단일화 후보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 후보를 끝까지 완주할 리 없다.  그건 재기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짓이며 막 시작한 정치 생명을 끝장 내버리는 일이다.  단일화 후보가 될 수 없다면, 가장 좋은 건 멋지게 사퇴하는 것이다.  단일화 경선을 거친 후 결과에 승복할 것이냐, 단일화 경선 전에 양보할 것이냐를 두고 안철수는 후자를 선택했다.  이번 대선의 단일 후보가 될 가능성이 낮다는 인식을 안철수가 갖고 있었고, 멋지게 양보하는 것이 전략적 목표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내가 안철수를 지지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아마도 그의 역량은 여야를 망라한 어느 정치인보다 훌륭한 수준에 들 것이고, 박근혜를 이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대중적 경쟁력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를 지지하지 않는 것은 박근혜를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 보게될 사회가 바람직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며, 그런 사회는 안철수의 선의와는 상관없이 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안철수에게 기대와 희망을 걸었던 사람들은 박근혜의 집권저지를 그 다른 어떤 가치보다 상위에 두고 있거나, 안철수가 사회의 변화에 대한 갈망을 채워줄 수 있다고 믿은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의 집권저지가 중요한 목표일 수는 있서도 다른 중요한 가치를 훼손해서라도 이룩해야만 하는 절대선은 아니고, 사회의 변화에 대한 갈망이 나쁜 선택으로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와 같은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문재인이냐 안철수냐의 문제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문재인 이후와 안철수의 이후의 세상이다.  당장 목이 말라서 바닷물을 마시면 더 심한 갈증에 빠지게 되고, 당장 춥다고 해서 얼어붙은 발에 오줌을 누면 곧 발은 더 꽁꽁 얼고 악취까지 풍기게 된다.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면 정계개편은 불가피하다.  정치적 소수자인 대통령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고, 안철수로서는 친이명박계와 반노무현계를 끌어안는 선택에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들이 딱히 훌륭해서가 아니라, 친박근혜계와 친노무현계를 빼면 그들 이외의 대안은 별로 없고 5년은 짧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대통령을 당선시키고 그런 정치적 선택을 한다고 비난하는 건 곰과 결혼한 후 털이 많다고 불평하는 꼴이다. 

만약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지 못하면 그 결과는 더 참혹하다.  단순히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집권하기 때문이 아니다.  더 큰 폭의 정계개편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야당은 선거결과에 대한 이견과 강력한 여당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리저리 이합집산할 것이고 야당은 실체가 모호해질 것이다.  그런 상황이 끔찍한 이유는 단지 그런 모습의 정치인들이 혐오스러워가 아니라, 재집권한 새누리당이 무슨 짓을 하든 심판할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실패한 정권을 심판할 수 있는 매커니즘을 잃어버린 나라에서 부패나 부정 없이 국민의 이익이 공정하게 나누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열심히 일하고 성실한 국민들이 그런 매카니즘이 없어서 일당의 전횡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는 건 참으로 답답하고 공포스러운 일이다.  지금의 일본이 딱 그렇다.

나는 안철수의 경우보다는 훨씬 박빙이겠지만 그래도 결국은 문재인이 박근혜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설령 진다고 해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암울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당으로서 제대로 된 전략으로 좋은 정책을 제시하고도 진다면, 다음 선거에서는 분명히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 총선과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과 민주당은 여러모로 무능한 면모를 보였지만 설령 그러한 면이 있다고 해도 야당이 아예 없어지는 것보다는 훨씬 다행스럽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집권이 싫어서 안철수를 지지한 사람일수록 그런 상황에 대한 공포감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위안을 받을 필요가 있다.

이제 단일후보가 된 문재인이 할 일은 자기모순적인 정책들을 정리하고, 제대로 된 사람을 쓰는 것이다.  정치인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입에서 나온 메시지가 아니라 정책과 사람의 선택으로 하는 것이다.  안철수의 양보는 이런 타이밍에서 아주 좋은 모멘텀을 제공할 수 있다.  지난 총선에서 진보통합당과의 연대 때문에 뒤죽박죽이 된 정책들을 안철수의 도움을 받는 모양새를 갖춰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대통령이 되든 한미 FTA를 하지 않을 순 없다.  어떤 대통령이 되든 반값 등록금과 같은 경제적 효율성이 떨어지는 정책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규모가 다소 작을 뿐 나쁜 경제적 선택이라는 면에서는 이명박의 4대 강 개발과 별차이가 없다. 좋은 면이 있지만, 그 약간의 좋은 면을 위해서 훨씬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에 대한 투자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해서 단호하고 정리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정치인의 역량이다. 

나처럼 이번 대선에서 정권이 바뀔 것이고, 그 다음 선거에서도 진보정당이 재집권할 가능성이 많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안철수의 양보는 본인을 위해서도 좋은 선택이다.  정치적 역량과 비전을 제대로 된 정치적 공간에서 발휘하고 평가 받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도, 지지자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국가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훌륭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정치인이 전략적 오판으로 싹도 피워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단일화 과정을 통해서 안철수는 충분히 훌륭한 정치인의 가능성을 보였다.  가장 불리한 상황에서도 전략적인 선택으로 일관했다.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대단했다. 안철수의 선의로 얻어진 상황에 환호하기만 하고 정치적 역량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을 가슴에 둔 대중들은 더 가혹해질 것이다.  문재인의 집중이 요구된다.

Friday, November 16, 2012

엔화의 미래, 한류의 미래

Andy Xie가  "Yen Edges toward Brink"란 오랜만에 재미있는 글을 썼다.  일본의 경제적 상황을 보면 우울하기 짝이 없다.  명목 GDP는 2007년에 비해서 9%가 줄었다.  심지어 1992년에 비해서도 2.5%가 줄었다.  92년 국가부채는 GDP의 20%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230%나 된다.  GDP의 200%나 되는 재정지출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돌아서지 못했다.  반면 비슷한 경제위기를 경험한 미국은 2007년 이후 2011년까지 명목 GDP가 7% 늘었다.  2012년에만 4%가 증가했다. 2007년 이후 미국과 일본의 명목 GDP의 증가율은 20% 넘게 차이가 난다.

이런 일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시끄럽게 정권이 몇 번은 바뀌었을 듯 한데, 일본은 정권은 바뀌었지만 너무나 조용하다.  국내의 민간저축으로 정부부채 문제를 틀어막고 있기 때문이다.  실업률이 낮다.  게다가 검약한 일본인의 습성도 한몫하고 있다.  일본 직장인의 용돈은 30년전 수준이라는 서베이 결과도 있다고 한다.  지금 일본이 경험하고 있는 위기, 그리고 그 위기에 비해서 지나치게 조용한 정치, 조용하면서도 (특히 원전사태 이후) 비등점에 접근하고 있는 분위기, 모두 일본의 인구 상황과 크고 작은 관련이 있다.

일본은 노령국가다.  늙어가고 있다.  사회가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개인이 인식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지만, 구성원의 삶에 직접 간접으로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의 호주머니가 넉넉해질수록 사람들은 아이를 적게 낳는다.  출산과 육아와 양육이 너무 비싸지기 때문이다.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지만, 그런 선택들이 모여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정치에 나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일본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지만, 일본의 경우처럼 문제가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지 않다.  정치인들은 고령자, 연금 생활자들의 눈치를 본다. 일본과 같은 의원내각제에서는 뚝심있게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권력을 유지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 일본의 정권은 거의 매년 바뀐다. 바뀔 때 마다 일본의 모순은 수면위로 드러난다.

소니와 샤프로 대변되는 일본 전자회사들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 나라의 국민들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고 성실한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인간의 삶이 그렇듯 국가도 마찬가지다.  디플레이션 속에서 침체하는 나라의 통화가치가 상승하는데,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기를 바라기는 어려운 일이다.  일본처럼 디플레이션 상황에서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불가능하지 않다.  엔화를 찍어내 달러를 사고, 엔화를 팔아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면 된다.  늘어난 유동성으로 인해 물가가 올라가겠지만 일본은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나라다.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일본 통화 가치가 30% 떨어지면, 일본의 달러 표시 GDP는 30% 줄어든다.  Xie는 일본이 G3의 위치를 잃는 걸 두려워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런 결정을 했을 때의 정치적 후폭풍이 더 두려울 것이다.  일본처럼 고령자들이 많고, 연금 수령자들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엔화약세는 구매력을 잠식한다.  이들의 정치적 지지를 포기하고 집권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정권을 잃을 생각이 아니라면, 정부가 나서서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과연 엔화 약세 현상이 정부의 개입없이 가능한 상황이 올까?  최근 일본 전자 기업들은 큰 폭의 적자를 기록했다.  일본 기업중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은 자동차 메이커들뿐이다.  하지만, 중국과의 영토 분쟁으로 심지어 토요다조차도 중국 판매실적이 타격을 입었다.  민족주의 감정 때문에 일본 제품의 불매현상이 계속될 가능성보다 그런 일을 자초하는 일본의 형편없는 정치적 리더쉽이 더 문제다.  일본이 무역수지 적자로 인해 통화 절하 압력을 받을 개연성은 커지고 있다.  만약, 경상수지 적자 폭이 커지는데 민간저축이 따라가 주지 못하면 결국 세금을 인상할 수 밖에 없지만, 정권을 잃고 경제를 침체에 빠뜨리게 될까봐 쉽게 쓸 수 없는 정책일 것이다.  결국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어떻게 될까?  결국 사람들의 생각은 엔화 절하로 수렴된다.

2007년 경제위기 직전 원/엔 환율은 8원 정도였다.  지금은 13.4원 정도다.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엔화가 안전자산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류의 시작은 일본이었고, 지금도 대부분의 해외 현금흐름이 일본에서 나오기 때문에 강해진 엔화 가치는 한류 기획사들에겐 복음이었다.  고점일 때 16원이었던 원/엔 환율은 지금 13.4원.  지리멸렬한 일본 정부가 공격적인 외환개입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때, 과연 큰 폭의 엔/원 환율 하락은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디까지 가능할까? Xie의 말처럼 40%의 절하가 균형환율이라면, 우리 기업들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과연 그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한국은행은 외환시장 개입 목적의 공격적인 금리인하를 할 수 있을까? 그런 현실을 한국의 대중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공교롭게도 한류 기획사들의 주가는 마침 단기간에 많이도 빠졌다.  일본에 기대지 않은 한류의 미래는 불가능하다는 '블랙스완'은 아니길.

Tuesday, November 13, 2012

My thoughts on housing market

반포 GS자이에 살고 있던 후배가 이사를 결심했다.  리만 사태 때 3.5억 전세를 주고 들어간 35평 아파트의 전세값은 차근차근 올라서 마지막 계약을 갱신할 때는 6.5억이었다.  최근 전세값은 더 올라서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집주인은 8억으로 올려달라고 했다.  후배는 떠나기로 했고, 그 집은 8.3억에 전세계약이 체결되었다.  11-12억 정도에서 거래되고 있는 집의 전세가격이 8-9억이면 전세/집값 스프레드는 70%정도 된다.  이렇게 스프레드가 계속해서 타이트해진 이유는 물론 사람들이 집을 사지 않으면서 그 집에 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기간 금리는 꾸준하게 하락했다.  동일한 월세수입에 상응하기 위해서 전세 가격을 올려야 하는 건 집주인 입장에서 당연한 일이다.  2007년 말 6%였던 3년 국고채 금리는 지금 3%가 안 된다.  금리는 반토막이 났다.  같은 이자를 수취하기 위해서는 두 배의 원금이 필요하다.

2007년 미국의 부동산 시장이 무너지기 전까지 전세계 부동산 가격은 동반 상승했다.  글로벌한 현상이었다는 뜻이다.  물론 이런 상황은 많은 집없는 사람을 슬프게 만들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은 "집값을 잡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이룰 수 없는 약속이었고, 해서는 안 되는 약속이었다.  집안의 벌레를 없애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집을 불에 태워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약속을 지키진 못했지만, 그래도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한 미시적 대책은 좀 늦긴 했어도 비교적 잘 세워서 실천한 셈이었다.  다만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엔 역부족이어서 노무현의 경제정책에 대해서 사람들은 지금도 야박한 평가를 내린다.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부동산 가격의 움직임은 국지적 현상으로 바뀌었다.  특히 글로벌한 가격의 동조화는 사라졌다.  하지만 크게 봤을 때 여전히 글로벌 부동산 시장은 나쁘지 않았다.  우선, 위기와 무관하게 꾸준히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던 국가들이 있다.  스위스, 이스라엘, 그리고 벨기에 같은 나라들이다.  위기 때 잠시 가격이 하락했지만 반등해서 위기 때보다 가격이 더 높아진 국가들도 있다.  노르웨이나 캐나다 같은 나라들이다.  위기 때는 가격이 하락했지만, 지금은 반등해 거의 위기 수준으로 회복한 스웨덴이나 호주 같은 나라들도 있다.  반면, 여전히 부동산 시장이 고전하고 있는 국가들이 있다.  미국과 영국이 그렇고, 유로존 국가 중에서 채무로 고생하고 있는 아일랜드, 그리고,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이 그렇다.

부동산 가격을 이야기할 때 인구구조의 변화를 말하는 것은 부질없다.  그런 요인은 짧으면 10년, 길면 30년 정도를 두고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그건 마치,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서 조세정책을 쓰는 것과 비슷하게 뜬금없다.  부동산 보유세의 실효세율을 다른 국가들과 비슷하게 맞추는 것은 세율을 정상화하는 의미는 있어도 그것 자체가 가격을 하락시키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보유세율은 높지만 부동산 가격의 상승폭은 무시무시했었다.  금리와 소득 같은 거시적 요인이 훨씬 막강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 많은 나라에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거나 안정화되거나 반등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도 통화정책 때문이다.  특히 자국의 통화정책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의 통화정책 때문이다.  미국, 일본, 영국, 그리고 유럽 중앙은행이 모두 극단적으로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쓰고 있다.  미국이 0%까지 금리를 내리고 세 차례의 양적완화 정책을 쓰는 동안 우리나라의 시장 금리도 반토막이 났다.  무지막지한 유동성이 채권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왔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주식시장은 유동성 랠리를 한 적이 없다.  금융위기 때 주식시장을 빠져간 돈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2007년의 상황도 그렇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려서라도 집값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중앙은행은 세상에 있는 수 많은 금리중에서 단 하나의 금리(우리나라의 경우 7일 짜리 레포금리)만을 결정할 수 있을 뿐이다.  경제의 펀더멘탈과 괴리되는 금리정책을 사용하면, 금융시장은 그런 정책에 일드커브 역전과 같은 현상으로 반응한다.  그런 현상이 있으면 곧 경제는 침체에 빠지고, 중앙은행은 다시 금리를 내릴 수 밖에 없게 된다.   지난 10년 간의 우리나라 경제의 모습을 보면, 주식이든 채권이든 심지어 부동산이든 미국 금융시장의 그것들과 크게 괴리되지 않는다.  미국 주식이 오르면 우리 주식도 거의 올랐고, 미국 금리가 빠지면 우리 금리도 거의 빠졌다.  이렇게 높은 상관관계의 이면에는 독립적일 수 없는 통화정책이 있다.  한국의 통화정책이 미국에 독립적이기 어려운 이유는 물론 경제의 의존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수 년간 한국의 대중 의존도가 커지면서 중국 경제의 하드랜딩 가능성과 우리나라 금융시장에 줄 수 있는 충격이 논의됐다.  그러나 중국 경제는 하드 랜딩하지 않았고, 중국 주식시장이 폭락하는 시기에도 한국 주식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중국에 의존도가 높아진 것처럼 보여도 아직 시장이 고려하는 것은 한국 경제의 미국에 대한 의존도일 뿐이다.  이렇듯 높은 의존성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세계 경제가 그렇고, 우리가 조금 더 심할 뿐이다.

미 연준은 2015년에야 금리를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이 시기까지는 낮은 금리를 유지할 것이란 뜻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나라든 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위해서 금리를 인상하기는 쉽지 않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경제에 대한 충격을 감수해야 한다.  안 그래도 통화가 절상되고 있는 마당에 기름을 끼엊는 꼴이 된다. 노르웨이나 캐나다 그리고 스웬덴 같은 국가들이 LTV 관리와 같은 미시적 대책에 치중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연준이 예상하는 것처럼 비상시에 사용한 극단적으로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출구전략을 실시할 때 우리는 어떤 상황일까?  미국의 경우처럼 개인 채무 문제를 털고 부동산 시장의 반등과 함께 금리를 인상할 수 있을까?  미국과 달리 개인 파산 형태로 가계부채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면, 소득 증가로 부채의 부담을 상쇄할 수 있을까?  가계부채 문제로 내수의 한계가 분명한 마당에 수출이 공격적으로 좋아지지 않는한 그것 마저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만약 가계부채 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채, 경제가 회복된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할 때, 한국은행이 상대적으로 미온적으로 반응할 수 밖에 없다면, 어떤 현상이 금융시장에 일어날까?

아무래도 새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할 시간은 3년 정도 남은 듯.

Thursday, November 08, 2012

담대한 희망, 분명한 전략

이경은이 다음 주 출간 예정인 "대통령은 왜 임기 전에 실패할까"는 아주 좋은 책이다.  아마도 올해 읽은 가장 재미있었던 책 중에 한 권이 될 것 같다.  개인적인 인연으로 출간되기 전에 읽었지만, 이 책은 대선을 앞둔 세 명의 유력 후보나 관련된 정치인들 뿐 아니라, 삶의 지향점을 만들고 싶어하는 보통 사람들에게도 좋은 책이다.  "전략적일 수 없다면 철학적일 것"이라는 나의 계속되는 주장이, 정책적 혹은 정략적 선택을 해야 하는 정치인 뿐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개인에게도 어떤 구체적인 함의를 가지는지 이 책은 여러 사례들을 보여준다.

1860년 링컨은 유력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다.  네 명의 후보들 중에서 링컨은 가장 덜 유명하고, 가장 존재감이 약했으며, 또 가장 못생긴 후보였다.  제일 못난 후보였던 링컨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더 잘나갔던 정적들을 각료로 임명했다.  노예제도를 둘러싸고 두 개의 미국으로 분열되고 전쟁이 임박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국무장관으로 임명된 뉴욕 상원의원 슈어드는 링컨의 전략에 정면으로 반발하고 링컨을 공공연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링컨의 헌신적인 노력에 통해서 슈어드는 링컨과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링컨을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칭송하게 된다.  전기 작가 굿윈은 링컨이 라이벌과 정적을 각료로 임명하는 정략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왜 가능했던 것인지 설명한다.  그것은 링컨이 초인이거나 성인이어서가 아니라 링컨의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저급한 라이벌 의식이나 열등감 따위는 중요하지 않을만큼 그는 자신의 정책적인 목표에 집중했던 것이다.  링컨은 자신이 자각한 시대정신을 구현할 정책 목표를 위해서 자신의 인간적인 모멸감 같은 사적인 감정은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만큼 자신의 목표에 대한 인식이 강렬해기 때문이다

이경은은 2008년 대통령이 된 오바마의 인선이 링컨의 인선 못지 않게 감동적이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2008년 당시, 가장 주목받는 사건은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에 임명되고 로버트 게이츠가 국방장관에 유임되는 오바마의 내각구성이었다.  오바마는 민주당 경선에서 자신의 최대 정적이었고, 존재감으로 보면 자신보다 어쩌면 더 강렬할 수 있는 힐러리를 국무장관으로 임명했다.  게다가 부시 정권에서 국방장관이었던 공화당 사람인 로버트 게이츠를 국방장관으로 연임시켰다.  신선함에 비해서 외교안보 분야에서 경험이 부족한 현실을 적극적으로 보완하기 위해서,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정치적 부담이란 정략적 판단을 떨쳐버렸다.  이러한 결정에 회의적인 사람도 있었지만, 이 인사가 갖는 전략적 의미를 부인할 수는 없었다.  측근을 챙겨주거나 코드에 집중한 인사라는 비판은 불가능했다.  결과적으로 오바마의 이러한 인사는 성공적이었다.  4년 간의 외교안보정책의 안정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책적 목표를 위해서 권한과 권위를 나누겠다는 오바마의 의지는 엉뚱한 곳에서 보답이 왔다.  힐러리 클린턴의 남편인 빌 클린턴은 힘들게 이번 재선을 치른 오바마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9월 초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인상적인 50분간의 연설을 통해 오바마의 존재감을 끌어올렸고, 첫 번째 토론이후 지지율이 하락하는 오바마를 위해 대중 유세를 마다하지 않았다.  선거전 마지막 주말까지도 오바마와 함께 공동유세에 나섰다.  보도에 따르면, 재선이 확정된 오바마가 제일 먼저 감사전화를 건 자신의 재선을 위해 목소리까지 쉬어버린 클린턴이었다.

전략적 선택을 잘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단순히 전략적 사고를 잘 하는 머리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링컨이나 오바마의 모습에서 보듯,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으면 전략의 수립이나 수행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간이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당신의 경제학적 분석은 잘 들어맞지 않아요"라는 말을 가끔씩 듣는다.  하지만, 인간이 합리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실은 대부분의 인간이 분명한 목표를 갖고 살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문득 든다.   클리어한 인생의 목표가 없는데 어떻게 전략적 선택이 가능한가.  전략이란 구체적인 대안에 대한 선택이고, 전략적 선택이란 그 대안들이 갖고 있는 페이오프에 대한 판단인데.

Tuesday, November 06, 2012

토요일, 생각의 과잉

점심
2주 전쯤 아내가 없던 토요일 저녁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맛있게 먹었던 중국집에 이번 토요일 점심 때 다시 들렸다. 이 집 탕수육이 정말 훌륭했어, 라고 말하면서 시킨 탕수육은 최근 먹어본 것중에서 최악. 튀김은 딱딱하고, 대충 뿌린 소스는 달짝지근, 소스와 튀김은 따로 논다. 도대체 2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오다 보니 50대 중반의 아저씨가 조리중. 주방장이 아니라고 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고, 주방장이라고 하기엔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사장에게 맛이 이상하다고 했더니, "쉬는 주방장 대신 과장님이 요리했어요"라고 말한다. 아마도 저 분도 주방장이 조리하는 탕수육을 옆에서 수없이 많이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과장님은 주방장이 내는 그 맛을 낼 수가 없다. 나라면 그 맛을 배우기 위해서 정말 노력했을텐데. 그러면 언젠가는 내가 직접 맛있는 탕수육 가게를 낼 수 있을텐데. 하다못해, 내 아이들에게 정말 맛있는 탕수육을 해줄 수라도 있을텐데.

오후
아내는 오후에 부재중이고 나는 아이를 축구대회에 대려간다. 아이의 팀은 꼴등인 5등을 했다. 아이는 코치가 팀을 약한 아이들로 짜서 졌다며 짜증을 내고 결국 핸드폰이 든 잠바도 잃어 버렸다. 차에서 안 내리겠다면서 강짜를 놓는 아이를 참고 데리고 올라와 아주 혼을 냈다. "축구라는 게임의 속성은 아무리 내가 잘해도 동료들이 못하면 질 수 있는 것이니 그런 게 싫은면 축구를 하지 말라"고 했다. 남의 입장을 이해하라는 취지지만 유난히 독특한 성질머리를 가진 이 아이는 엎드려 뻗쳐 자세에도 계속 게기다가 겨우 굴복한다. 아빠는 힘이 세긴 하지만 그래도 아빠는 너가 맞는 말을 하면 인정할테니 어디 너의 주장을 해보라고 하지만 아이는 설득력있는 반박을 하기 어렵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나이의 사내 아이는 굴복하고 나면 더 친해진다는 것. 뒷끝이 없다. 그리고 말을 오히려 잘 듣기 시작한다는 것. 나는 두 아이를 데리고 동네 목욕탕에 갔다. 아이의 같은 반 친구이자 축구반 친구인 아이가 있다. "얘 학교에서 어떠니?" 그랬더니 "수업시간에 다른 책 봐요" "선생님이 모라고 안 하셔?" "혼 내시다가 이젠 포기하셨데요. 집 나간 강아지래요" 그 아이는 다른 축구반 친구와 냉탕에서 장난치다가 결국 발을 다친다. 도망간 친구를 화가 나서 쫓다가 문을 확 열었는데 문밑으로 엄지 발가락이 깔렸다. 어른들이 문을 들어 아이의 발을 꺼낸다. 내가 보고 "이거 꼬매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더니 아이는 대성통곡(하지만 자세히 보니 생각보다 깊이가 깊진 않다). 아이들의 웃음과 울음, 천진난만함과 경고망동이 가득한 토요일 오후다. 둘째는 형들의 난리법석을 보더니 겁이 나서 목욕탕 문을 열지 못한다. 마지막 운명의 장난. 아이가 놓고 간 잠바를 누군가 경비실에 맡겨주었다는 사실을 집에 와서 발견한다. 그 분은 엄지 발가락을 다친 바로 그 아이의 엄마.

저녁
저녁까지 이어지는 아내의 부재. 스파게티를 요리하려고 했더니 재료를 찾을 수가 없다. 밥먹으러 나가자고 했더니 아이들이 거부. 결국 피자를 시켜 먹는다. 아이들은 '스타킹'에 집중한다. 아내가 돌아오면서 나는 맛사지를 간다. 돌아온 손선생님은 맛사지가 아니라 치료를 한다. 훌륭한 맛사지사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근육을 잘 풀어주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과 혈을 정확하게 눌러서 풀어주는 것에 더 집중하는 사람. 나는 후자를 선호한다. 손선생님의 손끝은 근육을 풀어주는 것 보다는 혈의 위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강약을 조절해서 누른다.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어려운 일이다. "오늘은 등하고 어깨만 한 시간 했어요"라고 말한다. 이런 능력은 타고 나는 것일까 아니면 노력일까. 몇 십년 째 일하고 있는 사람도 관성에 따라서 일을 하는 사람은 절대로 이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 하지만 문득 든 의문. 열심히 한다고 과연 할 수 있을까? 아마도. 하지만, 껍질을 깨뜨리기 위한 눈물 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사상의학을 하는 많은 한의사들이 중간에 포기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사상의학만큼 매력적인 학문도 드물다. 예를 들어 인삼은 분명히 훌륭한 약재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렇지는 않다. 이리노테칸은 대장암 환자에게 잘 듣는 항암제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렇지는 않다. 어떤 환자는 그 항암제를 쓰면 상태가 더 나빠진다. 한 여름 맥주는 시원하고 맛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맞는 술이 아니다. 따라서, 어떤 약을 먹었더니, 어떤 음식을 먹었더니 건강에 좋더라라는 말은 그 사람에게만 해당될 뿐 보편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만약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영험한 약이나 음식이 있다면 세상이 이렇게 복잡하고 논쟁적일 리 없다. 만약 어떤 약과 음식이 특정 사람에게 맞는 이유를 체질이라고 설명하면 아귀가 잘 들어 맞는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어떤 체질인지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한의사들이 사상의학에 몰입하다가 포기한다. 알고 있는 지식은 한정적이지만 변종과 예외가 현상에서는 수없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왠만한 노력으로는 그 예외와 변종을 파악할 수 없다.

역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처음 사주보는 법을 배우는 사람들은 생년월일시로 사주를 세워 점을 보면서 즐거워 하지만, 곧 디테일에 들어가면 혼란에 빠진다. 인간의 삶은 결코 124가지로 정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차트 역시 마찬가지다. 차트를 처음 공부하는 사람은 이평선의 영험함에 감탄하게 된다. 이평선이 돌파될 때의 강세장의 가능성, 이평선이 수렴될 때 변동성 확대의 가능성에 전율한다. 하지만, 이평선만으로는 절대 돈을 벌 수가 없기 때문에 곧 좌절에 빠진다. 모든 기술적 분석은 후행적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단순한 법칙으로는 설명될 수 없고, 파악될 수 없다. 그것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수 많은 예외와 변칙이 존재한다. 결국은 복잡한 현상을 관통하는 직관을 바탕으로 변종과 변이와 이상현상을 통찰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재능은 상당부분 타고나기 때문에, 대부분의 명의, 뛰어난 점술가, 뛰어난 투자자 역시 타고 난다. 타고 나지 않으면서도 그 재주를 가지려면 특별한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인간들 뿐이다. 예를 들어서, 트레이더가 타고난 인간의 본성을 극복하려면 바닥까지 내려가보아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돈을 잃고, 직장에서 짤릴 위기쯤은 겪은 후에야 비로서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자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런 바닥에서 포기한다.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쓰러졌다 하면 만사 잊고 그냥 쉬고만 싶어. 그게 KO된 자들의 공통점이야"

Thursday, November 01, 2012

선거의 전략, 선거의 의미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박원순에게 서울 시장 후보를 양보하지 않았어야 했다.   야권 단일화를 이유로 후보를 내지 못하는 야당을 보면서 사람들은 야당의 정당에 대한 기대치를 내려 놓았다.  무소속에게 후보를 양보하는 정당이 대선을 앞두고 무소속 후보의 단점을 지적한들 파괴력있는 호소력을 갖추기 어렵게 된 기원이다.  지지율이 5%도 안 되던 박원순이 서울시장에 당선된 것은 안철수의 지지 때문이 아니라 민주당의 패착 때문이다.  박원순이 서울 시장 후보가 되면서 서울 시장 선거를 하게 된 본질적인 이유였던 무상급식 문제는 오히려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가장 논쟁적이어야 했을 재선거의 사안은 안철수와 그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논란으로 대체되었다.  정치 발전이란 관점에서 보면 굉장한 퇴보였고, 민주당의 입장에서 보면 엄청난 자해극이었다.

민주당이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한 것, 통합진보당과 정책 공조를 한다며 자기모순적인 정책들을 양산하게 된 것, 공천 실패로 다 이긴 총선을 지게된 것 모두 민주당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를 낮추고 안철수란 인물에게 관심을 갖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다.  한나라당에 대해 두려움에 질린 민주당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찌질함'이란 표현을 떠올렸다.  자신감 없이 배후의 힘을 빌어 사랑을 구걸하는 대상에게 매력을 느끼는 사람은 세상에 없는 법이다.  만약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내고 완주했다면 설령 박영선이 나경원에게 졌다고 해도 사람들은 민주당에 대한 생각을 바꿨을 것이다.  민주당은 총선에서 승리하지 않은 것이 역으로 대선 승리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리석은 생각이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했다면 안철수는 대선 후보로 나오지 못했다.

민주당이 이렇게 패착을 거듭하고 있는 이유는 새누리당과 박근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이명박 정권이 실패한 정권이고 실패한 정권을 사람들이 바꾸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역감정은 뿌리 깊고 정치공학의 힘은 강하다.  하지만 세상에 흐르는 근저의 힘을 압도할 만큼 강하지는 않다.  이명박 정권에 대해서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큰 염증은 소통의 부족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비민주성'이다.  이명박의 비민주성을 보완하면서 사람들이 이명박 정권에게 바랬던 세속성을 채워줄 수 있다는 기대감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그것이 민주당의 문제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매번, 바로 지금도, 그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은 단일화 없이 이길 수 있는 후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 단일화가 되어도 혹은 되지 않아도 문재인과 민주당이 이길 수 있다.

문재인은 단일화 없이도 승리할 수 있는 후보가 되어야 한다.  정책을 재정비하고 인사를 재구성해야 한다.  2007년 실권 후 처음으로 하나의 독립된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이는 것이다.  자기 모순적인 정책들은 정비하고 시대착오적인 인사들은 정리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설령 집권하지 못한다고 해도, 한국의 미래, 민주당의 미래, 심지어 문재인의 미래도 어둡지 않다.  하지만 단일화라는 이벤트에 매몰되는 순간 사람들은 민주당의 능력과 문재인의 가치를 의심하게 된다.  안철수는 민주당의 도움없이는 집권이 불가능하다.  안철수도 문재인도 박근혜도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안철수 돌풍이 오바마와 비슷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이유다.  안철수가 3자 경선에 완주하는 것은 정치적 자살에 가깝다.  지금 누리고 있는 영향력을 대선 이후에도 유지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재기의 가능성도 거의 없다.  그게 무소속 후보가 갖는 한계다.  하지만, 이미 문재인은 단일화 전략에 매몰되고 있다.  안타깝다.

문재인이 단일화란 사안에 매몰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여러 관점에서 안철수는 괜찮은 대통령 후보가 아니다.  문재인뿐 아니라 심지어 박근혜와 비교해서도 그렇다.  안타깝게도 그가 대통령이 될 경우에 생기는 많은 문제들은 리스크가 아니라 불확실성에 가깝다.  '안철수의 생각'이란 책을 내기 전까지 그는 전혀 진보적인 성향의 인사가 아니었다.  그의 말(안철수의 생각)이 아닌 그의 삶을 반추해보면, 그의 인생에 진보적인 면모를 찾아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컴퓨터 백신을 돈 주고 팔 수 없을 때 무상으로 배포하는 것은 자선이 아니다.  자선이란 것은 컴퓨터 백신을 돈을 받고 팔 수 있을 때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안철수의 행보는 정반대다.  나는 애국심에 근거해 회사를 외국에 팔지 않았다는 경영자의 자질과 도덕성을 의심한다. 거짓말이거나 부도덕하거나 무지한 경영자일 것이라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이명박 정권에서 승승장구한 사람이다.  그의 회사도 그도 심지어 그의 부인까지도 그랬다.  심지어 아이들의 교과서까지 출현했다.  노무현 정권에서 만든 교과서들이 분서갱유당하는 와중에.

박근혜가 지금 가장 미워하는 건 문재인이나 안철수가 아니다.  이명박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면 그건 이명박 때문이다.  박근혜는 이명박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  이명박 정권 초기에 그녀가 운신의 폭을 좁히고 때를 기다린 것도 그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이 실패할 줄 100% 확신했다면 박근혜는 이명박과 처음부터 날을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100%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박근혜는 이명박과 자신간의 거리를 넓게 구획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권이 실패하면서 박근혜는 이명박의 영향권안에 어쩔 수 없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명박이 셋팅해 놓은 대선 구도에 갇힌 형국이 되었다.  노무현 정권의 실패로 2007년 대선이 이명박과 박근혜의 싸움이 되어버렸다면, 이번 대선은 문재인과 안철수의 싸움이 되어 버렸다.  박근혜가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건 이명박이 만들어놓은 연옥같은 구조 때문이다.

박근혜가 추구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은 안철수가 아닌 문재인에 집중하는 것이다.  문재인과 민주당이 바보가 아니라면 야권의 단일화 후보는 문재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재인이 단일화를 포기하고 독립적인 후보가 되는 것을 선택할 수 없듯이 박근혜도 어쩔 수 없이 안철수에게 신경을 쓰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안철수에게 시시한 공격을 남발하는 것은 저지르기 쉬운 실책이 될 것이다.  만약 문재인과 민주당이 바보처럼 안철수에게 단일화 후보를 양보하게 된다면, 박근혜의 입장에서는 별로 방법이 없다.  국가의 입장에서는 대통령 안철수가 (리스크와 불확실성이 모두 높은) 최악의 선택이겠지만, 박근혜의 입장에서도 그렇다.  어찌해도 이길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박근혜는 상대적으로 다루기 쉬운 문재인이 후보가 되기를 바라되 안철수가 되면 패배를 준비하고 다음 5년 동안 생길 국가적 혼란과 위기를 관리할 야당으로서의 역할을 준비해야 한다.

안철수의 전략은 단순하다.  문재인이 안철수에게 유리한 단일화 조건을 제시하기를 유도하는 것이고 그 기회를 잡는 것이다.  기회를 잡으면 대통령이 될 것이고,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유력한 정치인으로 부상해주면 된다.  안철수 본인으로서는 대통령이 되는 경우가 훨씬 당혹스럽겠지만 어차피 어느 경우든 안철수의 입장에서 잃을 것은 거의 없다.  안철수의 곁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생각일 것이다.  어느 경우든 잃은 것은 거의 없다는.  안철수가 단일화 후보가 되면 나의 입장에서는 12월 19일 수요일이 완전한 휴일이 된다.  어떤 후보가 당선될지는 예측가능하고, 어떤 후보도 지지하지 않는 입장에서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굉장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반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