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의 책같은 걸 한번 써보라는 R형의 말이 가슴이 남아서, 박경철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를 사서 읽었다. 좋은 책이지만 이 책을 달달 외운다고 해도 돈을 버는데는 그닥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투자든 트레이딩이든 성공하려면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노력에 의한 통찰, 본능에 의한 감각(촉), 그리고 타고난 운이다. 아마도 박경철은 통찰과 감각과 운을 모두 가졌겠지만 이 책은 그 세 개를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감각과 운을 얻게 해주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고, 노력에 의한 통찰 역시 이 책을 통해서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군가가 노력으로 얻은 통찰을 내가 배우는 것은 성공담이 아니라, 실패담에 의해서 가능하다. 만약 그가 처음부터 성공만 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 운을 나누어 줄 수는 없다. 만약 그가 얻은 재능이 실패를 통한 것이었다면 그것은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지만, 실패와 실수를 누군가와 나누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실패를 거쳐 성공에 이른 사람으로서는 자신의 신화를 망가뜨려야 할 인센티브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투자든 투기든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 책의 행간을 읽어 깨달음을 얻고, 실재 경험을 통해 돈을 벌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명심할 것은 금융시장에서 "경험을 한다"라는 말 뜻은 "손실을 기록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순간이 될 것이다.
Friday, October 26, 2012
오바마 vs. 롬니
최근 미국 주식은 약세, 채권도 약세인 정황이 펼쳐지고 있다. 재료만 보면 다소 기묘한 상황인데, 이러한 모습을 오바마 당선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하면 잘 들어 맞는다. 롬니가 당선되면, 1) 버낸키가 물러나고, 2) 양적완화가 끝나고, 3) 약달러가 끝나고, 4) 감세정책이 다시 시작되며, 5) 도드-프랭크도 없어지고, 6) 재정절벽은 없을 것이고, 7) 배당소득세와 자본이득세의 증세가 없을 것이며, 7) 헬리콥터로 시장에 뿌린 유동성을 걷어갈 것이다. 주식은 타격을 입겠지만, 상품시장이나 채권시장 만큼은 아닐 것이다. 미국 금리가 오르면서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 시장에 들어와있는 채권 자금의 이동도 불가피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미국 국민들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과연 대다수의 미국 국민들이 롬니를 선택할까? 만약 그렇다면, 내 두 번째 책은 당분간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Wednesday, October 24, 2012
정치개혁에 대한 단상
대의제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 제도하에서 선출된 국회의원은 사법부나 행정부에 비해서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진다. 물론 그 강력한 힘은 국민이 직접 선출했다는 정당성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선거와 선거의 텀이 길면 길수록, 그리고 유권자 수에 비해서 국회의원의 수가 적을수록 그들이 대변해야 하는 유권자들의 이해관계 대신 자신의 이해관계에 충실할 인센티브는 커진다. 한번 당선되기만 하면 훨씬 강하고 견제받기 어려운 권력을 행사하려고 들 것이기 때문이다. 의회는 정부기관을 감사하지만 의회를 감사하는 기관은 없다. 감사하는 기관을 감사하는 기관을 또 만들기는 현실적으로도 어렵다. 그 기관을 감사하는 기관을 또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의제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을때 어떤 사람들은 국회를 없애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겨울이 추우니 코트를 없애자, 라고 말하는 것과 별 다를 바 없다. 옷이 얇아서 추운 것이 아니라 겨울이 추운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더 따뜻한 코트를 구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충분히 두껍지 않은 코트가 겨울을 불러왔다고 비난한다. 정서적으로 암울하고 지적으로 척박한 사회에서는 코트를 없애면 겨울이 오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 각광을 받기도 한다. 국회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때, 국회의원수를 줄이자고 주장하는 것은 충분히 그럴듯 하다. 그 주장을 하는 것이 초등학교 2학년 내 아들이라면. 하지만, 그게 정당출신 대선 후보들을 지지율에서 위협하는 무소속의 대선 후보라면 참 딱한 일이다.
나는 국회의원 수는 늘리고, 정당 보조금은 확대하며, 선거의 텀은 더 줄이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대의제 민주주의의 기능을 극대화하고, 부패의 가능성을 줄이며, 국회의원 개인의 권능은 축소하는 길이다. 그로 인해서 늘어나는 부담은 우리가 정치발전을 위해서 지불해야 할 당연한 비용이다. 그게 싫으면 코트를 벗고 겨울에 벌벌 떨면서 사는 것이 맞다. 만약, 구체적으로 어떤 코트를 얼마 주고 사는 게 추운 겨울을 나는데 좋은지 고민스럽다면, 본격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정치 개혁의 핵심은 정치자금법의 개혁이다. 정치자금법의 개혁(혹은 현실화)없이는 어떤 형태의 검찰 개혁을 해도 큰 의미는 없다. 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검사장을 선거로 뽑으면 달라질까? 정치를 시작하는 순간 모두 잠재적 범죄자일텐데. 그렇다고 안철수나 정몽준 같은 부자들에게만 정치를 맡길 순 없지 않을까.
대의제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을때 어떤 사람들은 국회를 없애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겨울이 추우니 코트를 없애자, 라고 말하는 것과 별 다를 바 없다. 옷이 얇아서 추운 것이 아니라 겨울이 추운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더 따뜻한 코트를 구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충분히 두껍지 않은 코트가 겨울을 불러왔다고 비난한다. 정서적으로 암울하고 지적으로 척박한 사회에서는 코트를 없애면 겨울이 오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 각광을 받기도 한다. 국회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때, 국회의원수를 줄이자고 주장하는 것은 충분히 그럴듯 하다. 그 주장을 하는 것이 초등학교 2학년 내 아들이라면. 하지만, 그게 정당출신 대선 후보들을 지지율에서 위협하는 무소속의 대선 후보라면 참 딱한 일이다.
나는 국회의원 수는 늘리고, 정당 보조금은 확대하며, 선거의 텀은 더 줄이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대의제 민주주의의 기능을 극대화하고, 부패의 가능성을 줄이며, 국회의원 개인의 권능은 축소하는 길이다. 그로 인해서 늘어나는 부담은 우리가 정치발전을 위해서 지불해야 할 당연한 비용이다. 그게 싫으면 코트를 벗고 겨울에 벌벌 떨면서 사는 것이 맞다. 만약, 구체적으로 어떤 코트를 얼마 주고 사는 게 추운 겨울을 나는데 좋은지 고민스럽다면, 본격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정치 개혁의 핵심은 정치자금법의 개혁이다. 정치자금법의 개혁(혹은 현실화)없이는 어떤 형태의 검찰 개혁을 해도 큰 의미는 없다. 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검사장을 선거로 뽑으면 달라질까? 정치를 시작하는 순간 모두 잠재적 범죄자일텐데. 그렇다고 안철수나 정몽준 같은 부자들에게만 정치를 맡길 순 없지 않을까.
Monday, October 22, 2012
무인 자동차에 대한 단상
구글의 무인자동차가 42만 킬로를 무사고로 주행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네바다 주에서는 번호판도 받았다고 한다. 이런 발전 속도라면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20-30년은 고사하고 10년 뒤에도 과연 내가 직접 운전하는 자동차를 계속 타게 될지 의문이다. 막상 그런 차가 나오면 우리의 삶은 정말 많은 변화가 있을텐데, 무인 자동차가 나오는 상황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담담하다. 아마도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에 스스로 대답할 능력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무인 항법 장치의 가격은 얼마 정도일까? 자동차 회사 입장에서 과연 그런 무인 항법 장치를 저가 자동차에도 달게 될까? 무인 항법 장치가 달린 최고급 승용차를 과연 사람들은 지금처럼 비싼 값을 주고 사게 될까? 나같이 운전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안전하다면 굳이 비싼 차를 살 필요가 없을 듯 한데. 무인 항법 장치를 거부하고 수동으로 운전하는 사람이 무인 차량을 상대로 사고를 일으키면 과실 여부를 어떻게 따지게 될까? 무인 자동차의 등장에도 택시 기사는 존재하게 될까? 트럭 운전사는? 아이를 목적지까지 무인 자동차에 태워서 보내는 건 불법이 될까? 무인 자동차에서 섹스를 하면 불법일까? 사람들은 운전할 필요가 없는 차에서 무엇을 하려고 들까? 이런 사회적 변화의 수혜자는 누가 될까? 교통사고 사고율은 감소하게 될 것 같은데 그 경우 보험회사는 이익을 보게 될까 손해를 보게 될까? 구글 뿐 아니라 고도의 광학 기술을 갖고 있는 회사들은 이러한 발전에 직접적인 수혜자가 되지 않을까? 어떤 회사가 있을까?
무인 항법 장치의 가격은 얼마 정도일까? 자동차 회사 입장에서 과연 그런 무인 항법 장치를 저가 자동차에도 달게 될까? 무인 항법 장치가 달린 최고급 승용차를 과연 사람들은 지금처럼 비싼 값을 주고 사게 될까? 나같이 운전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안전하다면 굳이 비싼 차를 살 필요가 없을 듯 한데. 무인 항법 장치를 거부하고 수동으로 운전하는 사람이 무인 차량을 상대로 사고를 일으키면 과실 여부를 어떻게 따지게 될까? 무인 자동차의 등장에도 택시 기사는 존재하게 될까? 트럭 운전사는? 아이를 목적지까지 무인 자동차에 태워서 보내는 건 불법이 될까? 무인 자동차에서 섹스를 하면 불법일까? 사람들은 운전할 필요가 없는 차에서 무엇을 하려고 들까? 이런 사회적 변화의 수혜자는 누가 될까? 교통사고 사고율은 감소하게 될 것 같은데 그 경우 보험회사는 이익을 보게 될까 손해를 보게 될까? 구글 뿐 아니라 고도의 광학 기술을 갖고 있는 회사들은 이러한 발전에 직접적인 수혜자가 되지 않을까? 어떤 회사가 있을까?
어른이 된다는 것
13일 토요일에 큰 아이가 축구를 하는 초등학교로 3시 30분에 데리러 갔다. 주차장엔 차 댈 곳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아빠가 정문 앞에 있을 거라 말해 두었다. 30분부터 40분까지 학교 정문에서 기다렸는데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시동을 건 채 내려서 찾아 보았더니 이미 축구 수업은 끝이 났고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담당 코치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나보고 정문 앞에서 기다리라고 하고는 동료 코치와 교내에서 아이를 찾았다. 아이가 보이지 않으니, 나에게 정문을 지키게 하고, 학교 정문을 중심으로 좌우를 찾았다. 이번에도 보이지 않으니 학교 주변 두 개의 아파트의 놀이터에서 아이를 찾았다. 역시 아이는 보이지 않는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 사실을 알린다. 내 예상보다 세 배쯤 아내의 반응은 크다.
"어쩌면 걸어서 혼자 갔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걸어갈 수 있는 동선으로 찾아보겠습니다"
"걸어가는 길을 알고 있나요?"
"네. 저와 한번 같이 걸어간 적이 있어요"
"그럼 저는 다른 동선으로 한번 찾아 보겠습니다. 만약에 20분 안에 발견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차를 타고 돌아보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는다. 시계를 보며 어쩌면 아이는 집에 거의 갔을지도 모른다, 고 생각한다. 4시 쯤 아내에게 전화가 온다. 예상대로 아이는 혼자 걸어서 집에 갔다. 운동장에 남아 있는 코치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아이를 찾으러 차를 몰고 나간 코치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 달라고 말한다. 차를 몰고 집으로 가던 중 차를 타고 학교로 돌아오는 코치를 만나 이 사실을 전한다. 기분 나빠 하지 않고 웃으며 '다행이네요'라고 말한다. 코치의 태도는 칭찬할만 하다. 당황하지 않고, 화내지 않으며, 본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
집에 가니 아이는 쫄아 있다. 자기가 잘못해서 쫀 게 아니다. 엄마의 반응에 놀란 것이다. 아이는 어쩌면 자신이 30분을 걸어서 집까지 왔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막상 문을 열고 들어오면 엄마의 감탄과 찬사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아이에게 어떤 벌을 받겠냐고 물어본다.
"바깥놀이를 30일 동안 안 할께요"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벌을 자청하는 걸로 보아, 자신이 크게 잘못한 것 같다고 느낀 모양이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벌을 내려보았자 효과는 미미하다. 이 나이의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아무리 지적으로 조숙한 아이라도 감정적인 제어가 되지 않는다. 사춘기란 시기는 그런 불균형이 극대화되는 시기다. 지적으로 어른과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두엽의 발달이 끝나지 않아서, 감정적인 성숙이 되지 않는다. 감정적인 성숙이 되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는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20대 초반까지도 이런 발달은 마무리 되지 않는다. 어떤 경우, 어떤 인간의 경우에는 영원히 이러한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영원히 다른 인간의 입장이 되어 보지 못한다.
세 가지 숙제를 주고 이 사태를 마무리한다. 1) 오늘 있었던 일을 한 페이지 일기로 적는다. 2)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다, 를 쓰고 큰 소리로 읽는다. 두 페이지 빽빽하게 적는다. 3) 행동하기 전에 생각한다, 를 역시 쓰고 큰 소리로 읽는다. 역시 백지 앞 뒷면으로 빽빽하게 적는다. 이래 봤자 행동하기 전에 생각할 리 없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미리 생각해볼 리 없다. 하지만, 아이에게 무턱대고 화를 내고, 아이를 때리는 것보다는 낫다. 그러고 보니 나도 가끔 백지에 "머리를 쓰지 않으면 몸이 고생한다"라고 몇 번이고 쓸 때가 있다. 나 역시 계속 같은 오류를 반복한다. 오류를 반복하는 게 나쁜 게 아니라,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고 있는 게 나쁘다.
"어쩌면 걸어서 혼자 갔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걸어갈 수 있는 동선으로 찾아보겠습니다"
"걸어가는 길을 알고 있나요?"
"네. 저와 한번 같이 걸어간 적이 있어요"
"그럼 저는 다른 동선으로 한번 찾아 보겠습니다. 만약에 20분 안에 발견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차를 타고 돌아보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는다. 시계를 보며 어쩌면 아이는 집에 거의 갔을지도 모른다, 고 생각한다. 4시 쯤 아내에게 전화가 온다. 예상대로 아이는 혼자 걸어서 집에 갔다. 운동장에 남아 있는 코치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아이를 찾으러 차를 몰고 나간 코치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 달라고 말한다. 차를 몰고 집으로 가던 중 차를 타고 학교로 돌아오는 코치를 만나 이 사실을 전한다. 기분 나빠 하지 않고 웃으며 '다행이네요'라고 말한다. 코치의 태도는 칭찬할만 하다. 당황하지 않고, 화내지 않으며, 본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
집에 가니 아이는 쫄아 있다. 자기가 잘못해서 쫀 게 아니다. 엄마의 반응에 놀란 것이다. 아이는 어쩌면 자신이 30분을 걸어서 집까지 왔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막상 문을 열고 들어오면 엄마의 감탄과 찬사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아이에게 어떤 벌을 받겠냐고 물어본다.
"바깥놀이를 30일 동안 안 할께요"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벌을 자청하는 걸로 보아, 자신이 크게 잘못한 것 같다고 느낀 모양이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벌을 내려보았자 효과는 미미하다. 이 나이의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아무리 지적으로 조숙한 아이라도 감정적인 제어가 되지 않는다. 사춘기란 시기는 그런 불균형이 극대화되는 시기다. 지적으로 어른과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두엽의 발달이 끝나지 않아서, 감정적인 성숙이 되지 않는다. 감정적인 성숙이 되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는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20대 초반까지도 이런 발달은 마무리 되지 않는다. 어떤 경우, 어떤 인간의 경우에는 영원히 이러한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영원히 다른 인간의 입장이 되어 보지 못한다.
세 가지 숙제를 주고 이 사태를 마무리한다. 1) 오늘 있었던 일을 한 페이지 일기로 적는다. 2)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다, 를 쓰고 큰 소리로 읽는다. 두 페이지 빽빽하게 적는다. 3) 행동하기 전에 생각한다, 를 역시 쓰고 큰 소리로 읽는다. 역시 백지 앞 뒷면으로 빽빽하게 적는다. 이래 봤자 행동하기 전에 생각할 리 없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미리 생각해볼 리 없다. 하지만, 아이에게 무턱대고 화를 내고, 아이를 때리는 것보다는 낫다. 그러고 보니 나도 가끔 백지에 "머리를 쓰지 않으면 몸이 고생한다"라고 몇 번이고 쓸 때가 있다. 나 역시 계속 같은 오류를 반복한다. 오류를 반복하는 게 나쁜 게 아니라,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고 있는 게 나쁘다.
Tuesday, October 16, 2012
손정의의 Sprint Nextel 인수
소프트 뱅크가 201억불을 투자해서 스프린트의 70%를 인수했다. 80억불은 현금(31억불은 주당 5.25불의 전환사채로, 49억불은 주당 4.9불의 15만주 신주발행)으로 55%의 주식은 121억불을 주고 주당 7.3불에 인수했다. 스프린트가 인수된다는 뉴스가 발표되기 전 주가는 5불이 조금 넘는 정도로 2011년 말 스프린트의 종가인 2.34불 대비 140%정도가 올랐다. S&P500 지수가 올해 14% 정도 올랐으니 엄청나게 오른 셈이다. 골드만 삭스의 Jason Amstrong에 의하면, 스프린트의 인수 전 시장가격은 스프린트의 EBITDA가 향후 2년간 50% 정도 올라야 합리화될 수 있는 가격이었다. 많은 애널리스트들이 5불이 넘어가는 스프린트의 주가는 오버슈팅이라고 봤다. 골드만 삭스의 스프린트의 목표가격은 그래서 3.75불이었다. 그런데, 스프린트가 인수를 결정하자 목표 가격을 6불로 올렸다.
손정의는 시장가격 보다 꽤 높은 프리미엄을 주고 스프린트를 인수한 셈이다. 가격과 규모로 볼 때 소프트 뱅크 주주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다. 당연히 발표가 있고 난 후 소프트 뱅크의 주가는 폭락했다. 정황상 손정의의 인수 가능성은 이미 스프린트의 가격에 반영되어 있었다고 보는 게 옳을 듯 하다. 그렇지 않으면 올해 오른 스프린트의 가격은 딱히 설명하기가 어렵다. 소프트 뱅크를 담당하는 애널리스트들의 입장은 대략 "지금까지의 소프트 뱅크의 인수/합병은 모두 성공했다. 그렇지만 이번은 워낙 가격이 높아 회수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것이다.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이런 결정을 한 것이 손정의니까 긴장하고 두고 보겠다는 것 같다. 물론, 시장은 이런 식의 불확실성을 싫어하니까 일단 20% 정도 하락했고. (16일은 10% 정도 반등)
이번 손정의의 결정으로 당황스러운 것은 기존의 미국 통신사업자들이다. 손정의가 보다폰(Vodafone Janpan)을 인수한 다음에 보여준 가공할 공격성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폰을 단독 수입하고, 약정기간을 늘리는 대신 핸드폰 값을 왕창 깎아주고, 무선 데이터 속도를 크게 늘리고 그러면서 마켓 쉐어를 빠르게 확장해갔다. 어쩌면 곧 미국의 통신 소비자들은 느려터지고 답답하기까지한 미국의 기존 통신 서비스와는 다른 서비스를 접하게 될지도 모르고 그러면 스프린트의 약진이 있을지 모른다, 는 막연한 (투자자와 소비자 입장에서의) 기대와 (경쟁자 입장에서) 불안감이 서성거리고 있다. 아주 재미있어질 듯. 결과가 어떻든 참 대단한 사람이다. 손정의.
손정의는 시장가격 보다 꽤 높은 프리미엄을 주고 스프린트를 인수한 셈이다. 가격과 규모로 볼 때 소프트 뱅크 주주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다. 당연히 발표가 있고 난 후 소프트 뱅크의 주가는 폭락했다. 정황상 손정의의 인수 가능성은 이미 스프린트의 가격에 반영되어 있었다고 보는 게 옳을 듯 하다. 그렇지 않으면 올해 오른 스프린트의 가격은 딱히 설명하기가 어렵다. 소프트 뱅크를 담당하는 애널리스트들의 입장은 대략 "지금까지의 소프트 뱅크의 인수/합병은 모두 성공했다. 그렇지만 이번은 워낙 가격이 높아 회수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것이다.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이런 결정을 한 것이 손정의니까 긴장하고 두고 보겠다는 것 같다. 물론, 시장은 이런 식의 불확실성을 싫어하니까 일단 20% 정도 하락했고. (16일은 10% 정도 반등)
이번 손정의의 결정으로 당황스러운 것은 기존의 미국 통신사업자들이다. 손정의가 보다폰(Vodafone Janpan)을 인수한 다음에 보여준 가공할 공격성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폰을 단독 수입하고, 약정기간을 늘리는 대신 핸드폰 값을 왕창 깎아주고, 무선 데이터 속도를 크게 늘리고 그러면서 마켓 쉐어를 빠르게 확장해갔다. 어쩌면 곧 미국의 통신 소비자들은 느려터지고 답답하기까지한 미국의 기존 통신 서비스와는 다른 서비스를 접하게 될지도 모르고 그러면 스프린트의 약진이 있을지 모른다, 는 막연한 (투자자와 소비자 입장에서의) 기대와 (경쟁자 입장에서) 불안감이 서성거리고 있다. 아주 재미있어질 듯. 결과가 어떻든 참 대단한 사람이다. 손정의.
Monday, October 15, 2012
출간 후 한달
책이 나온지 거의 한달이 다 되어 가고, 주말에 강남 교보문고에서 소위 '저자 강연회'를 했다. 강연회의 컨셉을 설정하는 건 어렵진 않지만 그렇다고 간단하지도 않다. 어떤 청중이냐에 따라 다르고, 출판사의 입장과 저자의 입장도 다르기 때문이다. 책을 읽지 않고 블로그 글도 읽어보지 않은 잠재적 독자로서는 책의 대략적인 개념을 설명하는 강연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은 독자나 블로그에 자주 들어온 사람으로서는 그런 강연은 지루할 것이다. 이번 강연회는 블로그와 트위터에만 광고를 했고, 그래서 책에서 다루지 않은 이야기를 주로 하고 싶었다.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메모를 해서 갔는데, 역시 청충이 예상보다 많다보니 원래 의도한 "체계적이지 않되 편안한" 내용이 되기 보다는 "산만하면서 허전한" 내용이 된 느낌이 있다. 그래서 강연을 짧게 하고 질의/응답을 하는 것이 맞았다는 반성에 도달했는데, 뒷풀이에 오신 분들에게는 가능한 솔직하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오후 4시반에 시작된 일정은 밤 11시가 조금 넘어 끝났다.
트레이딩을 하다보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도 돈을 버는 건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회사 돈으로 트레이딩을 하는 건 물론이고, 자신의 돈을 투자를 통해 늘리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아이디어가 시간이 흘러 옳은 것으로 판명되면 우쭐하기도하고(거봐, 내 말이 맞지) 후회하기도(왜 사지 않았을까) 한다. 하지만, 투자에서 후회란 아무 짝에도 소용없는 일이고, 우쭐해봤자 인정하고 좋아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부질없는 후회와 확신은 결국 인간의 삶에서 무한반복될 수 밖에 없다. 자신의 분석과 직관에 대한 확신이 얼마나 있는지는 사실 그 사람의 행동과 실천에서 밖에 확인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깨달음과 각성이 강렬하고 클수록 그에 따른 실천이 이루어져야만 그게 맞고 가치있는 것인지 아닌지 알게 된다. 애플의 미래를 확신한다면 애플이 200불일 때 사야지만 그 믿음이 맞는지 알 수 있다. 지금도 애플의 미래를 확신하면서 630불에서 사지 않으면 그 믿음이 얼마나 강한 강도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만약 사랑은 무조건적이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적인 사랑을 해보지 않고서는 그것이 가치 있는 것인지 혹은 불가능한 것인지 혹은 또 다른 함의가 있는 것인지 깨닫기 어렵다. 반대로 섹스가 곧 사랑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관계를 추구해보지 않고서는 그것이 의외로 허무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생각한대로 본질적인 것인지 알 수 없다.
자신만의 트레이딩 비법을 발견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데이타를 통해 우리는 그 트레이딩의 신뢰성을 확인해 볼 수 있지만, 그 신뢰성이 미래에 수익으로 구현된다고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막상 포지션을 갖게 된 트레이더는 누구도 공포와 탐욕의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그 비법의 완전성이 훼손될까 두려워 포지션을 가지 않는다면 그 트레이더는 영원히 "내가 발견한 트레이딩 비법"이라는 허상 속에서 살게 된다. 본인은 완벽한 비법을 만들었는지 몰라도, 아무 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깨달음이 거대하고 확실할수록 우리는 그걸 실천에 옮겨서 옳은지 틀린지, 무엇이 옳고 잘못되었는지 검증받아야만 한다. 하지만, 전향적이고 도전적인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으면서도 그런 경험을 확보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을 가기 위해 지금의 즐거움을 희생하는 것보다 자신이 갈 수 있는 대학을 간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사귀고 싶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귈 수 있는 사람을 사귄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갖고 싶은 직업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기 보다는 자신이 갈 수 있는 직장을 골라서 간다. 이런 성향의 차이는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대단한 차이를 만들어 낸다. 도전과 성취와 좌절이 끊이지 않는 오욕의 인생을 사는 사람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보다는 '남다른 생각과 경험'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그 생각과 경험을 단순한 일반화로 끝내버리고, 어떤 사람은 다른 사건이나 사안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삼는다.
주관적인 경험을 체계적인 이해와 객관화로 바뀌기 위해서는 특별한 방식이 필요하다. 나는 그런 면에서 경제학이 유용한 방법론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경제학 교과서를 열심히 읽기 시작한다고 해도, 심지어 미국의 유명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얻는다고 해도, 누구나 그런 관점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여러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는 내 책이 유용하다고 노골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과연 내 주장이 어떤 함의를 갖고 있는지, 과연 그런 주장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는, 각자가 논리적으로 따져보고, 삶에서 실천으로 검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가급적 나는 강연회와 뒷풀이에서 내 개인적 체험을 공유하려고 노력했지만, 어떤 사람은 "아, 저 사람은 저런 경험 때문에 저런 편견을 갖게 됐구나"하고 느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아, 저 사람은 저런 계기로 저런 체험을 하게 되고 저런 깨달음을 얻게 됐구나"하고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극히 주관적인 경험을 공유하려고 했던 이유는 "전략의 수립과 실천도 철학적 뒷받침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말을 (적어도 그 자리에 온 사람들에게만이라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즉, 아무리 '연애의 비법' 혹은 '투자의 비법' 혹은 '공부의 비법'을 전수받아도 그 비법의 실현은 각자의 수준에 따라서 철저하게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수준을 높이는 노력은 결국 전략의 수립과 실천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며, 나 자신도 예외가 아니다. 이로서 책을 낸 저자로서의 의무는 대충 마무리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제 저자의 관점이 아닌 시장을 대하는 겸손한 일반론으로 돌아가야할 시점인 듯.
트레이딩을 하다보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도 돈을 버는 건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회사 돈으로 트레이딩을 하는 건 물론이고, 자신의 돈을 투자를 통해 늘리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아이디어가 시간이 흘러 옳은 것으로 판명되면 우쭐하기도하고(거봐, 내 말이 맞지) 후회하기도(왜 사지 않았을까) 한다. 하지만, 투자에서 후회란 아무 짝에도 소용없는 일이고, 우쭐해봤자 인정하고 좋아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부질없는 후회와 확신은 결국 인간의 삶에서 무한반복될 수 밖에 없다. 자신의 분석과 직관에 대한 확신이 얼마나 있는지는 사실 그 사람의 행동과 실천에서 밖에 확인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깨달음과 각성이 강렬하고 클수록 그에 따른 실천이 이루어져야만 그게 맞고 가치있는 것인지 아닌지 알게 된다. 애플의 미래를 확신한다면 애플이 200불일 때 사야지만 그 믿음이 맞는지 알 수 있다. 지금도 애플의 미래를 확신하면서 630불에서 사지 않으면 그 믿음이 얼마나 강한 강도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만약 사랑은 무조건적이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적인 사랑을 해보지 않고서는 그것이 가치 있는 것인지 혹은 불가능한 것인지 혹은 또 다른 함의가 있는 것인지 깨닫기 어렵다. 반대로 섹스가 곧 사랑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관계를 추구해보지 않고서는 그것이 의외로 허무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생각한대로 본질적인 것인지 알 수 없다.
자신만의 트레이딩 비법을 발견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데이타를 통해 우리는 그 트레이딩의 신뢰성을 확인해 볼 수 있지만, 그 신뢰성이 미래에 수익으로 구현된다고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막상 포지션을 갖게 된 트레이더는 누구도 공포와 탐욕의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그 비법의 완전성이 훼손될까 두려워 포지션을 가지 않는다면 그 트레이더는 영원히 "내가 발견한 트레이딩 비법"이라는 허상 속에서 살게 된다. 본인은 완벽한 비법을 만들었는지 몰라도, 아무 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깨달음이 거대하고 확실할수록 우리는 그걸 실천에 옮겨서 옳은지 틀린지, 무엇이 옳고 잘못되었는지 검증받아야만 한다. 하지만, 전향적이고 도전적인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으면서도 그런 경험을 확보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을 가기 위해 지금의 즐거움을 희생하는 것보다 자신이 갈 수 있는 대학을 간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사귀고 싶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귈 수 있는 사람을 사귄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갖고 싶은 직업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기 보다는 자신이 갈 수 있는 직장을 골라서 간다. 이런 성향의 차이는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대단한 차이를 만들어 낸다. 도전과 성취와 좌절이 끊이지 않는 오욕의 인생을 사는 사람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보다는 '남다른 생각과 경험'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그 생각과 경험을 단순한 일반화로 끝내버리고, 어떤 사람은 다른 사건이나 사안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삼는다.
주관적인 경험을 체계적인 이해와 객관화로 바뀌기 위해서는 특별한 방식이 필요하다. 나는 그런 면에서 경제학이 유용한 방법론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경제학 교과서를 열심히 읽기 시작한다고 해도, 심지어 미국의 유명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얻는다고 해도, 누구나 그런 관점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여러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는 내 책이 유용하다고 노골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과연 내 주장이 어떤 함의를 갖고 있는지, 과연 그런 주장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는, 각자가 논리적으로 따져보고, 삶에서 실천으로 검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가급적 나는 강연회와 뒷풀이에서 내 개인적 체험을 공유하려고 노력했지만, 어떤 사람은 "아, 저 사람은 저런 경험 때문에 저런 편견을 갖게 됐구나"하고 느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아, 저 사람은 저런 계기로 저런 체험을 하게 되고 저런 깨달음을 얻게 됐구나"하고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극히 주관적인 경험을 공유하려고 했던 이유는 "전략의 수립과 실천도 철학적 뒷받침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말을 (적어도 그 자리에 온 사람들에게만이라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즉, 아무리 '연애의 비법' 혹은 '투자의 비법' 혹은 '공부의 비법'을 전수받아도 그 비법의 실현은 각자의 수준에 따라서 철저하게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수준을 높이는 노력은 결국 전략의 수립과 실천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며, 나 자신도 예외가 아니다. 이로서 책을 낸 저자로서의 의무는 대충 마무리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제 저자의 관점이 아닌 시장을 대하는 겸손한 일반론으로 돌아가야할 시점인 듯.
Thursday, October 11, 2012
강연회 신청 닫겠습니다.
대부분 익명신청이라 강제성이 있을 수 없지만, 강연회 공간이 최대 50-60명이라서 강연회 신청을 여기서 마감해야 할 듯 합니다. 블로그에 39분, 트위터로 18분이 오시겠다고 남겨주셨네요. 근방 100미터 안에서 더 큰 강연장을 알아보려고 했는데 시간이 촉박해서 불가능하네요. 저는 강남교보 '티움'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었고, 출판사도 저자 인지도를 감안했을 때 100명 이상이 들어가는 강연장을 잡을 생각은 미처 못한 것 같습니다. 에스티마님 말씀이 강연 참석 신청자 대비 실제 참석자는 50%정도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 보다 높을 것 같다는 감이 옵니다. 정말 50%면 편안하고, 100%면 좀 부대끼는 공간이 될 것 같아서 걱정이네요. 제가 매크로 애널리스트를 그만둔 2006년까지 프리젠테이션/강연을 수 백번은 해본 것 같은데(250명의 단위농협 조합장 상대 강연이 제일 기억에 납니다), 토요일 강연은 좀 부담이네요. 재미가 있으면서 유익한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인생에서 기대와 실망은 항상 함께 가는 법.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아 주세요. 신청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휴브리스 드림
인생에서 기대와 실망은 항상 함께 가는 법.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아 주세요. 신청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휴브리스 드림
Wednesday, October 10, 2012
10월 13일(토) 오후 4시 30분, 강남교보 문고 '티움'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이번 주 토요일(13일) 오후 4시 반 부터 5시 반까지 강남 교보문고 '티움'(강남교보에 있는 강연용 공간인가 봅니다)에서 강연회를 합니다. 원래 출판사쪽에서 2주 전쯤에 하는 것으로 강연회를 추진했었는데, 조금 미루었습니다. 책 사라고 광고하는 것보다는 책을 사서 읽은 분들과 편하게 이야기 나누고 싶었어요. 책의 주제가 워낙 많다 보니, 다른 책 저자들이 하는 프리젠테이션 형태의 강의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책에서 차마 못한 민감한 이야기를 주로 하고 심지어 사적인 이야기도 조금 할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은 저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새로운 독자(는 별로 없어보입니다만)보다는 제 책, 트위터, 블로그를 보신 분들을 위해서 준비한 자리입니다. 토요일이라 여의치 않은 분들이 많겠지만, 1) 근처에 사시는 분들, 2) 마침 그 시각 근처를 지나가시는 분들, 그리고 3) 마침 시간은 남지만 프로야구는 볼 생각 없는 분들께서는 가볍게 입고 편한 마음으로 오셔서 '거의 모든 것'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시면 되겠습니다.
참고로, 어떤 분위기일지 몰라서, 저는 강연회 이후 저녁 일정은 비워두웠습니다. 그리고 오실 분들은 댓글을 남겨 주세요. 출판사 측에서 조그만 선물을 준비할 것 같은데, 수량을 가늠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공간이 부족해지는 사태도 생기면 안 될 것 같고.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참고로, 어떤 분위기일지 몰라서, 저는 강연회 이후 저녁 일정은 비워두웠습니다. 그리고 오실 분들은 댓글을 남겨 주세요. 출판사 측에서 조그만 선물을 준비할 것 같은데, 수량을 가늠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공간이 부족해지는 사태도 생기면 안 될 것 같고.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Tuesday, October 09, 2012
애덤 라신스키(임정욱 역), 애플 인사이드
애플과 스티브 잡스를 분석하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애플과 잡스는 모두 매력적인 존재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잡스는 버려진 사생아였다. 그는 대학을 중퇴했지만 중퇴한 대학마저 소위 명문대학이 아니었다. 그는 첨단기업인 애플의 CEO였지만 심지어 엔지니어도 아니었다. 그는 가장 비천한 자리에서 나서 자란 셈이지만, 종교지도자처럼 자아도취적이었다. 그는 모든 종교자들이 그렇듯, 믿는자와 믿지 않는 자를 분류했고, 믿지 않는 자를 자기사람으로 받아 들이는 것에 신중했다. 하지만, 자신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구하는 데는 탁월했다. 팀 쿡이 그랬고, 조너던 아이브너가 그랬다. 그의 프리젠테이션 능력은 종교지도자의 설교능력과 닮았다. 그는 사람들을 감화시켰을 뿐 아니라 선동했다.
잡스를 인간적으로만 접근해서는 그의 실체에 다가서지 못한다. 그는 애플을 창업했을 때도 디자인에 몰입했고, 자아도취적이였으며, 성공을 위해서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그가 애플에서 쫓겨난 후 재기에 성공해 돌아온 다음의 모습이 초기 애플의 모습과 다른 것은 혁신을 추구하는데 필요한 효율성을 인식하는 자세다. 그는 돈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었고, 제품의 완결성을 위해서 다른 것을 희생할 수 있다는 애티튜드를 견지했다. 하지만, 후기 애플시대의 그는 결코 지상에서 발을 떼지 않았다. 모든 의사결정은 미래에 대한 분명한 예측을 전제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아이패드에 몰입했지만, 시기상조라고 판단하자 과감하게 아이폰에 먼저 집중했다.
나는 김밥 비지니스와 애플과 삼성전자를 비유한 적이 있다. 그때 주장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두 회사의 성공에는 형태는 달라도 강력한 밸류체인, 효율적인 공급망과 물류망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잡스는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잡스는 자신의 후계자로 미련없이 시스템 전문가이자, 공급망과 물류 전문가인 팀 쿡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생산을 아웃소싱하는 제품 생산전문가일 뿐'이라는 혹평을 받은 팀 쿡이 CEO가 된 것은 그의 존재로 애플 성공의 본질적인 이유가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효율적인 밸류 체인이 애플 성공의 모든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애플 보다 나은 밸류체인을 가진 회사가 있겠지만, 애플보다 위대한 회사는 아니다. 팀 쿡의 머리속에는 잡스는 갖고 있었지만, 자신은 갖지 못한 바로 대중과의 유대감, 대중에게 각인 시키는 제품과 시장 그리고 인간에 대한 우아하고 아름다운 애티튜드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떠나지 않고 있을 것이다.
잡스에게 열광하는 대중의 심리는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았던 2007년과 안철수에게 열광하는 2012년의 마음과 비슷한 면이 있다. 대중은 자신들의 욕망하는 대상에게 열광한다. '야망의 세월'에서 각인된 유인촌의 이미지는 이명박에게 투사되었다. '무릎팍 도사'가 만들어 준 안철수의 이미지 역시 마찬가지다. 2007년의 사람들은 이명박이 되고 싶었고, 2012년의 사람들은 안철수를 욕망한다. 그들처럼 야먕을 품고, 그들처럼 성공하고 싶은 것이다. 그들의 실체를 아는 사람들의 경고 소리는 그래서 잘 들리지 않는다. 잡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성공은 턱없이 위대하면서도 그의 출발점을 고려하면 나 역시, 아니면 내 자식은 왠지 그가 거둔 성공이 가능할 것만 같다는 환상을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잡스가 갖고 있는 심오한 이미지 뒤에는 폭넓고 심도있는 정보력과 친분 그리고 기술적 트렌드에 대한 통찰력을 확보하기 위한 인간 스티브 잡스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다.
이 책, '인사이드 애플'은 술술 읽힌다. 애플과 잡스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가 있다면, 아주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번역도 훌륭하다. 나는 이 책과 '칭기스칸의 딸들, 제국을 경영하다'와 동시에 읽었는데, 두 책의 내용이 상호교차되면서 재밌게 읽었다. 칭기스칸은 주변 나라를 정복하고 제국을 세우는 데는 재주가 많았지만, 제국을 경영하는데는 자신도 재능도 없었다. 하지만, 아들들은 무능했고 게다가 인간적으로 미덥지도 못했다. 그는 과감하게 제국의 경영을 딸들에게 맡겼다. 중국은 당황하고 이슬람은 황당해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의 딸들은 스티브 잡스의 팀 쿡이었고, 마크 저커버그의 셰릴 샌드버그였다. 효율성과 혁신의 주제를 놓고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면, 잡스가 맡았던 혁신의 주제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가 이제 팀 쿡에 놓인 고민의 핵심일 것이다.
잡스를 인간적으로만 접근해서는 그의 실체에 다가서지 못한다. 그는 애플을 창업했을 때도 디자인에 몰입했고, 자아도취적이였으며, 성공을 위해서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그가 애플에서 쫓겨난 후 재기에 성공해 돌아온 다음의 모습이 초기 애플의 모습과 다른 것은 혁신을 추구하는데 필요한 효율성을 인식하는 자세다. 그는 돈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었고, 제품의 완결성을 위해서 다른 것을 희생할 수 있다는 애티튜드를 견지했다. 하지만, 후기 애플시대의 그는 결코 지상에서 발을 떼지 않았다. 모든 의사결정은 미래에 대한 분명한 예측을 전제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아이패드에 몰입했지만, 시기상조라고 판단하자 과감하게 아이폰에 먼저 집중했다.
나는 김밥 비지니스와 애플과 삼성전자를 비유한 적이 있다. 그때 주장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두 회사의 성공에는 형태는 달라도 강력한 밸류체인, 효율적인 공급망과 물류망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잡스는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잡스는 자신의 후계자로 미련없이 시스템 전문가이자, 공급망과 물류 전문가인 팀 쿡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생산을 아웃소싱하는 제품 생산전문가일 뿐'이라는 혹평을 받은 팀 쿡이 CEO가 된 것은 그의 존재로 애플 성공의 본질적인 이유가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효율적인 밸류 체인이 애플 성공의 모든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애플 보다 나은 밸류체인을 가진 회사가 있겠지만, 애플보다 위대한 회사는 아니다. 팀 쿡의 머리속에는 잡스는 갖고 있었지만, 자신은 갖지 못한 바로 대중과의 유대감, 대중에게 각인 시키는 제품과 시장 그리고 인간에 대한 우아하고 아름다운 애티튜드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떠나지 않고 있을 것이다.
잡스에게 열광하는 대중의 심리는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았던 2007년과 안철수에게 열광하는 2012년의 마음과 비슷한 면이 있다. 대중은 자신들의 욕망하는 대상에게 열광한다. '야망의 세월'에서 각인된 유인촌의 이미지는 이명박에게 투사되었다. '무릎팍 도사'가 만들어 준 안철수의 이미지 역시 마찬가지다. 2007년의 사람들은 이명박이 되고 싶었고, 2012년의 사람들은 안철수를 욕망한다. 그들처럼 야먕을 품고, 그들처럼 성공하고 싶은 것이다. 그들의 실체를 아는 사람들의 경고 소리는 그래서 잘 들리지 않는다. 잡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성공은 턱없이 위대하면서도 그의 출발점을 고려하면 나 역시, 아니면 내 자식은 왠지 그가 거둔 성공이 가능할 것만 같다는 환상을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잡스가 갖고 있는 심오한 이미지 뒤에는 폭넓고 심도있는 정보력과 친분 그리고 기술적 트렌드에 대한 통찰력을 확보하기 위한 인간 스티브 잡스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다.
이 책, '인사이드 애플'은 술술 읽힌다. 애플과 잡스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가 있다면, 아주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번역도 훌륭하다. 나는 이 책과 '칭기스칸의 딸들, 제국을 경영하다'와 동시에 읽었는데, 두 책의 내용이 상호교차되면서 재밌게 읽었다. 칭기스칸은 주변 나라를 정복하고 제국을 세우는 데는 재주가 많았지만, 제국을 경영하는데는 자신도 재능도 없었다. 하지만, 아들들은 무능했고 게다가 인간적으로 미덥지도 못했다. 그는 과감하게 제국의 경영을 딸들에게 맡겼다. 중국은 당황하고 이슬람은 황당해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의 딸들은 스티브 잡스의 팀 쿡이었고, 마크 저커버그의 셰릴 샌드버그였다. 효율성과 혁신의 주제를 놓고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면, 잡스가 맡았던 혁신의 주제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가 이제 팀 쿡에 놓인 고민의 핵심일 것이다.
Thursday, October 04, 2012
작지만 온전한 즐거움
오프라인 서점에 책이 깔리기 시작한지 내일이면 2주가 된다. 광고도 하지 않은 것에 비하면 2주간의 반응은 좋은 편입니다, 라는 말을 듣고 있다. 경제/경영 분야의 경우, 그 중요성 때문에 주목을 받긴 하지만 수요층이 두껍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은 판매량으로도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분야다. 읽을만한 책이 없다고 불평하던 사람들도 막상 자기 책이 나올 때 즈음엔 서점에 가보면 과연 내 책이 이 많은 책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긴장하게 된다. 성공한 책이라고 다 좋은 책은 아니지만, 그 말이 아무렇게나 써도 성공한다는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이 팔기 위해 쓴 책이 아니라고 해도, 힘들게 쓴 책이 읽히지 않는 걸 좋아할 저자는 세상에 없다. 초기에 생각보다 많은 블로그 독자와 지인들이 책들을 사서 읽고 ‘인증샷’까지 보내주었다. 책을 꽤 사서 읽는 나도 누군가 책을 썼다고 금방 달려가는 경험은 드물다는 걸 감안하면 그건 정말 감사하고 근사한 일이다.
책을 써보니 막상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나는 편견으로 가득 찬 책을 쓰고 싶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책이지만, 울퉁불퉁했던 편견이 가다듬고 깎여서 둥글둥글해진 면이 없지 않다. 굳이 변명하자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을 내야 하는 직장인, 그것도 내부 컴플라이언스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엄격한 미국계 회사에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샐러리맨의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통령 선거가 있는 민감한 시기에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정치적이고 시사적인 현안은 대부분 날려야 했다. 나는 비교적 명료한 정치적 성향이 있는 사람이지만 정치에 영향을 줄 입장도 정치에 영향을 받을 처지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어쩌면 가장 재미있어야 할 ‘불평등과 정치’에 관한 글이 가장 재미없는 글이 되어버렸다. 이 책에서 가장 아쉽고 맘에 들지 않는 대목이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직장 생활을 하는 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익명으로 운영하는 블로그와 트위터에서 실명으로 나를 드러내기 시작한지 2주가 되었지만 블로그나 트위터에서 본명 대신 hubris란 이름을 계속 사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책을 낸 이후 심해진 자기 검열이 본명을 사용할 경우 더 심해질 것 같아서다. 어떤 의견, 특히 정치처럼 예민한 사안에 대한 의견을 표현할 때 지나치게 예민하고 민감해지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대중이나 여론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내 생각을 표현하는 쾌감이 예전만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제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이제는 함부로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김연아, 남들과 다르게 바라보는 안철수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누가 머라고 해도 내 책의 첫 번째 독자인 나는 내 책을 좋아한다. 이런 이상한 말을 할 수 있는 건, 누군가 20년 전에 내 책을 내게 건네 주었더라면, 난 지금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생에서 ‘진짜 중요하고 꼭 필요한 말들’을 들을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해줄 능력이 없고, 그런 능력이 있는 어떤 사람들은 너무 바쁘고, 괜한 논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 남의 인생에 아예 관여하지 않는다. 삶은 지루하고 고통스럽다. 그런 삶을 개선시키려는 노력은 대개 ‘쪽 팔림’과 자의식의 상처를 수반한다. ‘그런 말’들을 듣지 못하면, 나 같이 이해하지 못하면 실행하지 못하는 둔한 사람은 웬만큼 노력해도 전세를 역전시키지 못하거나, 아니면 전세를 역전시킬 의지를 발휘하지 못한다. 의지를 발휘하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연소되지 못하고 휘발해 버린다. 그건 여러모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 ‘쪽 팔림’을 극복하는 일은 의지를 회복하면서 시작할 수 있다.
그래도 책을 써서 가장 기쁜 일은 “어쨌든 책을 썼다”는 그 사실 자체였다. “책이 내일 나옵니다”라는 연락을 받은 날 밤 집에 오는 차 안에서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왜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을까, 생각해보다가 내가 곧 깨닫게 된 사실은 책을 쓴다는 것이 내 어린 날의 분명한 ‘꿈’이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넌 커서 작가가 될 꺼야”라고 말해준 이후, 20대가 끝날 때까지 난 한번도 내가 작가가 될 것이란 사실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그건 일종의 예언이었다. ‘꿈’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도 그 이외의 것은 목표했을 뿐 꿈꿔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 예언과 점점 더 멀어지는 사는 삶을 살면서, 그리고 더 이상 ‘작가가 된다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되면서, 그리고 주로 금융과 역사 그리고 철학에 대한 글이 훨씬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일상을 이어가면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된 것이다. ‘책을 쓴다’는 꿈을 어린 시절부터 갖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작가는 되지 못했지만 어쨌든 책은 내게 되었다는 것.
누가 머라고 해도, 어린 시절 원했던 것이 이루어지는 걸 보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세상에 많지 않다. 지극히 사적이고 작은 사건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온전히 기쁜 성취.
책을 써보니 막상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나는 편견으로 가득 찬 책을 쓰고 싶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책이지만, 울퉁불퉁했던 편견이 가다듬고 깎여서 둥글둥글해진 면이 없지 않다. 굳이 변명하자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을 내야 하는 직장인, 그것도 내부 컴플라이언스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엄격한 미국계 회사에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샐러리맨의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통령 선거가 있는 민감한 시기에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정치적이고 시사적인 현안은 대부분 날려야 했다. 나는 비교적 명료한 정치적 성향이 있는 사람이지만 정치에 영향을 줄 입장도 정치에 영향을 받을 처지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어쩌면 가장 재미있어야 할 ‘불평등과 정치’에 관한 글이 가장 재미없는 글이 되어버렸다. 이 책에서 가장 아쉽고 맘에 들지 않는 대목이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직장 생활을 하는 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익명으로 운영하는 블로그와 트위터에서 실명으로 나를 드러내기 시작한지 2주가 되었지만 블로그나 트위터에서 본명 대신 hubris란 이름을 계속 사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책을 낸 이후 심해진 자기 검열이 본명을 사용할 경우 더 심해질 것 같아서다. 어떤 의견, 특히 정치처럼 예민한 사안에 대한 의견을 표현할 때 지나치게 예민하고 민감해지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대중이나 여론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내 생각을 표현하는 쾌감이 예전만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제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이제는 함부로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김연아, 남들과 다르게 바라보는 안철수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누가 머라고 해도 내 책의 첫 번째 독자인 나는 내 책을 좋아한다. 이런 이상한 말을 할 수 있는 건, 누군가 20년 전에 내 책을 내게 건네 주었더라면, 난 지금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생에서 ‘진짜 중요하고 꼭 필요한 말들’을 들을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해줄 능력이 없고, 그런 능력이 있는 어떤 사람들은 너무 바쁘고, 괜한 논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 남의 인생에 아예 관여하지 않는다. 삶은 지루하고 고통스럽다. 그런 삶을 개선시키려는 노력은 대개 ‘쪽 팔림’과 자의식의 상처를 수반한다. ‘그런 말’들을 듣지 못하면, 나 같이 이해하지 못하면 실행하지 못하는 둔한 사람은 웬만큼 노력해도 전세를 역전시키지 못하거나, 아니면 전세를 역전시킬 의지를 발휘하지 못한다. 의지를 발휘하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연소되지 못하고 휘발해 버린다. 그건 여러모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 ‘쪽 팔림’을 극복하는 일은 의지를 회복하면서 시작할 수 있다.
그래도 책을 써서 가장 기쁜 일은 “어쨌든 책을 썼다”는 그 사실 자체였다. “책이 내일 나옵니다”라는 연락을 받은 날 밤 집에 오는 차 안에서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왜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을까, 생각해보다가 내가 곧 깨닫게 된 사실은 책을 쓴다는 것이 내 어린 날의 분명한 ‘꿈’이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넌 커서 작가가 될 꺼야”라고 말해준 이후, 20대가 끝날 때까지 난 한번도 내가 작가가 될 것이란 사실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그건 일종의 예언이었다. ‘꿈’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도 그 이외의 것은 목표했을 뿐 꿈꿔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 예언과 점점 더 멀어지는 사는 삶을 살면서, 그리고 더 이상 ‘작가가 된다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되면서, 그리고 주로 금융과 역사 그리고 철학에 대한 글이 훨씬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일상을 이어가면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된 것이다. ‘책을 쓴다’는 꿈을 어린 시절부터 갖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작가는 되지 못했지만 어쨌든 책은 내게 되었다는 것.
누가 머라고 해도, 어린 시절 원했던 것이 이루어지는 걸 보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세상에 많지 않다. 지극히 사적이고 작은 사건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온전히 기쁜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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