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uly 27, 2012

바로크의 추억

‘바흐 콜레기움’ 서울이 연주하는 바흐와 비발디를 들으러 갔다.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에게 표를 예매했던 사실을 어제 아침에 알려주었더니, 오묘한 표정을 짓는다. 오후 6시쯤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러 가겠다고 전화를 했는데, 아이가 가지 않겠다고 드러누웠다는 문자가 왔다. 전화를 걸어 몇 가지 사실을 이야기했다. “아빠는 너하고 보고 싶어서 예매했는데, 아빠는 굉장히 듣고 싶은 좋은 공연이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아이스크림도 사주마. 그렇지만 정 싫다면 안 와도 상관없다.” 아이가 고민하는 듯 하더니, 묻는다. “제가 안 가면 표는 어떻게 하실 건데요?” “할 수 없지 뭐. 네가 싫다는데 버려야지” 처가 묻는다. "얘를 어떻게 설득했어?"

바흐와 비발디 CD만 보이면 죄다 사들이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비발디는 소개된 곡의 종류 자체가 많지 않고 연주된 레파토리도 한정되어 있어서 전부 산다고 해도 얼마 되지 않는다. 바로크 음악은 계속 듣다 보면 좀 지겨운 느낌이 있지만, 결국 인생에서 중요한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 결국 바로크로 돌아와있다. 세상에는 빅뱅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있고 바흐만이 표현할 수 있는 슬픔이 있다.  그리고 바로크 음악이 아니면 구원될 수 없는 영혼이 있다. 첫 연주곡 “내 마음에 근심이 많도다”가 흐르는데, 가슴이 뛰고 눈물이 핑 돌았다. 이런 종류의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은 바흐가 아니면 느끼게 해줄 수가 없다. 인터미션에 아이에게 물어보니, 자신은 세 번째 칸타타인 “한쪽 발은 무덤을 딛고 나는 서있도다”가 제일 좋았다고 한다.

‘바흐 콜레기움 서울’의 연주는 역사에 길이 남을 명연주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내게는 아주 좋은 공연이었다. 내 몸과 마음이 듣고 싶은 음악이 역사에 남을 연주보다 더 낫기 때문이다. 아이는 바흐의 하프시코드 협주곡에서는 온몸을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들었다. 자는 게 아닐까, 자다가 이상 소음을 내는 게 아닐까 나와 어머니는 계속 아이를 주시했지만, 평소 9시면 잠자리에 드는 아이는 그래도 끝까지 졸지 않았다. 나중에 아이에게 글렌 굴드가 번스타인과 협연한 곡을 들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별 관심은 없을 것이다. 매달 아이에게 이런 공연을 보여주는 건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이폰과 아이파드로 음악을 듣게 된 이후, 클래식 음악을 예전처럼 많이 듣지 않는다.

2002년도에 암스테르담에 몇 주 머무른 적이 있다.  낮에는 교육을 받고, 밤에는 암스테르담 시내를 쏘다녔다. 지금도 기억날 정도로 날씨가 따스하고 좋았는데, 현지인들에게 “암스테르담에 살고 싶어요”했더니 전부 “이상기온”이라고 대답했다. 저녁이 되면, 호텔 근처 식당을 순례하고, 박물관을 가기도 하고, 작은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갔다. ‘영국 교회’(English Church)에서 했던 골드베르그 변주곡 합시코드 공연이 생각난다. 길치인 내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교회를 찾아갈 때 걸었던 암스테르담의 저녁, 1/3도 차지 않았던, 그나마도 죄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던 청중들의 밝은 표정, 꽁지머리를 한 총각이 등장해 중간에 쉬지도 않고 달려간 연주, 공연을 마치고 나온 교회 정원의 차분했던 공기. 벌써 10년 전의 일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암스테르담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가족들을 데리고 다시 가보고 싶다.

Tuesday, July 24, 2012

'안철수의 생각'과 나의 생각

안철수가 ‘안철수의 생각’이란 책을 냈다. ‘힐링 캠프’에도 출연했다. 한때 박근혜보다도 높던 지지율이 20%대 후반까지 떨어지긴 했지만, 안철수에 대한 세상의 관심은 여전하다. 책은 벌써 10만부가 넘게 팔렸고, 어제 방영된 ‘힐링 캠프’ 시청률은 한 때 22%를 넘었다고 한다. 밤 11시가 넘은 방영시간을 감안하면 놀라운 관심이고 대단한 인기다. 그의 이러한 인기는 물론 안철수를 ‘대안’으로 보기 때문에 생긴다. 새누리당(입에 잘 붙지 않는다. 한나라당이라고 쓰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은 싫지만 그렇다면 민주당이 미덥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안철수는 매력이 있다. 그렇다면 안철수는 대선에 나갈까? 모든 정황으로 보면, 안철수는 대선에 야망이 있고, 그가 펼치는 모든 전략은 대선후보가 되어 당선이 되기 위한 최적의 전략을 지향하고 있다.  안철수가 대선후보가 되고 대통령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리고 그 산은 안철수의 힘으로만 갖고는 넘을 수 없다.

안철수의 책이 나오기 전까지 대선 판세는 박근혜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 등 민주당의 대선 후보들은 왜 박근혜가 당선돼서는 안 되는지 역설했지만, 왜 자신들이 대통령이 되어야만 하는지는 설득하지 못했다. 안철수의 책이 나온 다음 새누리당은 왜 안철수가 되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뭘까? 정당정치의 근간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일리가 있다. 이런 식으로 정당정치 속에서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자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한국 정도의 경제규모와 정치수준를 감안할 때 ‘시대착오적’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박근혜의 헌법과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도 '시대착오적'이란 것이다. 그녀의 말대로 5.16 쿠데타나 유신에 대한 가치판단은 역사에 그 평가를 맡겨놓을 일은 아니다. 어린 아이를 납치한 납치범이 그 사실을 숨기고 아이를 잘 먹이고 키워줬다고 해도 범죄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식민지 시대를 통해서 조선이 잘 살게 되었다는 일본의 주장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일본제국주의를 비난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폭력으로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결정할 권리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하에서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쿠데타가 헌법질서를 유린했다는 사실을 바꾸진 않는다. 하지만 안철수와 박근혜의 '시대착오성'과 상관없이 그들의 지지도는 높다. 그리고 선거의 결과는 당위적인 가치판단의 문제와 아무 상관이 없다. 민주당이 박근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건 박근혜가 대세라는 걸 말한다. 한쪽은 박근혜가 되어야 한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박근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 결과는 뻔하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 그런데 이제 한쪽이 안철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대단한 변화고, 그것이 바로 안철수의 힘이다. 박근혜가 긴장하고 있는 이유다.

안철수가 없다면 이번 대선의 승부는 너무 싱겁게 끝날 것이다. 민주당이 지리멸렬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이겼어야 했다.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 대선후보라면 이번 총선에서 주도권을 잡았어야 했다. 하지만,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문재인은 이번 총선에서 너무 무기력했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두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우선 진보통합당과의 연대.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연대를 통해 얻은 것 보다는 잃은 것이 훨씬 많았다. 민주당은 오세훈이 내어 놓은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후보를 단일화했다. 그때 역시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내가 민주당의 의사결정자였다면, 나는 박영선을 후보로 내보냈을 것이고, 그녀는 이겼을 것이다.  제 1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내야 할 명분은 많았지만, 박원순이 끝까지 서울시장선거를 완주할 수 있는 명분은 많지 않다. 하지만, 민주당은 후보를 내지 않았다. 선거는 박원순이 이겼고, 박원순은 민주당에 입당했지만, 제1야당으로서의 민주당의 전략은 별로 전략적이지 않다. 대중에게 정당으로서 신뢰감을 얻는데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총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민주당은 진보통합당과 연대할 필요가 없었다. 진보통합당과의 연대 때문에 민주당은 의석 수를 잃었고, 그 보다 더 큰 당의 정체성도 잃었다. 총선의 패배가 너무 왼쪽으로 갔기 때문은 아니란 것은 그저 정치적 수사이자 변명일 뿐, 민주당은 바로 그것 때문에 졌다. FTA에 대해서 민주당은 입장정리가 안 되어 있었다. 중도를 표방해야 할 거대 야당이 FTA에 반대해서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실익이란 게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차피 지지할 지지층의 엄청난 환호? 둘째, 한명숙은 총선에서 어떠한 의미 있는 리더십도 보여주지 못했다. 계파간의 갈등과 알력 때문이겠지만, 한명숙으로는 다 이긴 총선도 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졌어야했다. 결국 민주당의 공천은 엉망진창이 됐고, 선거결과도 당연히 엉망진창인 공천처럼 되었다. 문재인은 대선에 야망이 있었더라면 선거에 책임을 지고 개입했어야 했다. 공천결과에도 적극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그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깨달았어야 했다. 그렇다면 대선후보로서의 가능성도 없다는 걸.

문재인의 대선 출정식을 보는 심정은 답답하다. 그런 식으로는 소수의 지지자는 확보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다수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예컨대, “사교육이 문제가 되니 사교육을 금지시키면 어떨까 한다”는 발언. 그 발언을 듣는 순간 문재인에 대한 모든 기대가 사라졌다. 문재인이 생각하는 경제, 문재인이 생각하는 복지, 문재인이 생각하는 외교, 문재인이 생각하는 교육문제 일체에 대한 기대가 사라졌다. “이 사람은 전혀 준비가 안 되어 있구나”라는 결론이 그 한마디로 내 마음 속에 내려졌다. 어떤 문제가 되는 사회현상을 금지시켜서 해결하겠다고 발언하는 건 이제 막 만 여덟살이 된 내 아들도 할 수 있다. 그런 건 정책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준비 해서는 전력의 열세를 극복할 수 없다. 바람을 일으킬 수가 없다. 기적은 항상 일어나지만 그런 식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미안하지만 문재인은 이길 준비가 되어 있질 않다.

박근혜의 총선 전략에는 배울 것이 많다. 그래서 결국 이겼다. 박근혜의 총선 뒤 전략은 어떤가? 박근혜의 총선 뒤 전략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유화적인 모습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선 전까지 불필요한 견제를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둘째는 전반적인 정책, 특히 경제정책의 왼쪽 이동이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아이콘은 지금 김종인이다. 보수적인 정당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진보적인 인사다. 그는 노태우 정권의 경제실세였다. 일반적인 판단과 달리 노태우 정권은 재평가가 필요하다.

노태우 정권의 등장은 반독재세력에게 절반의 성공이었고 민주주의를 염원했던 세력에게는 실망이었다. 하지만, 노태우는 직접 선거를 통해 정통성을 확보한 최초의 대통령이었고, 민주화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기를 원하는 대중의 욕구를 소화하고 수용한 최초의 정권이기도 했다. 노태우 정권 초기부터 대기업 단위의 노사분규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노동자들의 임금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 예상과 달리, 노태우 정권은 이러한 사회적 욕구의 분출을 억압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타협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런 성향에 대해서 좌우파 모두로부터 비판을 받았지만, 이런 과정이 없었더라면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노태우 정권은 경제와 외교 정책에서 예상과 달리 상당히 전향적이었다. 경제 정책에서 토지 공개념을 입법화 했고 신도시 건설을 추진했으며 국민연금법을 전면 개정했다. 최저임금제를 시행했고, 의료보험제도를 확대했다. 대북 정책면에서도 남북한 경제교류의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남북한 UN 동시 가입을 이루었다. 북방정책의 슬로건을 내걸고 당시로서는 몹시 창의적인 외교정책을 표방했는데, 지금의 시각으로 봐도 꽤 정교하게 미래를 내다본 정책이었다. 이러한 전향적인 정책들은 1985년 9월의 플라자 합의 이후 1986년부터 1988년까지 국제 저금리, 저유가, 달러 약세라는 소위 ‘3저 효과’로 유례가 없는 경제 호황을 누리게 되는 우호적 환경 때문에 가능했지만, 노태우 개인의 결단과 판단도 충분히 인정해야 한다. 이렇게 지금 관점으로 봐도 상당히 진보적인 노동정책, 재벌정책, 그리고 경제정책을 추진한 핵심이 바로 김종인이었다. 보수정권의 역사에서 가장 진보적인 인사를 자신의 아이콘으로 내세운 박근혜의 결단은 놀라운 면이 있다. 단순한 아이콘으로 끝날지 아니면 진짜 정책에 녹여낼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러한 결단이 의미하는 것은 박근혜는 자신을 분명하게 왼쪽으로 포지셔닝했다는 것이다. 즉, 박근혜는 정치적 지형도의 중간에 서있으려 하고 있다. 민주당이 지금껏 해 온 것과는 반대다.

이런 박근혜를 상대로 민주당에서 이길 수 있는 후보자는 없는 것 같다. 손학규, 김두관은 물론이고 문재인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상대하기엔 박근혜는 너무 버겁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주어진 기회들을 그들은 살리지 못했다.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정치인은 무능하다.

이런 박근혜를 상대할 수 있는 건 지금으로서는 안철수 뿐이다. 하지만, 안철수는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다. 그는 정당의 지원이 없다. 정당의 지원 없이 그가 대선 후보로 나서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건 안철수도 잘 알고 있다. 박근혜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안철수가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되면 박근혜를 이길 수 있을까? 이번 대선의 성격과 여러 정황을 감안했을 때 그럴 가능성이 높다. 80% 이상의 가능성으로 민주당 후보 안철수는 새누리당 후보 박근혜를 이길 것이다. 그렇다면, 왜 민주당은 안철수를 후보로 내세우지 않는가? 그건 당연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만화가 아니라 현실이고, 현실 속의 개인들은 제각기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유일한 지상명제가 박근혜를 이기는 것이라면, 안철수가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되고, 박근혜를 이기는 것에 모든 지혜를 짜내고 에너지를 바치는 것이 맞겠다. 하지만, 세상은 그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하다. 민주당 국회의원 중 과연 몇 명이나 안철수 민주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대통령을 원하겠는가? 많지 않다. 그들은 안철수가 자신의 국회의원직을 유지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기존 민주당 후보들은 안철수가 민주당의 권력을 잡는 걸 달가워하지 않을 수도 있다. 과연 안철수가 내게 다음 공천을 줄까, 라는 질문에 긍정적이지 않는 한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모든 인간은 그런 식으로 살 수 밖에 없고, 정치인이 예외가 될 수 는 없다.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려면 그에게 대통령을 양보할 수 있는 후보가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먼저 되어야 한다. 내가 나서서는 박근혜를 이길 수 없고, 안철수가 나서면 이길 수 있다는 걸 이해하는 사람이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되면, 결국 그는 안철수에게 (노무현과 정몽준이 한 것과 비슷한) 단일화 과정을 통해서 민주당의 대선후보를 양보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누가 그럴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으려면 두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우선, 권력욕이 강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냉정한 이성적 판단에 의해서 그것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둘째, 새누리당에 대한 복수심 혹은 적개심이 내 개인적 기대감이나 정치적 욕심 보다 커야 한다. 두 번째 조건을 갖춘 사람들은 제법 있다. 민주당 대표인 이해찬과 원내대표인 박지원만 해도 그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 두 사람의 역할은 이번 선거에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그렇다면 그 두 가지 조건을 다 갖춘 사람은 누구일까? 물론 문재인이다.

이번 대선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만큼 흥미진진할 것이지만, 걱정되는 부분도 많다. 과연 정당정치의 틀을 깨고 당선될 대통령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안철수가 다른 대통령 후보 보다 나은 것은 무엇인가? 그의 역량과 주변인물의 역량은 과연 우리가 신뢰할만한 것인가? 많은 질문에 선뜻 긍정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차라리 박근혜가 나을지도 모른다고. 결국 안철수와 민주당은 서로에게 손을 내밀게 될 것이다. 과연 누가 더 절박한가?  절박한 쪽은 민주당이 아니라 안철수다. 안철수가 내민 손을 민주당이 잡지 않으면 이번 선거의 결과는 뻔하다. 그건 ‘안철수의 생각’을 읽지도 않아도 안다.

Tuesday, July 17, 2012

어느 전략가의 죽음

내가 금융시장에 들어왔을 , 모건 스탠리의 리서치는 전성기였다이코노믹 리서치 헤드는 Stephen Roach였고, 글로벌 주식전략 헤드는 Barton Biggs였으며 미국 주식 전략은 Byron Wien 맡고 있었다.  FX 전략의 헤드는 Stephen Jen이었고, 미국 이코노믹 리서치는 Richard Berner, 아시아 이코노믹 리서치는 Andy Xie, 일본 이코노믹 리서치는  Robert Feldman 맡고 있었다이들은 통일성 있는 주장을 하지 않았다스티븐 로치가 비관론을 제시하는데, 바로 다음 보고서에 바톤 빅스나 바이런 위언이 낙관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일도 많았다다른 하우스들이 가능한 통일성 있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 각국 이코노미스트들의 전망치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그리고, 이들의 리서치는 아주 독특했다.  맞는 것 못지 않게 틀리는 경우도 많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녹아 있었다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스티븐 로치를 빼면 대부분 모건 스탠리를 떠났고, 스티븐 로치조차도 이제 직접 리서치를 하지 않는다모건 스탠리뿐 아니라 모든 하우스에서, 엄밀한 의미에서 괜찮은 리서처는 이미 거의 모두 리서치에서 손을 뗐.
바톤 빅스가 어제 죽었다.  79세였다사인은 어제 뉴스에서는 패혈증이라고 하더니, 블룸버그는 박테리아 감염이라고 전하고 있다바톤 빅스의 죽음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의 삶이 내가 그리던 금융시장에서 일하는 급여 노동자 모습으로 흥미로운 '전형' 보였기 때문이었다그는 영문학 전공자였고, 쓰는 좋아했고, 애초부터 금융시장을 목표로 살던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금융시장에 있던 아버지의 영향이 자연스럽게 그를 시장으로 이끌었고,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재능을 시장에 녹여내었다그가 리포트와 저서는 아름다운 문장과 쉽게 전달되는 스토리로 이루어져 있다.   생각하고 쓰는 좋아하는 전략가가 미국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그리고 어떻게 미래의 커리어를 꾸려갈 있는지 그는 보여주었다미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고 부러웠다그리고 그가 자신의 헷지펀드인 Traxis Partners 시작한 것은 불과 9 전이었다그의 나이 70세의 일이다.  70살의 나이에도 자신의 회사를 세우는 것이 가능하다는 , 그리고 80 나이에도 시장에 여러 경로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알리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버핏처럼 어렸을 적부터 천부적이며 너무 곳에 존재하는 전설적인 투자자가 아니었고, 나름 현실적이고 자기 노력적인 캐릭터의 전략가였다 그의 책이 나올 마다 샀는데, 이제 이상 없게 되었다.

아침에 누군가 바톤 빅스가 나의 모델이지 않냐며 내가 그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말해주었다근래 들은 가장 과분하고 멋진 칭찬이었다.  


"Hubris would anger the genie." _ Barton Biggs (1932-2012)

Tuesday, July 10, 2012

기묘한 일들

지금 인도의 2/10년 국채 스프레드는 11bp. 금리인상을 하던 2011년 6월 경 첫번째 일드커브 역전이 등장했다. 그 뒤 작년 8월 이후의 역전이 한번 더 나타났고, 올해 6월 경 다시 일드커브 역전이 진행되었지만 7.5%에서 7%로 금리를 인하하면서 지금의 11bp로 확대되었다. 중국의 경우 2009년 6월 208비피까지 벌어졌던 2/10년 스프레드는 최근 46bp까지 축소되었다. 태국 역시 2009년 10월 말 239bp까지 확대되었던 2/10년 스프레드는 최근 30bp까지 축소되었다. 호주의 경우 2009년 6월 185bp까지 확대되었던 2/10년 스프레드는 최근 60bp까지 축소되었다. 2010년 10월 19bp까지 축소되었던 11년 10월부터 있었던 2번의 금리인하로 스프레드가 확대된 것이다.

한국의 국고 3년과 10년의 스프레드 역시 22bp까지 축소되었다. 0.22% 높은 10년 짜리 채권을 10년 간 보유할 투자자는 없기 때문에 이렇게 스프레드가 타이트해졌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향후 금리인하를 예상한다는 것이다. 즉, 그 동안 금리인상을 경제의 체력보다 너무 심하게 했거나, 아니면 지금 대내외 여건이 여러가지로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은 위에서 언급한 나라들 이외에도 터키와 헝가리 등 거의 모든 신흥국가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중앙은행의 금리인하나 아니면 외부 여건의 개선을 통해서만 해소될 수 있다. 세계 경제의 상황이 유럽 문제가 좀비처럼 따라붙는 와중에 좋지 않아졌다는 걸 의미한다.

재밌는 것은 이렇게 암울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선전하고 있는 주식시장들이 꽤 많다는 것이다. 2012년 7월 6일 현재, 인도네시아의 IDX는 4055수준으로 역사상 고점인 5월의 4234보다 다소 하락. 태국의 SET지수도 역사상 고점인 1247보다 다소 하락한 1200 수준. 말레이시아 KLCI지수는 4월 고점을 돌파하고 역사상 고점인 1618을 기록. 중국 샹하이 인덱스는 5월 반등 지점을 회복 못하고, 전저점인 12월 1일의 2130 지지를 테스트하는 2210 수준인 것에 비해서 이들 세 나라가 선전하는 현상은 중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중국이 최근 들어 극단적인 수출 위주의 경제구조에서 소비 비중을 늘리는 쪽으로 경제구조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으로의 일본과 한국의 자본재 수출이 줄어든 대신, 역내 다른 국가들과의 교역이 증가하는 최근 수출 구조가 이를 보여준다. 최근 미국과 유럽 경제의 부진과 대중국 수출의 정체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수출이 선전하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최근 인도 SENSEX 지수의 선전은 다소 엉뚱하다)

오늘 자 파이낸스 타임즈에 Rebert Cookson은 "Is China sliding towards deflation?"이란 글을 썼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중국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인데, 중국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관리하는데 애를 써온 것을 감안하면 놀랍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당연한 일이다. 중국의 PPI(생산자물가)는 이미 올해 들어 감소하기 시작했고, PPI가 감소하는 현상이 지속되면 CPI도 곧 감소한다. 그리고 기사에서 보듯이, 중국의 통화 공급이 급격히 줄고 있다. 이런 일이 생기는 건 중국의 실질 금리가 그 동안 너무 오랫동안 너무 낮았기 때문이다. 그 동안의 고속성장은 이렇게 팽창적인 통화정책(마이너스 실질금리)의 결과다. 이러한 상황을 되돌려 놓으려면 정책금리를 공격적으로 인하해야 할텐데, 최근 중국의 부동산 경기가 반등하는 것은 이러한 기대와 실재 금리인하가 이루어진 결과다. 문제는 부동산 경기가 다시 너무 살아나도 버블이 만들어질까 두렵다는 것이고, 중국 시장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얘기를 하고 있지만, 비슷한 정황이 우리나라에도 벌어지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낮지만 경기둔화에 대해서 금리인하로 함부로 대응하지 못하는 건 가계부채 때문이다. 1000조가 넘어가는 가계부채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금리를 내렸다가 가계부채의 절대액이 지금보다 더 커지는 것은 정부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가계 부채 문제의 해결이 소득의 증가와 자산 가격의 상승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경제를 최대한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대외환경이 개선되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Monday, July 02, 2012

마켓 업데이트


유럽 정상회담 결과로 인해 금요일 세계 주식 시장이 랠리했다.  미국 주가 지수들은 2% 넘게 올랐다.  금요일 오후에 퇴근할 때만 해도 1340까지 반등했던 S&P500선물은 뉴욕 타임에서 1360까지 올랐다가 지금(월요일 오후 2시) 1355 수준이다.  미국채 10년 금리는 7bp올랐고, 독일 국채 10년 역시 7bp 올랐다.  스페인의 10년 국채 금리는 60bp가 하락했다.  더 드라마틱 한 것은 국제 유가로 하루 밤에 7달러가 넘게 올랐다.  유가에 대해서 숏 포지션을 갖고 있었다면 하루밤에 9%를 잃은 셈이다.

유럽 정상회담에 결과는 시장의 예상보다 훨씬 긍정적이었다.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1) 위기가 발생한 국가에 구제자금을 주는 대신에 은행권에 증자(recapitalization) 형식으로 자금을 직접 투입해 자금 확충한다.  국가에게 직접 주는 않는 이유는 국가에게 직접을 자금을 주는 것이 조약상 어려울 뿐 아니라 국가부채가 줄어들지 않아서 시장 안정화(금리하락)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자금은 ESM을 통하여 직접 투입하며 ESM은 채권에 대해서 우선변제권을 갖지 않는다.  즉, 기존 채권자들에게 후순위(subordination)를 부여하지 않는다.  2) ECB 혹은 ECB가 총괄하는 감독기구가 유로존 은행권 전체를 감독한다.  이 점은 은행 구제 기금과 예금 보증에 앞서 통제장치가 선행되어 한다는 독일의 주장이 관철된 것으로 보인다.  3) 스페인 뿐 아니라 기존 구제 금융을 받는 국가들에게도 소급 적용한다.  덕분에 아일랜드는 국가부채 규모가 40%가 낮아진다고 해서 아일랜드 국채 금리가 많이 하락했다.

독일은 양보와 관철, 두 가지를 다 했는데, 양보는 30%에 달하는 ESM 지분의 손실을 감수한 것이다.  우선변제권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철은 은행권을 감독하는 감독기구를 통한 통제장치를 확보한 것이다.  결국은 국가간 협약을 거치지 않고 독립적으로 은행들을 규제하고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러한 조처는 미국의 TARP(부실자산구제 프로그램 Troubled Asset Relief Program)처럼 부실자산처리와 금융권의 구조조정을 가능하게 할 것이란 평가가 많지만, TARP와는 별도의 경제회복을 위한 거시정책이 뒤따라야 한다.  미국이 제로 금리 정책과 양적완화를 실행했던 것처럼 ECB도 곧 금리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제 문제 해결을 위한 큰 그림은 그려졌는데, 앞으로의 난관은 1) 독일 내부의 반응이 이러한 합의에 우호적이지 않으며, 독일 헌법재판소가 의회가 통과시킨 ESM 승인 법안에 대한 대통령의 비준을 위헌이라고 판결해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 ESM을 위해 필요한 자금을 어떤 식으로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디테일이 결정되지 않았다.  3) 향후 유럽의 성장은 개별 국가들의 거시 정책보다는  ECB를 통한 경기부양적 거시 정책, EIB(유럽투자은행)을 통한 재정지출을 통해 이루어지기로 했는데, 연말까지 100억 유로를 자본금을 확대하기로 한 EIB의 대출 여력과 1,000억 유로의 성장협약이 유럽의 경제규모에 비해서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럽은 큰 그림의 해결방안을 갖고 각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계속적인 불협화음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만 해도 예전에 비해서 진일보된 결과다.  큰 그림으로 보면, 이런 식으로 유럽은 점차 세계 경제에서 위상을 낮춰 갈 것으로 보여지고, 세계 금융시장은 향후 몇년은 유럽 이슈란 좀비에 시달리면서 점차 유럽을 잊을 것이다.  사람들은 유럽이 이렇게 망가지는데도 세계 경제가 멀쩡하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고, 역시 여전히 세상은 미국의 그늘 아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유럽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는 하는 비중은 10년 전 20% 중반에서 이제 18% 수준으로 떨어졌고, 유럽경제의 고질적인 저성장을 감안하면 그 의의는 비중보다 훨씬 더 떨어진다.

이제 관건은 3개월 동안 시장의 기대치를 낮추게 했던 미국 경제지표가 여름을 거치면서 얼마나 반등을 보여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미국 경제가 가장 좋고, 유럽이 가장 나쁘고, 한국은 그 사이에 끼어 있단 생각에 변함이 없다.  한국 주식은 미국을 따라 가겠지만 완전히 따라가지는 못할 것이고, 한국 금리는 미국 금리를 따라갈텐데 그게 상승 쪽이라면 역시 완전히 따라가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역시 방향은 같은 쪽일 것이다.

Sunday, July 01, 2012

후회없는 인생을 위하여

몇 년 전 한 방송국에서 심심풀이로 10대 부터 70대까지의 남녀를 대상으로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일"을 조사한 모양이다.  이것이 얼마나 솔직한 대답을 이끌어내는 형태의 조사고, 얼마나 큰 표본 집단인지는 모르겠지만, 5*7 매트릭스로 표현된 조사 결과는 상당히 흥미롭다.  그 결과에서 어떤 거창한 함의를 발굴하는 것보다 웃으면서 깨닫는 바가 있다. 


10대부터 50대까지의 남자와 10대부터 40대까지의 여자 모두가 "공부 좀 할 걸"하고 가장 뼈저리게 후회한다.  10대의 후회는 관습적인 반성처럼 느껴지는 반면, 40대와 50대까지도 그 후회가 계속되는 것은 나이가 들어도 학위나 기술이나 지식이 없는 경우 받아야 하는 설움 때문에 느끼는 아픔 때문일 것이다.  "공부는 인생을 개선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것은  내 책의 주제이기도 하다.  대학을 가지 않아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주장은 부자들의 음모이고 부자들은 자기 자식들은 대학원까지 보내고 있다, 라는 트윗을 한 적이 있는데, 거의 모든 국가에서 대졸 임금과 고졸 임금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고 점점 더 커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남자에게 "그 여자 잡을 것"은 40까지 남자의 마음 속을 떠나지 않다가, 50대가 되면 남자 순위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대신 돈에 대한 후회가 50대 이후로는 남자의 인생을 채운다.  40대까지 여자가 인생에서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니 이것은 말그대로 '온전한 후회'에 가깝다.  하지만, 50대 이후 돈을 더 벌고 아껴쓸 걸, 하고 후회하고 있다는 건 후회가 아니라 칼로 찌르는 듯한 아픔에 가깝다.   역시 남자는 철이 늦게 든다.

남자는 5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부모에게 효도할 걸"이 등장한다.  남자들은 이 나이가 되면 부모님들이 집중적으로 돌아가시기 때문이라고 추론해 본다.  같은 논리로, 여자들은 60대가 되면 "부모님께 잘할 걸", 이라고 후회한다.  여자들은 60대에 부모님들이 집중적으로 돌아가신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남녀간의 나이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역시 남녀 불문, 자식에 대한 후회와 달리 부모에 대한 후회는 산발적이며 늦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어쩔 수 없이 비대칭적인 것.

여자들은 60대가 되어도 "이 집에 시집온 것"에 대한 후회를 멈추지 않는다.  즉, 남편이 죽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서 여자들은 이 집에 시집오고 저 남자와 결혼한 것에 대한 후회를 멈춘다.  대신 일단 남편이 죽고 나면, 심정적으로는 약간은 동정을 한다.  바꿔 말하면, 여자에게 남편이란 죽기 전까지는 그렇게 희망적인 존재가 아니다.  자식들이 대학가는 50대에 여자들은 자식들의 실패에 참담함을 많이 느끼는데도 불구하고, (1위- 자식교육 신경쓸 껄), 남자들은 여전히 자기 생각만(1위- 공부 좀 할 껄) 하는 걸 보면, 이런 여자들의 좌절이 전혀 놀랍지 않다.

요약하자면, 첫째, 당신이 50대만 아니라면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책을 들고 공부할 때다.  40대에만 시작해도, 적어도 50대에는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10대부터 50대 남자의 1등 후회- 공부 좀 할 걸) 당신이 여자라면 40대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공부하면 된다.  둘째, 당신이 살아있는 한 돈을 열심히 벌고 저축하지 않으면 죽을 전까지 후회할 것이다.  (20대 이후로 돈 문제는 항상 3등 이내다)  돈에 대한 필요성은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는다.  세째, 혹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  그게 누구든 간에 여자의 경우 결혼을 하면 후회는 평생을 따라니며 (여자는 남편이 죽기 전까지 결혼에 대한 후회가 4등 이내) 남자의 경우는 40대까지 후회한다.  넷째, 10대에는 부모님 시키는 대로 하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 다섯째, 너무 심각하게 받아 들이지 말 것.

정치인의 전략- 지성과 양심의 시대정신

의회의 법안 통과 직전 사망한 민주당의 에드워드 케네디. 
위헌 판결 가능성이 있다고 했던 미국의 건강보험 개혁안(the Affordable Care Act), 소위 ‘오바마케어’에 대해서 미국 대법원이 2012년 6월 28일 합헌 판결을 내렸다. 미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OECD 국가들은 국가나 국가가 보증하는 공공 보험기관이 의료보험을 통제한다. 당연히 의료보험 가입률은 거의 100%에 가깝다. 미국은 고용주인 회사가 건강보험을 제공하고, 민간 보험회사가 중심이 되다 보니 의료보험 미가입 비율이 15%에 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부를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 전 국민의 15%가 넘는 45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의료보험이 없이 큰 병에 걸릴 가능성에 아무 대책 없이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국가 전체로 보면 미국의 GDP 대비 의료비 지출 비중은 15% 정도로 OECD 최고 수준인 스위스와 비슷하지만 그에 비한다면 보건의료 수준은 낮은 편이다. 평균수명은 OECD 국가들 중에서 24등 정도, 영아 사망률은 29등 정도다. 물론 미국식 건강 보험제도가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환자는 의사와 병원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고, 의료기술이나 제약기술도 높일 수 있는 인센티브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환자 자신이 엄청난 부자거나 아주 좋은 회사의 직원이 아니라면 이러한 장점은 모조리 단점이 된다. 특히, 개인 자격으로 보험을 가입한 상태에서 병에 걸리면 그 병까지는 감당할 수 있지만, 그 이후 보험료가 폭증하기 때문에 재정적 부담이 엄청나다. 사실상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미국에서 일어나는 개인 파산의 50%가 의료비 때문이다. 이런 현실이 평범한 미국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2007년 대선 유세에서 오바마는 이런 연설을 한다.

“나의 어머니는 생애 마지막 한 달 동안, 자신이 회복될지 여부보다 의료보험이 비용을 커버할 수 있을지 더 걱정하면서 지냈다.”

결국 오바마의 어머니는 53살에 난소암으로 사망했는데, 이런 개인적 체험 때문인지 오바마는 전 국민 의료보장을 자신의 임기 중에서 첫 번째 개혁 목표로 삼았다. 사실 국민의 15%가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서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의 효율성이 주는 장점이 훨씬 크다고 믿는 사람들이고, 시장 경제의 효율성을 유지하거나 정부 개입의 비효율성을 막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비용은 불가피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공화당도 시대상황에 따라서 ‘메디케어’를 확대 적용하는 정책을 추진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곧 절대 포기 불가능한 공화당의 이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2차 대전 전후부터 지금까지 과반을 넘는 국민들이 지지를 보인 적도 많았다. 따라서, 공화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국가 개입에 대한 반감과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 때문이라기 보다는 현행 미국 건강보험체계로 인해서 이익을 보는 이익 집단의 집요한 정치적 방해가 진짜 이유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 이후 민주당이 애초에 의도한 것은 민간보험제도 이외의 공적보험 제도를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공화당과 보험회사 등의 이해관계 집단의 격렬한 반대로 민주당은 다소 후퇴한 지금의 ‘오바마케어’를 내놓았고, ‘오바마 케어’는 2009년 12월 상원, 2010년 3월 하원에서 법안으로 가결되었다. 하지만, 14개 주 검찰총장들이 위헌 소송을 제기했고, 2010년 12월 버지니아 주 연방지법은 최초로 위헌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2011년 8월 버지니아 주 연방지법 항소심에서는 위헌소송을 기각했다) 위헌 소송이 이어지는 가운데, 2011년 9월 오바마는 대법원에 위헌심판을 제청하고 마침내 2012년 6월 18일 대법원은 논란이 되던 '개인의 보험 의무가입 조항'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건강보험에 대한 개인의 의무가입이 당연시되는 우리로서는 다소 이해하기 어렵게 들리겠지만, 이번 법안에 대해서 위헌 소성을 제기한 쪽에서는 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권리를 침해 당했다고 주장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번 소송에서 예상과 달리 합헌 쪽에 선 것으로 알려진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의회가 경제활동을 규제할 수 있는 권한에 민간보험을 강제할 권리는 포함할 수 없다고 해석했다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의 논리에 동의했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헌판결이 내려진 이유는 그가 건강 보험 의무가입을 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벌금부과를 정부가 하는 과세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념과는 무관하게 전 국민이 건강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폴 크루그만처럼 이번 법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오바마케어’가 장점보다 단점이 많다고 생각해서 반대의견을 표현했던 시카고 대학의 게리 베커 역시 전국민 의료보험의 아이디어 자체에는 찬성한다. 나는 이번 ‘오바마케어’의 통과가 미국의 미래를 바꾸는 시작이 될 것으로 본다. 오바마의 3대 개혁은 크게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개혁, 그리고 ‘도드-프랭크’ 법안과 ‘볼커 룰’로 불리우는 금융시장 개혁, 그리고 교육개혁 정책인데, 이 세 가지 개혁은 미국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꿀 것이다.

2007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부동산 시장 거품의 붕괴는 2008년 '베어즈 스턴즈'과 '리먼 브라더스'의 도산으로 정점을 이루었다. 1997년 한국의 재벌들의 부도 사태에 대해서 시장원칙에 따른 해결을 주문했던 미국이었지만, 막상 자신들의 은행과 기업들이 부도 위기에 처하자, 엄청난 규모의 공적 자금의 투입과 연준의 막대한 유동성 투입이 이루어졌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위기에 대처하는 미국의 모습이다. 부동산 거품 붕괴와 금융기관 도산에 대응했던 일본과 비교해 미국은 훨씬 민첩하게 정부와 중앙은행이 대응에 나섰고, 아직 기대에 미치지는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회복 속도도 훨씬 빨랐다. 미국 경제는 경기침체를 겪기는 했지만 어쨌든 우려했던 디플레이션 위기에서는 벗어났으며 향후 3% 이하의 완만한 성장률을 예상하고 있기는 해도 2015년 이전에는 성장률과 실업률 모두 정상궤도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금융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은 단지 거시경제적인 면에 그치지 않았다. 미국은 아무도 예상 못했던 흑인 대통령을 선출했고 당선된 오바마는 건강보험 개혁과 금융시장 개혁에 칼을 빼 들었다.

비록 원래의 의지에서 후퇴한 면이 있지만, ‘오바마케어’의 의회 통과와 이번 합헌 판결을 살펴 보면 민주당의 입장에서 상당히 감격스러운 면이 있다.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대통령의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이 직접 건강보험 개혁의 전권을 갖고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뼈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로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이번 오바마 정부가 공화당의 여러 실책이 거시적 문제와 결합되어 나타난 금융위기라는 큰 이벤트의 결과로 등장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오바마 정권의 입장에서는 위기의 국면에서 등장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원하는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명분과 힘을 확보할 수 있었다. 즉, 클린턴 정부 때와는 달리 공화당과 이해집단의 전면적인 정치적 사보타지가 불가능했다.

건강보험 개혁을 시도한 오바마가 집중한 또 하나의 개혁은 금융시장 개혁이었는데, 굳이 비교하자면 건강보험 개혁보다는 상대적으로 접근과 실행이 쉬웠다.  월가는 금융위기를 일으킨 탐욕의 집단으로 낙인이 찍힌 상태였고, 개혁을 거부할 정치적 명분을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즉, 미국처럼 기존의 이익 집단이 엄청난 자금과 정치적인 힘을 갖고 로비를 통해서 이해관계를 실현시키는 상황에서는 그들의 이해에 반하지만 국가 전체로 보면 이익이 되는 정책을 관철하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즉, 고질적인 환부를 도려내는 동력은 위기가 아니면 얻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위기는 말 그대로 위기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절대절명의 위기란 다른 말로 하면 절대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큰 병에 걸리는 사태에서 넋을 놓지만 누군가는 나쁜 습관을 고치는 기회로 삼기는 것과 비슷하다. 위기를 ‘멘탈붕괴’로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변화의 동력으로 삼을 것인가는 철저하게 잠재된 그 사람이나 국가의 역량에 달려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면 국가나 조직이 인재를 키우고 있어야 한다. 위기의 순간에 2007년 미국은 오바마를 선택했고, 1997년 한국은 김대중을 선택했다. 미국에서 향후 몇 세기 동안 불가능해 보였던 흑인 대통령이 당선된 것이나, 역시 쉽지 않아 보였던 대권 도전 4수의 전라도 출신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맥락은 ‘금융위기’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한국과 미국의 국가적 역량이 분명히 작동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김대중 정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위기의 한국 경제의 펀더멘탈을 바꿔 놓은 것과 불안정한 남북관계를 정상화시킨 것은 높은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차별 없는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것은 내 책의 일관된 주제다. 괜찮은 보수는 차별 없는 세상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어쩔 수 없이 경쟁을 강조하게 된다. 경쟁은 차별을 없애는 현실적으로 가장 강력한 힘이며 이론적으로 거의 유일한 힘이기 때문이다. ‘괜찮은’이라는 형용사를 붙인 이유는 차별 없는 세상이 완벽하진 않지만 문명과 역사의 진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괜찮은 진보는 불공평하지 않은 세상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필연적으로 복지를 강조하게 된다. 역시 ‘괜찮은’이란 수사를 단 이유는 속도제한 없이 무제한의 속도로 질주하는 고속도로에서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덜 안전하고 덜 빠른 자동차를 탈 수 밖에 없다면 그들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윤리적으로 타당할 뿐 아니라 누구나 경제적인 위험에 노출 될 수 밖에 없는 자본주의 시스템하에서 합리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보수의 논리대로 생산성이 높은 경제만을 추구하다 보면, 시간이 흐르면 필연적으로 정치적 반동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경제적 경쟁은 사적 재산권을 전제로 무한대로 이루어지지만,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는 1인 1표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인 사람,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이나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모두 1표씩 갖는 정치상황하에서 지나친 불공평의 심화는 정치적 퇴행의 위험을 심화시킨다. 정치적 격변은 비록 그 가능성은 높지 않아도 사회적 근간을 뒤흔들 수 있기 때문에, ‘괜찮은’ 보수라면 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미래를 바라보고 사회의 불공평에도 관심을 갖는다. 반면, 낮은 생산성이 지속되면 사회적 불공평을 해소할 영속적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불가능 하기 때문에 ‘괜찮은’ 진보라면 차별을 해소하고 생산성을 끌어 올리는 일에도 시선을 뗄 수 없다. 즉, 지금 정치의 핵심은 차별도 없애고 불공평도 줄이는 것이며,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실현할 수 있는 정치인을 선택하는 것이 정치적 선택의 핵심이어야 한다.

문제는 차별과 불공평을 동시에 줄여가는 방법이 ‘지성’과 ‘양심’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지성’만 갖고 있다면 차별을 해소하되 불공평에 관심을 가질 장기적 관점은 갖기 어려울 것이다. ‘양심’만 가지고 있다면, 불공평을 해소할 역량은 계속 의심받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사적 요구를 가장 잘 따라가고 있는 것은 현재의 미국이다. 오바마의 개혁 정책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시대정신의 구현에 충실하다. 반면, 20년 전 위기를 맞았던 일본이나 지금 위기를 맞고 있는 유럽의 경우는 이런 시대정신의 이해나 구현에 무능하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짧은 시간 안에 옳은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계속해서 기회를 놓치고 있고, 유럽도 점점 어두운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고 있다.


유럽과 일본과 대조적인 미국의 모습을 보면서 한국의 정치 지도자라면 고민해야 하는 것은 10년 뒤 세계의 모습과 이에 대한 대응이다. 이미 유일한 제국이면서 다시 강화되는 ‘미국의 시대’에 주한 미국 철수가 당의 정강인 것은 어떤 관점에서 보아도 시대착오적이다. 그런 정당과의 정치적 연대 역시 얻을 수 있는 것보다는 잃을 수 있는 것이 훨씬 많다. 톨스토의의 단편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보면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측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우리가 미래를 예측하는 이유는 잘 준비하기 위해서지 예언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리더라면 ‘최후의 예측자’가 되어야 하고, 리더쉽의 본질은 예측에 바탕을 둔 대응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현대 사회는 예수가 재림해도 윤리적으로 깔끔하게 사회적 사안을 해결 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미국의 ‘오바마케어’에 대해서 예수는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 편을 들어 찬성할 것인가 아니면 재정 적자가 심화될 재정을 걱정해 반대할 것인가? 경제 위기 상황에서 부자들에 대한 세금 감면에 대해서 예수는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단기적 부양정책으로서 찬성인가 사회적으로 불공평하기 때문에 반대인가? 예수는 좌파에게 투표할 것인가 아니면 우파에게 투표할 것인가 아니면 기권할 것인가? 이처럼 아무리 현자라도 사회적 현안에서 판단이 쉽지 않은 이유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많은 사안들에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현대 정치의 관점에서 한국 정치를 보면 경제 현안과 외교 현안 그리고 대북 현안과 교육 현안은 별개의 사안들이 아니라 복잡하게 연결되어 얽혀있다. 이 모든 사회 경제적 사안들을 잘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예측할 수도 대응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다. 그건 무식한 지도자가 참모만 잘 쓰면 되는 시절은 이미 끝났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여당과 야당은 모두 제대로 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듯 보인다. 공부가 충분치 않은 것이다. 어떤 당의 엉터리 주장을 반박하고 입증할 역량이 다른 당에도 없다.  지금 현안인 가계대출 문제, 서비스업의 낮은 생산성, 자영업자 문제, 사교육 문제, 육아와 복지 문제, 북한 문제들은 유기적으로 얽혀 있지만 어느 당도 그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고민을 하고 있거나 설득력 있는 해법을 제시하는 것 같지 않다.

재미있는 것은 이번 선거의 결과와 상관없이 다음 2017년 대선을 보면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것이다. 3김 시대가 저물고 인터넷의 시대가 찾아온 후, 대중이 갈망하는 대형 정치인의 발굴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공부한 정치인에게 2012년 이후의 세상은 의외의 '무주공산'일 수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역시, ‘지성’과 ‘양심’간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최선의 철학이자 전략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