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9세와 7세인 두 아들을 데리고 청계산을 갔다. 과연 끝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가는 도중에 길을 잘못 들어 20분을 헤맸다. 막힐까봐 타기 싫었던 경부고속도로를 결국 탔다. 아이들은 매봉까지 잘 걸어 올랐다. 7살 먹은 아이가 힘들어 할 때 잠시 업었다. 아이는 아직 20킬로가 안 되는데 100여 미터를 오르니 삭신이 아파와서, 30킬로 베낭을 지고, 눈 덮힌 산을 오르는 등산가가 대단하단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매봉앞에 서서 나는 아이들에게 놀라고, 아이들은 스스로에게 더 놀랐다. 내려오는 길은 인파로 터질 듯 했다. 아들을 데리고 등산을 하다니, 아빠로서의 로망인 '아들과 테니스 치기'도 곧 멀지 않아 이룰 수 있을 듯하다. 다만, 아빠로서의 체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
등산에 돌아와 오후에 동네 목욕탕을 갔다. 처음 가본 그곳은 작고 아담했다. 목욕비는 달랑 6천원. 회사 끝나고 자주 가는 사우나의 절반 값도 안 된다. 씻고 나오려고 하는데, 목욕탕 주인과 직원 한분이 열탕에 있던 할아버지 한 분을 끌어냈다. 5분도 앉아 있기 힘들던 그곳에 20분 가까이 앉아 계시던 분. 온 몸에 마비가 와서 축 늘어졌다. 190은 되어 보이는 건장한 청년이 도와서 목욕탕 바닥에 길게 뉘였다. 이런 경우엔 어째야 하나 다들 당황하는 눈치라, 운전중인 의사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발을 심장보다 높이고, 수건으로 몸을 덮었다. 주인이 119를 불렀는데, 다행히 금방 왔다. "나 김문숩니다"하지 않은 모양이다. 웃을 상황이 아닌데, 여자 팀장이 오시는 바람에, 목욕탕에 있는 남자들은 서둘러 옷을 입고, 할어버지에게도 바지를 입혔다. 팀장님은 들어오지 못하고, 나를 포함한 몇분이 '들것'을 들었다. 스트로크가 온 것 같은데, 정황상 할아버지는 가족이 없는 듯 했다. 목욕탕에서 돌아 오늘 길. 늙음과 병듦과 가난과 가족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는 배웠다.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아도, 그들은 때로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뢰를 쌓는데는 몇 년이 걸려도 무너지는 건 찰라라는 것을. 삶은 무엇을 쥐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곁에 있는가에 달려 있음을"이란 글을 읽었다. 늙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고, 병은 어떤 식으로 올지 알 수 없다. 가난은 노력하면 피할 수 있고, 가족은 함께 했다면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저녁을 먹고 걸어 용산 CGV까지 걸어가 '어벤져스'를 보았다. 3D라 집중이 잘 안 됐지만, 다시 한 번 볼만한 영화였고 생각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찬사다. 극장에서 두 번 이상 본 영화는 지금까지 딱 세 편 뿐이다. 세상에는 두 가지의 꿈이 있을 수 있는데, 하나는 아이언 맨이 되는 것이고, 하나는 토니 스타크에서 멈추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후자일 것이고, 내 아들들은 '아직은' 아이언맨을 꿈꾸겠지.
Sunday, April 29, 2012
Thursday, April 26, 2012
민감함에 대한 신중함
얼마 전에 나보다 훨씬 연배가 높으신 분들과 자리를 함께 한 적이 있었다. 사회적 지위로 보나, 영향력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나보다 훨씬 높고, 크고, 많으신 분들. 저녁을 먹으러 갈 때까지는 최대한 공손하게 조용히 듣고만 있었는데, 저녁을 먹으러 가서, 그 중에 노무현 정부에서 일했던 분과 그 즈음의 정치 상황에 관해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었다. 한참을 얘기했는데, 밤이 늦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야 했다. 며칠 뒤, 그 자리에 함께 계셨던 분들 중 한 분인 대기업 고위임원이 나에 대해서 안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없이 지나치게 대화를 독점했다는 것이다. 아차 싶었고, 그 뒤로 지금까지 가능하면 몸을 낮추려고 조심하고 있다. 그 분의 그런 반응은 나로서는 다소 억울한 일이지만, 그런 신호를 무시하면 안 된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무시 받았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면 그건 분명히 내 잘못이다. 그 뒤로도 그런 느낌은, 책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나타나서 의식적인 혹은 무의식적인 자기검열이 이루어진다. 혹시 이 부분은 누가 보고 상처받지 않을까, 이 부분은 핵심적인 부분이라 빼기는 좀 어렵지만 그래도 민감하니 빼야하지 않을까, 이 부분은 연구가 많이 된 부분이니 괜찮지 않을까, 하는 질문들을 계속 던져보는 것이다.
아침에 뉴스를 보니, 가수 이효리는 애완동물을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실수로 차 트렁크에 개를 태웠다가 죽게 한 주인에게 인간적인 모욕을 주는 말을 온라인에서 했던 모양이다. 이효리가 느끼는 분노는 이해할 수 있는 구석이 있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인간과 비슷한 교감도 가능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고, 그런 개를 그렇게 비참하게 죽게 한 사람에게 분노를 느낄 수 있다. 개를 유기하고, 학대하는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이상한 세상에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가질 수 있는 반응이다. 하지만, 사연을 자세히 보면, 그는 법을 어긴 것은 아니었고, 그런 실수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황으로 보면, 개주인 스스로가 (죽은 개를 빼면) 자신이 저지른 실수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누군가에 대한 비판은 가급적 공적인 영역에 한정하려고 하고, 비판의 내용도 어떤 대상을 포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안별로 한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개인이 원하는 행동을 할 권리에 내가 개입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 일차적 이유고, 내가 그 사람들이 사연을 구구절절히 알기 어렵다는 것이 이차적 이유며, 그들의 일까지 간섭할 시간이 있으면 내 일이나 빨리 잘하자는 것이 마지막 이유다. 이효리는 무슨 말이든 할 권리가 있지만, 때로는 공공의 이익과 사적인 내밀함이 같이 있을 때는 사안에 대해서 신중히 생각해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 사실은, 이 글을 볼 리 없는 이효리가 아니라,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아침에 뉴스를 보니, 가수 이효리는 애완동물을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실수로 차 트렁크에 개를 태웠다가 죽게 한 주인에게 인간적인 모욕을 주는 말을 온라인에서 했던 모양이다. 이효리가 느끼는 분노는 이해할 수 있는 구석이 있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인간과 비슷한 교감도 가능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고, 그런 개를 그렇게 비참하게 죽게 한 사람에게 분노를 느낄 수 있다. 개를 유기하고, 학대하는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이상한 세상에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가질 수 있는 반응이다. 하지만, 사연을 자세히 보면, 그는 법을 어긴 것은 아니었고, 그런 실수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황으로 보면, 개주인 스스로가 (죽은 개를 빼면) 자신이 저지른 실수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누군가에 대한 비판은 가급적 공적인 영역에 한정하려고 하고, 비판의 내용도 어떤 대상을 포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안별로 한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개인이 원하는 행동을 할 권리에 내가 개입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 일차적 이유고, 내가 그 사람들이 사연을 구구절절히 알기 어렵다는 것이 이차적 이유며, 그들의 일까지 간섭할 시간이 있으면 내 일이나 빨리 잘하자는 것이 마지막 이유다. 이효리는 무슨 말이든 할 권리가 있지만, 때로는 공공의 이익과 사적인 내밀함이 같이 있을 때는 사안에 대해서 신중히 생각해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 사실은, 이 글을 볼 리 없는 이효리가 아니라,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Friday, April 20, 2012
깨달음
"죽음과 마주했을 때, 당신이 가장 원하는 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깨달을 것"이란 게 잡스의 스탠포드 대학 졸업사의 논거다. 그 연설은 스토리 텔링의 힘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지만, 그 연설에서 우리가 배울 게 있다면, 그 논거의 힘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래서 도대체 무엇이 죽음과 대면해서까지 얻어야 하는 것인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는, 잡스도, 혹은 잡스보다 더 위대한 인간도 우리에게 알려줄 수 없다. 그걸 알려주겠다는 사람들의 말을 믿겠다면, 당신은 어리석다. 속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게 무엇인지 굳이 알아야 한다면, 사람들의 주장이나 말보다는 인간들의 행동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혹시 깨달았다고 해도, 그걸 글로 남기거나 말로 옮기는 건 피해야 한다.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고, 만약 진짜라고 믿는다면, 삐뚤어진 신념으로 비난 받을 가능성이 높다. 말하는 순간 그 깨달음의 힘은 사라진다.
Monday, April 16, 2012
남자의 매력
장동건이나 정우성에 비해서 그는 키가 크지도 않고, 잘 생기지도 않다. 얼굴이 작지도 않다. 그러나, 이병헌은 현대차 광고의 나레이터를 할 수 있지만, 장동건이나 정우성은 그럴 수 없다. 이병헌이 처음부터 그렇게 멋진 목소리를 가졌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좋은 편이었던 원래의 목소리를 갈고 가다듬어서 지금처럼 "몹시도 두근거렸고 아팠지만 아름다웠던 사랑을 당신과 함께"라고 읽으면, 정말 그 시간이 아프지만 아름다웠다웠을 것만 같은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호흡과 톤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수 천번은 자기 목소리를 녹음해 듣고, 고쳤을 것이다. 그가 더 좋은 대학을 나온 배우들 보다 더 똑똑해보이고, 유학생 출신보다 더 유창하지는 않아도 더 감정선에 닿아있는 영어대사를 칠 수 있는 이유도 타고 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루에 3시간씩 몸을 만들고, 밤을 새며 드라마를 찍어도, 꾸준히 영어공부를 해야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 많이 들었던, "이병헌은 잘 생겨서 이민정도 사귀니 참 좋겠다"라는 말은 포커스가 좀 잘못된 듯 하다. 최지우가 그랬다던가. 많은 남자 배우들과 연기를 해봤지만, 이병헌이 제일 멋있었다고. 이병헌이 멋있는 이유는 장동건이나 정우성과 좀 다르다. 노력하고 싸워서 얻은 매력. 난 그게 맘에 든다. 노력해서 싸워서 세워진 남자의 자의식과 자신감은 쉽게 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게 남자가 발산할 수 있는 매력의 최상위 아닐까.
Thursday, April 12, 2012
선거의 결과
박근혜/ 박근혜는 철저하게 이명박과 전선을 설정하고 한계를 긋는 전략을 사용했다.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박근혜를 선택하는 것이 이명박을 심판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면, 박근혜의 전략은 성공한 것이다. 박근혜의 전략은 큰 방향에서는 맞게 설정되었고, 전술에서 일부 실수가 있긴 했지만, 민주당의 패착으로 그나마도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총선을 이긴 것은 새누리당으로서는 좋은 일이지만, 박근혜 개인으로서는 조금은 부담스러울 것이다. 박근혜가 원했던 것은 민주당과 진보신당을 합해서 새누리당과 비슷한 의석이 되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민주당을 안심하게 하면서 보수층의 긴장감을 누그러뜨리지 않게 만드는 수준.
민주당/ 새누리당이 다수당이 되면서, 한미 FTA 재협상이나 무효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민주당 지지자 중에 한미 FTA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감안하면, 사실상 민주당의 한미 FTA에 대한 정책은 잘못된 것이 분명해진 셈이다. 나는 민주당이 한미 FTA에 대한 잘못된 정책으로 10석 정도를 잃었다고 생각한다. 양당 간 20석 격차에 해당하는 큰 숫자다. 그리고 아마도 김용민 때문에 아슬아슬한 몇 석을 잃었을 것이다. 전자는 전략상의 실패고, 후자는 민주당의 한계다.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한미 FTA 협정 체결에 반감을 갖는 진보진영이 자신들의 지지세력이라는 점 때문에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한미 FTA 협정에 대해 보수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해서, 진보적 성향을 갖는 유권자가 새누리당이나 진보통합당을 지지할 수 있었을까. 이명박에 대한 반감 때문에 그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한미 FTA 반대가 마치 정책의 핵심 목표처럼 되버린 건 패착이다. 이 시점에서 한미 FTA를 반대한다는 것은 현실성도 없고, 국가 전체를 위한 실체적 이익도 없으며, 절차적으로 너무 복잡하고, 노무현 정부하에서의 정책을 감안한다면 논리적으로도 궁색하다. 서울 시장 선거에서도 얘기했지만, 민주당의 입장에서 진보통합당과의 연대에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별로 없다. 야권연대를 하지 않았더라도, 결과는 야권 연대를 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생각이나 선진당이 이번 선거에서 완패한 것과 마찬가지다. 문제는 보수연대를 거부할 수 있는 새누리당과 달리, 민주당은 진보연대를 거부할 통합적인 리더쉽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누군가 책임지고 당의 방향을 끌고간 후,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는 정서가 없다. 한가지 희망이 있다면, 의석수가 아닌 전체 투표결과를 보면, 대선에 여전히 희망을 걸어볼만 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가능성을 과연 살릴 역량이 있는가 하는 것인데, 우물쭈물하다 보면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김용민/ 김용민 문제의 본질은 그의 7년 전 막말이 아니라, 정치인으로서의 역량이다. 설령 손수조가 당선되었다고 해도 그녀에게 기발한 이벤트 이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김용민에게 훌륭한 입법기관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것이란 기대치가 생기지 않는다, 라는 게 문제의 본질이다. 김용민이 거친 표현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국회의원에 출마할 상황이 올 것이란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의도적으로 조심하지 않는다면, 그게 김용민의 본질인 것이다. '나꼼수'는 김어준의 작품이고, 김용민은 운좋게 유명해졌을 뿐, 국회의원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정봉주가 나갈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김용민이 손을 들게 된 이유는 김용민의 과욕이 가장 컸겠지만, '나꼼수'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그 요청을 받아들인 민주당과, 김용민을 자제시키지 않는 김어준의 책임이 크다. 그런데, 일단 공천된 김용민이 사퇴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그 시점에서의 사태란 득보다 실이 많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민주당의 입장에서 사퇴를 강요할 명분이 없었다. 그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고, 누구처럼 논문을 표절한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그를 택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부터 김용민은 큰 부담을 지고 가야 하는 정치인이 되었다. 지금부터 보여주는 모습이 그의 진짜 역량일 것이고, 이제부터 그의 7년 전 막말은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손수조/ 새누리당의 부산 공천을 받을 수 있는 객관적인 조건을 손수조는 갖고 있지 못했다. 그녀가 공천을 받은 시점까지 쌓아올렸던 경력 정도를 갖고 프로파일링을 하면, 공천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적어도 수 만명일 것이다. 따라서, 그녀가 문재인을 이길 가능성은 애초부터 거의 없었고, 설사 이겼다 해도 한국 정치에 대한 비애감만 키웠을 것이다. 혹자는 져도 본전, 이기면 대박인 좋은 전략이라고 하지만, 그건 로또를 사는 사람들의 논리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손수조가 40% 이상을 얻은 선거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경쟁력 있는 인사가 나섰다면, 결과는 훨씬 문재인에게 불리했을 것이다. 어쨌든 새누리당은 자신들의 맹목적인 지지층인 부산 시민들에게 예의에 벗어난 짓을 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자의식을 훼손하고 자존심을 버리게 만드는 건 옳지 않다.
문대성/ 논문 표절 논란에도 불구하고 문대성이 당선된 걸 보면, 부산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새누리당을 찍는다는 것 말고, 사람들은 논문 표절 여부와 논문 표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문대성이 바람직한 국회의원의 자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보다 더 낮은 수준의 인간들도 국회의원을 한다는 게 사람들의 기본정서인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사태에 대한 대처로 문대성보다 훨씬 국회의원의 자질이 확연히 드러난 사람으로 대응하던가, 아니면, 논문 표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부산 시민을 계몽해야 한다. 당연히, 전자가 더 쉽다. 문대성이 논문 표절을 했을 가능성이 있어도 국회의원이 되길 바라는 부산시민이 많다는 건 실망스러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건 부산시민들의 선택이니까. 하지만, 이제부터 흥미를 갖게 되는 건, 박사 학위를 준 국민대학교의 선택이다. 과연, 참고논문의 오타까지도 그대로 이어 붙인 박사학위 논문을 국민대학교는 취소하지 않을 것인가. 만약, 국민대학교가 박사학위를 취소한다면, 비록 석사 학위를 근거로 교수로 임용한 동아대학교로서도 어쩔 수 없이 교수 임용을 취소하게 될 것이다. 그런 상황이 되면 새누리당과 박근혜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문대성은 무소속 의원으로 바뀌게 될 가능성이 높다.
강용석/ 강용석은 박원순을 상대로 병역비리 의혹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의원직을 걸었다. 상대 정치인의 의혹을 제기하면서 자신의 의원직을 걸었던 이유는 너무나 확신에 차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에 대한 의혹이나 비리를 제기하면서 무엇인가를 담보로 걸어야할 이유는 없다. 그건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용석의 확신은 오판이었고, 그의 그런 행동은 오버였다. 결국, 4%가 안 되는 표를 받고 그의 정치적 재기는 어렵게 되었다. 그의 좌충우돌을 즐기는 사람은 많아도 막상 표를 주는 사람은 없었다는 얘기. 시장은 꽤 냉정하다.
김근태/ 김근태의 부인인 인재근의 압도적 승리가 시사하는 바는 뭘까. 인재근은 김근태의 부인이지만, 그녀 자신도 활동가로서 나름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 다만, 대중이 김근태에 대해서 느끼고 있는 부채의식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한국 정치에서 대중의 감정선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이번에 잘 보여준다. "김근태가 하늘의 일을 보는 동안 땅의 일을 맡으려 한다"는 그녀의 표현은 근사하다.
김을동/ 그녀가 송파에 출마했다는 사실을 어제 알았다. 그녀가 당선되는 모습을 보는 건 당혹스럽다. 손수조의 변주.
그림/ 큰 그림으로 보면, 대통령제 하에서 한국의 정당 정치는 중도 진보와 중도 보수로 수렴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정치를 할 생각이 있고, 꿈이 크면 클수록, 두 중도 정당을 떠나서 하지 말라고 말한다. 아무리 이념적 스펙트럼이 달라도, 그 두 정당 안에서 다양한 색깔을 만들어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영리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아주 진보적인 정당과 아주 보수적인 정당은 안타깝게도 주류정당(많은 지지를 획득한다는 의미에서)이 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2007년 시작된 금융위기를 시작으로 세계적인 정치지형도의 축은 보수에서 진보쪽으로 이동했고, 이번 선거는 한국이 그런 움직임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왔는데, 보수와 진보가 비슷한 득표를 한 정당 투표 내용을 보면 분명히 그런 욕구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욕구를 추수하는 전략은 중도적인 진보정당의 본분을 지키는 것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좌쪽으로 너무 멀리 갔다. 위에서 언급한 한미 FTA가 대표적인 예다. 대선에도 이런 전략을 게속 사용한다면, 민주당에게 가능성은 많지 않다.
문재인/ 사람이 인생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덕목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좋은 스펙, 배경, 운, 호감을 주는 외모 등이 다 중요한 요인이다. 하지만, 그 어떤 요인도 성공에 대한 의지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 의지가 있다면, 성공에 대한 철학도 배경도 만들어낼 수 있다. 문재인은 이번 선거 과정에서 자신의 철학이 무엇인지 보여주지 않았다. 나는 그가 경제나 정치 혹은 복지 문제에 대해서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알 수 없다면, 대부분의 다른 대중들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일부러 드러내지 않고 있다면 너무 늦지 않게 드러내어 검증을 받아야 할 것이고, 없다면 전략적으로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더 늦기 전에 밑그림을 그려야 할 것이다.
민주당/ 새누리당이 다수당이 되면서, 한미 FTA 재협상이나 무효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민주당 지지자 중에 한미 FTA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감안하면, 사실상 민주당의 한미 FTA에 대한 정책은 잘못된 것이 분명해진 셈이다. 나는 민주당이 한미 FTA에 대한 잘못된 정책으로 10석 정도를 잃었다고 생각한다. 양당 간 20석 격차에 해당하는 큰 숫자다. 그리고 아마도 김용민 때문에 아슬아슬한 몇 석을 잃었을 것이다. 전자는 전략상의 실패고, 후자는 민주당의 한계다.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한미 FTA 협정 체결에 반감을 갖는 진보진영이 자신들의 지지세력이라는 점 때문에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한미 FTA 협정에 대해 보수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해서, 진보적 성향을 갖는 유권자가 새누리당이나 진보통합당을 지지할 수 있었을까. 이명박에 대한 반감 때문에 그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한미 FTA 반대가 마치 정책의 핵심 목표처럼 되버린 건 패착이다. 이 시점에서 한미 FTA를 반대한다는 것은 현실성도 없고, 국가 전체를 위한 실체적 이익도 없으며, 절차적으로 너무 복잡하고, 노무현 정부하에서의 정책을 감안한다면 논리적으로도 궁색하다. 서울 시장 선거에서도 얘기했지만, 민주당의 입장에서 진보통합당과의 연대에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별로 없다. 야권연대를 하지 않았더라도, 결과는 야권 연대를 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생각이나 선진당이 이번 선거에서 완패한 것과 마찬가지다. 문제는 보수연대를 거부할 수 있는 새누리당과 달리, 민주당은 진보연대를 거부할 통합적인 리더쉽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누군가 책임지고 당의 방향을 끌고간 후,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는 정서가 없다. 한가지 희망이 있다면, 의석수가 아닌 전체 투표결과를 보면, 대선에 여전히 희망을 걸어볼만 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가능성을 과연 살릴 역량이 있는가 하는 것인데, 우물쭈물하다 보면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김용민/ 김용민 문제의 본질은 그의 7년 전 막말이 아니라, 정치인으로서의 역량이다. 설령 손수조가 당선되었다고 해도 그녀에게 기발한 이벤트 이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김용민에게 훌륭한 입법기관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것이란 기대치가 생기지 않는다, 라는 게 문제의 본질이다. 김용민이 거친 표현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국회의원에 출마할 상황이 올 것이란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의도적으로 조심하지 않는다면, 그게 김용민의 본질인 것이다. '나꼼수'는 김어준의 작품이고, 김용민은 운좋게 유명해졌을 뿐, 국회의원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정봉주가 나갈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김용민이 손을 들게 된 이유는 김용민의 과욕이 가장 컸겠지만, '나꼼수'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그 요청을 받아들인 민주당과, 김용민을 자제시키지 않는 김어준의 책임이 크다. 그런데, 일단 공천된 김용민이 사퇴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그 시점에서의 사태란 득보다 실이 많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민주당의 입장에서 사퇴를 강요할 명분이 없었다. 그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고, 누구처럼 논문을 표절한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그를 택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부터 김용민은 큰 부담을 지고 가야 하는 정치인이 되었다. 지금부터 보여주는 모습이 그의 진짜 역량일 것이고, 이제부터 그의 7년 전 막말은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손수조/ 새누리당의 부산 공천을 받을 수 있는 객관적인 조건을 손수조는 갖고 있지 못했다. 그녀가 공천을 받은 시점까지 쌓아올렸던 경력 정도를 갖고 프로파일링을 하면, 공천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적어도 수 만명일 것이다. 따라서, 그녀가 문재인을 이길 가능성은 애초부터 거의 없었고, 설사 이겼다 해도 한국 정치에 대한 비애감만 키웠을 것이다. 혹자는 져도 본전, 이기면 대박인 좋은 전략이라고 하지만, 그건 로또를 사는 사람들의 논리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손수조가 40% 이상을 얻은 선거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경쟁력 있는 인사가 나섰다면, 결과는 훨씬 문재인에게 불리했을 것이다. 어쨌든 새누리당은 자신들의 맹목적인 지지층인 부산 시민들에게 예의에 벗어난 짓을 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자의식을 훼손하고 자존심을 버리게 만드는 건 옳지 않다.
문대성/ 논문 표절 논란에도 불구하고 문대성이 당선된 걸 보면, 부산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새누리당을 찍는다는 것 말고, 사람들은 논문 표절 여부와 논문 표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문대성이 바람직한 국회의원의 자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보다 더 낮은 수준의 인간들도 국회의원을 한다는 게 사람들의 기본정서인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사태에 대한 대처로 문대성보다 훨씬 국회의원의 자질이 확연히 드러난 사람으로 대응하던가, 아니면, 논문 표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부산 시민을 계몽해야 한다. 당연히, 전자가 더 쉽다. 문대성이 논문 표절을 했을 가능성이 있어도 국회의원이 되길 바라는 부산시민이 많다는 건 실망스러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건 부산시민들의 선택이니까. 하지만, 이제부터 흥미를 갖게 되는 건, 박사 학위를 준 국민대학교의 선택이다. 과연, 참고논문의 오타까지도 그대로 이어 붙인 박사학위 논문을 국민대학교는 취소하지 않을 것인가. 만약, 국민대학교가 박사학위를 취소한다면, 비록 석사 학위를 근거로 교수로 임용한 동아대학교로서도 어쩔 수 없이 교수 임용을 취소하게 될 것이다. 그런 상황이 되면 새누리당과 박근혜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문대성은 무소속 의원으로 바뀌게 될 가능성이 높다.
강용석/ 강용석은 박원순을 상대로 병역비리 의혹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의원직을 걸었다. 상대 정치인의 의혹을 제기하면서 자신의 의원직을 걸었던 이유는 너무나 확신에 차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에 대한 의혹이나 비리를 제기하면서 무엇인가를 담보로 걸어야할 이유는 없다. 그건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용석의 확신은 오판이었고, 그의 그런 행동은 오버였다. 결국, 4%가 안 되는 표를 받고 그의 정치적 재기는 어렵게 되었다. 그의 좌충우돌을 즐기는 사람은 많아도 막상 표를 주는 사람은 없었다는 얘기. 시장은 꽤 냉정하다.
김근태/ 김근태의 부인인 인재근의 압도적 승리가 시사하는 바는 뭘까. 인재근은 김근태의 부인이지만, 그녀 자신도 활동가로서 나름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 다만, 대중이 김근태에 대해서 느끼고 있는 부채의식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한국 정치에서 대중의 감정선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이번에 잘 보여준다. "김근태가 하늘의 일을 보는 동안 땅의 일을 맡으려 한다"는 그녀의 표현은 근사하다.
김을동/ 그녀가 송파에 출마했다는 사실을 어제 알았다. 그녀가 당선되는 모습을 보는 건 당혹스럽다. 손수조의 변주.
그림/ 큰 그림으로 보면, 대통령제 하에서 한국의 정당 정치는 중도 진보와 중도 보수로 수렴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정치를 할 생각이 있고, 꿈이 크면 클수록, 두 중도 정당을 떠나서 하지 말라고 말한다. 아무리 이념적 스펙트럼이 달라도, 그 두 정당 안에서 다양한 색깔을 만들어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영리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아주 진보적인 정당과 아주 보수적인 정당은 안타깝게도 주류정당(많은 지지를 획득한다는 의미에서)이 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2007년 시작된 금융위기를 시작으로 세계적인 정치지형도의 축은 보수에서 진보쪽으로 이동했고, 이번 선거는 한국이 그런 움직임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왔는데, 보수와 진보가 비슷한 득표를 한 정당 투표 내용을 보면 분명히 그런 욕구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욕구를 추수하는 전략은 중도적인 진보정당의 본분을 지키는 것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좌쪽으로 너무 멀리 갔다. 위에서 언급한 한미 FTA가 대표적인 예다. 대선에도 이런 전략을 게속 사용한다면, 민주당에게 가능성은 많지 않다.
문재인/ 사람이 인생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덕목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좋은 스펙, 배경, 운, 호감을 주는 외모 등이 다 중요한 요인이다. 하지만, 그 어떤 요인도 성공에 대한 의지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 의지가 있다면, 성공에 대한 철학도 배경도 만들어낼 수 있다. 문재인은 이번 선거 과정에서 자신의 철학이 무엇인지 보여주지 않았다. 나는 그가 경제나 정치 혹은 복지 문제에 대해서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알 수 없다면, 대부분의 다른 대중들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일부러 드러내지 않고 있다면 너무 늦지 않게 드러내어 검증을 받아야 할 것이고, 없다면 전략적으로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더 늦기 전에 밑그림을 그려야 할 것이다.
Wednesday, April 11, 2012
투표와 선거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 인간은 투표 하지 않는다. 투표를 하는 내 행위가 투표 결과에 전혀 영향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인간이 그런 합리적 사고를 하면, 투표율은 제로(0)에 수렴해야 한다. 하지만, 투표율은 절대 제로가 되지 않는다. 투표라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가치 실현을 위해 합리적인 인간들이 하는 일종의 비합리적인 공모다. 즉, 투표라는 비합리적인 행위를 함으로 우리는 비로서 우리가 유지해야 하는 최소한의 민주적 정치구조 혹은 가치체계를 유지할 수 있다. 몰론, 투료를 하지 않는 것 또한 정치적 의사표현의 한 종류일 수 있고, 기존 정당과 정치인이 분발할 부분이다. 하지만 투표를 하지 않으면서 정치의 낙후성을 비판하는 건, 어떤 식으로든, 근거를 확보하기 어렵다. 짜증나고 힘들긴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이익과 취향과 기회를 대변할 누군가를, 비록 그가 최선이 아니더라도, 선택해야 한다.
우리나라와 같은 대통령제로는 결국 정당의 성격은 크게 둘로 나뉘게 된다. 특히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도 보수정당과 중도 진보정당으로 사람들의 지지는 수렴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정치를 할 생각이 있고, 꿈이 크면 클수록, 두 거대 정당을 떠나서 하지 말라고 말한다. 아무리 이념적 스펙트럼이 달라도, 그 두 정당 안에서 다른 색깔을 만들어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영리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아주 진보적인 정당과 아주 보수적인 정당은 안타깝게도 주류정당(많은 지지를 획득한다는 의미에서)이 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2007년 시작된 금융위기를 시작으로 세계적인 정치지형도의 축은 보수에서 진보쪽으로 이동했고, 이번 선거는 한국이 그런 움직임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를 보여줄 것이다. 큰 변화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성이 차지 않겠지만, 정치에서의 약간의 차이는 거대한 변화를 의미할 수도 있다. 시대착오적 퇴행을 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지만, 그래도 나는 한국인들이 투표로 보여줄 합리적인 비합리성을 믿고 싶다.
우리나라와 같은 대통령제로는 결국 정당의 성격은 크게 둘로 나뉘게 된다. 특히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도 보수정당과 중도 진보정당으로 사람들의 지지는 수렴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정치를 할 생각이 있고, 꿈이 크면 클수록, 두 거대 정당을 떠나서 하지 말라고 말한다. 아무리 이념적 스펙트럼이 달라도, 그 두 정당 안에서 다른 색깔을 만들어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영리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아주 진보적인 정당과 아주 보수적인 정당은 안타깝게도 주류정당(많은 지지를 획득한다는 의미에서)이 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2007년 시작된 금융위기를 시작으로 세계적인 정치지형도의 축은 보수에서 진보쪽으로 이동했고, 이번 선거는 한국이 그런 움직임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를 보여줄 것이다. 큰 변화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성이 차지 않겠지만, 정치에서의 약간의 차이는 거대한 변화를 의미할 수도 있다. 시대착오적 퇴행을 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지만, 그래도 나는 한국인들이 투표로 보여줄 합리적인 비합리성을 믿고 싶다.
Monday, April 09, 2012
선거 하루 전
1.
김용민은 자신이 이렇게 유명해질 줄 알았더라면, 그런 인터넷 방송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에 생각하던 자신의 모습과 지금의 자신의 모습 사이에 있는 간극은 사실 김용민으로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김용민의 딜레마는 지금의 자신이 과거의 자신이 아님을 (실은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납득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의 딜레마는 김용민의 그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나꼼수' 멤버로서의 김용민이 아니라, 정치인 김용민을 지지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2.
'나는 꼼수다'가 왜 인기를 끌었을까. 김어준은 태도 자체가 파워풀한 표현양식이 될 수 있다고 봤고 그건 옳았다. 그가 "씨발 쫄지마"라고 했을 때, 그것이 단순히 육두문자로 끝나지 않은 이유는 '나꼼수' 이전에 많은 사람이 솔직히 쫄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백만 명이 동시에 "씨발 쫄지마'라고 하자, 그건 욕설이 아니라, 정치적 연대의 구호가 되었다. 그리고, 그 동안 그들을 쫄게 만들었던 진영은 더 이상 예전처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됐다. 그들이 펼쳤던 반론은 "왜 욕을 하냐"는 것이고, 알다시피 그런 반응은 찌질한 것이다. 그리고, '나꼼수'는 지난 수 개월 간 논란의 한 복판에 서 있게 되었다.
3.
민주당의 계속된 삽질. 미안하게도 그 삽질과 오판은 '나꼼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나꼼수'는 파워풀한 소통양식이긴 해도, '나꼼수'의 욕설이 나꼼수의 본질이 아니듯, '나꼼수'가 지금 정치현상의 핵심은 아니다. 그러나, 정봉주의 빈자리를 김용민으로 메우겠다는 발상에서 보듯이 민주당의 오판은 계속될 뿐 아니라 그 수준이 낮다. 물론, 그런 오판에 김용민의 과욕도 편승했다. 이 시점에서 김용민을 사퇴시키는 것은 나쁜 전략이다. 그렇지만, 김용민을 공천한 것은 바보같은 생각이었다. 하긴, 민주당이 한 황당한 공천이 김용민 하나 만은 아니니 딱히 할 말 없다.
4.
현실인식의 얄팍함에서 기인하는 황당한 공천전략은 새누리당도 민주당 못지 않다. 문재인의 대항마로 내세운 손수조 카드는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 몰라도, 기발함 말고는 그 어떤 조건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손수조는 지역구를 대변하지도 못하고, 헌법기관의 역할을 수행하지도 못하며, 문재인에게 치명상을 입히지도 못한다. 대신, 젊은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데는 성공했다. 마치 친구를 인질로 아빠의 목숨을 위협하는 납치범을 대하는 자식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토론회에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해 중간에 나가버린 후보는 또 어떤가.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느니 말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면, 참신하긴 하다.
5.
이 판국에 홍정욱은 나름의 출구전략을 잘 세워서 실천했다. 말이 쉬워 출구전략이지, 진창이 될 것을 알면서도 한 웅큼의 탐욕 미련 때문에 온 몸을 더럽히고 마는 것이 사람이다. 보수가 괜찮은 보수로 남아 있기 어려운 판국에 홍정욱은 훌륭히 잘 빠져 나갔다. 앞으로 5년 정도 대중의 관심에 멀어지지 않으면서, 건강하고 합리적인 보수의 이미지로 남아있을 수 있다면, 보수는 결국 그를 다시 찾게 될 것이고, 몸값은 높아져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기대나 미련과는 달리, 나경원과 오세훈의 재기는 획기적인 인식의 전환이 없는 한 어려워 보인다. 시간은 그들의 편이 아니다.
김용민은 자신이 이렇게 유명해질 줄 알았더라면, 그런 인터넷 방송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에 생각하던 자신의 모습과 지금의 자신의 모습 사이에 있는 간극은 사실 김용민으로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김용민의 딜레마는 지금의 자신이 과거의 자신이 아님을 (실은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납득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의 딜레마는 김용민의 그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나꼼수' 멤버로서의 김용민이 아니라, 정치인 김용민을 지지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2.
'나는 꼼수다'가 왜 인기를 끌었을까. 김어준은 태도 자체가 파워풀한 표현양식이 될 수 있다고 봤고 그건 옳았다. 그가 "씨발 쫄지마"라고 했을 때, 그것이 단순히 육두문자로 끝나지 않은 이유는 '나꼼수' 이전에 많은 사람이 솔직히 쫄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백만 명이 동시에 "씨발 쫄지마'라고 하자, 그건 욕설이 아니라, 정치적 연대의 구호가 되었다. 그리고, 그 동안 그들을 쫄게 만들었던 진영은 더 이상 예전처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됐다. 그들이 펼쳤던 반론은 "왜 욕을 하냐"는 것이고, 알다시피 그런 반응은 찌질한 것이다. 그리고, '나꼼수'는 지난 수 개월 간 논란의 한 복판에 서 있게 되었다.
3.
민주당의 계속된 삽질. 미안하게도 그 삽질과 오판은 '나꼼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나꼼수'는 파워풀한 소통양식이긴 해도, '나꼼수'의 욕설이 나꼼수의 본질이 아니듯, '나꼼수'가 지금 정치현상의 핵심은 아니다. 그러나, 정봉주의 빈자리를 김용민으로 메우겠다는 발상에서 보듯이 민주당의 오판은 계속될 뿐 아니라 그 수준이 낮다. 물론, 그런 오판에 김용민의 과욕도 편승했다. 이 시점에서 김용민을 사퇴시키는 것은 나쁜 전략이다. 그렇지만, 김용민을 공천한 것은 바보같은 생각이었다. 하긴, 민주당이 한 황당한 공천이 김용민 하나 만은 아니니 딱히 할 말 없다.
4.
현실인식의 얄팍함에서 기인하는 황당한 공천전략은 새누리당도 민주당 못지 않다. 문재인의 대항마로 내세운 손수조 카드는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 몰라도, 기발함 말고는 그 어떤 조건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손수조는 지역구를 대변하지도 못하고, 헌법기관의 역할을 수행하지도 못하며, 문재인에게 치명상을 입히지도 못한다. 대신, 젊은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데는 성공했다. 마치 친구를 인질로 아빠의 목숨을 위협하는 납치범을 대하는 자식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토론회에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해 중간에 나가버린 후보는 또 어떤가.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느니 말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면, 참신하긴 하다.
5.
이 판국에 홍정욱은 나름의 출구전략을 잘 세워서 실천했다. 말이 쉬워 출구전략이지, 진창이 될 것을 알면서도 한 웅큼의 탐욕 미련 때문에 온 몸을 더럽히고 마는 것이 사람이다. 보수가 괜찮은 보수로 남아 있기 어려운 판국에 홍정욱은 훌륭히 잘 빠져 나갔다. 앞으로 5년 정도 대중의 관심에 멀어지지 않으면서, 건강하고 합리적인 보수의 이미지로 남아있을 수 있다면, 보수는 결국 그를 다시 찾게 될 것이고, 몸값은 높아져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기대나 미련과는 달리, 나경원과 오세훈의 재기는 획기적인 인식의 전환이 없는 한 어려워 보인다. 시간은 그들의 편이 아니다.
두 개의 죽음
어제 'Act of Valor'란 영화를 보는데, 플롯의 구성은 상당히 산만하고, 주제는 다분히 자아 도취적이다. 다만, 전투 장면의 사실적 묘사만으로도 충분히 볼 만 하다. 주인공들은 목숨을 담보로 특수작전을 수행하는 네이비 씰인데, 주인공의 아내는 임신을 하고, 주인공은 아내의 출산 전 마지막 작전에 나선다. 테러리스트를 제거하기 직전, 그는 몇 명의 대원을 거느리고 작전에 수행하는데, 갑자기 수류탄이 데굴데굴 앞으로 굴러온다. 부하들은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 5초 동안 더 생명을 유지하고 동료들고 함께 죽을 것인가, 5초 먼저 죽되 동료들을 살릴 것인가의 문제. 훈련이 되지 않는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없이 죄다 전자의 길을 걷는다. 그는 네이비 씰의 최고 요원이고, 몸을 던져 수류탄을 감싸안더니, 몸이 폭발과 함께 30센티 정도 수직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그 사이 그의 복부는 폭발의 충격으로 죄다 부서졌다.
오늘 아침엔 조금 늦게 나온 까닭에 3킬로 정도만 걷다가 택시를 탔다. 택시 안에서 리암 닐슨이 주연한 '더 그레이'(The Grey)란 영화를 잠시 보았다. 늑대 사냥꾼인 그가 탄 비행기가 앵커리지를 가는 도중 영하 20도의 설원에 추락한다. 추락한 승객의 대부분은 터프한 노동자들인데 그 중 심하게 부상당한 친구가 자신의 상처를 보고 패닉하여 발광한다. 그의 손을 잡은 리암 닐슨이 이렇게 말한다. "죽음이 서서히 다가 오고 있어. 쓸데 없는 생각을 하지 말고, 죽음이 그냥 오게 놔둬. 너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해봐. 누구지? 딸? 그녀가 너를 죽음에 데려가 주게 놔 둬" 차분한 눈빛의 그는 마지막 숨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이 말한다. "죽음이 그를 데려가는 걸 느꼈어". 여기까지 봤지만, 이 영화의 끝은 안 봐도 뻔하다. 췌장암 선고를 받고 예상보다 훨씬 긴 수명을 유지한 스티브 잡스인들, 세상에 준비된 죽음 같은 게 있을 턱이 없다. 죽기 전까지 삶의 본능과 욕구를 발휘해서 살아낼 뿐이다. 뻔한 얘기지만, 막상 직시하면 숙연해진다.
오늘 아침엔 조금 늦게 나온 까닭에 3킬로 정도만 걷다가 택시를 탔다. 택시 안에서 리암 닐슨이 주연한 '더 그레이'(The Grey)란 영화를 잠시 보았다. 늑대 사냥꾼인 그가 탄 비행기가 앵커리지를 가는 도중 영하 20도의 설원에 추락한다. 추락한 승객의 대부분은 터프한 노동자들인데 그 중 심하게 부상당한 친구가 자신의 상처를 보고 패닉하여 발광한다. 그의 손을 잡은 리암 닐슨이 이렇게 말한다. "죽음이 서서히 다가 오고 있어. 쓸데 없는 생각을 하지 말고, 죽음이 그냥 오게 놔둬. 너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해봐. 누구지? 딸? 그녀가 너를 죽음에 데려가 주게 놔 둬" 차분한 눈빛의 그는 마지막 숨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이 말한다. "죽음이 그를 데려가는 걸 느꼈어". 여기까지 봤지만, 이 영화의 끝은 안 봐도 뻔하다. 췌장암 선고를 받고 예상보다 훨씬 긴 수명을 유지한 스티브 잡스인들, 세상에 준비된 죽음 같은 게 있을 턱이 없다. 죽기 전까지 삶의 본능과 욕구를 발휘해서 살아낼 뿐이다. 뻔한 얘기지만, 막상 직시하면 숙연해진다.
Thursday, April 05, 2012
독서의 (비)효용
비슷한 나이를 살아온 사람들 중에서 나는 비교적 많은 책을 읽은 편이다. 시간과 돈을 책을 사고 읽는 데 많이 썼다. 그래서 더 나은 인간이 되었냐 하면 별로 그렇지 못하다. 대부분의 책은 돌아보니 그저 시간 낭비에 불과했다. 시대를 살아남은 고전이라고 해서 나은 것도 없다. 좋은 책과 좋은 친구 둘 중에 하나만 고르라면, 좋은 친구의 힘이 좋은 책의 힘보다 몇 배 크다. 책을 읽는 것의 약점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첫째, 대부분의 책을 읽는 행동은 그저 오락에 불과하다. 책을 읽는 것이 TV를 보는 것보다 나으려면 정보가 양과 질이 좋아야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세상에 쏟아져 나오는 많은 책들이 부정확한 정보와 쓸데없는 편견만 남발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는 내가 그랬듯이 책이 재밌어서다. TV를 보는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다. 둘째, 책을 읽는 행동이 사고의 확장으로 이어지려면 메모하고 정리하고 리뷰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책을 읽는 건 재밌지만, 이런 작업은 습관이 되기 전까지는 귀찮고 성가신 일이다. 하지만, 일단 해보면, 불필요한 책들은 결국 멀리하게 되면서 내가 얼마나 쓸데 없는 책을 읽었는지 깨닫게 된다. 세째, 책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진짜 내용은 담지 못한다. 나도 책을 쓰고 있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저자의 자기 검열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활자화된 책은 영원히 남아 나를 속박할 것이란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쓰고 있는 책의 '결혼의 경제학' 챕터에서 내가 진짜 말하고 싶은 내용은 굉장히 신랄하고 잔인하며 냉정한 이야기들이다. "왜 농촌총각들은 사랑마저도 수입해야만 했는가?" "왜 결혼준비를 하는 과정에서의 애인의 모습이 진짜 모습일 가능성이 높은가?" "어떤 유형의 인간이 결혼을 하지 못하고 나이를 먹게 되는가?"하는 것들에 대한 나의 대답은 (나 자신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에게 불편한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쓰는 사람도 결국은 수위를 조절하고, 완곡하게 쓸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러다 보면, 아주 예민한 사람이 아니면, 결국 그 책이 담고 있는 함의를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비장한 각오로 쓰는 저자의 책이 아닌 이상, 책을 통해 솔직한 생각이나 적나라한 현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럴 바에야, 얼마 전에 트위터에서 접한 누구처럼, 책을 읽지 않고 접하는 정보에 대한 사고의 깊이와 폭을 확장하는 훈련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 책을 읽어서 똑똑해진다기 보다는 (원래) 똑똑한 사람들이 (여러 오락중에서) 책을 좋아하는 경향이 강한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첫째, 대부분의 책을 읽는 행동은 그저 오락에 불과하다. 책을 읽는 것이 TV를 보는 것보다 나으려면 정보가 양과 질이 좋아야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세상에 쏟아져 나오는 많은 책들이 부정확한 정보와 쓸데없는 편견만 남발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는 내가 그랬듯이 책이 재밌어서다. TV를 보는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다. 둘째, 책을 읽는 행동이 사고의 확장으로 이어지려면 메모하고 정리하고 리뷰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책을 읽는 건 재밌지만, 이런 작업은 습관이 되기 전까지는 귀찮고 성가신 일이다. 하지만, 일단 해보면, 불필요한 책들은 결국 멀리하게 되면서 내가 얼마나 쓸데 없는 책을 읽었는지 깨닫게 된다. 세째, 책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진짜 내용은 담지 못한다. 나도 책을 쓰고 있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저자의 자기 검열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활자화된 책은 영원히 남아 나를 속박할 것이란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쓰고 있는 책의 '결혼의 경제학' 챕터에서 내가 진짜 말하고 싶은 내용은 굉장히 신랄하고 잔인하며 냉정한 이야기들이다. "왜 농촌총각들은 사랑마저도 수입해야만 했는가?" "왜 결혼준비를 하는 과정에서의 애인의 모습이 진짜 모습일 가능성이 높은가?" "어떤 유형의 인간이 결혼을 하지 못하고 나이를 먹게 되는가?"하는 것들에 대한 나의 대답은 (나 자신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에게 불편한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쓰는 사람도 결국은 수위를 조절하고, 완곡하게 쓸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러다 보면, 아주 예민한 사람이 아니면, 결국 그 책이 담고 있는 함의를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비장한 각오로 쓰는 저자의 책이 아닌 이상, 책을 통해 솔직한 생각이나 적나라한 현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럴 바에야, 얼마 전에 트위터에서 접한 누구처럼, 책을 읽지 않고 접하는 정보에 대한 사고의 깊이와 폭을 확장하는 훈련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 책을 읽어서 똑똑해진다기 보다는 (원래) 똑똑한 사람들이 (여러 오락중에서) 책을 좋아하는 경향이 강한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Wednesday, April 04, 2012
사면초가의 일본
일본은 이상한 나라다. 경제학적으로 디플레이션이라는 특이한 현상으로 경험하면서 20년의 경기부진을 경험하는 나라인데, 그 내부는 이상하리만큼 평온하다. 한류 스타에 열광하는 아줌마들의 모습도 이제 낯설지 않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일본의 자산가격은 계속해서 떨어졌다. 일본 니케이225지수의 고점은 84년 고점을 찍은 후, 지난 30년 가까운 시기 동안 계속 하락하기만 했다. 부동산 역시 마찬가지다. 80년대 후반에 일본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주가 상승이나 부동산 가격은 상승할 수도 있다는 걸 실감하기가 어렵다. 일본의 10년 국채 금리는 1%도 되지 않고, 엔화 환율 역시 지난 20년 동안 떨어지기만 했다. 좀 넓게 보면, 일본 엔화는 지난 40년 동안 계속 강세로 진행되었다. 추세의 반대로 포지션을 가는 것이 일본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추세라기 보다는 현상에 가까운 것이 일본과 관련된 자산가격의 움직임이다.
경제학에서 한 나라의 통화의 가치는 그 나라의 경제의 생산성, 산출물, 물가, 경상수지 등 거의 모든 것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경제의 펀더멘탈이 좋은 나라의 통화는 강세를 띤다. 다만, 그것이 (명목통화가 아니라) 실질통화의 가치이기 때문에 잘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는 지난 20년 동안 디플레이션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지속적으로 경제가 위축되는 경제의 통화가 꾸준히 강세로 가는 것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만약 엔화가 강세로 가지 않았다면, 일본의 겪고 있는 디플레이션의 고통은 훨씬 끔찍했을 것이란 사실이다. 일본의 구매력은 엔화강세로 보충되었고, 일본정부의 국채발행은 대부분 국내에서 소화되었다. 높은 정부 부채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재정위기를 겪고 있지 않는 이유다. 크루그만이 지적한 것처럼, 정부부채가 많은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자국 통화로 펀딩을 할 수 있는지 여부가 훨씬 중요한 것인데, 일본은 그런 면에서는 성공하고 있다. 재정정책은 일본이 디플레이션에서 겪을 수 있는 고통을 줄여주었다. 낮은 조달금리로 정부의 부담은 크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가격(물가)은 계속 하락하고 경제는 성장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부 부채는 늘었어도 가계부채는 늘지 않아서, 민간의 고통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튼튼한 제조업 배경을 갖고 있는 일본 국민들의 고용은 큰 타격이 없었다.
언제까지 계속될 것 같은 이러한 상황은 조금씩 균열이 오고 있다. 우선, 엄청한 통화가치의 절상을 높은 생산성으로 극복하던 일본 기업들의 상황이 거의 한계치에 달하고 있다.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독일은 물론이고 이제는 현대나 기아차의 추격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의 회생도 부담이다. 둘째, 그 동안 강한 통화를 그나마 합리화하던 근거인 무역수지의 흑자가 점차 위협받고 있다. 비용삭감과 생산성 증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제 일본 자동차와 일본 전자제품은 점점 더 인기가 없다. 최강이라는 모바일 산업의 경쟁력도 국내 수요에만 집중하던 일본기업들이 애플과 페이스북과 구글의 공세에 시달리면서 거의 경쟁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약한 통화에 대한 유혹은 점점 더 커진다. 하지만, 엔화 약세가 가능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 조건이 충족되기도 전에 일본 경제는 너무 고통스러울 것이고,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은 결단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이론적으로 약한 통화를 유발하는 것은 강한 통화를 방어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이런 일이 생겼을 때, 한국 기업들에게는 어떤 일이 생길까. 과연 지금처럼 일본 기업에게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난 10년 간의 자료를 보니, 삼성전자는 환율에 대한 민감도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보자면, 현대차가 삼성전자보다는 환율에 민감하지만, 수익에 미치는 영향은 약간의 시차를 갖고 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일본(국민들)도 고통스럽겠지만, 한국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경제학에서 한 나라의 통화의 가치는 그 나라의 경제의 생산성, 산출물, 물가, 경상수지 등 거의 모든 것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경제의 펀더멘탈이 좋은 나라의 통화는 강세를 띤다. 다만, 그것이 (명목통화가 아니라) 실질통화의 가치이기 때문에 잘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는 지난 20년 동안 디플레이션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지속적으로 경제가 위축되는 경제의 통화가 꾸준히 강세로 가는 것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만약 엔화가 강세로 가지 않았다면, 일본의 겪고 있는 디플레이션의 고통은 훨씬 끔찍했을 것이란 사실이다. 일본의 구매력은 엔화강세로 보충되었고, 일본정부의 국채발행은 대부분 국내에서 소화되었다. 높은 정부 부채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재정위기를 겪고 있지 않는 이유다. 크루그만이 지적한 것처럼, 정부부채가 많은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자국 통화로 펀딩을 할 수 있는지 여부가 훨씬 중요한 것인데, 일본은 그런 면에서는 성공하고 있다. 재정정책은 일본이 디플레이션에서 겪을 수 있는 고통을 줄여주었다. 낮은 조달금리로 정부의 부담은 크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가격(물가)은 계속 하락하고 경제는 성장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부 부채는 늘었어도 가계부채는 늘지 않아서, 민간의 고통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튼튼한 제조업 배경을 갖고 있는 일본 국민들의 고용은 큰 타격이 없었다.
언제까지 계속될 것 같은 이러한 상황은 조금씩 균열이 오고 있다. 우선, 엄청한 통화가치의 절상을 높은 생산성으로 극복하던 일본 기업들의 상황이 거의 한계치에 달하고 있다.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독일은 물론이고 이제는 현대나 기아차의 추격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의 회생도 부담이다. 둘째, 그 동안 강한 통화를 그나마 합리화하던 근거인 무역수지의 흑자가 점차 위협받고 있다. 비용삭감과 생산성 증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제 일본 자동차와 일본 전자제품은 점점 더 인기가 없다. 최강이라는 모바일 산업의 경쟁력도 국내 수요에만 집중하던 일본기업들이 애플과 페이스북과 구글의 공세에 시달리면서 거의 경쟁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약한 통화에 대한 유혹은 점점 더 커진다. 하지만, 엔화 약세가 가능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 조건이 충족되기도 전에 일본 경제는 너무 고통스러울 것이고,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은 결단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이론적으로 약한 통화를 유발하는 것은 강한 통화를 방어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이런 일이 생겼을 때, 한국 기업들에게는 어떤 일이 생길까. 과연 지금처럼 일본 기업에게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난 10년 간의 자료를 보니, 삼성전자는 환율에 대한 민감도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보자면, 현대차가 삼성전자보다는 환율에 민감하지만, 수익에 미치는 영향은 약간의 시차를 갖고 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일본(국민들)도 고통스럽겠지만, 한국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Sunday, April 01, 2012
통일의 경제학 4
독일의 통일과정을 보면 재밌는 점이 있다. 갑작스러운 통일은 동독과 서독의 후생을 모두 떨어뜨렸다. 동독의 임금은 생산성보다 높게 유지되었고, 서독의 기업들은 높은 임금이 부담스러워 동독으로 가지 않았다. 마침, 체코와 슬로바키아와 폴란드 같은 나라들이 EU 가입으로 매력이 커지면서 동독은 매력적인 생산기지 후보에서 제외되었다. 만약, 서독과 동독이 통일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경이 개방되고 자유로운 무역이 이루어졌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서독 기업들은 동독으로 싼 노동력을 찾아 움직였을 것이고, 결국 양국의 후생은 모두 증가했을 것이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대신 서독 주민들은 세금으로 동독 주민들의 생활 수준을 보상해야 했다. 통일 후 약 10년 동안 전체 독일 소득중 4%가 그러한 세금지출로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재밌게도 독일이 통일의 수렁에서 벗어난 것은 유로화의 가치가 하락하면서부터였다. 독일은 낮은 유로화 가치의 절대적인 수혜자였다. 최근 유럽의 재정위기에도 독일이 유로화 체제를 수호하는 데 적극적인 이유다.
만약,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경협이 예정대로 잘 진행되었더라면, 남한과 북한은 모두 그러한 경제협력의 이익을 취할 수 있었다. 남한은 싼 노동력의 잇점을 누렸을 것이고, 북한은 교역을 통해 후생의 증가를 맛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4년 동안 자유무역의 편익은 양국간에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다. 개성공단은 위축되었고, 추가적인 경제협력 계획은 하나도 추진되지 못했다. 대신, 양국간의 경제적 수준의 격차는 더욱 확대되었다. 그런 와중에 김정일이 사망했다. 일반적으로, 경제적 번영은 민주주의의에 대한 수요를 가져온다. 민주주의란 일종의 사치재(명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재자가 경제개발에 소극적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남북한처럼 경제규모의 격차가 지나칠 정도로 벌어지면, 결국 북한 정권의 정치적 입지는 어쩔 수 없이 위축된다. 결국, 북한 체제는 곧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런 결단의 순간이 위기이다. 위기는 두 가지 방향에서 찾아올 것이다. 첫째, 남한 보수주의자들의 환상이다. 자유 무역이 남북한 모두의 경제적 편익을 증가시킬 것임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북한 정권을 더욱 강화할 것이란 편견은 남북관계를 교착시킬 수 있다. 교착되면 교착될 수록 미래의 위기(북한 붕괴)의 가능성이 올라간다. 둘째는 북한 주민들의 환상이다. 북한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교역을 통한 후생의 개선보다 통일을 통해 남한 주민과 동일한 수준의 소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란 환상에 사로잡힐 수 있다. 이러한 생각과 믿음이 북한의 붕괴와 통일이라는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건 참으로 역설적이다.
지난 4년 동안 오바마의 대북 정책은 실망적이었다. 내부적으로는 의료보험개혁과 금융개혁이란 큰 이슈 때문에, 그리고 당사자인 이명박 정부가 아무런 대북 정책을 펴지 않으면서, 미국은 중국이 남북관계에 일정한 역할을 하기 원하는 것 이외에는 사실상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역할은 한반도에서 크게 위축되었다. 아마도 변화는 한국의 다음 정권과 (당선 가능성이 큰) 오바마 간의 조율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그 변화는 과연 바람직한 것일 수 있을까? 과연 죽은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증오을 극복하고, 실리를 위한 대북 정책은 가능해질까?
만약,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경협이 예정대로 잘 진행되었더라면, 남한과 북한은 모두 그러한 경제협력의 이익을 취할 수 있었다. 남한은 싼 노동력의 잇점을 누렸을 것이고, 북한은 교역을 통해 후생의 증가를 맛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4년 동안 자유무역의 편익은 양국간에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다. 개성공단은 위축되었고, 추가적인 경제협력 계획은 하나도 추진되지 못했다. 대신, 양국간의 경제적 수준의 격차는 더욱 확대되었다. 그런 와중에 김정일이 사망했다. 일반적으로, 경제적 번영은 민주주의의에 대한 수요를 가져온다. 민주주의란 일종의 사치재(명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재자가 경제개발에 소극적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남북한처럼 경제규모의 격차가 지나칠 정도로 벌어지면, 결국 북한 정권의 정치적 입지는 어쩔 수 없이 위축된다. 결국, 북한 체제는 곧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런 결단의 순간이 위기이다. 위기는 두 가지 방향에서 찾아올 것이다. 첫째, 남한 보수주의자들의 환상이다. 자유 무역이 남북한 모두의 경제적 편익을 증가시킬 것임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북한 정권을 더욱 강화할 것이란 편견은 남북관계를 교착시킬 수 있다. 교착되면 교착될 수록 미래의 위기(북한 붕괴)의 가능성이 올라간다. 둘째는 북한 주민들의 환상이다. 북한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교역을 통한 후생의 개선보다 통일을 통해 남한 주민과 동일한 수준의 소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란 환상에 사로잡힐 수 있다. 이러한 생각과 믿음이 북한의 붕괴와 통일이라는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건 참으로 역설적이다.
지난 4년 동안 오바마의 대북 정책은 실망적이었다. 내부적으로는 의료보험개혁과 금융개혁이란 큰 이슈 때문에, 그리고 당사자인 이명박 정부가 아무런 대북 정책을 펴지 않으면서, 미국은 중국이 남북관계에 일정한 역할을 하기 원하는 것 이외에는 사실상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역할은 한반도에서 크게 위축되었다. 아마도 변화는 한국의 다음 정권과 (당선 가능성이 큰) 오바마 간의 조율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그 변화는 과연 바람직한 것일 수 있을까? 과연 죽은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증오을 극복하고, 실리를 위한 대북 정책은 가능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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