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은 상당히 기대에 차서 시작했는데, 여러가지 안 좋은 일들이 많다. 그래도,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버티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책을 내기로 하고, 출판사와의 계약서에 사인했다. 책을 쓰겠다는 생각은 수 년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기획자의 접근방식이 맘에 들어서 기분 좋게 응했는데, 막상 사인을 하고 나니, 내가 2014년까지는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출판을 하고 나면, 어쩔 수 없이, 신원이 드러날 것이고, 이 블로그의 성격도 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 부동산 시장이 바닥을 쳤다는 말은 할 수 있어도, 애플이 좋아 보인다라는 말은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책을 내겠다고 하니, 말리는 사람도 있고, 격려하는 사람도 있었다. 말리는 사람이나 격려하는 사람이나 전부 선의에 의해서 하는 말이니 잘 세겨 들었다. 그래도, 어쨌든 계약을 했으니, 원고는 5월 말까지 끝내야 하고, 그러면 출판은 7-8월을 전후로 이루어진다. 블로그에 있는 내용을 더욱 확장하고 깊게 하는 작업도 해야 하고, 블로그에 없는 내용도 새로 써야 한다, 고 생각하다 보니, 게다가 이런 저런 개인적인 사정이 겹쳐, 생각(과 걱정)이 머리를 떠나지 않고, 결국 오후쯤 되니 편두통의 폭풍이 몰아쳐온다. 이틀째다.
책은 세 파트로 나누어서. 1) 경제학적 관점에서 이해해 보는 사회의 구조. 2)그 사회적 구조에서 개인이 추구해야 하는 최선의 전략. 그리고, 3) 미래에 대한 나의 예측으로 구성된다. 복잡한 구성일지도 모르지만, 결국 다음 세 가지를 보여주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첫째, 인간은 아주 철학적이거나 아주 전략적일 필요가 있는데, 아주 전략적인 것이 아주 철학적일 수도 있다. 둘째, 더 나은 사회를 만드려는 개인들의 연대가,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개인의 노력과 배치되지 않으며, 배치된다고 주장하는 이념이나 주장은 엉터리다. 공지영이 샤넬 백을 들고, 박영선이 자식을 외국인 학교에 보내는 것을 백안시할 필요는 없다. 개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한, 우리는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누릴 자유가 있다. 세째, 미시적 사안에 대한 합리적 분석이 가능하면, 거시적 사안에 대해서 예상해 볼 능력을 갖게 된다.
각 파트는 세 개의 이슈로 구성. 제목은 가제는 있지만, 아직 미정이라고 하는 것이 옳겠다. 목표는 높은 판매부수가 아니라, 책 값 보다는 훨씬 가치있는 내용을 담는 것이다. 굿럭.
Tuesday, February 28, 2012
Friday, February 24, 2012
한수진, 햇살이 주는 슬픔
"지금부터 연주할 브람스의 소나타 1번과 바하의 소나타 1번에 대해서 나누고 싶습니다. 이 두 곡은 비슷한 점이 있어요. 두 곡 모두 작곡자인 브람스와 바흐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픔에 사로 잡혀 있을 때, 이 곳을 썼습니다. 브람스는 아들처럼 사랑했던 슈만의 막내아들을 잃고, 바하는 부인인 바바라를 잃었습니다. 브람스의 소나타는 G major이고 바흐의 소나타는 G minor입니다. 보통 슬픈 감정을 표현할 때는 minor 코드를 쓰잖아요. 그런데 브람스는 major 코드를 썼습니다. 바하가 직접적인 슬픔을 표현하려고 했고, 그러한 감정이 곡에 드러나는 반면, 브람스의 슬픔은 좀 다른 식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최근에 이 곡과 관련된 두 곡의 가곡이 발견되었습니다. 첫 번째 리드의 내용은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추억이 많을수록, 시간이 흘러 돌아보면 더 큰 아픔이 된다"입니다. 두 번째 리드의 내용은 "이슬을 머금은 잔디는 더욱 선명하고 푸르러진다. 그 위로 떠오르는 햇살(sunshine)은 우리 슬픔을 더욱 깊고 진하게 한다"입니다. 저는 그 션샤인이 브람스의 major 코드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저와 같이 그 햇살을 같이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첫번째 연주가 끝나고 나서,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이, 다음 두 곡의 소개를 하는데, 연주를 듣기도 전에 울 뻔 했다. 마침 아침에 삼촌을 병원에 모시고 갔다왔다. 나와 열 살 차이. 내가 중학생과 고등학생이었을 때 우리집에서 대학을 다닌 삼촌은 내게는 영웅이자 롤 모델이었으며 벤치마크이자 후원자였다. 그가 지금 많이 아프다. 새벽 3시부터 깨어 잠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오후가 되자 피곤이 몰려 왔다. 저녁 약속을 캔슬하고 간 공연. 바하의 무반주 소나타를 듣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어 간 공연에 젊은 연주자는 너무 편안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눈부신 햇살이 인간에게 주는 슬픔에 관해 이야기한다. 맨 앞 자리에 앉아서 듣는 그 목소리가 마치 음악같다.
브람스와 바하의 슬픔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이다. 그런 슬픔을 뒤로 하고, 그들도 역시 죽었다. 우리는 모두 죽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부재에서 슬픔을 느끼는 이유는 사랑하는 그들이 우리보다 먼저 죽었기 때문이다. 많은 종교가 우리가 죽으면 그 어딘가에서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가르치지만, 죽었다 살아온 사람이 없으니 주장만 난무할 뿐 확인할 길이 없다. 우리가 지금과 똑같은 형태로 그들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은 천국도 아니고, 다음 생도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지금과 같은 형태로 만날 수 없거나, 만나더라도 온전히 기억할 수 없을 것이다. 죽음을 의식하는 게 아니라, 삶에 집중하며 사는 것이 인간이 자신의 생을 살아내는 최선의 방법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뿐 아니라, 햇살이 반짝이는 순간에도 죽음은 우리에게 깊은 슬픔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 슬픔은 훨씬 더 강렬하고 손에 잡힐 듯 했으며, 진한 눈물을 남겼던 기억이 내게도 있다. 그런 슬픔이 찾아올 때까지 삶에 더 집중하는 것, 쉽지 않는 일이다. 마치 존재에 관한 형용모순같다.
첫번째 연주가 끝나고 나서,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이, 다음 두 곡의 소개를 하는데, 연주를 듣기도 전에 울 뻔 했다. 마침 아침에 삼촌을 병원에 모시고 갔다왔다. 나와 열 살 차이. 내가 중학생과 고등학생이었을 때 우리집에서 대학을 다닌 삼촌은 내게는 영웅이자 롤 모델이었으며 벤치마크이자 후원자였다. 그가 지금 많이 아프다. 새벽 3시부터 깨어 잠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오후가 되자 피곤이 몰려 왔다. 저녁 약속을 캔슬하고 간 공연. 바하의 무반주 소나타를 듣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어 간 공연에 젊은 연주자는 너무 편안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눈부신 햇살이 인간에게 주는 슬픔에 관해 이야기한다. 맨 앞 자리에 앉아서 듣는 그 목소리가 마치 음악같다.
브람스와 바하의 슬픔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이다. 그런 슬픔을 뒤로 하고, 그들도 역시 죽었다. 우리는 모두 죽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부재에서 슬픔을 느끼는 이유는 사랑하는 그들이 우리보다 먼저 죽었기 때문이다. 많은 종교가 우리가 죽으면 그 어딘가에서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가르치지만, 죽었다 살아온 사람이 없으니 주장만 난무할 뿐 확인할 길이 없다. 우리가 지금과 똑같은 형태로 그들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은 천국도 아니고, 다음 생도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지금과 같은 형태로 만날 수 없거나, 만나더라도 온전히 기억할 수 없을 것이다. 죽음을 의식하는 게 아니라, 삶에 집중하며 사는 것이 인간이 자신의 생을 살아내는 최선의 방법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뿐 아니라, 햇살이 반짝이는 순간에도 죽음은 우리에게 깊은 슬픔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 슬픔은 훨씬 더 강렬하고 손에 잡힐 듯 했으며, 진한 눈물을 남겼던 기억이 내게도 있다. 그런 슬픔이 찾아올 때까지 삶에 더 집중하는 것, 쉽지 않는 일이다. 마치 존재에 관한 형용모순같다.
Wednesday, February 22, 2012
정치인의 이미지
박원순/ 아들의 병역비리 제기는 비리를 저지른 것이 없는 정치인의 입장에서 (내심) 분노할 일일까 환영할 일일까? 당신은 뇌물을 받았다, 라는 주장과는 달리, 당신의 아들은 불법으로 병역을 회피했다, 라는 주장은 무고를 입증하기가 훨씬 쉽다. 병역을 회피한 일이 없었다면, 박원순의 입장에서 강용석의 문제제기는 절대 나쁜 재료가 아니다. 나라면 헛된 기대를 강용석에게 갖게 최대한 입증을 미루며 강용석의 문제제기 방식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 후, 공개검증을 받을 것이다. 대신 결과에 대해서는 쿨하게. 강용석은 그것만으로도 정치생명이 간당간당할 것이다.정치인에 대한 검증/ 박원순에 대한 강용석의 문제제기 자체를 비난하기는 어렵다. 굳이 이회창의 아들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박원순은 강용석을 비난하기 보다는 사안의 본질을 해명하는 것이 옳다. BBK건 아들의 병역문제건 정치인의 문제를 거론할 권리는 지금보다 더 확장되어야 한다. 강용석의 문제제기가 가짜로 드러나도 박원순은 법적 대응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런 식이라면 정봉주처럼 감옥에 갈 각오가 아니라면, BBK나 정수장학회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민사상으로 책임을 묻되 정치인은 그것마저 신중해야 한다. 작년 11월 샘 브라운백 캔자스 주지사는 자신에 대한 허쉬 트윗을 올린 고등학생에게 사과를 요구했다가 나빠진 여론 때문에 도리어 사과를 해야 했다. 트윗이 가짜였음에도 불구하고, 주지사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게 더 문제라는 것이다.
안철수/ 안철수는 출마하지 않을 것이고, 안철수의 표의 대부분은 문재인에게 갈 것이다. 안철수는 문재인의 지지율이 조금만 올라도 출마할 수 없을 것이다. 민주당이 자신을 후보로 선택하지 않는 이상, 경선할 의지와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는데, 그는 작은 이명박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황상 그는 이명박의 마지막 카드였고,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면 기뻐할 것도 이명박이다.
문재인/ 부산 저축은행 사태와 한미 FTA에 대한 문재인의 접근방법은 잘못됐다. 당장 표가 아쉽더라도 바른 길로 가는 것이 옳다. 옳은 길이 대개 전략적으로도 훌륭한 길이라는 걸 깨달아야, 이상과 현실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 현실적으로 한미 FTA를 하지 않을 방법은 별로 없다. 한미 FTA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래서 결국 할 것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한미 FTA에 반대하는 자들이 택할 수 있는 대안은 어차피 문재인 뿐이다.
보수의 미래/ 이번 총선과 대선과 관련해서, 진보가 선택해야 하는 전략의 큰 그림은 오버하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진보의 오버는 곧 그만큼의 반대의 힘으로 돌아온다. 반면, 보수가 선택해야 하는 전략은 아름답게 지는 것이다. 홍정욱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전여옥과 강용석이 박근혜를 공격하는 걸 보면서 느끼는 게 없는 보수에게는 미래가 없다. 대선 이후에 비로서 자신이 좋은 보수라고 행세하려면 이미 늦다. 자신의 철학의 깊이, 자신의 시각의 광대함을 보이려면 지금부터 행동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홍정욱의 행보는 정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전략을 취할 수 없는 건, 누구나 미래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이 도래할 줄 알았더라면, 오세훈이 주민투표를 했겠는가? 나경원은 그런 식의 네가티브 선거 전략을 썼겠는가? 미래에 대해서 확신하지 않으면서도 좋은 전략을 취하려면, 확고한 가치관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
손학규/ 내가 손학규였다면, 나는 박원순에게 서울시장을 양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야권통합을 이루었지만, 대신 대권후보에서는 완전히 멀어졌다. 그가 박원순에게 서울시장을 양보하지 않았더라면, 서울 시장은 박영선이 되었을 것이다. 박원순이 양보할 수 밖에 없었을테니까. 박영선과 박원순이 모두 출마해서 나경원이 당선되었다면? 그런 일은 생길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학규가 잃을 건 없었다. 제 1 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냈다고 해서 비난하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지만, 손학규는 늘 그랬듯이, 시류에 흘러다닐 뿐이고, 한번도 선도적인 의사결정을 한 적이 없다. 주류 정치인으로서의 미래는 나쁘지 않겠지만, 그런 식으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적어도 하나는 있어야 한다. 아주 전략적이거나, 아주 철학적이거나. 이건 정치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긴 아닐 것이다.
분위기/ 에피소드. 동네 가게에 바가지를 써서 기분 나쁘다고 트윗을 했더니, 재벌이 더 문제인데 왜 그런 사소한 일에 화를 내냐고 한다. 심지어 독과점이 더 문제라고 말한다. 동네 깡패에게 맞아서 아프다고 하면, 조폭이 진짜 문제인데 왜 동네 양아치에게 화를 내냐고 하는 식이다. 그런 식이라면 모든 개인적 사회적 문제는 다 재벌 때문이고, 재벌 문제나 독과점 문제를 빼면 다 사소해진다. 황당한 반응이지만, 그래도 알 수 있는 건, 사회적 분위기가 그만큼 소득이나 자산의 불평등 그리고 경제정의에 대해서 예민하고, 그 이슈들에 대해서 민감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한 정서의 밑바탕에는 이번 정권에 대한 실망감이 깔려 있다. 사랑하던 착한 남자를 버리고, 돈 많은 남자를 택했더니 돈도 없고 성격도 고약했다는 자기책망.
법원/ 정봉주의 유죄판결은 아쉬움이 있다. 법원은 정치인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 설령 명예훼손의 가능성이 있더라도 더 관대해져야 한다. 하지만, 법원의 유죄결정이 아주 황당하며 법적 근거가 없는 것만은 아니다. 정봉주 유죄판결에 대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최근 수 년간 법원이 한국민주주의의 보루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논쟁의 여지가 없는 황당한 기소, 예를 들어서, 미네르바 사건이나 PD수첩 사건 그리고 정연주 KBS 사장 사건은 모두 예상대로 무죄가 되었다. 다만, 많은 정치적 사건은 유무죄를 따질 때 법원의 가치판단이 개입될 여지를 가진다. 그런 여지를 최대한으로 줄이고, 판단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은 역시 꾸준한 시민의 감시 뿐이다. 쇼셜 미디어는 그런 면에서 유용한데, 최근의 정치적 긴장이 한편으로 소셜 미디어의 활성화를 낳았다. 재밌는 현상이지만, 비단 한국에서만의 현상은 아니다.
정치인의 이미지/ 정치인의 이미지에는 양면성이 있다. 좋은 이미지라고 좋아할 일만은 아니고, 나쁜 이미지라고 해서 이점이 없는 건 아니다. 도덕성을 무기로 자신을 포장하면 약간의 흠집이 사실로 드러나도 추락하기 쉽다. 정운찬과 안철수가 내세운 이미지는 그래서 위험하다. 정운찬은 신정아가 한 몇 마디 말에 의해 추락했다. 그녀의 말은 사실상 검증할 수 없었고, 사실이었다고 해도 대부분의 정치인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내용이었다. 안철수의 자기희생적이고 금욕적인 이미지도 그래서 위험하다. 그 역시 현실세계에 발 붙이고 산 기업의 경영자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명박의 이미지는 애초부터 도덕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추문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사람들이 외면한 듯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의 배경을 감안하면서 사람들은 이명박에 대한 경제지도자의 이미지를 형성했다. 재밌는 것은 대중이 노무현에 대해 갖는 이미지가 도덕성도 아니고 능력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노무현의 모든 성취와 업적과 오류와 실책은 모두 인간적인 냄새가 강하게 남아있다. 손녀를 뒤에 태우고 자전거를 타고 논둑을 지나는 모습에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정치인은 많지 않다.
시대착오적이고 반지성적인
경향신문 오유진의 보도(광화문광장에 벼농사 짓나)에 의하면, 세종대왕 동상 뒤쪽에 3백평 규모의 논을 만드는 걸 검토중이라고 한다. 기사의 톤으로 보아, 가능성이 상당히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농업관련 시민단체들의 선의는 알겠지만, 광장을 시민들에게 빼앗아 가려는 시도는 그게 누구든 그만 두는 게 좋다. 서울 도심의 꼭 필요한 도로를 광장으로 만든 것은 시민들에게 광장을 돌려준다는 취지로 합리화될 수 있었다. 하지만, 농업이 중요하다는 일부 시민단체들의 편견(모든 주장은 다 자신들의 편견이다)을 강제하기 위해서 서울시 한 복판에 농사를 짓겠다는 발상은 어떤 식으로든 합리화하기 어렵다.
농업의 중요함을 강변하기 위해서 서울 도심 한복판에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식의 논리라면, 광장은 국방의 중요함, IT 산업의 중요함, 교육의 중요함, 사랑의 중요함, 종교의 중요함을 강변하는 자들의 선전물로 넘쳐날 것이다. 농업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농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다른 것들도 중요하다. 제발 당신들의 주장을 시민들에게 강요하지 말라. 그럴 돈이 있으면, 흉물스러운 세종대왕 동상이나 빨리 치우는 게 옳다.
농업의 중요함을 강변하기 위해서 서울 도심 한복판에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식의 논리라면, 광장은 국방의 중요함, IT 산업의 중요함, 교육의 중요함, 사랑의 중요함, 종교의 중요함을 강변하는 자들의 선전물로 넘쳐날 것이다. 농업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농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다른 것들도 중요하다. 제발 당신들의 주장을 시민들에게 강요하지 말라. 그럴 돈이 있으면, 흉물스러운 세종대왕 동상이나 빨리 치우는 게 옳다.
Monday, February 20, 2012
스타의 부동산
역술인들이 상담을 해줄 때,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당신은 주식 투자는 안 어울리고, 부동산 투자를 해야 돈을 번다. 정 주식을 하려면 장기 투자를 해야 한다"
이런 종류의 조언은 전혀 해가 없기 때문에, 어떤 운명을 타고 난 사람에게도 나쁜 조언은 아니다. 부동산이 주식보다 수익률이 좋아서가 아니라(많은 국가에서 부동산의 수익률은 채권 보다도 낮은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좋은 주식을 고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보유하고 그 등락을 지켜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유명 연예인들과 프로 선수들이 갖고 있는 빌딩들에 관한 기사를 보니, 높은 수익을 올리는 대부분이 2005년 이전에 구입한 것이다. 빌딩을 구매할 때도 역시 중요한 것은 임대 수익률. 지역별로 3%-6%로 편차가 크다. 미안한 얘기지만, 김연아 빌딩은 앞으로도 별로 전망이 밝지 않아 보인다.
Friday, February 17, 2012
충고하는 법
보스가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킬 때, 그를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건, "너 바보 아니야?"라고 지적하는 것과 같다. 그런 설득을 이성과 논리로 정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 그런 경우에는, 일단 보스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르는 것처럼 행동하는 게 좋다. 대신 그 과정에서 그 일의 비용은 크고 편익을 작음을 보여준다. 그 정보를 접한 대개의 보스는 알아서 접게 된다. 그리고, 그런 결정을 한 자신에게(즉, 자신의 명석함에) 만족해 한다.물론 이런 일이 비단 상사와 직원 사이에만 일어날 리 없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바보같다고 지적받는 걸 싫어한다. 아니, 대부분의 인간은 지적 받고 있다는 것과 "넌 바보다"라는 힐난을 동일시한다. 그런 사고를 극복하려면, 딱 두 가지 방법 밖에 없다. 타고난 현명함을 갖고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1) 자신이 위기에 처해 있거나, (2) 돈이 걸려 있는 경우다. 남편의 어리석음을 충고해야 하는 부인, 자식의 아둔함을 지적해야 하는 부모, 부모의 실수를 바로 잡아야 하는 자식 역시 마찬가지다. 편협한 인간의 감정적 대응은 남녀노소와 근원친소를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그래서, 왕에게 직언하는 것은 용의 턱 밑 비늘을 거꾸로 거스르는 것(逆鱗)과 같다고 했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말하는 방식이 잘못되면 효과가 없다. 상하관계라면 내가 다치고(죽을 수도 있다), 수평관계라면 감정이 상한다(평생 못 보게 되기도 한다). 말은 쉽지만 나 역시 잘 못하는 일이기도 하다.
Thursday, February 16, 2012
조정을 대할 사람들의 자세
어제 나온 미국 지표 세 가지. 1월 산업생산은 예상을 하회하지만 세부를 보면 나쁘지 않고, 2월 뉴욕 제조업 지수는 예상을 상회하지만 세부를 보면 약하며, 2월 NAHB 주택지수는 아주 좋다.
1) 1월 산업생산: 제조업 생산은 미국의 총산업 생산에서 85%를 차지하며, 제조업은 미국 GDP의 40% 정도를 설명한다. 전월대비 0%(전년동월비 3.4%)로 콘선세스인 +0.7%를 하회하고 있지만, 제조업 생산은 0.7%m-m로 나쁘지 않고 자동차생산은 +6.8%로 아주 좋다. 날씨가 너무 따뜻했었기 때문에 유틸리티 생산이 -2.5%나 감소한 영향이 컸다. 11월과 12월 산업생산이 11월은 -0.2%에서 0%로, 12월은 +0.9%에서 +1.3%로 상향조정되면서 11월, 12월, 1월은 합하면 전체적으로으로는 크게 예상을 하회했다고 보기 어렵다. 가동률은 경기침체전 수준인 78.5에 근접한 77%까지 상승. 제조업 생산이 최근 미국 경기회복을 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2) 2월 뉴욕 제조업 지수가 +19.5로 예상치인 14.6보다 상회. 2010년 6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상승해서 뉴욕주의 견조한 제조업 생산 수준을 보여주는데, 세부 항목을 보면 선행지표인 신규주문이 13.7에서 9.7로 하락해 그림이 좋진 않다.
3) 2월 NAHB 부동산 시장 지수는 29로 1월의 25보다 크게 개선. 5년 내 최고수준이며 5개월 연속 상승한 것이며 2002년 이후 최고수준의 회복 속도다. 주택시장이 바닥을 쳤다는 내 생각과는 달리, 주택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시장이 여전히 팽배하지만, 선행지표의 개선이 되고 있어서, 실제 실물 부동산 지표의 개선도 임박했음을 시사한다.
S&P500은 기술적인 부담 레벨인 1350을 찍었지만, 종가기준으로는 안착실패. 2012년 들어서, 22일은 양봉, 10일은 음봉을 기록. 선물기준으로 2012년 1월 3일의 시가는 1274, 고가는 1358, 종가로 고가는 1342. 현재 가격은 1335. 레벨 조정이든 기간 조정이든 쉬었다 가야할 타이밍일 듯. 문제는 주식 롱을 간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인데, 1) 일찍 롱 포지션을 들어간 사람은 이익을 실현하고 조정을 즐기면 될 것이고, 2) 늦게 롱을 들어간 사람은 조정이 손절하지 않을 정도이길 기도해야 할 것이고, 3) 롱 포지션을 못 담은 사람은 이번 기회에 다시 담으면 되겠다.
경험상, 3)의 상황인 사람은 조정이 와도 담지 못한다.
1) 1월 산업생산: 제조업 생산은 미국의 총산업 생산에서 85%를 차지하며, 제조업은 미국 GDP의 40% 정도를 설명한다. 전월대비 0%(전년동월비 3.4%)로 콘선세스인 +0.7%를 하회하고 있지만, 제조업 생산은 0.7%m-m로 나쁘지 않고 자동차생산은 +6.8%로 아주 좋다. 날씨가 너무 따뜻했었기 때문에 유틸리티 생산이 -2.5%나 감소한 영향이 컸다. 11월과 12월 산업생산이 11월은 -0.2%에서 0%로, 12월은 +0.9%에서 +1.3%로 상향조정되면서 11월, 12월, 1월은 합하면 전체적으로으로는 크게 예상을 하회했다고 보기 어렵다. 가동률은 경기침체전 수준인 78.5에 근접한 77%까지 상승. 제조업 생산이 최근 미국 경기회복을 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2) 2월 뉴욕 제조업 지수가 +19.5로 예상치인 14.6보다 상회. 2010년 6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상승해서 뉴욕주의 견조한 제조업 생산 수준을 보여주는데, 세부 항목을 보면 선행지표인 신규주문이 13.7에서 9.7로 하락해 그림이 좋진 않다.
3) 2월 NAHB 부동산 시장 지수는 29로 1월의 25보다 크게 개선. 5년 내 최고수준이며 5개월 연속 상승한 것이며 2002년 이후 최고수준의 회복 속도다. 주택시장이 바닥을 쳤다는 내 생각과는 달리, 주택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시장이 여전히 팽배하지만, 선행지표의 개선이 되고 있어서, 실제 실물 부동산 지표의 개선도 임박했음을 시사한다.
S&P500은 기술적인 부담 레벨인 1350을 찍었지만, 종가기준으로는 안착실패. 2012년 들어서, 22일은 양봉, 10일은 음봉을 기록. 선물기준으로 2012년 1월 3일의 시가는 1274, 고가는 1358, 종가로 고가는 1342. 현재 가격은 1335. 레벨 조정이든 기간 조정이든 쉬었다 가야할 타이밍일 듯. 문제는 주식 롱을 간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인데, 1) 일찍 롱 포지션을 들어간 사람은 이익을 실현하고 조정을 즐기면 될 것이고, 2) 늦게 롱을 들어간 사람은 조정이 손절하지 않을 정도이길 기도해야 할 것이고, 3) 롱 포지션을 못 담은 사람은 이번 기회에 다시 담으면 되겠다.경험상, 3)의 상황인 사람은 조정이 와도 담지 못한다.
Wednesday, February 15, 2012
The Jeremy Lin Show vs. Toronto Raptors
하버드 경제학과 GPA가 3.1이라는 이 친구. 2월 14일 경기에서는 5개나 턴오버를 당하더니 막판 5분에 10점 가량 뒤지던 경기를 순식간에 뒤집어 버렸다. 특히, 마지막 끝내기 3점 슛을 쏘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건지.
Tuesday, February 14, 2012
애플 vs. 아마존
작년 12월 21일에 쓴 "애플의 미래". 그 글의 생각대로라면, 애플을 사고 아마존은 매도하는 전략이 옳다. 그 글을 쓸 당시에 애플은 380불이었고 아마존은 180불 정도였다. 그 동안 애플 주식이 많이 오른 건 알고 있었지만, 아마존의 주가는 찾아 볼 생각을 하지 못하고, 막연히 애플이 더 올랐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만 있었다. 오늘 회사에서 찾아보니, 2월 14일 현재 애플의 주가는 502불 정도이고 아마존은 191불 정도다. 두 달이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 애플은 32%가 올랐고, 아마존은 6% 정도가 올랐다. 이렇게 된 것은 물론 예상을 뛰어넘은 애플의 4분기 실적이 결정적이었다. (1) 거시경제적 관점에서든, (2) 애플의 실적이라는 미시적 관점에서든, (3) 애플 가격의 상대적 수준에서든 애플은 다른 IT 주식에 비해서 당분간 나쁠 이유가 없어 보인다.트위터에 S&P500을 숏하고, 나스닥을 롱하는 전략이 좋아 보인다고 했었는데, 한달이 지난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향후 2년 간은 나스닥이 S&P500이나 다우를 이길 걸로 본다.
Thursday, February 09, 2012
Halftime in America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공화당 성향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를 싫어하는 민주당 성향의 인사들은 배우나 정치인을 막론하고 보지 못한 것 같다. 정치적, 이념적 편향성이 그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바라보는 인간(혹은 인간성)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출연한 수퍼 볼의 하프 타임 광고. 잘 만들어진 오바마의 대통령 재선 광고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이기 때문에 가슴을 건드리는 효과가 극대화된 느낌이 있다. 오바마는 재선에 성공할 것이고 미국은 다시 전성기를 구가할 것이란 것이란 나의 주장과 잘 어울린다.
Wednesday, February 08, 2012
에너지 기업은 랠리했을까?
월요일에 올렸던 차트 3개에 관해서 오늘 아침, 쥬니어 트레이더인 C군에서 물어봤더니 역시 이해를 못하고 있다. 머리가 좋고 이해력이 빠른 그가 이해를 못한 걸로 봐서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것으로 짐작했으면서도, 차트를 올리면서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본인의 호기심이 충분해서, 스스로 차트를 비교해서 보지 않으면, 그 충분한 설명들이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백지를 꺼내서 한번쯤 미국 주식의 50년의 움직임을 그려보는 정도의 성의가 있어야만, 정답을 봤을 때 호기심이 발동하게 된다. 하지만, 차트를 먼저 봐 버리고 나면, 괜스리 당연히 그런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할 것만 같고, 그런 식이 계속 반복되다 보면, 영원히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고 발전하긴 어려워진다. (금융시장에서 일하면서, 미국 주식의 50년 움직임을 보고 신기해하지 않았다면 그것도 참 신기하다)오늘 드디어 코스피 지수는 2000을 넘었다. 지난 1월 4일 이후, 코스피 지수는 1866에서 2003으로 7% 넘게 올랐다. 굳이 1월 4일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날, "유가와 에너지 기업"이란 글을 썼기 때문이다. 그 글의 결론은 이랬다. "결론적으로, 시장이 프라이싱하고 있는 위기가 생기지 않을 경우 가장 랠리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이미 저평가가 반영되어 있는 에너지 주식일 가능성이 높고, 시장이 의미있는 조정을 받는다면, 이미 상당히 저평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기업의 주가 약세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한 달여간 지수가 7%란 엄청난 랠리를 보인 동안 그럼 과연 에너지 주식들은 랠리했을까?
1. GS는 1월 4일 종가가 53,400원이었다. 오늘(2월 8일) 종가는 71,800원. 34% 올랐다.
2. S-oil(그림)는 1월 4일 종가가 105,000원이었다. 오늘(2월 8일) 종가가 138,000원. 31.4% 올랐다.
3. SK 이노베이션의 1월 4일 종가는 150,500원이었다. 오늘(2월 8일) 종가는 189,000원. 25.5% 올랐다.
함의는 이런 것이다. 큰 그림을 보는 매크로 분석도 중요하지만, 저평가된 것을 찾는 작업은 모든 트레이딩의 기본이다. 틀려도 적게 손실을 보지만, 맞으면 크게 이익을 보기 때문이다. 만약, 1월 4일 이후, 시장이 어떤 이유로(예컨대 유럽문제 때문에) 하락했어도, 에너지 주식의 포지션은 상대적으로 손실은 제약되었을 것이다. 지수를 아웃퍼폼했을 것이라고 장담은 못하지만, 언더퍼폼의 폭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Monday, February 06, 2012
비싼 그림 세개
한국 금융시장에서 1970년 대 이후 미국 주식시장의 움직임을 백지에 그리라고 하면 정확히 그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1%도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1970년 대 이후, 미국 정책금리와 실업률의 관계나 미국 주식시장과 실업률의 관계를 정확히 그릴 수 있는 사람은? 그건 0.1%도 안 될 것이다. 그건 반 세기 동안의 미국경제에 관심을 가져야할 뿐 아니라, 미국 통화정책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주가, 실업률, 그리고 정책금리라는 세 변수야 말로, 금융시장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하다. 지표를 트래킹하는데 능숙하다면, 남들보다 한 분기 정도 지표의 변화를 더 빨리 알아차리는 것은 트레이딩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매크로 투자자가 되려면 훨씬 더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하는데, 나 자신도 그걸 자꾸 잊는다.
(1) 미국의 실업률은 2013년 말까지 빠르게 떨어질 것이다. 7% 밑의 실업률도 결국 보게될 것. 짐 로저스와 빌 그로스는 뻘줌해할 것이고, 버낸키와 크루그만은 그럴 줄 알았다고 몇 년 뒤 말할 것이다. (2) 미국의 주가는 연준이 금리를 인상하기 전까지 랠리할 것이다. 인상을 시작하는 초기에도 급락하진 않을 것이다. 미국의 주가가 다시 하락하는 시기는 실업률이 하락세를 멈추고 다시 오르는 2015년 초일 듯. 하지만 그건 조정이지 붕괴는 아니다. (3) 연준의 금리인상은 세계 금융시장에 큰 변화와 충격을 줄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 두 가지 면에 주목해야 하는데, 하나는 채권시장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이 국내 채권에 투자한 자금의 동향. 또 다른 하나는 금리상승으로 인해 가계부채와 주택시장에 주는 영향.
미국 S&P500과 정책금리
미국 실업률과 통화정책
미국 S&P500과 실업률
(1) 미국의 실업률은 2013년 말까지 빠르게 떨어질 것이다. 7% 밑의 실업률도 결국 보게될 것. 짐 로저스와 빌 그로스는 뻘줌해할 것이고, 버낸키와 크루그만은 그럴 줄 알았다고 몇 년 뒤 말할 것이다. (2) 미국의 주가는 연준이 금리를 인상하기 전까지 랠리할 것이다. 인상을 시작하는 초기에도 급락하진 않을 것이다. 미국의 주가가 다시 하락하는 시기는 실업률이 하락세를 멈추고 다시 오르는 2015년 초일 듯. 하지만 그건 조정이지 붕괴는 아니다. (3) 연준의 금리인상은 세계 금융시장에 큰 변화와 충격을 줄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 두 가지 면에 주목해야 하는데, 하나는 채권시장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이 국내 채권에 투자한 자금의 동향. 또 다른 하나는 금리상승으로 인해 가계부채와 주택시장에 주는 영향.
미국 S&P500과 정책금리
미국 실업률과 통화정책
미국 S&P500과 실업률
Saturday, February 04, 2012
RE:한국의 가계지출구조 변화와 비교
"가계부채문제로 부동산 시장이 무너질 거란 주장이 있지만, 실재로 가계의 지출을 압박하는 건 부채의 이자가 아니라 세금이란 것이다."란 표현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이 많군요. 하지만, 이 문장의 경제적 함의는 "그러니까 세금(과 연금)을 낮추자"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높아진 가계 부채 규모에도 불구하고, 7% 정도인 한국의 소득증가율보다 높은 것은 세금(과 연금)처럼 수령해보지 못하고 떼어가는 조세성 지출이지, 주택관련 지출이 아니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득증가가 계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동안, 부동산 가격의 안정이 지난 수 년간 이루어졌듯이, 향후 수 년간 가능하다면, 가계부채 문제의 소프트 랜딩이 가능할 수 있다, 것이 이 글의 첫번째 정책적 함의입니다.
댓글중에서 Indiz님이 "제아무리 몇 년간 증가율이 높았다 해서 세금-연금 납부가 생활에 가장 큰 압박이라고 느끼는 직장인이 과연 대한민국에 몇이나 있을까요?"라고 지적해주셨는데, 직장인이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통계자료의 분석이 의미가 있는 거겠죠. 예를 들어, 한국은행이 정책 금리를 인상했다고 가정합니다. 과연 정책 금리인상 때문에 본인이 소비 지출을 줄인다고 생각하는 직장인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대부분의 직장인은 한국은행이 어떤 통화정책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살아갑니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면 소비지출은 통화정책경로(즉, 신용경로를) 통해서 감소합니다. 환율이 하락한다고 자신의 소비지출을 늘리는(정확히 말하면 실질소득의 증가로 소비지출을 늘려야겠다고 생각하는) 소비자가 얼마나 있을까요? 하지만, 환율이 하락하면 소비지출은 늘어납니다. (물론 한국의 경우는 소비 증가에도 불구하고 실질성장률이 하락합니다. 10% 환율이 절상되면 대개 0.4% 정도 실질성장률이 하락하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체감하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몇 년간의 증가율이 (소득증가율에 비해서) 높으면 세금-연금 납부는 생활의 압박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저는 세금과 연금 지출을 뺀 가처분 소득으로 봐도 정책적 함의는 거의 같았을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가처분 소득이 아니 조세전소득지출로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세금이 많다는 우파의 주장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현상을 정확히 보는 것이 정책적 함의의 발견을 위해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수 년간 가계부채가 급증한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이자율이 너무 낮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125bp 인상한 지난 2년 여 동안 시장 수익률은 오히려 하락했습니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기간 동안 10년 장기금리의 하락폭은 100bp가 훨씬 넘었습니다. 3년 국고채 수익률도 60bp에 달합니다. 정책금리와 연동해 움직이는 1년 통안채 혹은 그 보다 더 짧은 3개월 CD 금리의 상승폭은 정책금리의 인상 정도에 비하면 매우 미미합니다. 따라서, 중앙은행의 긴축에도 불구하고, 변동금리로 대출을 한 가계의 이자부담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습니다. 1억 정도의 부동산 담보 대출을 받은 경우에도, 이자 부담은 월 30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즉, 담보대출 증가 속도에 비해서 이자 부담 증가 속도는 높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는가? 저는 연준이 금리를 0%까지 인하하고, 양적완화를 하면서 공급한 유동성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신흥시장에 유입되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지난 5년 동안 한국 채권시장에 유입된 해외자금은 이제 전체 한국 채권시장의 17%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에는 3% 남짓하던 수준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놀라운 수치입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비단 한국에만 생긴 게 아닙니다. 거의 모든 신흥시장에는 비슷한 형태의 유동성 유입이 발생했습니다. 만약 이 자금이 빠져 나가면, 저는 한국은행이 설령 금리를 인하하더라도, 시장 수익률의 상승은 막을 수 없을 것이고, 가계의 이자 상환 부담은 훨씬 커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전에도 말한 바 있는데, 저는 무례한 댓글이나 욕설이 들어간 글은 그냥 지워버립니다. 무례한 댓글은 일반적으로 무식하기까지 하기 때문에(사실 무식하지 않으면서 무례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무례하면서 무식한 인간의 글을 보는 건 시간적 감정적 낭비이니까요. 글이 맘에 들지 않으면 다른 좋은 블로그를 찾아가고, 욕을 하고 싶으면 본인 속으로 중얼거리기 바랍니다.
댓글중에서 Indiz님이 "제아무리 몇 년간 증가율이 높았다 해서 세금-연금 납부가 생활에 가장 큰 압박이라고 느끼는 직장인이 과연 대한민국에 몇이나 있을까요?"라고 지적해주셨는데, 직장인이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통계자료의 분석이 의미가 있는 거겠죠. 예를 들어, 한국은행이 정책 금리를 인상했다고 가정합니다. 과연 정책 금리인상 때문에 본인이 소비 지출을 줄인다고 생각하는 직장인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대부분의 직장인은 한국은행이 어떤 통화정책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살아갑니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면 소비지출은 통화정책경로(즉, 신용경로를) 통해서 감소합니다. 환율이 하락한다고 자신의 소비지출을 늘리는(정확히 말하면 실질소득의 증가로 소비지출을 늘려야겠다고 생각하는) 소비자가 얼마나 있을까요? 하지만, 환율이 하락하면 소비지출은 늘어납니다. (물론 한국의 경우는 소비 증가에도 불구하고 실질성장률이 하락합니다. 10% 환율이 절상되면 대개 0.4% 정도 실질성장률이 하락하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체감하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몇 년간의 증가율이 (소득증가율에 비해서) 높으면 세금-연금 납부는 생활의 압박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저는 세금과 연금 지출을 뺀 가처분 소득으로 봐도 정책적 함의는 거의 같았을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가처분 소득이 아니 조세전소득지출로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세금이 많다는 우파의 주장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현상을 정확히 보는 것이 정책적 함의의 발견을 위해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수 년간 가계부채가 급증한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이자율이 너무 낮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125bp 인상한 지난 2년 여 동안 시장 수익률은 오히려 하락했습니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기간 동안 10년 장기금리의 하락폭은 100bp가 훨씬 넘었습니다. 3년 국고채 수익률도 60bp에 달합니다. 정책금리와 연동해 움직이는 1년 통안채 혹은 그 보다 더 짧은 3개월 CD 금리의 상승폭은 정책금리의 인상 정도에 비하면 매우 미미합니다. 따라서, 중앙은행의 긴축에도 불구하고, 변동금리로 대출을 한 가계의 이자부담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습니다. 1억 정도의 부동산 담보 대출을 받은 경우에도, 이자 부담은 월 30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즉, 담보대출 증가 속도에 비해서 이자 부담 증가 속도는 높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는가? 저는 연준이 금리를 0%까지 인하하고, 양적완화를 하면서 공급한 유동성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신흥시장에 유입되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지난 5년 동안 한국 채권시장에 유입된 해외자금은 이제 전체 한국 채권시장의 17%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에는 3% 남짓하던 수준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놀라운 수치입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비단 한국에만 생긴 게 아닙니다. 거의 모든 신흥시장에는 비슷한 형태의 유동성 유입이 발생했습니다. 만약 이 자금이 빠져 나가면, 저는 한국은행이 설령 금리를 인하하더라도, 시장 수익률의 상승은 막을 수 없을 것이고, 가계의 이자 상환 부담은 훨씬 커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전에도 말한 바 있는데, 저는 무례한 댓글이나 욕설이 들어간 글은 그냥 지워버립니다. 무례한 댓글은 일반적으로 무식하기까지 하기 때문에(사실 무식하지 않으면서 무례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무례하면서 무식한 인간의 글을 보는 건 시간적 감정적 낭비이니까요. 글이 맘에 들지 않으면 다른 좋은 블로그를 찾아가고, 욕을 하고 싶으면 본인 속으로 중얼거리기 바랍니다.
Friday, February 03, 2012
한국의 가계지출구조 변화와 비교
골드만 삭스의 한국 이코노미스트 권구훈이 재밌는 통계를 보여준다. 가계대출이 1000조에 달하고, 가계부채문제로 부동산 시장이 무너질 거란 주장이 있지만, 실재로 가계의 지출을 압박하는 건 부채의 이자가 아니라 세금이란 것이다. 통계를 보면, 지난 2000년 이후와, 2008년 이후 가계지출 구조에서 가장 부담이 큰 것, 즉 절대 비중이 높은 것은 식음료비 비출, 주택관련지출, 그리고 교육비 지출의 순이다. 재밌는 건, 왼쪽 그림에서 보듯이, 지출 증가 속도로 봤을 때, 최근 3년간 드라마틱하게 변한 것은 통신비다. 통신비는 4번째 로 빠른 속도로 증가하다가 13개 항목에서 12번째로 추락했다. 가장 많이 추락한 것은 담배와 주류 지출 증기 속도다.
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좀 떨어지긴 했어도, 소득에서 가장 높은 지출 증가 속도가 유지되는 것이 조세지출이며, 주택관련 지출이 올라가긴 했어도, 공포에 짓눌릴 만큼은 아니란 것이다. 즉, 대출의 절대량이 높고 증가속도가 빠른 건 사실이지만, 지난 10년 동안 시장금리가 꾸준히 하락한 것이 이자 부담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이건 정부가 의도했다기 보다, 물가압력이 꾸준히 낮아진 글로벌한 현상의 결과라고 봐야할 것이다.
두 번째 그림은 한국의 지출구조를 일본과 미국의 지출구조와 비교한 것이다. 역시, 한국의 주택관련 지출이 19%로 높긴 하지만, 일본의 22%나 미국의 27%에 비해서는 오히려 낮다. 어느 세대로 봐도, 한국의 주택 관련 지출은 60대 이상을 제외하면 다른 두 나라보다 높지 않다. 재밌는 건, 한국의 교육비 지출이다. 전체로 봐도 14%로 일본의 6%나 미국의 3%보다 압도적으로 높은데, 40대만 높고 보면, 소득의 20%로 다른 두 나라를 압도한다. 일본의 경우는 40대 교육비 지출이 높아지긴 하지만, 한국 만큼은 아니다. 미국은 40대가 되어도 거의 변화가 없다. 결국, 한국의 경우 40대의 교육비 부담을 낮춰주지 않으면, 60대 이후의 소득 지출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좀 떨어지긴 했어도, 소득에서 가장 높은 지출 증가 속도가 유지되는 것이 조세지출이며, 주택관련 지출이 올라가긴 했어도, 공포에 짓눌릴 만큼은 아니란 것이다. 즉, 대출의 절대량이 높고 증가속도가 빠른 건 사실이지만, 지난 10년 동안 시장금리가 꾸준히 하락한 것이 이자 부담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이건 정부가 의도했다기 보다, 물가압력이 꾸준히 낮아진 글로벌한 현상의 결과라고 봐야할 것이다.
Thursday, February 02, 2012
왜 시장 예측은 어려운가
미국 S&P500지수가 1320을 돌파했다. 나스닥 지수도 2800을 돌파했다. 코스피 지수는 1990을 넘었다. 작년 10월 초에 1100이 깨지려고 했으니까, 4달 동안 20%가 넘게 오른 셈이다. 연율로 하면, 지수 수익률은 대략 60%가 넘는다. 재밌는 건 10월 초에 주식을 사야할 때라고 말했던 사람은, 내가 기억하기론, 워런 버핏 밖에 없었다. 모든 입 달린 사람은 나서서 유럽은 위험하고 미국은 취약하며 중국은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물론, 그 언젠가는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당장 내일 그런 일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정도의 랠리에 입을 다물고 있었던 전략가, 애널리스트, 투자자라면 그때 일을 생각하면서 성찰해볼 줄도 알아야 한다.
물론 전략적으로 봤을 때, 이제부터는 주식을 팔라고 권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많이 올랐으니 팔라고 하는 것인데, 잘하면 그루(guru)나 현자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 중에 하나는 짐 로저스다. 그는 미국에 대해서 비관적이고, 미국 경기가 최근 좋아지는 건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지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본다. 심지어 스티븐 젠 같은 훌륭한 이코노미스트도 지난 4달 간 현상과 동떨어진 소리를 했다. 그가 이야기한 유로나 스위스 프랑 롱 포지션을 작년 8월 이후 그대로 들고 있었으면 그냥 골로 갔을 것이다. (작년 8월 1.38이었던 스위스프랑의 가치는 지금 1.09다) 젠은 얼마전 글에서 지금 미국의 공급 측면의 개혁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는데, 오바마의 의료보험개혁이나 금융시장개혁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하는 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훌륭한 이코노미스트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첫째,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인간의 99%는 가격이 오르면 사고, 가격이 내리면 판다. 사람들은 사는 사람이 많을 때 가격이 오른다고 생각하지만, 실재 시장은 파는 사람이 더 이상 없을 때 오른다. 약세 뉴스에 가격이 반응하지 않을 때가 강세장인 건 그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1%의 인간들은? 그중 절반 정도(0.5%)는 가격이 오를 때 파는 걸 편안해 한다. 너무 비쌀 때를 기다려 팔 줄 아는 사람들이다. 짐 로저스같은 사람들이다. 더 오를 수 있지만, 기다리면 역시 빠진다, 는 경험칙이 그들 행동의 준칙이다. 나머지 절반 정도(역시 0.5%의 인간들)는 빠질 때 사는 걸 더 편안해 한다. 워런 버핏 같은 사람이다. 그들은 주목하는 자산의 본질가치를 알기 때문에, 그 가치 이상으로는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산의 기본가치가 그들의 신앙이다. 후자가 전자보다 훨씬 강력하며 성공률이 높지만, 훨씬 더 인간의 본성에 반한다.
둘째, 편견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념적 편견을 갖고 있다. 물론, 폴 크루그만이나 마틴 펠드스타인 같은 사람은 이념적 편향을 갖고 있긴 해도, 그것이 자신의 경제적 사고방식의 근간을 훼손하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는 영향을 받겠지만, 큰 영향은 없다. 경제적 이성이 이념적 편향과는 따로 작동한다. 그래서, 크루그만과 펠드스타인은 서로를 존중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느 순간이 되면 그 이념적 편향성이 경제적 사고에 영향을 준다. 짐 로저스가 연준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스티븐 젠이 공급경제학자의 헛소리를 인용하는 게 그런 경우다. 그런 오류가 좀 있어도, 그들은 어느 정도 이상의 부와 명성을 쌓은 사람들이라, 시장 가격에 영향을 줄 수는 없어도, 사람들의 인식은 혼란스럽게 만든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잘 가려서 듣는 수 밖에 없다. 밖에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정보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무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능력이요 정성이지만, 필요한 정보만 골라내는 것은 지성의 영역이다.
세째,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역시 어려운 일이다. 워런 버핏의 접근 방법이 훌륭한 이유는 주식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어렵지만, 개별 기업의 본질가치를 파악하는 것은 지성과 노력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수에 영향을 주는 변수들은 거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기업의 본질 가치를 파악하는 것은 훨씬 적은 변수들의 함수를 풀어내는 일이며, 직관과 지성과 노력의 영역에 가깝다. 경제지표의 추이를 파악하는 일과 지수의 방향을 예측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경제지표는 지수에 영향을 주지만 그 역은 아니다. 결국 지성의 한계 때문에 우리는 확률에 어느 정도 의존할 수 밖에 없고, 기술적 분석을 참조할 수 밖에 없다. 트레이딩은 그래서 분석보다 훨씬 어렵다. 타이밍이 트레이딩의 거의 전부인데, 타이밍을 잡는 건 사실 우리 인생의 거의 전부다. 우리들의 모든 선택은 결국 다 타이밍의 문제 아닌가.
물론 전략적으로 봤을 때, 이제부터는 주식을 팔라고 권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많이 올랐으니 팔라고 하는 것인데, 잘하면 그루(guru)나 현자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 중에 하나는 짐 로저스다. 그는 미국에 대해서 비관적이고, 미국 경기가 최근 좋아지는 건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지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본다. 심지어 스티븐 젠 같은 훌륭한 이코노미스트도 지난 4달 간 현상과 동떨어진 소리를 했다. 그가 이야기한 유로나 스위스 프랑 롱 포지션을 작년 8월 이후 그대로 들고 있었으면 그냥 골로 갔을 것이다. (작년 8월 1.38이었던 스위스프랑의 가치는 지금 1.09다) 젠은 얼마전 글에서 지금 미국의 공급 측면의 개혁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는데, 오바마의 의료보험개혁이나 금융시장개혁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하는 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훌륭한 이코노미스트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생길까?첫째,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인간의 99%는 가격이 오르면 사고, 가격이 내리면 판다. 사람들은 사는 사람이 많을 때 가격이 오른다고 생각하지만, 실재 시장은 파는 사람이 더 이상 없을 때 오른다. 약세 뉴스에 가격이 반응하지 않을 때가 강세장인 건 그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1%의 인간들은? 그중 절반 정도(0.5%)는 가격이 오를 때 파는 걸 편안해 한다. 너무 비쌀 때를 기다려 팔 줄 아는 사람들이다. 짐 로저스같은 사람들이다. 더 오를 수 있지만, 기다리면 역시 빠진다, 는 경험칙이 그들 행동의 준칙이다. 나머지 절반 정도(역시 0.5%의 인간들)는 빠질 때 사는 걸 더 편안해 한다. 워런 버핏 같은 사람이다. 그들은 주목하는 자산의 본질가치를 알기 때문에, 그 가치 이상으로는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산의 기본가치가 그들의 신앙이다. 후자가 전자보다 훨씬 강력하며 성공률이 높지만, 훨씬 더 인간의 본성에 반한다.
둘째, 편견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념적 편견을 갖고 있다. 물론, 폴 크루그만이나 마틴 펠드스타인 같은 사람은 이념적 편향을 갖고 있긴 해도, 그것이 자신의 경제적 사고방식의 근간을 훼손하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는 영향을 받겠지만, 큰 영향은 없다. 경제적 이성이 이념적 편향과는 따로 작동한다. 그래서, 크루그만과 펠드스타인은 서로를 존중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느 순간이 되면 그 이념적 편향성이 경제적 사고에 영향을 준다. 짐 로저스가 연준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스티븐 젠이 공급경제학자의 헛소리를 인용하는 게 그런 경우다. 그런 오류가 좀 있어도, 그들은 어느 정도 이상의 부와 명성을 쌓은 사람들이라, 시장 가격에 영향을 줄 수는 없어도, 사람들의 인식은 혼란스럽게 만든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잘 가려서 듣는 수 밖에 없다. 밖에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정보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무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능력이요 정성이지만, 필요한 정보만 골라내는 것은 지성의 영역이다.
세째,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역시 어려운 일이다. 워런 버핏의 접근 방법이 훌륭한 이유는 주식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어렵지만, 개별 기업의 본질가치를 파악하는 것은 지성과 노력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수에 영향을 주는 변수들은 거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기업의 본질 가치를 파악하는 것은 훨씬 적은 변수들의 함수를 풀어내는 일이며, 직관과 지성과 노력의 영역에 가깝다. 경제지표의 추이를 파악하는 일과 지수의 방향을 예측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경제지표는 지수에 영향을 주지만 그 역은 아니다. 결국 지성의 한계 때문에 우리는 확률에 어느 정도 의존할 수 밖에 없고, 기술적 분석을 참조할 수 밖에 없다. 트레이딩은 그래서 분석보다 훨씬 어렵다. 타이밍이 트레이딩의 거의 전부인데, 타이밍을 잡는 건 사실 우리 인생의 거의 전부다. 우리들의 모든 선택은 결국 다 타이밍의 문제 아닌가.
Wednesday, February 01, 2012
변양균, 노무현의 따뜻한 경제학
정치인과 대중의 관계는 남녀관계와 비슷하다. 진중권은 정치는 연애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고도의 정책과 철학의 산물이어야 하는 정치를 얕보지 말라는 의미라면, 잘못된 말이다. 연애는 결코 정치보다 쉽고 만만하지 않다. 연애의 정수를 깨닫기는 어렵고, 깨달았다고 해도 실천하기는 더 어렵다. 정치인과 대중의 관계는 상대를 유혹하는 데 성공하거나 혹은 유혹하는 데 실패해야만 끝난다. 그래서 격렬한 사랑이나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 정치인에게는 더 무섭다. 역사의 전설적인 유혹자들은 상대를 유혹하는 방법에 정통하지만, 대상이 무관심하다면 그들도 어쩔 수 없었다. 무관심은 유혹자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를 선택하면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주지 못한다면, 정치인의 유혹은 실패한 것이다. 그 기대감을 어떻게 하면 대중으로 하여금 갖게 만들 수 있을까? 그것은 나와 연애를 하면 완전하게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란 기대를 어떻게 갖게 할 수 있을까, 와 같은 질문이다.
대통령 노무현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노무현은 훌륭한 유혹자였다. 문제는 그의 그러한 모습이 본인이 의도한 것이 아니란 것이다. 그 점은 그가 대통령이 되는데는 큰 장점으로 작용했지만, 막상 대통령이 되자 단점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남자들은 여자들을 사로 잡기 위해서 원대한 목표와 이상을 과시한다. 그런데, 유혹의 과정에서 목표나 이상의 방향은 상관없다. 현실성 조차도 상관없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상과 비전을 확고한 모습으로 제시하는 것에 사람들은 끌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자신감을 진짜라고 믿는다. 누군가가 7% 경제성장이 가능하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그 성장률의 현실성보다 그렇게 말해주는 것 자체에 매료되었다. 알다시피, 어리석은 매혹의 대가는 값비싼 법이다. 노무현의 매혹의 실체는 상당히 자아도취적인 면이 강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이 진짜라고 믿었고, 그 신념에 근거한 선택은 이해득실을 고려하지 않은 면이 있었다. 그것은 정치인으로서는 예외적인 것이어서 사람들은 그의 그런 모습에 매료되었다. 그가 대중의 지지를 받지 않아도 자신은 자신의 길을 간다고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사람이 매료되었다. 나르시시즘은 모든 운명적 사랑의 시작이다.
막상 대통령이 되자, 노무현에 대한 사람들의 흥미는 반감되고 매혹의 마법은 풀렸다. 노무현은 남자가 여자와 어떻게 연애하고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해 해박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사랑이고, 바른 연애인지에 대해서 자신만의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그걸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연애를 할 시간을 쪼개 사람들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설득했다. 심지어, 그가 유혹해야 하는 대상들에게도 그걸 강의했다. 물론, 그에게 매혹되어야 할 대상들은 그의 강의에 설득되지 않았다. 그리고, 심지어 그의 강의의 진정성마저 의심했다. 그는 오해받았다. 그는 유혹의 기술을 이해할만큼 명석했지만 그걸 실천에 옮길 만큼 냉혹하지는 못했다. 노무현은 "난 그런 사람이니 날 좋아해주면 안 되겠니? 난 그런 식으로 널 유혹하고 싶진 않아"라고 말했지만, 그가 사랑했던 여자들은 그가 정성들여 보낸 선물과 편지를 쓰지도 읽지도 않은 채 버렸다. 쓰레기통에 남겨진 그것들을 보며 노무현은 슬피 울었다.
노무현 성공의 시작은 김대중의 성공이었다. 노무현의 당선은 아무리 본인의 매력이 출중했어도 김대중의 성공 없이는 불가능했다. 다른 말로 하면, 이명박의 성공은 노무현의 실패로부터 시작했다. 2007년 대통령 선거는 이명박과 박근혜의 대결이었지, 이명박과 정동영의 대결이 아니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지했던 노무현에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 그래서 선택한 상대가 훨씬 나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듣지 않았다. 그건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의 문제였다. 그들을 매료시켰던 노무현이 더 이상 자신들을 매료시키지 않고 찬찬히 설득하려고 하자, 그들은 눈과 귀를 막아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은 그런 대중을 끝까지 설득하려고 했지 매료시키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것이 옳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동양과 서양 그리고 고대와 근대를 막론하고 세금을 올려서 성공한 정권은 없었다. 세금을 올려서 꼭 해야 할 일을 한다는 시도는 대개 당대의 실패와 후대의 성공으로 비로서 빛을 발한 적이 많았다. 그것은 심지어 박정희마저도 피해갈 수 없었다. 독재자인 그도 스스로 시행한 부가가치세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많은 경우는 그런 빛을 보지도 못하고, 정권 자체 혹은 왕조 자체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노무현의 적들은 그 점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노무현은 그들의 집요함을 솔직함으로 맞섰다. 자신의 원칙과 신념이 옳다는 믿음이 그에게는 있었다. 그게 진짜 옳은지 혹은 옳지 않은지 검증받을 기회를 그는 갖지 못했다. 그는 좋은 경영방침을 가졌는지 모르겠으나, 그가 경영한 회사는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한 셈이었다. 가치는 있었지만 가격은 오르지 않았다. 재밌는 건, 그가 추구했던 원칙, 즉, 시대정신은 이제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주장한 원칙은 이제야 이루어질지도 모를 글로벌한 환경을 마주하고 있다.
변양균 장관이 쓴 "노무현의 따스한 경제학"은 그 원칙과 신념이 무엇이었는지 말하고 있다. 그 원칙과 신념의 어떤 부분은 상당히 논쟁적일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이념적 편향성과 경제적 합리성, 현실적인 필요성과 대중의 고정관념들이 부딪히는 부분 말이다. 대중들은 복지의 확대를 원하지만 세금의 확대를 원하지는 않는다. 복지의 확대를 정치적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하다 보면, 결국 복지의 확대는 공무원, 노조, 정치인들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편향된다. 정치적 지지를 확대하기 위한 연대가 그런 정치적 힘을 갖지 못한, 그러나 진짜 복지의 수혜가 필요한 대상은 소외시키는 것이다. 많은 나라에서 실재 일어났던 일이다. 유연한 노동시장은 기업들의 혁신을 위해서 필요하다. 하지만, 직업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시장만 유연해지면 그것은 재앙이란 노동자들의 비판은 정당한 것이다. 그런데, 직업 안정성을 향상시키면서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드려는 노력은 흔히 좌절되고, 그 이유는 자본의 의도를 의심하는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산성의 증가 없이는 후생의 증가가 없지만, 지금 한국의 현실은 제조업과 서비스업간의 생산성 격차로 인한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어 있다. 이것을 개선하려는 노력 역시 대중의 비난에 의해서 좌절된다. 대중의 비난의 근거는 역시 현실이다. 투명한 현실없이 고통은 분담시키는 것은 정당하지도 가능하지다. 문제는 정치에 대한 신뢰와 그 신뢰에 근거한 모험없이는 영원히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뿌린 원칙과 신념은 글로벌 환경의 변화속에서 잘 자라고 있다. 사람들은 오바마의 재선이 어렵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의 낮아 보이던 재선 가능성은 "월 스트리트를 점거하라"는 시위로 반전됐고, 의료보험개혁과 금융개혁으로 보여준 구조적 변화가 실물 경기 반등으로 표현되면서 더 확률이 높아졌다. 노무현의 원칙과 신념이 완벽하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그것은 선의에 기인했다. 그리고 적어도 그는 자신의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을 했다. 행여 그 원칙을 어기게 되면, 미안해했다. 그 선의의 과실을 경제적 정합성과 정치적 정당성으로 추수할 정치인이 누굴까? 부채가 없는 대신 자산도 없는 한 벤처 기업가일까? 그가 대중에게 행사하고 있는 매력의 실체는 내가 보기엔, 정확히 이명박의 그것과 같다. 그가 가진 장점은 대부분 이명박이 가진 장점의 축소복사다. 그래서 대중의 안철수에 대한 지지는 이해가 가는 면은 있지만 동의할 수는 없다. 2007년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된 안철수의 미래에 대해서 불길한 예언 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결론. 2012년은 2007년의 데자부다. 이번 선거는 박근혜와 그 누군가의 대결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이건 안철수와 문재인의 선거다. 그리고, 문재인은 충분히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노무현에 대한 정신적 부채야 말로, 그의 가장 큰 자산이기 때문이다. 다만, 안철수의 실체를 깨닫게 만드는 것은 꼭 본인일 필요는 없다. 문재인에게는 악역이 필요하고, 그 악역의 활약은 2012년 선거의 핵심 중 하나다.
대통령 노무현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노무현은 훌륭한 유혹자였다. 문제는 그의 그러한 모습이 본인이 의도한 것이 아니란 것이다. 그 점은 그가 대통령이 되는데는 큰 장점으로 작용했지만, 막상 대통령이 되자 단점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남자들은 여자들을 사로 잡기 위해서 원대한 목표와 이상을 과시한다. 그런데, 유혹의 과정에서 목표나 이상의 방향은 상관없다. 현실성 조차도 상관없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상과 비전을 확고한 모습으로 제시하는 것에 사람들은 끌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자신감을 진짜라고 믿는다. 누군가가 7% 경제성장이 가능하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그 성장률의 현실성보다 그렇게 말해주는 것 자체에 매료되었다. 알다시피, 어리석은 매혹의 대가는 값비싼 법이다. 노무현의 매혹의 실체는 상당히 자아도취적인 면이 강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이 진짜라고 믿었고, 그 신념에 근거한 선택은 이해득실을 고려하지 않은 면이 있었다. 그것은 정치인으로서는 예외적인 것이어서 사람들은 그의 그런 모습에 매료되었다. 그가 대중의 지지를 받지 않아도 자신은 자신의 길을 간다고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사람이 매료되었다. 나르시시즘은 모든 운명적 사랑의 시작이다.막상 대통령이 되자, 노무현에 대한 사람들의 흥미는 반감되고 매혹의 마법은 풀렸다. 노무현은 남자가 여자와 어떻게 연애하고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해 해박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사랑이고, 바른 연애인지에 대해서 자신만의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그걸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연애를 할 시간을 쪼개 사람들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설득했다. 심지어, 그가 유혹해야 하는 대상들에게도 그걸 강의했다. 물론, 그에게 매혹되어야 할 대상들은 그의 강의에 설득되지 않았다. 그리고, 심지어 그의 강의의 진정성마저 의심했다. 그는 오해받았다. 그는 유혹의 기술을 이해할만큼 명석했지만 그걸 실천에 옮길 만큼 냉혹하지는 못했다. 노무현은 "난 그런 사람이니 날 좋아해주면 안 되겠니? 난 그런 식으로 널 유혹하고 싶진 않아"라고 말했지만, 그가 사랑했던 여자들은 그가 정성들여 보낸 선물과 편지를 쓰지도 읽지도 않은 채 버렸다. 쓰레기통에 남겨진 그것들을 보며 노무현은 슬피 울었다.
노무현 성공의 시작은 김대중의 성공이었다. 노무현의 당선은 아무리 본인의 매력이 출중했어도 김대중의 성공 없이는 불가능했다. 다른 말로 하면, 이명박의 성공은 노무현의 실패로부터 시작했다. 2007년 대통령 선거는 이명박과 박근혜의 대결이었지, 이명박과 정동영의 대결이 아니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지했던 노무현에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 그래서 선택한 상대가 훨씬 나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듣지 않았다. 그건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의 문제였다. 그들을 매료시켰던 노무현이 더 이상 자신들을 매료시키지 않고 찬찬히 설득하려고 하자, 그들은 눈과 귀를 막아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은 그런 대중을 끝까지 설득하려고 했지 매료시키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것이 옳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동양과 서양 그리고 고대와 근대를 막론하고 세금을 올려서 성공한 정권은 없었다. 세금을 올려서 꼭 해야 할 일을 한다는 시도는 대개 당대의 실패와 후대의 성공으로 비로서 빛을 발한 적이 많았다. 그것은 심지어 박정희마저도 피해갈 수 없었다. 독재자인 그도 스스로 시행한 부가가치세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많은 경우는 그런 빛을 보지도 못하고, 정권 자체 혹은 왕조 자체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노무현의 적들은 그 점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노무현은 그들의 집요함을 솔직함으로 맞섰다. 자신의 원칙과 신념이 옳다는 믿음이 그에게는 있었다. 그게 진짜 옳은지 혹은 옳지 않은지 검증받을 기회를 그는 갖지 못했다. 그는 좋은 경영방침을 가졌는지 모르겠으나, 그가 경영한 회사는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한 셈이었다. 가치는 있었지만 가격은 오르지 않았다. 재밌는 건, 그가 추구했던 원칙, 즉, 시대정신은 이제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주장한 원칙은 이제야 이루어질지도 모를 글로벌한 환경을 마주하고 있다.
변양균 장관이 쓴 "노무현의 따스한 경제학"은 그 원칙과 신념이 무엇이었는지 말하고 있다. 그 원칙과 신념의 어떤 부분은 상당히 논쟁적일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이념적 편향성과 경제적 합리성, 현실적인 필요성과 대중의 고정관념들이 부딪히는 부분 말이다. 대중들은 복지의 확대를 원하지만 세금의 확대를 원하지는 않는다. 복지의 확대를 정치적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하다 보면, 결국 복지의 확대는 공무원, 노조, 정치인들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편향된다. 정치적 지지를 확대하기 위한 연대가 그런 정치적 힘을 갖지 못한, 그러나 진짜 복지의 수혜가 필요한 대상은 소외시키는 것이다. 많은 나라에서 실재 일어났던 일이다. 유연한 노동시장은 기업들의 혁신을 위해서 필요하다. 하지만, 직업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시장만 유연해지면 그것은 재앙이란 노동자들의 비판은 정당한 것이다. 그런데, 직업 안정성을 향상시키면서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드려는 노력은 흔히 좌절되고, 그 이유는 자본의 의도를 의심하는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산성의 증가 없이는 후생의 증가가 없지만, 지금 한국의 현실은 제조업과 서비스업간의 생산성 격차로 인한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어 있다. 이것을 개선하려는 노력 역시 대중의 비난에 의해서 좌절된다. 대중의 비난의 근거는 역시 현실이다. 투명한 현실없이 고통은 분담시키는 것은 정당하지도 가능하지다. 문제는 정치에 대한 신뢰와 그 신뢰에 근거한 모험없이는 영원히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노무현 대통령이 뿌린 원칙과 신념은 글로벌 환경의 변화속에서 잘 자라고 있다. 사람들은 오바마의 재선이 어렵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의 낮아 보이던 재선 가능성은 "월 스트리트를 점거하라"는 시위로 반전됐고, 의료보험개혁과 금융개혁으로 보여준 구조적 변화가 실물 경기 반등으로 표현되면서 더 확률이 높아졌다. 노무현의 원칙과 신념이 완벽하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그것은 선의에 기인했다. 그리고 적어도 그는 자신의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을 했다. 행여 그 원칙을 어기게 되면, 미안해했다. 그 선의의 과실을 경제적 정합성과 정치적 정당성으로 추수할 정치인이 누굴까? 부채가 없는 대신 자산도 없는 한 벤처 기업가일까? 그가 대중에게 행사하고 있는 매력의 실체는 내가 보기엔, 정확히 이명박의 그것과 같다. 그가 가진 장점은 대부분 이명박이 가진 장점의 축소복사다. 그래서 대중의 안철수에 대한 지지는 이해가 가는 면은 있지만 동의할 수는 없다. 2007년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된 안철수의 미래에 대해서 불길한 예언 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결론. 2012년은 2007년의 데자부다. 이번 선거는 박근혜와 그 누군가의 대결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이건 안철수와 문재인의 선거다. 그리고, 문재인은 충분히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노무현에 대한 정신적 부채야 말로, 그의 가장 큰 자산이기 때문이다. 다만, 안철수의 실체를 깨닫게 만드는 것은 꼭 본인일 필요는 없다. 문재인에게는 악역이 필요하고, 그 악역의 활약은 2012년 선거의 핵심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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