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November 16, 2012

엔화의 미래, 한류의 미래

Andy Xie가  "Yen Edges toward Brink"란 오랜만에 재미있는 글을 썼다.  일본의 경제적 상황을 보면 우울하기 짝이 없다.  명목 GDP는 2007년에 비해서 9%가 줄었다.  심지어 1992년에 비해서도 2.5%가 줄었다.  92년 국가부채는 GDP의 20%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230%나 된다.  GDP의 200%나 되는 재정지출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돌아서지 못했다.  반면 비슷한 경제위기를 경험한 미국은 2007년 이후 2011년까지 명목 GDP가 7% 늘었다.  2012년에만 4%가 증가했다. 2007년 이후 미국과 일본의 명목 GDP의 증가율은 20% 넘게 차이가 난다.

이런 일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시끄럽게 정권이 몇 번은 바뀌었을 듯 한데, 일본은 정권은 바뀌었지만 너무나 조용하다.  국내의 민간저축으로 정부부채 문제를 틀어막고 있기 때문이다.  실업률이 낮다.  게다가 검약한 일본인의 습성도 한몫하고 있다.  일본 직장인의 용돈은 30년전 수준이라는 서베이 결과도 있다고 한다.  지금 일본이 경험하고 있는 위기, 그리고 그 위기에 비해서 지나치게 조용한 정치, 조용하면서도 (특히 원전사태 이후) 비등점에 접근하고 있는 분위기, 모두 일본의 인구 상황과 크고 작은 관련이 있다.

일본은 노령국가다.  늙어가고 있다.  사회가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개인이 인식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지만, 구성원의 삶에 직접 간접으로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의 호주머니가 넉넉해질수록 사람들은 아이를 적게 낳는다.  출산과 육아와 양육이 너무 비싸지기 때문이다.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지만, 그런 선택들이 모여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정치에 나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일본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지만, 일본의 경우처럼 문제가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지 않다.  정치인들은 고령자, 연금 생활자들의 눈치를 본다. 일본과 같은 의원내각제에서는 뚝심있게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권력을 유지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 일본의 정권은 거의 매년 바뀐다. 바뀔 때 마다 일본의 모순은 수면위로 드러난다.

소니와 샤프로 대변되는 일본 전자회사들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 나라의 국민들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고 성실한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인간의 삶이 그렇듯 국가도 마찬가지다.  디플레이션 속에서 침체하는 나라의 통화가치가 상승하는데,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기를 바라기는 어려운 일이다.  일본처럼 디플레이션 상황에서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불가능하지 않다.  엔화를 찍어내 달러를 사고, 엔화를 팔아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면 된다.  늘어난 유동성으로 인해 물가가 올라가겠지만 일본은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나라다.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일본 통화 가치가 30% 떨어지면, 일본의 달러 표시 GDP는 30% 줄어든다.  Xie는 일본이 G3의 위치를 잃는 걸 두려워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런 결정을 했을 때의 정치적 후폭풍이 더 두려울 것이다.  일본처럼 고령자들이 많고, 연금 수령자들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엔화약세는 구매력을 잠식한다.  이들의 정치적 지지를 포기하고 집권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정권을 잃을 생각이 아니라면, 정부가 나서서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과연 엔화 약세 현상이 정부의 개입없이 가능한 상황이 올까?  최근 일본 전자 기업들은 큰 폭의 적자를 기록했다.  일본 기업중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은 자동차 메이커들뿐이다.  하지만, 중국과의 영토 분쟁으로 심지어 토요다조차도 중국 판매실적이 타격을 입었다.  민족주의 감정 때문에 일본 제품의 불매현상이 계속될 가능성보다 그런 일을 자초하는 일본의 형편없는 정치적 리더쉽이 더 문제다.  일본이 무역수지 적자로 인해 통화 절하 압력을 받을 개연성은 커지고 있다.  만약, 경상수지 적자 폭이 커지는데 민간저축이 따라가 주지 못하면 결국 세금을 인상할 수 밖에 없지만, 정권을 잃고 경제를 침체에 빠뜨리게 될까봐 쉽게 쓸 수 없는 정책일 것이다.  결국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어떻게 될까?  결국 사람들의 생각은 엔화 절하로 수렴된다.

2007년 경제위기 직전 원/엔 환율은 8원 정도였다.  지금은 13.4원 정도다.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엔화가 안전자산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류의 시작은 일본이었고, 지금도 대부분의 해외 현금흐름이 일본에서 나오기 때문에 강해진 엔화 가치는 한류 기획사들에겐 복음이었다.  고점일 때 16원이었던 원/엔 환율은 지금 13.4원.  지리멸렬한 일본 정부가 공격적인 외환개입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때, 과연 큰 폭의 엔/원 환율 하락은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디까지 가능할까? Xie의 말처럼 40%의 절하가 균형환율이라면, 우리 기업들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과연 그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한국은행은 외환시장 개입 목적의 공격적인 금리인하를 할 수 있을까? 그런 현실을 한국의 대중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공교롭게도 한류 기획사들의 주가는 마침 단기간에 많이도 빠졌다.  일본에 기대지 않은 한류의 미래는 불가능하다는 '블랙스완'은 아니길.

6 comments:

  1. 정말 흥미로운 글이었습니다. 돈을 주고 콘텐츠를 구매하는 사업모델이 굴러가고 있는 몇 안되는 나라인 일본의 엔화 절하가 한류에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고견에 동의할 수 밖에 없네요...좋은 글 항상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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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요근래 일본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엔화가 똥값 되는 건 시간 문제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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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로 그 '시간 문제'가 그동안 가장 큰 문제였죠.. 지금도 그렇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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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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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에스엠의 해외매출중 일본에서 발생하는 비중이 90%라고 합니다. 직격탄이겠지요.
    그런데 일본의 모 경영 컨설턴트가 일본 전자업계에 이런말을 하면서 일침을 했다고 합니다.
    일본 업체들은 과거에 '기술력에선 이겼으나 영업에서 졌다'와 같은 핑계를 댔지만
    이제 그런 핑계조차 댈수 없는 '기술력에서도 패배하고 영업에서도 패배한' 시대가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만큼 일본 전자업계는 빈사 상태에 이른것이 확실한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부품을 조달하는 완성품 업체는 오히려 환경이 좋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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