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October 22, 2012

어른이 된다는 것

13일 토요일에 큰 아이가 축구를 하는 초등학교로 3시 30분에 데리러 갔다.  주차장엔 차 댈 곳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아빠가 정문 앞에 있을 거라 말해 두었다.  30분부터 40분까지 학교 정문에서 기다렸는데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시동을 건 채 내려서 찾아 보았더니 이미 축구 수업은 끝이 났고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담당 코치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나보고 정문 앞에서 기다리라고 하고는 동료 코치와 교내에서 아이를 찾았다.  아이가 보이지 않으니, 나에게 정문을 지키게 하고, 학교 정문을 중심으로 좌우를 찾았다.  이번에도 보이지 않으니 학교 주변 두 개의 아파트의 놀이터에서 아이를 찾았다.  역시 아이는 보이지 않는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 사실을 알린다. 내 예상보다 세 배쯤 아내의 반응은 크다.

"어쩌면 걸어서 혼자 갔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걸어갈 수 있는 동선으로 찾아보겠습니다"
"걸어가는 길을 알고 있나요?"
"네. 저와 한번 같이 걸어간 적이 있어요"
"그럼 저는 다른 동선으로 한번 찾아 보겠습니다.  만약에 20분 안에 발견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차를 타고 돌아보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는다.  시계를 보며 어쩌면 아이는 집에 거의 갔을지도 모른다, 고 생각한다.  4시 쯤 아내에게 전화가 온다.  예상대로 아이는 혼자 걸어서 집에 갔다.  운동장에 남아 있는 코치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아이를 찾으러 차를 몰고 나간 코치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 달라고 말한다.  차를 몰고 집으로 가던 중 차를 타고 학교로 돌아오는 코치를 만나 이 사실을 전한다.  기분 나빠 하지 않고 웃으며 '다행이네요'라고 말한다.  코치의 태도는 칭찬할만 하다.  당황하지 않고, 화내지 않으며, 본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

집에 가니 아이는 쫄아 있다.  자기가 잘못해서 쫀 게 아니다.  엄마의 반응에 놀란 것이다.  아이는 어쩌면 자신이 30분을 걸어서 집까지 왔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막상 문을 열고 들어오면 엄마의 감탄과 찬사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아이에게 어떤 벌을 받겠냐고 물어본다.

"바깥놀이를 30일 동안 안 할께요"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벌을 자청하는 걸로 보아, 자신이 크게 잘못한 것 같다고 느낀 모양이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벌을 내려보았자 효과는 미미하다.  이 나이의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아무리 지적으로 조숙한 아이라도 감정적인 제어가 되지 않는다.  사춘기란 시기는 그런 불균형이 극대화되는 시기다.  지적으로 어른과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두엽의 발달이 끝나지 않아서, 감정적인 성숙이 되지 않는다.  감정적인 성숙이 되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는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20대 초반까지도 이런 발달은 마무리 되지 않는다.  어떤 경우, 어떤 인간의 경우에는 영원히 이러한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영원히 다른 인간의 입장이 되어 보지 못한다.

세 가지 숙제를 주고 이 사태를 마무리한다.  1) 오늘 있었던 일을 한 페이지 일기로 적는다.  2)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다, 를 쓰고 큰 소리로 읽는다.  두 페이지 빽빽하게 적는다.  3) 행동하기 전에 생각한다, 를 역시 쓰고 큰 소리로 읽는다.  역시 백지 앞 뒷면으로 빽빽하게 적는다.  이래 봤자 행동하기 전에 생각할 리 없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미리 생각해볼 리 없다.  하지만, 아이에게 무턱대고 화를 내고, 아이를 때리는 것보다는 낫다.  그러고 보니 나도 가끔 백지에 "머리를 쓰지 않으면 몸이 고생한다"라고 몇 번이고 쓸 때가 있다. 나 역시 계속 같은 오류를 반복한다. 오류를 반복하는 게 나쁜 게 아니라,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고 있는 게 나쁘다.

6 comments:

  1. 다음책은 스릴러에로금융첩보소설보단 양육에 관한 책이 어떨까요 기대되네요.

    ReplyDelete
    Replies
    1. 이번 책도 양육이슈를 상당히 다루고 있습니다.

      Delete
  2. 역시 어른이 된다는 건 어려운 일이군요..

    ReplyDelete
  3. 지인의 경험을 보니, 죽음의 경험도 어른이 되는 과정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작은 애완동물을 키워보는 경험도....뭔가 배울 점이 있을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ReplyDelete
    Replies
    1. 전 애완동물을 못 키우게 합니다. 아이들한테 물고기 이외의 어떤 살아 있는 생물도 키우지 않을 거라고 못을 박아 두었어요. 개든 고양이든 주변 지인들에게도 왠만하면 애완동물을 키우지 말라고 해요. 유일한 예외는 혼자사는 노인들입니다. 이유는 1) 동물에게 쏟을 애정을 인간에게 쏟기를 바라고, 2) 죽음의 경험을 불필요하게 느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수록 좋은 인생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Delete
    2. Hubris 님은 무신론자신가요? 궁금하네요..^^ 사람의 죽음은 어쩔 수 없는 요인일테니 죽음을 의식하지 않고 그것이 닥쳤을때 당위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좋겠지만,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방향은 아닌것 같습니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조심하죠...!) 그런 사람은 통제의 범위를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 감정적인 해결과 이성적인 해결의 방향을 명확히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그러한 사고는 간접적인 경험 후에 얻기가 더 쉽지 않을까요? 뭔가 다른 곳에서 경험하기에는 좀 리스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첫 죽음의 경험이 정말 가까운 지인의 급작스런 죽음이라든가 그런것보단 강아지나 작은 동물이 주는 감정이 더 쉬울지도 모르니까요. 아이들의 성향 파악과 적당한 교육에 도움이 될 여지도 있을 것 같고..)
      그나저나 물고기는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정을 주는 것이 최소화 되겠네요..

      Dele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