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서점에 책이 깔리기 시작한지 내일이면 2주가 된다. 광고도 하지 않은 것에 비하면 2주간의 반응은 좋은 편입니다, 라는 말을 듣고 있다. 경제/경영 분야의 경우, 그 중요성 때문에 주목을 받긴 하지만 수요층이 두껍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은 판매량으로도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분야다. 읽을만한 책이 없다고 불평하던 사람들도 막상 자기 책이 나올 때 즈음엔 서점에 가보면 과연 내 책이 이 많은 책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긴장하게 된다. 성공한 책이라고 다 좋은 책은 아니지만, 그 말이 아무렇게나 써도 성공한다는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이 팔기 위해 쓴 책이 아니라고 해도, 힘들게 쓴 책이 읽히지 않는 걸 좋아할 저자는 세상에 없다. 초기에 생각보다 많은 블로그 독자와 지인들이 책들을 사서 읽고 ‘인증샷’까지 보내주었다. 책을 꽤 사서 읽는 나도 누군가 책을 썼다고 금방 달려가는 경험은 드물다는 걸 감안하면 그건 정말 감사하고 근사한 일이다.
책을 써보니 막상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나는 편견으로 가득 찬 책을 쓰고 싶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책이지만, 울퉁불퉁했던 편견이 가다듬고 깎여서 둥글둥글해진 면이 없지 않다. 굳이 변명하자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을 내야 하는 직장인, 그것도 내부 컴플라이언스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엄격한 미국계 회사에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샐러리맨의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통령 선거가 있는 민감한 시기에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정치적이고 시사적인 현안은 대부분 날려야 했다. 나는 비교적 명료한 정치적 성향이 있는 사람이지만 정치에 영향을 줄 입장도 정치에 영향을 받을 처지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어쩌면 가장 재미있어야 할 ‘불평등과 정치’에 관한 글이 가장 재미없는 글이 되어버렸다. 이 책에서 가장 아쉽고 맘에 들지 않는 대목이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직장 생활을 하는 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익명으로 운영하는 블로그와 트위터에서 실명으로 나를 드러내기 시작한지 2주가 되었지만 블로그나 트위터에서 본명 대신 hubris란 이름을 계속 사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책을 낸 이후 심해진 자기 검열이 본명을 사용할 경우 더 심해질 것 같아서다. 어떤 의견, 특히 정치처럼 예민한 사안에 대한 의견을 표현할 때 지나치게 예민하고 민감해지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대중이나 여론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내 생각을 표현하는 쾌감이 예전만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제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이제는 함부로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김연아, 남들과 다르게 바라보는 안철수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누가 머라고 해도 내 책의 첫 번째 독자인 나는 내 책을 좋아한다. 이런 이상한 말을 할 수 있는 건, 누군가 20년 전에 내 책을 내게 건네 주었더라면, 난 지금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생에서 ‘진짜 중요하고 꼭 필요한 말들’을 들을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해줄 능력이 없고, 그런 능력이 있는 어떤 사람들은 너무 바쁘고, 괜한 논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 남의 인생에 아예 관여하지 않는다. 삶은 지루하고 고통스럽다. 그런 삶을 개선시키려는 노력은 대개 ‘쪽 팔림’과 자의식의 상처를 수반한다. ‘그런 말’들을 듣지 못하면, 나 같이 이해하지 못하면 실행하지 못하는 둔한 사람은 웬만큼 노력해도 전세를 역전시키지 못하거나, 아니면 전세를 역전시킬 의지를 발휘하지 못한다. 의지를 발휘하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연소되지 못하고 휘발해 버린다. 그건 여러모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 ‘쪽 팔림’을 극복하는 일은 의지를 회복하면서 시작할 수 있다.
그래도 책을 써서 가장 기쁜 일은 “어쨌든 책을 썼다”는 그 사실 자체였다. “책이 내일 나옵니다”라는 연락을 받은 날 밤 집에 오는 차 안에서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왜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을까, 생각해보다가 내가 곧 깨닫게 된 사실은 책을 쓴다는 것이 내 어린 날의 분명한 ‘꿈’이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넌 커서 작가가 될 꺼야”라고 말해준 이후, 20대가 끝날 때까지 난 한번도 내가 작가가 될 것이란 사실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그건 일종의 예언이었다. ‘꿈’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도 그 이외의 것은 목표했을 뿐 꿈꿔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 예언과 점점 더 멀어지는 사는 삶을 살면서, 그리고 더 이상 ‘작가가 된다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되면서, 그리고 주로 금융과 역사 그리고 철학에 대한 글이 훨씬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일상을 이어가면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된 것이다. ‘책을 쓴다’는 꿈을 어린 시절부터 갖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작가는 되지 못했지만 어쨌든 책은 내게 되었다는 것.
누가 머라고 해도, 어린 시절 원했던 것이 이루어지는 걸 보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세상에 많지 않다. 지극히 사적이고 작은 사건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온전히 기쁜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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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잘 읽고 있습니다. 사실 다른 분들 댓글도 볼 수 있는 블로그가 좀 더 취향에 맞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재밌게 잘 읽고 있습니다. 근데 필명의 울퉁불퉁함 대신 실명 출판을 고집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물론 그 경우 고등학교 은사님께 보내드리기는 좀 복잡해지겠지만요.
ReplyDelete출판사에 민폐주기 싫어서요. Hubris란 이름으론 수지맞추기 어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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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lyDelete아, 정말 축하드립니다. 꿈을 이루셨다니 글 읽으며 저도 기분이 좋아지네요. ^^
ReplyDelete감사합니다.
Delete책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또 써주세요. http://xacdo.net/tt/index.php?pl=2409
ReplyDelete잘 읽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부분이 언급되어 있네요. 책의 후반부가 낫다고 저도 보지만 전반부도 필요했어요. 전 혜민스님도 김난도 교수도 아니거든요.
Delete응원 합니다.
ReplyDelete축하드립니다. e북으로나오길 기다리고 있네요. 앞으로도 왕성한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ReplyDelete여전한 예리함과 통찰력, 그리고 수정되지 않은 표현들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ReplyDelete책을 샀는데 이미 다른 책을 읽느라 서문만 읽었습니다.
ReplyDelete잘 보겠습니다.
서문이 무겁고 딱딱하단 의견도 있네요. 하지만 하나만 고르라면 전 서문입니다. 제 인생관이 담겨있거든요. 난 누구인가란 질문에 대한 대답.
Deletebankertrust입니다.//
ReplyDelete출간하신 책 샀습니다. 그 동안 공짜로 봤던 매크로에 대한 정보와 의견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pay back해드리는 느낌입니다. 대부분의 쟁점들에 저는 hubris님과 별 의견이 없는 지라, 책 자체가 저의 인생에 변화를 줄 부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만, 아직 미혼이고 커리어 초반인 저보다 10년이나 15년 미만인 직장 부하직원들한테 몇 권 선물하려고 합니다.
40살이후에는 hubris님의 관점에 동의하지만 아마 제가 15년전쯤에는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일정부분 있었을 겁니다. 제가 상당한 기간의 시행착오를 통해 도달한 결론을 저의 후배들이 그 책을 통해 훨씬 일찍 도착할 수 있다면 분명 hubris님의 책은 가치가 있을 거예요.
마지막에 책을 낸 것 자체가 그 성취고 기쁨이시라는 말씀은 별 설명이 없으셔도 굉장히 공감이 되네요
원래 이 글 다음 썼던 글이 bankertrust님 이메일 주세요, 였습니다. 약간 민망해서 곧 지우긴했는데 벌써 책을 사셨네요. 대신 대선전에 연락 주심 책 대신 맥주 한 잔 사겠습니다.
Delete책 잘 봤습니다. 대학생인 동생도 보고있는것 같네요.
ReplyDelete은사님 정말 기쁘셨겠어요. 그걸 기억해주고 또 이룬 제자라니 정말 멋집니다.
대학생들이 읽으면 좋겠어요. 아프니까 청춘이다만 보지말고. ㅎㅎ
Delete책 잘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들 부탁 드립니다~
ReplyDelete출판 축하드립니다! 독자로서 기쁘기도 합니다^^
ReplyDelete교보문고와 예스24에서 종합 베스트 순위 100위권 안팍에 랭크해 있네요. 이거 대단한 수준 아닌가요? 블로그 독자로서 저도 기쁩니다. 한턱 내는 대신에 더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
ReplyDelete한국 출판 시장이 많이 얇아요. 그래도 제겐 과분한 사건이죠.
Delete잘 읽고있습니다. 대부분 블로그에서 읽었던 글이지만 다시 읽으면서 좀더 분명해진 느낌입니다.
ReplyDelete경제학이 이렇게 멋진 학문이라는 것을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느끼는 요즈음입니다.
블로그 하지 말고 책만 쓸까요? ㅎㅎ 농담입니다. 책도 좋지만 전 제 블로그가 좋아요. 트위터보다도 블로그가 좋아요. 근데 요샌 트윗을 더 하게 되네요.
Delete이북을 기다리다가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어서 책을 주문했습니다.
ReplyDelete보통 책을 사면 띠지는 바로 버리는데 쓰신 책의 띠지 색이 예뻐서 한참을 두르고 책을 보았습니다. 차갑지만 아름다운 색이 hubris님의 책과 잘 어울리더군요.
책을 읽으며 10년전에 저에게 누군가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해주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그 말이 가지는 뜻을 이해하지 못했겠죠.
우연히 책을 써본 적이 있어서 hubris님의 기분이 어떤것인지 살짝 알 것 같습니다.
저자시군요!
Delete김광진의 경제포커스 오디오북 코너에 나오신거 잘 들었습니다 목소리도 좋으시던데요? ㅎㅎ
ReplyDelete전 민망해서 다시 못 듣겠더군요. 처음엔 약간 긴장했어요. 또 하면 좀 낫지 않을까요. 그런데 제가 목소리는 좀 착해요.
Delete
ReplyDelete안녕하세요 저는 가끔 찾아가던 게시판의 아이디로 hubris님을 기억하는 독자입니다.
책을 내셨다고 해서 정말 읽고 싶었죠.
저는 가난뱅이 고학생이라
책은 대부분 도서관이나 친구들에게 빌려서 읽었습니다.
진심으로 책이라는 것을 10년 만에 제 돈을 주고 사서 봤습니다.
(대학을 7년동안 다녔는데. 이제 졸업해서 희망도서신청이 안되더군요 ㅎㅎ)
후배들에게 추천해서 hubris님 책을 우리학교 도서관에 신청해야겠습니다.
정말 책이 줄어드는게 아까울 정도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하나하나 꼬투리를 잡을 생각은 없지만
사형제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국가의 정의로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의 스트레스가 최종적인 문제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hubris님이 말씀하신 사형제도의 비인간성에 포함된 내용이기도 하나..
개인적으로 이것을 해결하면 사형제도를 실행하기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학적으로는 그 일에 인센티브가 주어진다면 도살자나 장의사처럼 누군가 감수하는 일이겠지만요.
뭔가 기계적 장치나.. 사형수가 사형수를 집행한다거나..
복잡한 일이죠 그래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곤 합니다.
영화학을 전공한 저로서는 애써 발버둥치며 살아온 노력에 비해 아직 성과가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흔들리는 와중에 거의 모든것의 경제학을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시나리오 쓰는 일은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일이고
그 이후에도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은 다가올 실패를 버틸 수 있는 유일한 힘인듯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한국의 하이에크를 추종하는 경제학자들이 그것이 정말 신념에 의한것인지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서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복잡한 문제이지만 최근 복지가 선순환 경제를 만드는 구조인가 의구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 그런 의문에서 상속세와 재벌에 대한 글을 써보았는 데 쉽지 않더군요.
Hubris님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실지..궁금합니다만.. 바쁘시겠지요.
블로그를 지켜보겠습니다.ㅎㅎ
대학생 독자입니다. 강남 교보문고에 Hubris님 책이 프로모션 코너에 한 무더기가 쌓여있는 것을 보고
ReplyDelete하나 냉큼 집어서 읽어보다가 너무 재밌어서, 그 자리에서 구입해서 집으로 오는 길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읽었습니다.
따위가 아니라 Hubris님이 견지하고 계신 그 '삐딱한 시선', Originality 가 뚝뚝 흘러넘치는
글들 때문에 제가, 저희 세대가 요즘 힘들고, 아픈 이유가 이해가 됩니다. 단지 청춘이라서 아픈게
아니더라구요..ㅎㅎ
감사합니다. 기회가 되시면, 책을 또 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블로그 자주 들어오겠습니다.
건승하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중간에 생략된 부분이 있네요.
Delete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읽었습니다. '남들이 쉽게 해줄 수 있는, 흔해빠진 위로나 격려' 따위가 아니라 Hubris 님이 견지하고 계신....
이 부분이 날라가서 댓댓글에 보충합니다.
조금 늦은 리플이지만 책 사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블로그에 대해서는 오히려 구입 후에 알게 되었네요. 다음 편도 기다려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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