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September 22, 2012

젊은 학생들의 고민

어제 친한 형의 부탁으로 학생들에게 간단한 강의를 해주기 위해서 들렸다.  1시간 반 정도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예전 같으면 1시간 정도 금융시장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고 10분 정도는 책에 들어있는 몇가지 이야기를 재밌게 해준 후, 20분 정도는 질문을 받고 끝냈을텐데, 어제는 가급적 책에 있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다 보니(책이 나오니 역설적으로 신경이 쓰인다.  나는 책을 팔려고 간 게 아니니) 본의 아니게 말이 느려지고 시간은 길어졌다.  그래도, 강의가 끝난 후에 몇몇 학생들이 찾아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라고 말해주어서 다행이었다.

어쩌면 학생들 중에서 팔로워가 있을지도 몰라, 팔로워가 있다면 선물할 생각으로, 책 2권을 교보에 들려서 사가지고 갔다.  물어보니, 60명이 넘는 학생들 중에는 아무도 팔로워가 없다.  수업시간에 어려운 질문에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한 학생 둘에게 나눠 주었다.  끝나고 질문을 하라고 했더니 두 명의 학생이 질문을 했다.  재밌는 건 분명히 질문을 하라고 했는데, 두 명 밖에 하지 않더니 강의가 끝나고 와서 찾아와서 질문을 하는 학생은 다섯 명이나 됐다는 것이다.  아마도 자신의 질문은 다분히 개인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학생들이 한 이러저러한 질문들은 대개 내가 학생시절에 했던 고민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대부분 보편적인 것이다.  큰 인생의 결정을 앞둔 시기 거쳐야 할 통과의례일 것이다.

여러 회사를 다녀 보았으니 인사담당자가 채용할 때 어떤 면을 가장 중시하는지 알려달라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인사담당자가 아니라는 걸 전제로 길게 설명했지만 짧게 요약하자면, 1) 기본적인 자격 (생각보다 넓다) 2) 좋은 애티튜드 그리고 3) 말하는 화법이다.  1)은 별로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고, 내 경험 뿐 아니라 주위에서 성공하고 있는 선배와 친구 그리고 후배의 경우를 잘 살펴보면 2)와 3)을 갖추지 못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듯 하다.  3)에 대해서는 최근 능력이 꽤 있는 것 같은데도 말하는 화법이 어른 스럽거나 명료하지 못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던 인턴 생각이 나서 자세히 설명했다.  20대 후반이 되면, 아나운서처럼은 아니더라도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정확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영화 '광해'를 보면 이병헌이 연기하는 두 가지 캐릭터의 명징한 차이가 말하는 톤과 호흡으로 잘 표현된다.  타고나지 않았다면 연습하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따로 찾아온 학생 중에는 대학원이나 유학을 가는 것이 좋으냐는 질문을 한 학생이 있었다.  대학원을 두 개나 잉여적으로 나온 나의 입장에서 보자면, "원하는 이성친구를 얻거나 원하는 회사에 갈 수 없다면 가라. 그렇지 않다면, 학문을 하기 위해서 박사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학원이나 유학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해주었다.  강의 중에 물어보았다면 누구나 지금 혹은 몇년 뒤 고민할, 그래서 내가 자세히 설명해줄 좋은 질문이었다.  짧은 대답, 얼마나 잘 이해했을지 궁금하다.

마침 어제 아침에 싸이가 '엘렌 쇼'에서 공연한 걸 보고 느낀 바가 커서 강의 마지막으로 말해 주었다.  미국에서 활동한 싸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 흐름대로 활동하고 있는 모습이 재밌다.  10년 간 한국에서 갈고 닦은 경험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수 많은 공연장과 무대에서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비록 생경한 낯선 무대이긴 해도 싸이는 임기응변할 수 있다. 금융시장에서 불황과 호황, 탐욕과 공포를 다 거쳐 봐야 위대한 투자자가 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경험이 없어도 잘 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바로 준비가 잘 되어 있는 경우다.  준비가 잘 되어 있으면 생경한 상황도 잘 헤쳐갈 수 있다.  대부분 놀라운 성적을 올리는 신인들은 그런 준비가 잘되어 있는 경우다.  하지만, 신인의 대부분은 2년 차 신드롬을 겪는다.  준비해온 재료가 바닥나고 다시 성공한 신인을 견제하는 새로운 환경이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때부터는 준비한 역량을 경험으로 승화시켜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결론적으로 회사는 학생에게 엄청난 경험 대신 제대로 된 준비를 기대한다는 것.

6 comments:

  1. 그 말씀은 대학원에 가서 더 공부한다면 원하는 여자와 원하는 직장을 가게 된다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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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갖)게 된다.. 라기보단 지금 원하는 대상을 나의 학력/지적수준때문에 얻지 못한다면 그래야 한다 말로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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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렇죠, 저도 갖게 된다는 마치 충분조건 인듯 하지만, 필요조건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원하는 회사에 가고 싶지만, 학력때문에 문제가 된다면 대학원에 가서 그것을 채워라. 라는 의미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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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Hubris 님 글을 매번 고맙게도 보고있는 열혈독자입니다.
    4학년으로 취업과 대학원을 동시에 고려하고 있는 저로서 느끼는 게 많은 글이네요.
    개인적으로 전략 컨설팅 펌 혹은 금융권(프론트 오피스)을 고려하고 있는데..

    흔히 말하는 제 스펙이라는게 남들과는 조금 다른.. 어찌보면 이상한.. 상태이고,
    제가 지금 제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하는지 조차 명확치 않은데..

    혹시 제 커리어에 관련해서 조심스럽지만.. 조언해주실수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조언해주신다고 하시면.. 어떻게 연락을 드려야할지도 궁금하네요^^;;
    바쁘신 일정에 혹시 누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 염치불구하고 tierra_seraph@hotmail.com로
    E-mail 주소 알려주실수 있으신지요?

    아 그리고 제가 해외에 있어서 전자책 발간을 무척이나 고대하고 있습니다~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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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극히 원론적인 것 뿐입니다. 블로그에 올려놓았던 글을 잘 읽어보시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제가 쓴 책도 커리어에 대한 기본적인 조언이 있습니다. 본인이 직접 돈을 벌 게 아니라, 금융기관에서 일하고 싶은 학생이라면, 경영/경제학 공부를 열심히 하시고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 이상의 좋은 방법은 많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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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Hubris/ 답변 달아주신것 너무 감사합니다!

    4학년이 되니 이제는 취업과 진로가 현실로 다가오네요.

    말씀하신대로 예전에 적어놓으신 글들 찬찬히 살펴보면서 생각을 좀 해봐야겠네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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