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ugust 29, 2012

로드리고 코르테스, 레드 라이트

태풍을 뚫고 로드리고 코르테스의 'Red Lights'를 봤다. 심리학자인 시고니 위버와 물리학자인 킬리안 머피는 교수이면서 가짜 무당과 가짜 신비현상의 진상을 파헤치는 일을 한다. 이 영화의 첫 시작은 이 두 사람이 귀신이 나오는 집에 진상을 파악하러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알고 보니 다시 옛날 동네로 이사가길 원하는 꼬마 여자아이들의 소행이 가짜 심령술사의 등장과 맞물려 벌어진 해프닝. 그다지 매력적인 에피소드는 아니다. 영화는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하는 사이먼 실버라는 눈먼 초능력자가 30년만에 등장하면서 제대로 된 긴장감을 갖추기 시작하지만, 코르테스가 헐렁한 이야기에 긴장감을 주기 위해서 우연적 사건과 음향을 과용하다 보니 오히려 설득력을 잃고 표류한다. 다만, 시고니 위버와 관련된 마지막 에피소드는 굉장히 강렬하다. 이 영화는 이 에피소드를 보여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시고니 위버는 로버트 드 니로의 대변인이란 여자와 다른 몇 명의 심령술사와 TV 토론회에 참석한다. 심령술사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하던 그녀에게 로버트 드 니로의 대리인인 졸리 리차드슨(용문신을 한 소녀의 아니타 뱅거)이 묻는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을 믿나요"
"나는 현상을 이해하려고 할 뿐 아무 것도 믿지 않아요"
"무엇이 그렇게 당신에게 그런 큰 상처를 줬나요?"

한때 기독교인이었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믿음을 잃었음을 암시하며 시고니 위버는 토론회장을 박차고 나가버린다. 그녀에게는 4살때 넘어져 의식을 잃은 후, 20년간 식물인간의 상태로 살아오고 있는 아들이 있다. 킬리안 머피는 로버트 드 니로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시고니 위버는 그가 위험한 사람이기 때문에 멀리 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내가 그와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불꽃튀게 싸웠지. 둘 다 젊었거든. 한창 논쟁하고 있는데 그가 내쪽을 바라봤어. 내 옆을 응시하더니 이렇게 말하더군. 어린 아이가 당신 옆에 서 있군요. 이제 그만 자기를 놓아달라고 하네요. 이제는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그 말에 화가 났지만, 그 말에 무너지고 말았어. 나 역시 그 말이 너무 믿고 싶었거든. 그는 사람의 약점을 잡고 흔들어. 너무나 위험한 사람이야. 가까이 하지 말고 떨어져"

"나는 현상을 이해하려고 할 뿐 아무 것도 믿지 않아요"라는 시고니 위버의 말을 2천년 전 공자도 그대로 한 적이 있다.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할 줄 알면 가히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시고니 위버는 냉철한 삶 속에서의 깨달음을 포기하고, 현세의 위로나 사후의 위안을 선택하고 싶은 인간적인 유혹에 흔들린다. 하지만, 그런 끌림에 굴복하는 대신, 그녀는 초자연적인 세계를 부정하고 비과학적 설명을 혁파하려는 시도를 하다가 쓸쓸히 죽는다. "진실을 아는 것은 마치 뼈를 물고 있는 개가 뼈를 빼앗기는 것 같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런데, 궁금하다. 과연 개에게 꼭 뼈를 빼앗아야 하는 것일까. 뼈를 원하는 개가 나쁜 것일까, 아니면 개에게 뼈를 주는 대신 개의 살과 가죽을 원하는 인간이 나쁜 것일까.

6 comments:

  1. 언젠가 인류의 문명이 발달하다 보면 이런 대화가 자연스러운 때가 오겠죠.

    "그렇다면 혹시 당신은 무엇을 믿나요"
    "나는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절대자의 존재를 믿어요."
    "무엇이 그렇게 당신에게 그런 큰 상처를 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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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ankertrust입니다.

    사후세계와 형이상학은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해 한없는 위안을 주지요. Marx가 말한 "인민의 아편"은 현실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필요하기도 합니다.

    불교든 힌두교든 윤회는 인도 문명의 기저가 되는 중요한 생각이고, 경우에 따라 현실의 고통에 큰 위안이 되지만 한편으로, 그 위안 때문에 인도는 아직도 엄청난 사회적 불평등과 계급이 유지되고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말씀하신 공자의 그러한 태도는 인도에서는 21세기에도 존재하는 (그리고 앞으로도 존재할) 신분제를 10세기에 타파할 수 있었던 중국 문명의 저력이라고 생각 합니다.

    PS)민주당 경선과정에서 보여준 손학규의 태도는 왜 그가 한 국가의 대표가 되기에 부족한 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오랜기간의 운동권 경력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으로 정치에 입문하고, 거기에서 20년 가까히 몸담고 있다가, 경선 불복의 냄새가 짙은 한나라당의 탈당과 민주당 입당이라는 정치 경력이 현재 경선과 관련한 그의 태도와 연결하여 생각해 볼 때 결코 우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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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손학규가 경선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제가 잘 알지를 못해서. 경선 결과는 별 이변이 없을 거 같아요. 그 뒤가 문제인데, 다들 동상이몽인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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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좋은 글 잘 읽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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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bankertrust입니다.//


    경선과정에서 초반 2연패후 김두관과 경선과정을 문제삼으면서 경선 보이콧 선언을 하면서 민주당 경선에 초를 제대로 치셨죠.

    문제가 된 휴대폰 투표 절차의 문제는 너무나 사소한 문제로 밝혀지고, 해당되는 투표수도 워낙 적어서 누가 봐도 어이 없는 얘기라 욕만 디립다 먹고, 다음날 경선 복귀 선언.

    그리고 나서 요즘엔 당대표(이해찬)와 특정후보간의 유착을 열심히 문제삼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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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결국 성격탓이 큰 것 같아요. 가끔 정말 독실한 신앙인들의 단단해보이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때로는 다 포기하고 믿고 싶지만 성격상 그럴 수가 없는거죠.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거죠..
    하지만 산타를 믿고 행복해지는 것과 안믿고 쓸쓸해지는 것 중 뭘 선택한들 뭐가 나쁘다고 말할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사실 전자가 부러운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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