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December 31, 2011

Happy New Year!

2012년에 일어날 것 같은 일 다섯 가지.

1. 한나라당의 총선 패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면 그대로 잘 가지 않지만, 이번은 예외가 될 듯.
2. 상반기 주식 시장의 하락 조정. 향후 2년을 놓고 본다면, 살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일 듯. 좋은 회사를 미리 골라 놓고 기다린다.
3. 오바마의 당선. 지금의 공화당을 상대로라면, 내 눈엔 떨어지는 게 더 어려워 보인다. 대선시장(大選市場)이란 게 있다면, 민주당 롱 공화당 숏 포지션.
4. 박근혜의 패배. 지금의 박근혜가 처한 상황은 3년 전 맥케인이 처했던 상황과 같다. 보수는 왜 박근혜가 되야 하는지 말하지 않고, 왜 안철수가, 왜 문재인이 되면 안 되는지 말하고 있다.
5. 소녀시대. 그들 중 한명이 시집 갈 것 같다. 라라라-

Happy New Year!

Friday, December 30, 2011

한국의 미래, 나의 미래

어제 금호 아트홀에서 열린 금호 아시아나솔로이츠 공연을 모친과 큰 아이를 데리고 다녀왔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한 이후 어제가 네 번째로 데리고 간 공연이다. 한번은 몸이 안 좋아서 도중에 데리고 나왔고, 두 번은 인터미션 이후에 잠이 들어 버렸다. 어제도 전반부의 라벨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소나타에서 좀 졸려하더니(곡 자체가 쉽지 않았다), 쇼스타코비치의 현악 사중주에서 약간 잠이 들었다가, 후반부의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트리오에서 아이는 완전히 잠에 빠져들었다. 라벨의 곡이 연주될 때만 해도 행여나 아이가 내는 소음이 공연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신경이 쓰였는데, 후반부의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트리오인 '위대한 예술가를 기리며'에서는 완전 몰입이 되여, 아이에게 신경을 쓸 여지가 없었다. 단연 올해 최고의 공연.

권혁주(바이올린), 손열음(피아노), 김민지(첼로)의 연주를 들으면서 여러번 울컥했는데,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이렇게 마음 속에서 뜨거운 것이 차 오르는 경험을 한 건 얼마 만인지. 이 정도의 작은 공연장에서, 20대 젊은 연주자들이 어렵기로 유명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트리오를 저렇게 완벽하게 연주할 수 있는 나라가 과연 세상에서 몇 나라나 될까? 대중가요에 한류 열풍이 있지만, 한국 클래식 연주자들도 그에 못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지 2년 쯤 되는 것 같다. 아슈케나지가 피아노 연주를 사실상 중단하고, 벤게로프가 바이올린을 놓아버린 지금, 설령 그들이 돌아온다고 해도, 예전만큼의 기대감이 생기질 않을 것 같다. 요즘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으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그들의 연주를 듣다 보면, 요새 젊은 친구들은 모든 분야에서 이토록 대단한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마지막 3악장에서 권혁주의 바이올린이 1악장의 주제를 다시 반복할 때 손열음의 건반이 차분하게 치고 나오고, 김민지의 첼로가 받쳐줄 때, 가슴을 때리던 그 느낌, 그 근저에 깔린 균형감과 자신감과 확신이 주는 감동을 쉽게 잊기는 참 어려울 것 같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혹은 국가든 그들 각각이 가진 에너지의 총량은 저마다 다르고 변화무쌍하다. 예를 들어서, 한때 세계를 삼킬 기세로 성장하던 일본은 어느 순간부터 고이고 정체되고 썩어버렸다. 일본에게서 다른 나라들이 자극받을 수 있는 에너지의 기세는 이제 너무 작은 듯 하고, 쇠락하는 추세에 저항하던 개개인 일본인들의 노력은 사회 전반적인 침울한 분위기에 함몰되어 버리는 느낌이다. 한국도 일본 못지 않은 폐쇄성을 가진 나라였던 것 같은데, 그것을 돌파하려는 개인의 에너지는 사회의 폐쇄성과 부딪치면서 묘한 상승효과를 내더니, 파괴력에 가깝다 싶을 정도로 에너지를 발휘한다. 도무지 이 나라에서는 심심하고 무료해 할 시간이 별로 없다. 그건 단순히 어떤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치, 경제, 문화, 체육, 그리고 연예계까지 사건은 끊이지 않고, 상당히 다이나믹하며, 게다가, 그 역동성에는 묘한 방향성이 있어서 어쨋든 진화하고 진보하고 있다는 기대를 걸게 한다. 가끔 이명박같은 퇴행적이고 시행착오적인 인물이 있기는 하지만, 그에게 저항하는 에너지를 분출하는 모습으로 또 다시 박력을 과시한다. 최근 2년의 한국이 뿜어내는 정치적 에너지는 부시를 대통령으로 둔 미국의 마지막 2년에 비할 바가 못된다.

아마도 이런 한국이 가진 에너지의 총량은 각개격파로 자신의 역량의 최대치를 끊임없는 노력으로 끌어올리려는 개인들에 의해서 증가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제 공연에서 봤듯이 그들의 그런 에너지는 끊임없는 노력과 치열한 연습이 없이는 이루기 불가능한 것이다. 소녀시대 9인의 황홀한 군무(群舞)에서부터 젊은 클래식 연주자들의 현란하고 깊이있는 연주까지, 어쨌든 모두 전문가라고 불리기에 충분한 실력들을 갖고 있다. 실력이 바탕이 되기 때문인지, 일단 궤도에 오르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하면 여간해서는 잘 내려오지도 않는다. 그리고, 인기의 영역은 점점 확장된다. 심지어 국경의 장벽도 뛰어 넘는다. 그들이 다른 나라의 어떤 무대에 서도, 그들의 얼굴에서는 자신감과 자부심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들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고, 그 실력은 모두 치열한 연습과 훈련에서 나오는 것이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런 면모는 예외없이 발견된다.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보자면, 여러가지 사회적 혹은 다른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을 늘리기 위해서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정답이다. 예를 들어,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학교에 있는 학자는 물론이고, 금융시장에 있는 애널리스트와 트레이더도 기본은 리서치가 되어야 한다. 사고의 깊이는 정보의 총량을 늘리임으로서만 확장될 수 있고, 본인이 지적(知的)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도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쓴다고 해도, 개인이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절대량에서 차이가 심각하면 사실상 의미있는 경쟁이 어렵다. 아무리 열정이 있다고 해도, 그러한 차이는 본격적인 경쟁의 국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나는 가수다"에서 반복해서 목격한다. 경쟁, 그것도 목숨을 건 경쟁, 에서 개별 인간의 에너지의 총량의 사이즈는 감추어지기 어렵다. 단순한 노래 실력의 문제가 아니다. 열정은 물론, 경연을 대하는 전략, 마음 상태의 발란스까지 포함한, 개인의 총체적인 에너지의 문제다.

에너지의 총량을 늘리는 것이 대충 마무리되면, 이제 우리는 그 역량을 잘 배분해 써야 한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 아니라 분산과 분할은 실패하는 지름길이다. 세상에는 공부도 잘하고, 연애도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말 엄청난 승부를 앞두고 연애도 잘 하고, 공부도 잘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뿐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불가능하다. 그렇게 보이는 사람도 있을 수도 있지만, 다른 일에 한눈을 팔지 않았다면, 본업에 '더욱' 성공했을 것이다. 올해를 돌아보면, 나 역시 골프를 그만 두었기 때문에, 다른 많은 일(독서, 피아노, 글쓰기, 보컬 트레이닝)을 할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 역시 애플에 돌아온 다음에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을 할 것인가, 여부를 결정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지 말 것인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트레이딩에서도 이 원칙은 마찬가지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를 고민해서는 에너지를 진짜 효율적으로 쓰기 어렵다. 정말 승부하기 위해서라면, 일단 우리는 무엇을 접고, 무엇에 몰입할 것인지 먼저 정해야 한다.

이렇게 집중하고 몰입하는 젊음을 보게 되는 건 기쁜 일이다. 이런 역동성이 깔려 있는 한국의 미래는 참 밝다. 앞으로 20년은 끄덕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이 경우에 따라서 좌절스러운 일도 많지만, 또 한편으로는 참 신나고 재밌는 일이다. 다만, 한국의 미래가 밝다는 사실이 꼭 내 미래가 밝은 걸 의미하는 걸 아니란 사실은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어떤 이유로든 가장 중요한 시기에 에너지를 쌓거나 잘 배분하는데 실패한 사람들에게는 참 힘겨운 곳이다. 이곳은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아직은 한참 모자라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아직 한국 금융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역량은 상대적으로 다른 분야보다 떨어지는 듯 하고, 그것은 참 쪽 팔린 일이다. 더 공부하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깨닫는 수 밖에 다른 길이 없다. 나 자신도 반성해야 할 듯.

김문수의 119

경기 도지사 김문수는 119에 전화를 해서 자신이 도지사라고 말했다. 그가 도지사인 것은 사실이고, 도지사인 자가 자신이 도지사임을 밝힌 것은 예의에 맞고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도지사임은 계속 밝혔지만, 긴급전화 119에 전화를 건 용건은 끝까지 밝히지 않았다. 긴급전화에 전화를 해서 용건을 밝히지 않은 채, 자신이 도지사 처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고 반복적으로 주장할 경우에, 그 전화는 장난전화이고 그 전화를 건 자는 대낮에 긴급전화에 전화를 해서 장난을 치는 정신나간 놈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추론이다. 물론, 0.1% 퍼센트의 가능성으로 전화를 건 자가 도지사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긴급전화 119에 전화해서는 자신이 오바마 대통령이라고 주장하거나, 외계인이 공격하고 있으니 구해달라는 전화가 사실일 가능성과 비슷하게 낮은 확률일 것이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소방공무원은 설령 그가 정신나간 놈들중에 하나라고 해도 세금을 내는 시민이고, 그런 시민에게 짜증이나 무례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계속해서 무슨 일로 긴급전화를 걸었는지 묻고, 통화를 중단했다.

김문수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의 실체는 두 가지다. 첫째, 지극히 상식적인 대응을 해도 몰상식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은 막연한 분노 뿐 아니라, 분명한 공포를 준다. 우리가 선출했고 앞으로도 선출할 선출직 공무원 때문에 그 정도로 불합리한 공포를 느끼는 것은 뭔가 잘못된 일이다. 둘째, 사람들은 공개된 녹취 파일에 의해서, 그가 생각(혹은 기존의 이미지)보다 굉장히 비상식적이며, 자기 중심적이란 걸 알게 되었다. 김문수는 그 사건 이후에 마치 사람들이 녹취 파일을 듣지 못한 것처럼, 자기중심적인 변명으로 일관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분노와 공포 뿐 아니라 짜증까지 느끼게 되었다.

우리는 지극히 비상식적인 사건에 대해 일어나는 지극히 상식적인 반응을 보고 있다. 아마도 앞으로 우리가 보게 될 이 사건의 함의는 다음 두 가지일 것이다. 첫째, 다음 번 선거까지 김문수는 이 사건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 즉, 1)반성이냐 2)부인(denial)이냐 아니면 3) 망각이냐, 하는 것과, 둘째, 사람들은 과연 김문수의 그런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할 것이냐? 1) 용서냐 아니면 2) 처벌이냐, 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인간(타인 뿐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에 대해서 깊히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물론, 그런 기회를 안 가졌으면 더 좋았겠지만.

http://youtu.be/9Xo51g_2Pek

Thursday, December 29, 2011

교육의 경제학

캐나다 퀸즈 대학의 Weili Ding과 Steven F. Lehrer는 몇년 전에 "Do Peers Affect Student Achievement in China's Secondary Schools?"라는 working paper를 발표했다. 데이타는 중국의 것인데, 내용은 이렇다.

"우리는 성취도가 높은 친구들을 사귀는 경우와 친구들의 질이 비교적 균질한 경우 상당한 편익을 얻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성취도와 관련된 친구들의 질이 1% 증가할 때의 한계 효과는 본인의 초기 성취도가 8%-15% 증가하는 효과와 같았다. 우리는 또래 집단 효과가 이질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아냈다. 높은 성취도의 학생일수록 높은 성취도의 친구들을 얻었을 때와 또래의 질이 균등한 때의 편익이 컸다."

하버드 대학 경제학과의 맨큐가 이 논문의 함의를 더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당신의 아이를 성취감이 높은 클래스(혹은 학교)에 보내야 한다.
둘째, 당신의 아이를 비교적 균질한 수준을 가진 또래들과 사귀게 해야 한다.
세째, 당신의 아이가 똑똑한 아이라면 특히 더 그렇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론은 개인의 교육에 대한 선택 뿐 아니라, 정책적으로도 의미가 있을까? 물론 그렇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를 성취감이 높은 클래스에 보내려고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결국 아이들은 자신들의 성취감(학업 성취도)에 따라서 분류될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아이를 성취감에 높은 클래스에 보내려고 한다면, 자신의 아이만 우수한 클래스로 살짝 편입되는 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년 3월에 뉴욕 타임즈도 비슷한 이슈를 다른 적이 있다. "Building a Better Teacher"에 따르면, 비슷한 수준을 가진 아이들을 추려내기 위해 능력을 검증하는 작업을 거쳐 능력별로 아이들을 나누면 그렇게 하지 않는 것 보다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하지만, 성취감이 높은 클래스의 경우의 성취도는 성취감이 낮은 클래스의 경우보다 훨씬 더 높을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효율성은 높이지만 불평등은 증가시킨다.

통계학자인 윌리엄 샌더스에 따르면(역시 뉴욕 타임즈의 기사에서 인용) 능력 없는 교사에게 3년을 배운 학생은 능력 있는 교사에게 3년을 배운 학생에 비해서 2배는 뒤떨어진다고 한다. 스탠포드 대학의 경제학자인 에릭 하누쉐크 교수는 상위 5% 안에 드는 교사와 하위 5% 안에 드는 교사 사이에 일 년에 가르치는 것의 효과는 거의 1년 반어치의 가르침 차이가 난다고 한다. "Most Likely to Succeed- How do we hire when we can’t tell who’s right for the job?"에서 말콤 글래드웰도 ‘나쁜 학교에서 좋은 교사를 만나는 게 좋을까, 좋은 학교에서 나쁜 교사를 만나는 게 좋을까’라는 흥미로운 질문에 대해서 교사가 아이의 학습에 미치는 영향은 학교가 미치는 영향을 가볍게 압도하며, 나쁜 학교에서 좋은 교사를 만나는 게, 좋은 학교에서 나쁜 교사를 만나는 것보다 훨씬 낫다, 고 결론 내린다.

이런 저런 연구 결과들을 종합하면, 개인과 정부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이를 위해서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능력별로 아이들을 분류하는 것이 효율성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면, 성취도가 낮은 클래스의 아이들을 위해서는 훨씬 능력이 좋은 교사를 확보해주는 것이 사회적 공정함을 위해서 옳을 것이다. 개인으로서는, 그런 정부가 되도록 사회적 컨센서스를 모으면서도, 자신의 아이의 성취도를 끌어올리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된다면, 뛰어난 교사가 있는 학교로 아이를 보내는 것이 좋은데, (여러가지 의미에서) 슬프게도 많은 연구 결과들은 가장 좋은 교사는 부모 자신임을 보여주고 있다.

Wednesday, December 28, 2011

유전과 환경과 의지

주말에 본가에 들렸다가 강남의 초등학교 아이들이 다닌다는 논술학원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앞으로 특목고 입학을 위해서 차별화가 가능한 재능은 글짓기 정도일 뿐이고, 글짓기를 잘 하기 위해서는 논술을 미리 공부해야 한다는 형수의 생각에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시험이란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데, 시험을 어떻게 디자인 하느냐에 따라서 공정성의 디테일은 크게 바뀐다. 논술과 수학을 강화하면 부자와 남자애들에게 유리하고, 외국어 비중이 커지면 부자와 여자애들에게 유리해진다.

도정일과의 함께 한 '대담'에서 최재천은 유전에 관한 재밌는 에피소드를 말한다.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blank plate)에 나오는 이야기. 생화학자 조지 월드는 노벨상 수상자라는 이유로 윌리엄 쇼크리 정자은행으로부터 정액 샘플을 요청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자를 생산하는 정자를 원한다면 우리 아버지처럼 외국에서 이민 온 가난한 재단사를 만나보시오. 내 정자에서 무엇이 나왔는지 아시오? 두 명의 기타리스트요!"

강남의 논술 교육은 효과적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비싼 돈을 내고 아이들을 보낼 리가 없다. 그리고, 재정적인 형편 때문에 그 논술 교육을 받을 수 없지만, 논술교사나 심지어 그 논술을 채점할 대학교수보다 뛰어난 글을 쓰게 될 아이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비싼 교육으로도 타고난 유전형질을 극복할 수 없는 게 비극이지만, 좋은 유전형질을 타고 났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해서 그 꽃을 활짝 피우지 못하는 것 역시 비극이다. 국가와 사회는 후자의 비극은 완화하고 해결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

영화 'Gattaca'에서 에산 호크는 유전적 불리함과 환경의 열악함을 불꽃같은 '의지' 하나로 극복해낸다. 타고난 능력도 형편없고 교육을 통해 타고난 능력을 보완할 환경마저 차단된 에산 호크가 처한 현실은 사실 대부분의 평범한 인간들이 처한 현실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옥수수로 태어난 것이 운명이라면, 옥수수의 유전형질을 조작해서 옥수수의 알갱이를 늘리는 것은 과학(처럼 보이는 교육)일 것이고, 힘이 센 부모라면 옥수수의 유통과정에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옥수수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옥수수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는 수 밖에 없다. 아마, 모든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 가지는 궁극의 안타까움은 바로 그 "의지"에 관한 것 아닐까.

진화론의 진화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 의하면, 진화론은 다윈에 의해서 최초로 주장된 것이 아니었다. 다윈은 진화론을 최초로 주장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종의 기원'이라는 책 제목과는 달리 종이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할 수도 없었다. 1809년 2월 12일에 태어난(이날은 링컨이 태어난 날이기도 하다) 다윈은 23세가 되던 해에 비굴호를 타고 1931년부터 1936년까지 항해에 나섰다. 의학도 법학도 포기하고, 캐임브리지에서 아무런 노력없이 신학 학위를 받은 다음이었다. 5년간의 항해에서 돌아와서 1844년까지 그는 자신의 새로운 이론을 스케치하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갑자기 15년 동안 다른 일에 빠져버렸다. 8명의 자식을 낳았고, 8년 동안 따개비에 대해 책을 썼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한 병에 걸려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 그 후유증으로 한번에 20분이상 일할 수 없었고, 절망적인 치료방법(얼음과 식초에 목욕을 하는 따위의)에 매달렸다.

1844년, 로버트 체임버스가 익명으로 '창조의 자연사적 흔적'이라는 책을 발간하자 학계의 분노는 대단했다. 인간이 열등한 영장류에서 신의 도움없이 진화했다는 주장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이론이 심한 논란을 일으킬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던 다윈은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았고, 1844년에는 모든 노트를 치워버리기까지 했다. 죽기 전까지도 숨겨져 있을 뻔 했던 원고는 러셀 윌리스라는 젊은 식물학자가 다윈에게 다윈의 이론과 거의 유사한 자연선택 이론을 설명하는 원고를 보내면서 세상에 빛을 보게 된다. 오랜 시간을 두고 완성한 자신의 체계적인 사고의 산물이 윌리스의 한순간의 번뜩인 통찰력과 거의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된 다윈은 참을 수 없는 부당함(윌리스의 발표를 방관하면 이론의 권리를 잃고, 우선권을 위해 서둘러 발표하면 순진한 자를 악용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리는 상황)을 느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1858년 7월 1일에 다윈과 윌리스의 이론은 공동으로 발표되었다. (다윈은 이날 회의에 참석하는 대신 성홍열에 걸렸던 막내아들을 묻어주고 있었다.)

윌리스가 이후 심령술과 같은 이상한 연구에 흥미를 가지면서, 진화론은 다윈 혼자만의 이론이 되어 버렸다. 그는 자신의 이론 때문에 끊임없는 괴로움을 당했고, 자신의 이론이 신앙심 깊은 아내에게 큰 고통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원고를 정리해 책으로 발표했다. 그의 책, '종의 기원'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다윈의 비판자들의 공격대상이 되었다. 그의 이론이 요구하고 있는 중간 형태의 화석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질학적 시간이 엄청나게 길어야 한다는 이유로 다윈의 주장을 싫어했던 급진적 진화론자 헉슬리는 다윈이 '종의 기원'을 개정할 때마다, 진화에 필요한 시간을 점점 늘여 주장하자 더욱 분노했다. 무엇보다도, 다윈의 이론은 한 종이 어떻게 더 잘 적응(강해지거나 혹은 좋아지거나)하게 되는가는 설명해주었지만, 어떻게 새로운 종으로 자라게 되는가는 아무런 설명도 주지 못했다. 즉, 제목과는 달리, 종이 어떻게 등장하게 되는가는 설명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 세대에서 나타나는 좋은 형질은 반드시 후속 세대에 전해져서 종을 강화시켜준다고 "믿었던" 다윈의 이론을 제대로 "설명"한 것은 다윈이 아니라, 그레고르 멘델이라는 은퇴한 수도자였다. 그는 3만 그루의 완두를 이용해 교배와 잡종 교배를 반복해, 성장과정에서의 모든 변이와 씨앗, 잎, 줄기, 꽃의 모양 등을 철저히 관찰했다. 우성(dominant)과 열성(recessive)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한 것도 먼델이었다. 멘델이 알아낸 것은 모든 씨앗에는 우성과 열성 인자가 있으며, 그런 인자들이 합쳐지면서 후손에게 전해진다는 것이었다. 8년에 걸쳐 그 사실을 다른 식물 실험으로 확인한 그가 정교한 수식으로 정리해 발표한 것은 1865년이었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호응을 받지 못했다. 이해받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실망한 멘델은 유전에 대한 연구를 포기하고, 나머지 여생을 채소를 기르고, 벌과 쥐, 태양의 흑점을 연구하면서 보냈고, 수도원장이 되었다.

다윈은 일생 동안 여러 차례 영예를 얻었지만, '종의 기원' 때문은 아니었다. 1930년대와 40년대, 멘델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이론이 다윈의 이론과 합쳐진 현대 종합 이론이라는 이론이 등장하면서 비로서 다윈의 '종의 기원'은 인정을 받았다.

비극

이덕일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에 의하면, 형조참의를 제수받았던 1799년의 정약용은 실제로는 형조판서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를 신임한 정조가 형조판서 조상진에게 실질적인 전권의 위임을 명했기 때문이었다. 18세기 말의 조선이 극도의 폐쇄사회였기 때문인지, 정약용과 정조는 큰 형사사건의 경우에 일종의 고등법원과 대법원 판사 역할을 했었던 모양이다. 사형수 함봉련 사건은 살인범이었던 함봉련의 사형집행을 '진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정조 자신이 7년간이나 연기하고 있다가 정약용이 재수사하면서 혐의 불분명으로 석방한 사건이었고, 황주백성 신저실 사건은 돈 2전 때문에 다툰 황주백성 신저실이 상대를 지겟작대기로 밀어낸다는 것이 항문을 찔러 죽게 한 사건을 정약용이 사형을 면하게 해준 사건이었다. 신저실 사건에 대한 정약용의 판단에 정조가 동의한 논리가 재밌다.

"지극히 조그만 것이 항문이고 지극히 뾰족한 것이 지겟작대기 끝이다. 지극히 조그만 구멍을 지극히 뾰족한 것으로 찌른 것은 천하에 일어나기 어려운 것이로 지극히 우연한 일이다"

계획적 살인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의 구별이 조선형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았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정조는 훌륭한 임금이었지만, 조선의 비극은 그 훌륭함의 자의성에만 일국의 성쇄를 의존했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정조는 언제나 구조적 개혁에 몰말라 했지만, 언제나 정치적 힘의 부족으로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조선 후기 가장 강력한 지성으로 노론 벽파의 집요한 정치적 공세를 방어하면서, 가장 힘있는 왕권을 이룩했던 정조의 사후, 조선은 빠른 속도로 모락하게 된다. 그 이후에 전개되는 인간 사냥의 광풍에 정약용의 형제들은 맥없이 쓰러지고, 희대의 천재라던 이가환이 몰고(몰매를 맞고 죽음)를 맞게 되는 것은 그 비극의 정점이다.

인센티브

'그 모든 것의 역사'에 따르면, 초기 인류의 유골을 발굴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활동하던 랄프 폰 쾨니히스발트는 지역 주민들에게 사람 유골 조각 하나를 찾아오면 10센트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 유골들은 간동의 솔로 강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솔로인으로 불리게 되었지만, 쾨니히스발트는 솔로인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유골 하나에 걸린 더 많은 10센트의 상금을 타기 위해서 주민들은 큰 조각을 열심히 쪼개버렸던 것이다.

불완전한 인센티브 전략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

Friday, December 23, 2011

오늘의 어록

"운에만 맡겨버리면, 더 이상 행운을 잡을 수 없게 된다."

-팻 라일리(Pat Riley)-

니얼 퍼거슨, 금융의 지배

좋은 역사책을 읽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역사에서 인간 보편의 속성을 깨닫기란 지루하고 고단한 일이지만, 일단 발견하기만 한다면, 그 어떤 경우 보다도 확고한 입장을 갖게 된다. 그런 경험을 하게 해주는 책이 몇 권 있었다.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그리고 시앙쯔의 "황궁의 성". 이들의 책은 솔직하고 적나라하며 부지런하다.

우리는 과학에 대해서 편견을 갖고 있다. 과학은 어렵다.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과학에 대해서 갖는 정보는 한쪽 방향뿐이다. 저자로부터 독자로 일방적으로 주입된다. 과학은 합리성과 이성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과학자가 아닌 기독교 복음주의자가 과학자의 설명에 의해서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는 일은 여간해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어차피 그들의 설명은 일방적이고, 대부분의 사람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빅뱅이론은 창조론 만큼이나 허무맹랑하며 근거가 없다. 그렇지만 과학의 역사를 다룬 책이라면 어떨까. 우리는 과학 자체의 설명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과학적 사실이 발견될 때마다 사람들이 그 사실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게 된다. 사람들이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에 반하는 사실을 마주할 때 보이는 몇 천년 동안의 반응을 보는 일은 과학적 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보는 것만으로 우리는 훨씬 더 많은 걸 깨닫고, 얻게 된다.

우리는 성에 대해서 편견을 갖고 있다. 성에 관한 지식은 왜곡되어 있고, 성에 대한 경험은 아무리 카사노바라가 해도 제한되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종교과 철학과 체면을 위해서 성을 왜곡한다. 누구도 성에 대한 실체와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계급 양상이 복잡해지고, 계급 분포가 변동하면서, 그리고 낭만적 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적 기대가 높아지면서, 성은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되어간다.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하든, 성에 대한 현실은 이해와 괴리되어 있다. 하지만, 성이란 자원에 대한 접근이 사실상 무한대였던 중국 황제의 행동의 패턴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면서, 성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다소 냉소적인 결론으로 수렴된다. 성에 관한 도덕주의자 혹은 금욕주의자들은 다 각기 나름의 제한된 자원하에서 최대한의 효율적 접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 그들의 도덕 혹은 신념자체가 고귀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금융에 대해서도 편견을 갖고 있다. 금융은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고, 금융업자들은 아무 것에도 기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묵묵히 무엇인가를 만들고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사람들 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어 간다. 게다가, 그들의 탐욕에서 기인한 오류와 실수로 인해서 생긴 온갖 위험은 금융의 바깥에 있는 선량한 사람들의 삶을 황폐화시킨다. 하지만, 금융업자들의 삶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위기의 절정에서도 살아남고, 책임을 회피하며, 또 다음 위기를 조장한다. 하지만, 금융의 역사를 알 게 되면, 그러한 금융의 속성을 비난하는 것은 부질없는 것이란 것을 알게 된다. 섹스는 세상에 많은 문제를 만들어 내지만, 우리는 섹스 없이는 살 수 없다. 성적 욕망은 존경스러운 종교지도자를 파멸시키는 범인지만, 그것 없이는 지금의 인류도 없다. 마찬가지로, 금융은 주기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만, 금융 없이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 윤택함의 상당 부분은 없다. 금융의 역사는 곧 경제 발전의 역사다.

니얼 퍼거슨은 몇가지 핵심적인 주제를 다룬다. 채권시장의 역사. 보험의 역사. 부동산 시장의 역사. 은행의 역사. 중앙은행의 역사. 그리고 버블의 역사. 그것들을 읽어가면서 우리는 다음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금융의 발전 없이는 근대 국가의 발전도 없었다. 다른 말로 하면,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은행과 채권 시장의 발달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네덜란드와 영국의 부흥은 기업 금융없이는 불가능했다. 지금의 미국 제국의 위용도 보험과 모기지 금융 그리고 신용의 발달 없이는 지금보다 초라했을 것이다. 이렇듯, 금융의 발달 없이 국가의 발전이 불가능했다면, 금융의 이해 없이는 개인의 성공도 쉽지 않았을 것임을 알 수 있다. 불가능하지 않지만, 비약적이기 어렵다. 과연 미국 자본시장이 없었다면, 지금의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있을 수 있었을까? 그런데 바꿔 말하면, 금융의 발전과 금융의 도움이 가져 온 개인의 비약적 성공의 이면에는 금융에서 소외된 개인의 경제적/사회적 소외가 있다. 닐 퍼거슨은 말한다.

"전 세계 금융 시장 통합이 더둑 진척될 수록 금융 지식이 풍부한 사람에게는 어디서든 기회가 더욱 많이 보장되며, 금융적으로 무지한 사람은 사회적으로 낙오될 위험이 더욱 높아진다. 전반적인 소득 분배상황을 볼 때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미숙련 노동과 반숙련 노동의 대가에 비해 자본 이득이 상대적으로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정통함'에 대한 보상의 격차가 이렇게까지 벌어진 적은 없었다. 게다가 금융적 무지에 대한 불이익은 너무나 가혹하다." (19)

금융의 역사는 곧 시장의 역사이기 때문에, 금융의 역사를 읽으면서 우리는 시장을 이루고 있는 인간의 속성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 성찰해 보게 된다. 개개인의 지적 능력은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시장이 반영하고 있는 집단 지성의 수준은 개인 보다 높다. 그것을 과신하면, 시장의 모든 정보를 효율적으로 반응하고 있다고 믿게 되며, 세상에 검은 백조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역사의 시계를 길게 보면 볼 수록, 세상에는 수 많은 검은 백조가 존재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할 뿐이란 걸 알게 된다. 불확실성과 위험은 분명히 다른 것인데, 금융시장은 때때로 그 둘을 혼동한다. 문제는 그 혼돈이 과학과 종교, 사랑과 성욕을 혼돈하는 것보다 더 큰 혼란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러시안 룰렛 게임은 위험에 관한 것이만, 내일의 이자율은 불확실성에 관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미래를 예측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아는 것은 (그것이 단지 내일의 일이라 해도) 사실상 없다. 시장이 때때로 보이는 광폭한 반응(예컨대 북한 김정일의 죽음에 대한 코스피의 반응)에는 어떤 합리적인 구석이라고는 별로 없다. 물론 시장은 다시 평온함으로 돌아가지만, 그 짜증섞인 반응에는 묘한 규칙성이 있다. 그리고 그 규칙성은 금융의 역사가 일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Wednesday, December 21, 2011

애플의 미래

아이들의 관심은 1년 전만 해도 '메탈 베이 블레이드'라는 만화영화에서 등장하는 팽이였다. 그게 '유희왕'이란 만화의 카드 게임으로 옮겨가는 듯 하더니, 이제는 '앵그리 버드'로 완전히 쏠려버린 느낌이다. 어제 밤에는 둘째의 간곡한 부탁으로 저녁을 먹고 앵그리 버드 스티커를 사러 갔다. 오늘 아침에 유치원 방학식을 앞둔 둘째가 유치원을 가지 않겠다고 땡깡을 부렸는데, 갔다 오면 앵그리 버드를 5분 동안 하게 해 준다고 했더니, 벌떡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스티커와 뱃지, 그리고 인형에서 필통까지 온 집안에 앵그리 버드들이 즐비하다. 많은 게임이 있지만, '앵그리 버드'에 아이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우선 캐릭터가 재밌고 귀엽기 때문이다. 마냥 착한 캐릭터들이 아니다. 심술맞은 표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뒷끝은 없어 보이는 표정이 매력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앵그리 버드는 아이패드라는 직관적인 기기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게임이다. 아이들은 내 아이패드 암호를 풀기 위해서 머리를 쓰고, 몇 번인가 성공했다. 나는 거의 매주 암호를 바꾼다. 그럴 때 마다, 아마도 이 기기의 진화는 당분간 계속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iPad는 훨씬 혁식전인 제품이었다. iPad가 나오고 나서 처음 6분기 동안의 판매량은 iPhone과 iPod의 같은 기간 판매량과는 거의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다. iPad는 3,990만대가 팔렸고, iPhone은 1,400만대가 채 안 된다. iPod의 판매량은 언급할 필요도 없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iPhone이나 iPad 뿐 아니라 모든 혁신적인 기기들은 처음 열광적인 반응으로 팔리고 나서 정체기를 맞는다. 결국, 얼리 아덥터들의 호응을 넘어 더 큰 규모의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느냐 마느냐의 국면으로 넘어가게 된다. iPhone은 그것을 iTunes Music Store와 App Store를 런치하고 가격을 인하함으로써 넘어섰다. iPad는 비슷한 상황을 iCloud를 통해 하드웨어에 핵심적인 기능을 추가함으로서 타개하려고 하고 있다. (물론 가격도 내릴 것이다)

아마도, iPad의 진정한 진화는 지금의 iPad2 보다는 내년 초에 나올 iPad3에서 확인될 것이다. Siri가 탑재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Siri의 용도는 전화기보다는 iPad에서 훨씬 크지 않을까, 싶은데 만약 그렇다면, iPad3d의 성공은 애플 TV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충분히 자극할지도 모른다. 애플이 TV를 만든다고 할 때,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은 TV가 가지는 전형적인 수동적 속성이었다. 그러한 속성을 애플이 쌍방향의 속성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리고 그 가능성을 Siri가 탑재된 iPad3가 보여준다면, 내년도 애플 주가는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애플의 주가를 몇 년째 관찰하면서 느끼는 것은 시장이 애플의 주가에 대해서 긴장을 풀지 않는다, 는 것이다. 영업이익이 이미 30%인 제조업 회사에 대해서 과연 그 수준의 영업이익이 유지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시장의 의심이 있는 것이다. 물론, 애플의 PER는 현재 10배로 삼성전자와 비슷한 수준이고, 비싼 주식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현재 150배가 넘는 PER를 가진 아마존의 주가는 지나치게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2008년 말, 애플의 주가는 85불이었다. 아마존의 주가는 51불 정도. 애플의 현재 주가는 380불 정도 하고, 아마존의 지금 주가는 180불 정도한다. 애플도 많이 올랐지만 아마존도 많이 올랐다) 아마존의 1년 수익은 5천 억 정도로, 40조에 유박하는 애플과는 비교가 안 되고, 심지어 네이버 보다도 약간 작다. 네이버의 PER는 17배 정도다. 아마존의 PER는 지금이 거의 고점 수준이지만, 역사적 저점일 때도 25배 이하로 내려간 적은 없었다.

인터넷 회사들이 삼성이나 애플 같은 제조업보다 높은 PER를 받는 것에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주식 트레이더인 L형의 설명에 의하면, 1) Capex에 대한 부담이 적고, 2) 현금흐름의 질이 좋으며 3)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속성이 없다. 이미 아마존은 경쟁자들을 많이 죽여놓은 상태다. 아마존이 오프라인 서점들을 죽여 놓은 것은 이미 오래 되었다. 최근 아마존의 경쟁자는 월마트같은 전통적인 리테일러다. 최근 5년간 아마존 매출의 CAGR은 무려 36%로 월마트의 7%, 타겟의 6%와는 비교가 안 된다. 하지만, 아마존의 수익성은 월마트의 10% 마진과는 비교가 안 되게 낮다. 우리나라의 하이마트의 영업이익이 5~7% 가까이 되는 것을 보면 아직도 사람들은 어떤 제품들은 직접 보고 구매하려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결론적으로, 나라면 PER가 100배 이상 넘어가는 회사는 사지 않을 것이다.

iPad3가 성공한다면, 애플의 주가는 한 단계 높아질 듯 하다. 그리고 그 주가는 이익이라는 실체로 지지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사람들은 이 세상에 없는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 또 한번 생각하게 될 듯.

Monday, December 19, 2011

두 권의 책

지난 주 무리한 덕분에 결국 주말에 감기의 공격에 쓰러졌다. 인간의 몸처럼 인과응보의 법칙에 질서정연하게 반응하는 것은 없는 듯 하다. 무리하면 반드시 고장이 난다. 눈물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통에 누워서 책을 읽다가 감당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면 그 자리에서 자고, 좀 나으면 눈떠서 책을 읽는 생활을 이틀 동안 했다. 처가 최근에 산 책 중에 눈이 가는 책이 있어서, 그 중 두 권을 읽었다. 엄기호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와 김정운의 '노는 만큼 성공한다'였다. 전혀 달라 보이는 두 권의 책이 어떤 맥락에서는 서로 호응하고 있었다.

"여진 엄마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대학에 꼭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그것을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진은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화장하고 꾸미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에만 바쁘다. 이런 여진을 붙잡고 여진의 엄마는 말했다고 한다. "엄마는 다 괜찮아. 네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 돼. 엄마는 그게 뭐든 간에 응원해줄께" 그러나 현관문으로 뛰어나가며 여진이 홱 돌아서면 대답했다. "엄마는. 내가 지금 뭘 하고 싶은지 알고 있으면 이러고 있겠어요? 그걸 열심히 하고 살지" 여진은 엄마가 하는 말 중에 가장 듣기 싫은 말이 "너는 무엇을 하며 살고 싶니?"라는 말이라고 한다. 엄마가 볼 때는 자기가 놀러만 다니는 거 같지만 자기도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고 한다. 생각할수록 머리만 아프고 도무지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가뜩이나 이런 상태인데 엄마가 무엇을 하고 싶다고 물을 때마다 머리가 돌 지경이라고 한다. 대다수 학생들은 이런 상태에서 대학에 들어온다."
-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214)-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알 게 되는 게 몇 가지 있다. 아이들은 재미를 추구한다. 그 재미는 밖에서 동네 친구들과 놀면서 새로운 놀이를 개발하는 것부터 단순히 아이패드로 앵그리 버드를 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부모로서는 아이패드를 던져주고 앵그리 버드를 하게 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 추운데 나가서 감기라도 걸릴까 걱정할 일도 없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아이를 다루다 보면, 부모로서는 편하긴 하지만, 아이는 바보가 될 것이란 것도 잘 안다. 아이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주는 건 어렵다. 아직 글을 깨우치지 못한 아이라면 일일이 성대묘사도 해가며 책을 읽어 줘야 한다. 그렇게 30분만 하다보면 진이 쏙 빠진다. 하지만, 아이들은 앵그리 버드도 재미있지만, 부모가 소리내어 책을 읽어 주는 것도 재밌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재미있기만 하다면, 아이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어쨌든 몰입하고, 즐거워하며, 행복해한다.

아이가 재밌다고 생각하면 몰입하고, 재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몰입하지 않는다는 건 아주 의미심장하다. 왜냐면, 아이들이 그렇다면 어른도 그 본심에 있어서는 별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어른 역시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면 몰입하지 못한다. 몰입하지 않으면, 오버씽킹에서 벗어날 수 없다. 김정운은 말한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오버씽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정말 중요한 일에 몰입하면 된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일이란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뜻한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당황해 한다. 재미있는 일이 중요한 일이라니? 이렇게 묻는 이들에게 나는 되묻는다. 아닌가? 자기가 정말 재밌어하는 일만큼 중요한 게 또 어디 있겠는가?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내가 행복해하고 재미있어 하는 일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평생 주어진 의무를 다하며 그저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견디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다 중요한 것이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삶의 목적이 되는 행복과 재미를 추구하면 뭔가 죄의식을 느낀다."
- 노는 만큼 성공한다 (73)-

세상에는 의사란 직업에 천성으로 맞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의사로서의 길을 추구하는데 재미를 느낀다. 몰입하고 재미를 늘끼고 행복해한다. 게다가 의사로서의 높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보상까지 따르니 불만이 없다. 하지만, 어떤 의사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 몰입하고 재미를 느끼진 못하지만, 의사가 주는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보상에 만족한다. 사실 의사들의 대부분의 현실은 전자 보다는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싶은지 알고 있으면 이러고 있겠어요? 그걸 열심히 하고 살지?"라는 말에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에 대해서, 어떤 의사가 대답할 수 있는 건 "내가 원하는 건 의사라는 직업"일 수도 있고, "내가 원하는 건 의사라는 직업이 주는 편익"일 수도 있다. 그 둘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하지만,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아냈다면 제 3자가 보기엔 그 둘 사이의 차이는 거의 없다. 어차피 걸어 가야하는 길은 의사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의사라는 직업"인데도 나는 변호사를 하고 있다면 나는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의사라는 직업이 주는 편익"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말단 시청 공무원이라면 역시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변호사인 내가 의사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변호사를 포기하고 의사의 길을 선택하는 "결단"인 반면, 시청의 말단 공무원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다. 의사로서의 편익을 누리가 위해서는 의사가 되어야 하지만 의사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이 의사로서의 소명이 있는지 알아내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진짜 본인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더 많은 편익을 주는 직업이었을 뿐인데 말이다. 그게 의사든 변호사든 가수든 배우든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 일정한 노력없이 그런 직업을 가질 수는 없다. 사실은 그게 대부분의 인간의 문제인 것이다. 편익은 원하되 노력은 귀찮아 한다는 것 말이다.

부모로서 첫번째 할 일이란 자신의 아이가 무슨 일에 소명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알아내는 일이다. 그게 수학자나 과학자의 길이든, 혹은 배우나 가수의 길이든, 설령 그 일이 힘들고 외로워 보여도, 소질과 적성이 있고, 본인의 의지가 충만하다면, 충분히 격려해주고 도전하게 도와줄 필요가 있다. 적어도 그 아이는 몰입하고 재밌어할 것이다. 하지만, 좌절하고 실패하고 포기하더라도, 인생은 끝이 아니고 대안은 많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아무 일에도 소명을 갖지 못한 아이라고 해도(아마도 대부분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겠지만), 절대 실망할 필요가 없다. 직업이 주는 보상을 통해, 충분히 직업 밖에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 중요한 것은 소명에 관한 것이라면 절대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편익에 관한 것이라면, 자신의 욕망에 정직해지라는 것이다.

엄기호의 책은 훌륭하지만, 우울하다. 그는 대안을 말하지 않는데 그에게 대안까지 말하라는 것은 무리다. 모두가 다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적 대안이란 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김정운의 책은 예상보단 가볍진 않지만, 백퍼센트 솔직하진 않다. 어쩔 수 없다. 대중을 위한 책에서 더 이상을 기대할 수는 없고, 노골적이라고 해서 꼭 설득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통일의 경제학 (2)

김정일이 죽었다. 금융시장의 반응은 김일성이 죽었을 때와 사뭇 달랐다. 김일성이 죽었던 94년 7월 9일 코스피는 1%도 하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코스피는 86 포인트까지 빠지더니 전일보다 63포인트 낮은 1753(-3.43%)에 마감되었다. 환율은 한때 27원이 오르더니 종가상으로 1185원까지 올라서 끝났다. 국고채 선물 시장은 한때 86틱까지 빠지더니 결국 32틱 낮은 104.32에서 장을 마감했다. 장이 급격한 반응을 보인 것은 일차적으로 외국인의 매도 때문이었다. 국고채 선물 시장에서 외국인들은 19,000 계약이 넘게 순매도했다. 코스피 선물과 현물 시장에서도 외국인은 2,300계약과 2천억 정도를 팔았다. 과거의 경험으로 보면, 북한의 도발로 인한 금융시장의 흔들거림은 짧은 충격으로 끝났다. 이번에도 짧은 시각으로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 금융시장의 흔들림은 시간이 지나면서 평정을 되찾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김정일의 죽음은 지금까지 북한의 도발로 생겼던 이벤트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북한의 미사일 박사, 핵실험, 혹은 NPT 조약 탈퇴는 모두 북한의 전략 전술의 일환이었지 북한의 변화를 내포하는 사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김정일의 죽음은 북한의 구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2010년 4월에 통일이 멀지 않았다, 는 요지의 글(통일의 경제학)을 쓴 적이 있다. 원래는 생각을 좀 더 가다듬어서 책으로 쓰고 싶었지만, 그럴 처지도 못 되고, 그럴 능력도 부족해서, 용두사미로 끝난 글이다. 그래도 지난 1년 동안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면 통일이 임박했다는 걸 진지하게 말했다. 올해 초에는 아시아 세일즈와 트레이딩을 총괄하는 보스와 점심을 먹은 일이 있었다. 아시아 거의 모든 국가들에서 헤드를 해 본 경험이 있는 그에게 "곧 북한도 가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더니 정색을 하고,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통일이 멀지 않았다, 고 했더니 같이 식사를 하던 사람들은 저 인간이 뜬금없이 무슨 소리하나, 싶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짧게 내 생각을 설명한 후, 이렇게 말했다.

"3년 후의 세상은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통일이 쉽지 않다고 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1999년 북한이 훨씬 경제적으로 심각할 때도 북한은 붕괴되지 았았다. 둘째, 중국이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통일이 임박했다고 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자본의 힘. 남한과 북한의 통일을 남한에서 가장 원하는 것은 남한의 자본이다. 남한과 북한의 통일을 남한에서 가장 원하지 않는 것은 남한의 저소득 미숙련 노동자들이다. 남한의 외국인 노동자들의 수는 2010년 기준으로 100만명을 넘었다. 인구의 2%다. 지금 한국의 경제는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굴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가 4% 이상을 차지하게 되면 여러가지 마찰적 비용이 생긴다. 특히 경제가 나빠질 때, 그 비용은 부담이 너무 크다. 게다가, 외국인 노동자들의 비용은 점점 비싸지고 있다. 남한 자본은 더 싸면서도 생산성이 높은 노동력을 원한다. 우리에게는 교육수준이 높고, 생산성이 높으며, 심지어 같은 언어까지 쓰는 노동력이 2천만명이나 있다. 게다가, 남한의 인구구조는 점점 노령화되어 가고 있다. 지금의 인구구조로 20년이 지나면 한국경제는 사실상 구조적으로 침체된다. 둘째, 북한 체제의 허약성. 남한과 북한의 통일을 북한에서 가장 원하지 않는 것은 북한의 지배계층이다. 남한과 북한의 통일을 가장 원하는 것은 피지배층을 이루는 대부분의 북한 인민들이다. 통일이 되면 북한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은 지금보다 드라마틱하게 오를 것이다. 북한의 완고한 체제에 균열이 가고 있는 모습은 최근 여러가지 면에서 드러난다. 지금까지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온 탈북자들은 2만명을 넘었다. 북한 인구의 0.1%가 국경을 넘어 남한으로 왔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북한 체제는 사실상 붕괴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우리가 약간의 돈만 브로커에게 지불하면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콕 찍어서 데려올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잘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남한의 있는 가족이 그들을 데려올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북한의 체제가 붕괴되지 않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남한이 (아직은) 그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지, 북한의 체제가 철통같은 전제국가이기 때문은 아니다.

중국이 북한의 붕괴를 원치 않는 것은 사실이다. 남한이 그렇듯이, 미국도 북한의 붕괴를 감당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 하지만, 한반도에 세워질 친미성향의 통일 정부는 미국에 이익에 반하지 않는다. 중국과 일본을 동시에 견제해야 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통일된 한국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지금 미국과 중국과 북한은 모두 남한이 결단을 내리기를 바라는 형국에 가깝다. 김대중은 북한이 자립하길 바랬고 그래서 노골적으로 북한을 도왔다. 이명박도 원칙적으로는 김대중의 생각에 동의했지만, 우파의 눈치를 보았고, 그래서 북한을 돕기를 꺼렸고 북한은 더욱 취약해졌다. 이런 국면에서 다음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북한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다. 지금 남한의 대중이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선택은 필연적으로 남한의 정치/경제적 지형도를 변화시킬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전향적인 도움을 북한에 준다고 해도, 과연 북한은 자생할 수 있을까? 오늘의 금융시장 패닉은 곧 잠잠해지겠지만, 진짜 태풍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고, 그걸 피할 길은 사실상 없어 보인다.

Friday, December 16, 2011

아시아 금융위기와 유럽 금융위기의 비교

골드만 삭스의 Dominic Wilson의 괜찮은 리서치. "The Euro Area Crisis and the World: Lessons from Asia 1998".

간단하게 말하자면, 1997-78년 사이의 아시아의 금융위기 기간 동안, 해당된 아시아 국가들의 수요는 예상보다 훨씬 많이 망가졌지만, 그 망가진 수요가 다른 비아시아 주요 경제에 미친 영향은 예상보다 보다 적었다. ("In 1997-98, investors both substantially underestimated the breadth and depth of the hit to Asian demand, and at the same time overestimated its impact on the major non-Asian economies") 97년 7월 태국에서 시작된 경제위기로 인해, 98년 금융위기가 아시아 국가들에게 미친 충격은 예상보다 컸다. 태국이 10%, 인도네시아 13%, 말레이시아 7%, 한국 6%, 일본 2%, 정도의 성장률 위축을 경험했다. (중국경제에 준 영향은 미미했다) 흥미로운 것은 아시아 이외의 다른 지역의 국가들에게 미친 영향은 생각보다 미미했다는 것인데, 미국은 98년 성장율이 98-99년에 4.4%에 달했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국가들도 견조한 성장을 했고, 심지어 아시아 국가들에게 직접 수출 비중이 높았던 호주마저도 성장률이 좋았다. 결과적으로 역내 성장에 미치는 나쁜 영향은 과소평가됐고, 역외 성장에 미치는 나쁜 영향은 과대평가되었으며, 98년과 99년 전체 글로벌 경제의 성장률은 훨씬 좋았다.

97-98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이번 유럽 금융위기의 차이점은 뭘까? 1) 가장 큰 차이는 금융산업의 다른 지역과의 연계성이 아시아보다 유럽의 경우가 훨씬 크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 세계가 긴장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한데, 간단히 말해서, 98년 아시아 금융위기가 아시아가 아닌 지역 은행들에 미친 영향력은 미미했던 반면, 유로존의 은행들이 전체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은행자산으로 대충 봐도 20%가 넘는다. 다른 지역 은행들이 유럽에 가진 익스포저도 아시아의 경우와 비교하면 훨씬 크다. 2) 아시아의 경우, 사실상 고정환율 제도하에서 생긴 문제점들이 한 나라에서 발생해 다른 나라로 급격하게 퍼져가는 와중에 최종 대부자의 역할을 할 기관이 없었다. 하지만, 유럽의 경우, ECB의 존재로 인해, 유럽 재정위기의 규모가 아시아 금융위기에 비해서 훨씬 크지만, 소비수요 위축의 정도는 훨씬 작을 것으로 예상된다. 3) 98년 아시아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선진국들이 행한 통화 완화 정책은 소비 회복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지금의 유럽 재정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생긴 정책 효과가 98년처럼 예상치 못한 큰 규모의 경기부양으로 이어지길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아시아 위기 기간에 아시아 국가들의 금리가 오르는 동안 미국, 영국, 그리고 독일과 같은 다른 나라들은 금리 하락을 경험했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 지금도 나타나고 있기는 하지만, 금리 하락의 정도는 그 때에 비해서 훨씬 작다.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 뿐 아니라, 미국과 영국 등도 중앙은행의 금리인하를 통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지만, 많은 나라에서 정책금리는 더 낮아지기 힘든 레벨에 이미 와있고 낮은 금리가 일으키는 정책효과도 적다. 게다가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금리 하락 국가들은 완화적인 재정정책을 의도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한 지역에서 벌어진 경제위기가 지역적으로 국한될 것인가 아니면 글로벌한 수준으로 확산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해당 지역에서 사용되는 정책과 해당 지역 외에서 사용되는 정책의 총합이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최종 대부자로서의 ECB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고, 연준과 다른 중앙들의 금리인하와 더불어 각 정부들이 사용하는 재정정책이 중요해진다. "Interest Rates, Inflation, and the Way the World Works""They Don’t Care About Deficits"에서의 크루그만의 일관적인 입장은 지금과 같은 유동성 함정하에서는 미국은 낮은 이자율과 확정적인 재정정책을 사용해야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이나 국가 부도 가능성이 발생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한다.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면서 낮은 이자율 정책에 반대하고, 정부 재정적자의 확대를 이유로 정부 지출의 확대를 반대하며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자들(공화당 성향을 가진 통화주의자들)을 그는 일관적으로 비판한다. 최근 미국 정치의 파행은 재정안 통과과정에서도 확인되었듯이 공화당의 위선에서 비롯되었다. 끝없이 이어질 듯 했던 당파적인 논쟁은 월가를 몰아친 시민들의 시위로 인해 미묘하게 민주당쪽으로 유리하게 기울고 있다. 10년 전 미국에 있을 때, 왜 시위가 미국을 바꾸지 못하는가?, 를 놓고 미국 친구들과 논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올해 미국에서 벌어졌다. 오바마 뿐만 아니라 미국 전체의 입장에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 시위의 내용이 전부 옳아서가 아니라, 그 시위가 행사했던 정치적 영향력의 방향이 옳기 때문이다.

Tuesday, December 13, 2011

주식 시장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

2011년 12월 8일을 기준으로, 미국 주식 시장을 보면 재밌는 점이 발견된다. 우선 S&P 500기준으로 보면 연초와 지수는 거의 같다. 수익률 0%. 그럼 섹터별로는 큰 차이가 있을까? 가장 수익률이 좋았던 섹타는 무엇이었을까? 의외의 정답은 유틸리티. YTD로 무려 14%. 그 다음은 예상대로 소비재 10%. 미국 내수는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 다음은 헬스케어 8%. 그렇다면 가장 좋지 않았던 섹터는? 이건 쉽게 예상한대로 -19%를 기록한 금융 섹터. 대표적인 금융주인 모건 스탠리는 연초 대비 41%가 하락했다. 그나마 최근 9%를 회복해서 그렇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다음 종목들의 주가를 확인해보니 생각할 거리가 많다.

한국전력
한전기술
이마트
롯데쇼핑
KB금융

많은 사람이 주식에서 원하는 수익률은 엄청나게 높다. 하지만, 그런 엄청난 수익률을 거둘 수 있으려면 둘 중 하나는 가져야 한다. 엄청난 직관력 혹은 엄청난 내부자 정보. 후자는 불법이고, 왠만한 연줄이 없으면 얻기도 어렵다. 그런 것 없이 본인의 직관력으로 시장을 이길 수 있을까? 어려운 이야기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매사에 대해 호기심과 직관력을 발휘하기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쉽지 않은 부분일테고, 자신의 생활 혹은 일과 관련되어서 사고를 좀 깊게 그리고 넓게 하면 된다. 예를 들어서, 아이폰을 쓰다가 큰 화면의 아이폰이 있다면 더 편리하겠다, 고 생각했다면, 애플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본인에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화면만 넓어진 아이패드란 게 뭐가 그리 좋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다. 애플은 아이패드가 실재로 현금을 벌어들일 때까지는 저렴한 가격에 머물러 있을테니까. 만약, 새로 나온 그랜저나 K7을 다른 사람보다 먼저 주문해서 타보았는데, 토요타의 캠리보다 훨씬 더 맘에 들었다면, 현대나 기아차에 투자하는 것이다. 혹시, 주변에서 "그래도 아직 국산차는 멀었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 좋다. 싸게 살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다는 의미다.

우리가 아이패드나 그랜저를 만들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서, 애플이나 현대차라는 회사를 직접 세우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회사의 제품과 제품을 만드는 능력과 그리고 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미래에 투자할 수 있다. 물론, 그 사업이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간다면 그 회사를 팔 수 있다. 심지어 공매(short sell)할 수도 있다. 공매할 수 없다면, 지수를 팔고 경쟁제품을 살 수도 있다. 최근 롯데쇼핑의 참혹한 주가와 실적은 중국 비지니스의 처참한 실패에서 비롯됐다. 이마트는 이미 27개의 중국매장 중에 10개를 접었다. 이러한 시장의 심판은 경영자들에게 큰 부담이다. 하지만, 경영자가 내리는 경영상의 결정(예컨대, 중국에 대규모 투자를 할 것인가)과 투자가가 내리는 결정(예컨대, 애플이나 기아차를 살 것인가 혹은 롯데쇼핑을 팔 것인가)은 사실상 똑같다. 둘 다 힘들고 어려운 결단이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디어에 동의한다면, 스티브 잡스의 천재성을 이용해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가 우리보다 훨씬 더 벌겠지만, 우리도 제법 많이 벌 수 있다. 게다가, 우리의 선택은 스티브 잡스에게 힘을 주고, 우리에게는 수익을 준다. 그리고, 그 수익이란 건 분명한 실체(애플이 벌어들이는 이익)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의 아이디어가 옳은지 그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단지 아이폰을 써보면? 하지만, 모든 아이폰 매니아들이 애플 주식을 사는 건 아니다. 그런 선택을 하려면 좀 더 진지한 사고가 필요하다. 적어도 애플의 영업이익과 그 인더스트리의 PER 정도는 개괄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약간의 시간과 성의만 있다면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다. 그런 기본적인 정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나면, 다시 본질이 남는다. 스티브 잡스가 바라본 미래는 어떤 것이었을까? 현대차가 공격해 볼 수 있는 마지막 전장은 어디일까? 이런 것들을 고민하다 보면, 세상이 생각보다 호기심을 발휘해 볼만 한 곳이란 걸 알게 된다.

Monday, December 12, 2011

Bernett Miller, Money Ball

주식투자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것에 대한 논란은 끝이 없다. 미국의 전설적인 트레이더 제시 리버모어처럼 주식시장을 하나의 게임이나 도박처럼 접근한 사람도 있었다. 그의 책은 지금까지도 트레이더들에게는 고전으로 남아 있다. 모건 스탠리의 수석 전략가였고 'Hedgehogging'의 저자인 Barton Biggs 같은 사람조차, 단 하나의 책만을 골라야 한다면, 그의 책 "Reminiscences of as stock operator"를 고르겠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트레이딩으로 큰 돈을 벌었던 제시 리버모어는 거의 빈털털이 상태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주식의 세계에서 현자로 꼽히는 워런 버핏의 등장은 효율적 시장 가설을 믿는 경제학자들에게는 골치거리였다. 예컨대, 폴 사뮤엘슨은 케인즈가 주식은 일종의 카지노라고 본 것과는 대조적으로 시장가격이 모든 정보를 반영하고 있다는 데에 강력한 믿음을 가졌다. 따라서 누구도 시장을 지속적으로 이길 수는 없다. 그는 미국의 주가 폭락 이후 상원위원회에서 그렇게 증언한 적이 있는데, 자신의 증언 내용과는 상반되게도, 증언 후 어느 시점에서 워런 버핏의 버크셔 헤서웨이의 주식을 상당량 매입했다. 로웬스타인은 이를 "마치 볼테르가 임종에 이르러 교회를 받아들인 것"과 같았다고 쓰고 있다. (로웬스타인, 버핏, 498)

워런 버핏이 제시 리버모아와 가장 달랐던 점은 그는 시장을 예측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1987년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시장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그는 시장의 방향을 예측한 것이 아니라, 기업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느냐에 초점을 맞추었다. 시장을 예측하기 위해서 다른 펀드 매니저들이나 트레이더들이 다른 동료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 예상을 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붓는 것에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에게 주식은 주당 예상 현금 흐름과 같았다. 주식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부연하자면, 그는 두 가지 방식으로 주식에 투자했다. 하나는 그 회사가 시장 가치에 비해서 저평가 되어 있는 경우, 또 하나는 그 회사의 미래가 밝아서 앞으로의 현금흐름이 좋아질 것이라고 확신하는 경우였다. 전자에 해당하는 경우는 섬유회사인 버크셔가 대표적이었다. 버핏은 버크셔를 인수해서 버크셔가 갖고 있는 풍부한 현금으로 다른 수익률(성장성)이 좋은 회사를 샀다. 오늘 날의 엄청난 자산을 가진 버크셔 헤서웨이는 이러한 그의 의사결정이 계속 확장된 결과다. 후자에 해당하는 것의 대표적인 회사는 보험회사인 Geico와 코카 콜라였다. 그는 소위 "유료 다리"를 갖고 있는 회사(다리를 건너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만 하는 것처럼 독점권이 있는 회사)가 좋은 투자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한 가격보다 싸다고 생각하면, 시장의 방향과 상관없이 그 회사들을 사들였다.

그의 투자 스타일 중에는 시장의 격언을 거스리는 것이 많았다. 우선, 그는 적정가격 보다 싸다고 생각하면 물타기(하락했을 때 추가로 매수해서 평균단가를 낮추는 것. 거의 모든 투자 서적들은 이러한 averaging을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주가가 25퍼센트 하락하면 보통사람은 자신이 실수한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버핏은 자신의 일반인보다 더 잘 안다고 굳게 믿었다. 1974년 1월 8일, 그는 어필리에이티드 주식을 더 사들였고, 11일과 16일에도 매수했다. 마치 빗속에 양동이를 들고 서 있는 목마른 사람처엄 1년 내내 이 주식을 매입했던 것이다. 그는 107일간 어필리에이티드 주식을 매입했고, 주가는 최저점인 주당 5.5달러까지 떨어졌다."
- 로웬스타인, 버핏, 265-

게다가, 그는 주식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도 무시했다. 그가 좋아하는 전략은 주식을 한 바구니에 담고 노려보는 것이었다. 코카 콜라는 버핏이 가진 자산의 25%를 차지했다. 그는 1985년 후반, 자신의 포지션을 비워 놓고 기다렸다. "그러다가 코카콜라 주식이 매력적인 수준까지 떨어졌을 대 버크셔 시가총액의 거의 4분의 1을 이 하나의 주식에 걸었다." (로웬스타인, 버핏, 522) 이러한 그의 투자는 결과적으로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한때 촉망받는 선수였던, 브래드 피트(빌리 빈)는 세이버 매트릭스라는 통계적 방법에 의해서 자신이 단장으로 있는 가난한 메이저 리그 야구팀(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을 다시 디자인한다. 이를 이론적으로 서포트 해주는 사람은 그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즈에서 데려온 조나 힐(피터 브랜드)이다. 다른 스카우터들과 달리 그는 선수경험이 없는,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20대 청년이다. 그의 서포트에 의존하고 자신의 추진력을 더해서, 그는 자신의 팀을 메이저 리그에서 가장 가난한 팀 중 하나에서 레드 삭스나 양크즈와 같은 부자 팀과 겨루어 이기는 팀으로 만들어 낸다. 그가 팀을 디자인 하는 이론은 통계학에서 출발했고, 겉으로 보기엔 출루율을 다른 선수 선발 기준보다 우선시 하는 것 뿐인 것 같지만, 그가 사용한 전략의 핵심은 워런 버핏과 같다.

고평가된 선수를 팔고, 저평가된 선수를 사서, 제한된 예산하에서 최선의 팀을 꾸리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브래드 피트의 역정은 정확히 워런 버핏의 경로를 따라간다. 초반의 위기를 극복하고 그의 팀은 메이저 리그 역사장 전무 후무한 20연승을 달성한다. 하지만, 그는 리그 우승을 하는 대신 챔피언 리그에서 패배하는데, 그는 그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수용하지 못한다. 심지어 보스턴 레드삭스가 그를 데려오기 위해서 제시한 1천 2백만 달러 마저 스스로 우승의 꿈을 이루겠다며 거부해버린다. 그렇지만, 2년 후, 우승의 꿈을 이룬 것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아니라, 그의 방식을 수용한 보스턴 레드삭스였다. 워런 버핏의 원칙은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따라하기 어려운 반면, 브래드 피트의 실험은 수 많은 모방자들을 쉽게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아마도, 브래드 피트(빌리 빈)은 세이버 매트릭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정으로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레드삭스가 세이버 매트릭스를 도입하는 순간, 수익률에서는 여전히 레드 삭스를 이길 수 있을지 몰라도, 총 수익액이 레드삭스보다 많기란 어렵다) 아니면, 이해했으면서도, 자신의 컴플렉스 때문에 그걸 애써 외면했는지도.

2011년 최고의 영화. 두 시간 내내 빨려 들어가듯 봤다.

기술과 일상의 변화

블랙베리를 회사에 반납했다. 아이폰에 아이패드에 블랙베리까지 갖고 다니다 보니 정신도 없고,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블룸버그를 워낙 잘 구현해주는 바람에 블랙베리의 효용이 엄청나게 떨어졌다. 회사 이메일을 못 보는 불편함은 생겼지만, 주말 동안 회사 이멜을 꼭 써야할 정도로 긴급한 일이 생겼다면 회사에 나오면 그만이란 생각도 들었다.

아이패드를 사고 난 후 생긴 일상의 변화는 블랙베리와는 비교도 안 되고, 자동차를 산 다음 생겼던 변화보다도 오히려 더 큰 것 같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일상적인 변화였다. 우선, 아이패드를 사기 전만 해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아이폰의 효용가치가 확 떨었졌다. 아이패드를 사기 전엔 아이폰으로 처리하는 일들이 많았다. 인터넷을 보거나, 전자책을 읽거나, 이메일을 쓰거나 하는 걸 아이폰으로 하는 일은 이제 거의 없다.

그 다음의 변화는 가족들이 달가와하지 않는 것인데, 집에 와서도 업무와 상관되는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전 같으면 컴퓨터를 켜는 일이 귀찮아서라도 자제하는 일들이, 아이패드를 켜는 일은 너무나 단순하기 때문에, 집에서도 리서치 페이퍼를 읽거나, 책을 읽거나, 신문을 읽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일이 급격히 늘었다. 결과적으로, 머리 속이 이전보다 훨씬 정교한 정보로 채워지게 됐지만, 제 3자가 보면 아이패드만 끼고 앉은 한심한 가장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싶다. 이렇다 보니, 집에서는 회사 일로 하는 리서치나 고민이 이어지고, 회사에서는 사적인 블로깅을 하는 일도 종종 생긴다. 그게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 고 단정하기엔 일의 성격이 좀 모호하다. 나는 회사를 위해서 돈을 벌고 있지만, 내가 일하는 곳은 사실상 24시간 열려있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사실, 회사 입장에서는 내가 어디서 뭘 하든 돈만 벌면 좋아할 것이고, 회사에 있는 동안 열심히 집중해서 일을 하더라도 돈을 못버는 트레이더는 짜를 것이다.

얼마전 선물로 받은 (들고 나니기엔 좀 무거운) "스티브 잡스" 책을 들고 다니다가, 결국 아마존에서 전자책을 11불에 사버리고, 운동하면서 들으려고, 오디오북도 26불인가 샀다. 그러면서, 이제 종이로 만든 영어로 씌여진 책은 사지 않는 것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럴 돈이 있음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사면 된다. 아이패드가 화면이 큰 아이폰일 뿐이라고 평가절하는 생각은 잘못되었고, 200불 좀 넘는 애플의 주가는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았다, 라는 글을 작년 4월에 쓴 적이 있는데, 애플 tv가 나오면, 또 어떤 변화가 삶에서 벌어질지 흥미진진하다. 그 변화 중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아이폰이 얼마나 많은 고용을 없애 버렸는지 생각해 보면 놀랍다. MP3, 디지털 카메라, 네비게이션.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그렇다)이 다 있을텐데, 트레이더는 24시간 시장에 얽매어 살 게 될 것이 거의 분명해 보인다.

Sunday, December 11, 2011

사물의 원리

트레이딩을 하다보면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미래를 잘 예측하는 것이 트레이딩의 핵심이지만, 그것만 갖고 돈이 벌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 거시 분석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는 한편, 시행착오를 통해 돈을 버는 미시적이고 전략적인 디테일을 배우고 깨달아야 한다.

트레이딩을 하는 초기엔 다들 돈을 버는 방법에만 몰입한다. 매크로 분석에 의해서 어떤 세상이 곧 올 것인지, 이런 차트에서는 과연 시장은 위로 혹은 아래로 갈 것인지, 혹은 지금 살 것인지 혹은 팔 것인지. 그러나, 어떻게 하면 돈을 벌 것인가? 이건 완전히 잘못된 질문이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잘못된 질문으로는 잘못된 대답밖에 나올 수 없다. 간단히 말하자면,

"어떻게 하면 손실을 보지 않을 수 있는가?"

이것이 먼저 고민해야 하는 진짜 질문이어야 한다. 그런데, 누군가가 보기에는 백만불짜리 깨달음이 누구에게나 백만불 짜리 깨달음은 아니다. (워런 버핏같은) 몇몇 타고난 천재나 현자를 빼면, 지금까지 비슷한 경험을 해본 사람들만 공유할 수 있는 백만불 짜리 깨달음일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저 말은 "너무나 당연"하게 들릴 것이다. 돈을 깨먹지 않아야 돈을 버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그건 마치 성공을 위해서는 실패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고,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을 정하는 것 보다 (소극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하는 것과 같은 것 아닐까?

하지만, 어떤 두 트레이더가 포지션이 없다고 하자. 과연 두 사람은 똑같이 포지션이 없는 것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 그건 마치, 소근거리는 생쥐와 작은 소리로 이야기하는 사자의 목소리가 설령 같은 데시벨이라고 해도, 완전히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기회를 찾기 위해 눈빛을 번득이며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중이고, 다른 사람은 지금까지 들고 왔던 포지션이 더덜더덜 걸래가 된 상태에서 포지션을 자른 것이라면, 두 사람의 차이는 사자와 생쥐의 차이보다 컸으면 컸지 결코 작지 않다. 그래서, 트레이딩에서는 감히 말하건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가 훨씬 더 중요하다.

깨지지 않는 (각론적인) 방법을 깨닫지 못했다면, 아무리 대단한 거시적 안목을 갖고 있더라도, 트레이딩에서 성공하기는 어렵다. 그럴 수 있었다면, 그건 엄청난 운(블랙 스완이 발견될 가능성에 가까운)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걸 트레이딩의 핵심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멍청한 짓일 것이다. 어차피, 이 당연한 말을 당연하지 않다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안 될 테니까. 아무리 우리가 보편적인 인간으로서의 약점이 트레이딩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이야기해도, 인간은 그 약점에 취해서 돈을 걸고 돈을 잃는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마치 굶주림이란 인간의 본능에 의지로 대항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의 굶주림과 싸우면 인간의 의지는 반드시 지게 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로 굶어서 살을 빼려는 노력은 모두 실패한다. (무인도에 난파되면 본의 아니게 가능하겠다) 가격이 오르고 빠지는 시장에서 거의 모든 인간은 "오르면 사고 싶어하고, 빠지면 팔고 싶어 할" 뿐이다. 이런 보편적인 인간적인 약점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하나 밖에 없다.

돈을 잃어 보는 것이다.

물론 돈을 잃는다고 해서, 모두 그 본성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건 마치, 스티브 잡스가 겪었던 실패를 겪는다고 해서 누구나 성공한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스티브 잡스는 훌륭한 장점(예컨대, 훌륭한 디자인을 생각해내고 훌륭한 인재를 확보하는 것 따위)을 가졌지만, 많은 인간적 약점(예컨대, 독선적이서 훌륭한 인재가 결국 견디지 못하고 떠나 버리는)을 가진 사람이었다. 트레이더가 돈을 벌고 싶다는 탐욕과 돈을 잃기 싫다는 공포에 사로 잡히는 것에서 벗어나기 어렵듯이, 인간은 실패를 맛 보기 전까지는 자신이 가진 인간적 결점을 극복할 인센티브를 가지지 못한다. 그래서, 대충 자신이 생겨먹은 성격대로 산다. 경쟁이 적고 이익도 적은 그런 곳이라면 모를까, 경쟁이 치열한 산업이나 시장에서 사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전투에 임하다가 망해버린다. (많은 트레이더들이 그래서 자신의 펀드를 만드는 것을 두려워한다)



시간이 흘러 무참한 결과가 나온 다음, 자신의 문제가 뭔지 깨달았을 때 즈음엔 원래 있었던 곳으로 되돌아갈 용기도 가지지 못할 만큼 망해버린 다음이다. 그래서 딜레마가 있다. 우리는 바닥까지 가지 않으면 본성을 극복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막상 바닥으로 떨어지면 본성(약점)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은 깨닫지만 그럴 용기와 힘을 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란 인간은 좀 달랐다. 그는 바닥까지 내려와 그게 무엇인지 처절하게 깨달은 다음, 그것들(자신의 인간적 약점들)을 극복해냈다. 워런 버핏과 같은 (타고난) 현자를 보는 것보다, 그런 고초를 겪고 극복해 내는 한 인간을 보는 것은 훨씬 감동적인 일이다.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팀을 꾸리는 원칙이라고 언급한 말중에는 투자회사의 CEO가 한 말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명언이 있다. 결국 사물의 원리는 그게 사람과 관련되어 있는 한, 결코 다르지 않다.

"The best ideas have to win, otherwise good people don’t stay."
- Steve Jobs-

Friday, December 09, 2011

Willem Buiter, The terrible consequence of a eurozone collapse

Citi의 Chief Economist인 Williem Buiter가 FT에 "The terrible consequence of a eurozone collapse"란 글을 썼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유로존이 붕괴되는 방식에 따라서 어떤 결과가 있을지 묘사하고 있는데, 과연 그럴까, 싶을 정도로 으스스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만약, 그리스 하나만 쫓아내면 모를까, 그리스 이외의 나라(이탈리아, 스페인, 아일랜드 그리고 벨기에의 다섯 나라)도 해당되는 것이라고 시장이 이해하는 순간 시장은 박살나고, 망하는 은행은 속출하고, 경제는 침체로 들어갈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다섯 나라가 전부 망하거나 유로존을 탈퇴하는 경우엔 GDP는 10% 이상 하락하고, 실업률은 20% 이상이 될 것으로 본다. Buiter의 가정대로 다섯 나라가 다 디폴트를 선언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도 그럴 가능성은 5% 미만으로 본다. 결국, 가능성이 높으면서도 생각해 볼만한 상황은 그리스가 스스로 유로존을 벗어나거나, 그리스에 대한 펀딩을 거부하는 경우(Buiter는 25% 정도로 본다) 시장의 반응이다. 당연히 시장은 다음 타자가 누구인지에 주목할 것이고, 해당 국가의 국채 금리는 폭등하고 은행들은 위기에 처할 것이다. 하지만, 유로존 전체의 GDP의 2.2%, 전체 공공부채의 4%를 차지하는 그리스 자체는 큰 충격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 입장에서 유로존을 떠나는 것이 도움이 될까? 유로에서 새로운 그리스 통화로 갈아타는 순간, 그리스 통화는 엄청난 평가절하를 겪어야 할 것이고, 빛은 몇 배로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 경제가 평가절하로 무역에서 얼마만큼의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을까 여부가 관건일텐데, 안타깝게도 그리스는 (한국이 90년 후반에 발휘한) 그럴 수 있는 제조업에서의 잠재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과연 한국처럼 그리스가 그러한 상황에서 (비록 높은 금리라도) 자국통화로 펀딩에 성공할 수 있을까? 의미있는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할 수 있을까? 은행을 통합하고 정리하며 국내자금의 해외 이탈을 막을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Buiter는 독일을 비롯한 경쟁력이 높은 나라가 유로존을 떠나는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럼 그 나라들만 따로 통합된 경제체제를 만들까? 재정적인 통합도 고려한?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금 독일이 기록하고 있는 무역흑자는 사라지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들만의 유로존은 잘 기능할 것이다. 하지만, Buiter는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바이마르는 성립될 가능성이 3% 미만으로 낮다고 본다. 그는 독일이 이런 결정을 하는 순간, 나머지 다섯 나라는 디폴트로 갈 것이고, 그로 인한 금융충격은 엄청난 규모의 구제금융으로 이어질 것이고, 새로운 통합 통화는 엄청난 평가 절상을 겪을 것이기 때문에, 이 경우 결국 각각의 (11개) 통화로 쪼개질 것으로 본다.

주식이 연말까지 좋을 것이란 생각엔 변화가 없지만, 유럽은 계속해서 금융시장의 뇌관으로 작동할 것이고, 그 끝을 내년 상반기에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 그게 끝나면, 세상은 당분간 조용해지고, 사람들은 누가 그래도 좀 나은 나라인지 생각해보게 될 것.

블로그 2주년

블로그를 만든지 2년이 되었다. 댓글은 별로 달리지 않지만, 찾아오는 사람은 적지 않았다. 그래서 댓글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래도 좋은 댓글이 달리면 반가웠다. 어렵게 쓴 글에 댓글이 없으면 서운했다. 예상치 못한 많은 댓글이 달리면 당황하기도 했다. 어쩌다 예의없는 댓글이 달리면 주저하지 않고 지워버렸는데, 2년 동안 딱 두 번 그런 일이 있었다. 얼마전 몇가지 가젯을 추가하면서 안 사실인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과 내가 좋아하는 글은 차이가 많다. 아마도, 내 관심사와 그분들의 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재밌는 건,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은 별로 힘들이지 않고 단숨에 쓴 글들이고, 내가 좋아하는 글은 수 많은 생각들을 녹여내느라 시간이 걸린 글들이다. 내가 쓴 글 중에는 나도 자주 찾아보고 싶은 글도 있다. 이상하게 들리지만 그렇다. 방법과 원칙을 안다고 해도 마음대로 잘 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고 트레이딩이고, 뭘 하나 깨달았다고 해서, 당장 내 삶도 그렇게 잘 진행되어 가지만은 않는다. 예전에 쓴 글을 금방 찾아낼 수 있는 기능이 있다는 걸 알고, 500여개의 글 중에 30개를 골랐다. 30분이 좀 넘게 걸렸다. 처음에는 순서를 세우다가 곧 포기.

결혼의 경제학
미국의 형법적 정의- 범죄의 경제학
폴 크루그만/ The Conscience of a liberal
천재의 탄생
질문의 수준이 곧 인간의 수준이다
진보의 운명
입장의 역사
인간의 유형
천국과 지옥
가위 바위 보의 심리학
언어와 관계
매춘의 경제학 (불평등의 경제학)
시간의 이해
김지운/달콤한 인생
시앙쯔/ 황궁의 성
김종대/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
괜찮은 부모가 되는 쉬운 방법
통일의 경제학 (1)
운명을 극복하는 캐릭터
화류계의 경제학
빵과 자유
상처의 원리
위대한 유혹자
앤서니 라빈스/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
파란 갈매기 프랭크
스티븐 레빗/스티븐 더브너, 수퍼 괴짜경제학
요셉 vs. 캐빈 코스트너
강용석
임상수/ 하녀
The rape of American prisoners

Wednesday, December 07, 2011

한겨레와 정명훈

조선일보를 싫어하는 입장에서, 한겨레의 기사나 논조가 맘에 들면 참 기쁠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한겨레의 경제기사는 읽다보면 졸음이 쏟아진다. 돈을 내고 읽을만한 유용한 정보가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나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은 그 회사의 이념적 방향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는 나름의 읽을만한 정보들을 담고 있다. 몇몇 칼럼니스트들은 왠만한 경제학 교수나 투자은행의 전략가 못지 않은 직관을 뽐낸다. 하지만, 한겨레의 경제기사는 정보도 부족할 뿐 아니라 정보의 결핍을 보완할 직관도 부족하다. 그렇다면 정치기사에서 한겨레가 심층적이고 일관적인 비판기능을 보여주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한겨레가 싣는 최근 정치기사는 그 분명한 노선(반 이명박)에도 불구하고 설득력과 심층성이 없다. "내가 이명박을 싫어하는데 너도 싫어하는구나"하는 위안을 받는 정도랄까. 최근 조선일보에 염증을 내는 독자가 단지 진보적이고 리버럴한 성향을 갖는 사람만은 아닐텐데, 한겨레는 그들의 염증을 자신의 이익으로 전환시키려는 의지도 능력도 없는 듯 하다. 그리고 가끔 터무니 없는 글을 단지 이명박 비판 논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싣기도 한다.

예컨데, [문화 칼럼]정명훈,‘토목공사식 성과주의'/ 김상수

이 칼럼에 있는 정보 중의 상당부분은 엉터리다. 물론 칼럼을 쓰다보면 잘못된 정보를 옮기는 실수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실수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잘못된 정보의 상당부분이 나쁜 의도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노무현을 비난할 때 자주 써먹었던 방법이다. 이런 글을 읽으면 조선일보에서 비슷한 글을 읽을 때보다 10배 쯤 더 짜증이 난다. 그건 아마도, 그 매체가 한겨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정명훈이 20억을 받고 서울 시향을 지휘하는 게 나는 별로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그가 1회 공연에 4천만원을 받고 지휘한다는 걸 알고 너무 싸다고 생각했다. 조승우가 뮤지컬 한 회 출연에 4천만원을 넘게 받고, 이병헌, 배용준이 드라마 한 회 출연에 1억원 가까이 받는 세상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서울 시향의 표를 구하는 게 얼마나 어려웠는지, 특히 이번 달 말러 공연은 몇 달전부터 이미 매진이었다.

이명박을 싫어하는 건 알겠다. 나도 그러니까. 그렇지만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Tuesday, December 06, 2011

위기의 의미

97년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위기의 원인을 우리나라 경제와 대기업의 낮은 건전성에 이유를 돌렸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그건 마치 신종 플루의 원인이 개별 환자들의 낮은 면역력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물론 면역력이 좋았다면, 신종 플루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신종 플루의 원인은 개인의 면역력이 아니라 신종 플루 바이러스다. 마찬가지로, 97년 외환위기의 원인은 경제의 체질이라기 보다 정부의 외환정책의 실패에서 찾아야 한다. 그 뒤 15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기업과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는데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상당히 많은 성취를 해냈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첨예해진 경쟁이 많은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오히려 위기의 본질에 대한 성찰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외환정책의 실패를 사법적으로 단죄하려는 이상한 시도에 이어, 외환정책 실패의 책임자가 경제대통령을 자임한 이번 정권의 경제 실무의 핵심으로 등장하는 걸 목격해야 했다.

하버드 대학의 Richard Cooper 교수는 미국의 경제 위기가 어느 정도 우연히 일어난 것으로 본다. 하지만, 위기 발생의 근저에는 다음 세 가지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금융 혁신. 금융 혁신으로 인해 은행들은 위험을 새로운 형태의 금융상품으로 만들어 시장에 제공하게 되었다. 문제는 위험의 형량이 이전보다 훨씬 복잡한 상품 때문에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저축과 투자의 관계를 조절해 효율적인 자본 운용을 가능하게 해주는 금융혁신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옳을까? 둘째, 장기금기가 오랜 동안 평균 보다 낮았다. 나는 낮은 금리를 미국 금융위기의 핵심 요인으로 주장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Cooper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모든 자산 시장의 거품 뒤에는 중앙은행의 완화적인 통화정책이 있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보자면, 미국을 제외하면 오랫동안 저축이 투자보다 많았기 때문에 저금리 정책을 획일적으로 비난하기는 어렵다. 그린스펀은 높은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저금리를 유지했던 것이 아니었고, 저금리는 재투자와 성장에 도움을 주었다. 돌아보면, 그리스펀이 2004년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을 때 너무 빠르다고 비난한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셋째, 부동산 대출 조건이 지나치게 완화되었다. 부동산 대출 조건이 낮아진 것 자체는 좋은 일이다.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집을 가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집을 가지는 사람의 비율이 올라가는 것은 경제전체 입장에서는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집을 구매할 여건이 안 되는 사람들이 집을 사도록 대출 절차를 지나치게 간소화했고 결국 문제가 생겼다.

미 경제 위기가 갖는 함의는 본질적으로 이처럼 우연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미국 경제보다는 미국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대표적인 것이 유로존의 위기다. 유로존의 위기는 미국의 위기가 아니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미국의 위기는 우연의 결과인데 반해서(미국이 지금 갖고 있는 문제는 다른 나라들도 갖고 있다. 오히려 다른 나라는 더 심각한 경우도 많다), 유로존의 위기는 필연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것은 유럽 국가들이 화폐를 단일화하면서 사실상 통화정책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따라서 미국의 위기로 침체된 자국의 경제위기를 각자의 재정정책으로 풀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재정을 하나로 통합하지 않은 상태에서 각 나라들이 사용한 재정정책의 결과로 몇몇 나라들의 디폴트 가능성이 부각되자 통합된 경제구조의 속성상 순식간에 다른 나라도 번졌고, 정치적 분산의 한계로 통합적인 대책이 나오지 못하며 사태가 악화되었다. 따라서, 이 국면에서 개별 나라의 복지정책이나 지하경제 혹은 국민성을 위기로 거론하는 건, 신종플루의 원인이 개인의 허약한 면역성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틀린 소리는 아니지만, 맞는 소리도 못 된다. 하나 마나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유로존을 깰 생각이 아니라면, 사태의 진전은 독일의 결단에 의해서 가능할텐데, 독일이 결단을 해야 할 유인은 충분하지만, 독일이 결단할 최적의 순간은 지금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독일의 입장에서는 유럽의 모든 국가들이 독일의 결단이 유로존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임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결단하는 것이 자신들의 정치적 편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렇다면, 독일이 결단을 내리지 않고, 유로존이 깨질 가능성은? 배제할 순 없지만 쉽지 않은 방법이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세계 금융시장은 엄청나게 출렁거릴텐데, 단순히 결혼보다 이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이혼을 하면서는 결혼에서 보여준 인간성의 100배 정도의 클리어하고 명징한 인간성의 바닥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석지영 인터뷰

―또 다른 판사는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와 관련해 정부를 비난하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 판사가 관련 사건을 맡는 것이 적절하겠냐는 논란도 불거졌다.
"판사들도 하나의 개인이다. 판사라고 해서 판결하는 사람으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판사에게도 가족이 있고, 성장 배경이 있고 나름의 관심사가 있다. 판사가 자신의 신념과 개인적 가치관을 판결 및 분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판사들이 두 사안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들에게 ‘판사’의 지위를 맡긴 것이다. 판사가 그 책임과 약속을 받아들였다면 윤리 규범을 위반하기 전까지는 판사들을 믿어야 한다.”

―판사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에 대해 대법원은 “신중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판사가 정치적 쟁점에 대해 자신의 주관적 견해를 표현해선 안 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판사 자신이 특정 사건에 연루돼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미리 금기를 정해서는 안 된다. 판사도 특정 정당과 후보에게 투표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판사도 (투표권을 가진) 시민이다. 그래서 판사들에게 재갈을 물리는 것은 에너지 낭비다. 판사가 FTA에 대해 의견을 갖는 것이 왜 문제인가. 다만 판사가 FTA 관련 사건을 맡을 경우 객관적 판단을 약속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 동아일보, 석지영 하버드대 로스쿨 종신교수 인터뷰 “개인 신념과 판결 구분할 거라 믿기에 판사직 맡긴 것-

동아일보의 전지성과 장관석 기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한 질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행여나 석교수에게 듣고자 했던 대답이 그녀가 대답한 것과 같은 방향이 아니었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그 질문은 사실 제대로 된 법/정치의식을 가진 사회에서는 할 수 없는 수준의 질문이고, 석교수의 대답은 석학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일 사고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페이스북에 밝히는 것은 헌법적 권리이고, 그 헌법적 권리가 판사이기 때문에 제한받아야 한다는 건 넌센스다. 사실, 판사들의 SNS 이슈보다 100배 쯤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 현직 판사가 자신의 정치인 부인을 위해 검사에게 기소를 청탁했다는 주장이다. 만약, 사실이라면, 그 판사는 옷을 벗어야 하는 게 맞고, 사실이 아니라면 주장을 한 사람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여러 정황상 진실은 밝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선거도 끝난 마당에 더 이상의 출혈을 원하지 않는 이해관계자들 모두가 원하는 바일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였다면 두 사건에 대한 사회적 파장은 정확히 반대였을 것이다.

Monday, December 05, 2011

나는 가수다

최근 '나는 가수다'는 두 가지 사실을 보여준다. 첫째, 경쟁은 자체의 혹독함에 의해 경쟁에 뛰어드는 사람들의 본질을 드러낸다. 누군가는 위기의 순간에 좌초하고 누군가는 위기의 순간에 혼신의 능력을 발휘해낸다. 그러는 과정에서 숨길 수 없는 것은 인간성이다. 다른 가수들과 융합되지 못하는 사람, 다른 가수들에게 자신을 낮추는 사람, 다른 가수들에게 긴장감을 주는 사람. 그들의 캐릭터는 감춰지지 않는다. 둘째, 사람들이 '나는 가수다'라는 경연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경쟁을 통해 얻어지는 높은 생산성이다. 즉, 달콤한 경쟁의 과실때문에, 가능한 패배의 손실에도 불구하고 불구하고, 출전하는 모양새를 취해야 사람들은 비로서 열광한다. 만약, 누군가 그 시합에 합류하는 것만으로도 이익을 본다면, 그리고 그런 사람의 수가 늘어난다면, 그 시합은 순식간에 매력을 잃는다. 적우라는 가수가 자신의 참가 자체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는 순간, 어떤 사람들은 감동할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프로그램을 보는 것 자체가 촌스럽고 궁상스럽다고 생각한다. 이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추락하고 있는데, 한 두번 더 이런 실수를 하면, 이 프로그램은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