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금호 아트홀에서 열린 금호 아시아나솔로이츠 공연을 모친과 큰 아이를 데리고 다녀왔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한 이후 어제가 네 번째로 데리고 간 공연이다. 한번은 몸이 안 좋아서 도중에 데리고 나왔고, 두 번은 인터미션 이후에 잠이 들어 버렸다. 어제도 전반부의 라벨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소나타에서 좀 졸려하더니(곡 자체가 쉽지 않았다), 쇼스타코비치의 현악 사중주에서 약간 잠이 들었다가, 후반부의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트리오에서 아이는 완전히 잠에 빠져들었다. 라벨의 곡이 연주될 때만 해도 행여나 아이가 내는 소음이 공연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신경이 쓰였는데, 후반부의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트리오인 '위대한 예술가를 기리며'에서는 완전 몰입이 되여, 아이에게 신경을 쓸 여지가 없었다. 단연 올해 최고의 공연.

권혁주(바이올린), 손열음(피아노), 김민지(첼로)의 연주를 들으면서 여러번 울컥했는데,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이렇게 마음 속에서 뜨거운 것이 차 오르는 경험을 한 건 얼마 만인지. 이 정도의 작은 공연장에서, 20대 젊은 연주자들이 어렵기로 유명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트리오를 저렇게 완벽하게 연주할 수 있는 나라가 과연 세상에서 몇 나라나 될까? 대중가요에 한류 열풍이 있지만, 한국 클래식 연주자들도 그에 못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지 2년 쯤 되는 것 같다. 아슈케나지가 피아노 연주를 사실상 중단하고, 벤게로프가 바이올린을 놓아버린 지금, 설령 그들이 돌아온다고 해도, 예전만큼의 기대감이 생기질 않을 것 같다. 요즘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으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그들의 연주를 듣다 보면, 요새 젊은 친구들은 모든 분야에서 이토록 대단한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마지막 3악장에서 권혁주의 바이올린이 1악장의 주제를 다시 반복할 때 손열음의 건반이 차분하게 치고 나오고, 김민지의 첼로가 받쳐줄 때, 가슴을 때리던 그 느낌, 그 근저에 깔린 균형감과 자신감과 확신이 주는 감동을 쉽게 잊기는 참 어려울 것 같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혹은 국가든 그들 각각이 가진 에너지의 총량은 저마다 다르고 변화무쌍하다. 예를 들어서, 한때 세계를 삼킬 기세로 성장하던 일본은 어느 순간부터 고이고 정체되고 썩어버렸다. 일본에게서 다른 나라들이 자극받을 수 있는 에너지의 기세는 이제 너무 작은 듯 하고, 쇠락하는 추세에 저항하던 개개인 일본인들의 노력은 사회 전반적인 침울한 분위기에 함몰되어 버리는 느낌이다. 한국도 일본 못지 않은 폐쇄성을 가진 나라였던 것 같은데, 그것을 돌파하려는 개인의 에너지는 사회의 폐쇄성과 부딪치면서 묘한 상승효과를 내더니, 파괴력에 가깝다 싶을 정도로 에너지를 발휘한다. 도무지 이 나라에서는 심심하고 무료해 할 시간이 별로 없다. 그건 단순히 어떤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치, 경제, 문화, 체육, 그리고 연예계까지 사건은 끊이지 않고, 상당히 다이나믹하며, 게다가, 그 역동성에는 묘한 방향성이 있어서 어쨋든 진화하고 진보하고 있다는 기대를 걸게 한다. 가끔 이명박같은 퇴행적이고 시행착오적인 인물이 있기는 하지만, 그에게 저항하는 에너지를 분출하는 모습으로 또 다시 박력을 과시한다. 최근 2년의 한국이 뿜어내는 정치적 에너지는 부시를 대통령으로 둔 미국의 마지막 2년에 비할 바가 못된다.
아마도 이런 한국이 가진 에너지의 총량은 각개격파로 자신의 역량의 최대치를 끊임없는 노력으로 끌어올리려는 개인들에 의해서 증가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제 공연에서 봤듯이 그들의 그런 에너지는 끊임없는 노력과 치열한 연습이 없이는 이루기 불가능한 것이다. 소녀시대 9인의 황홀한 군무(群舞)에서부터 젊은 클래식 연주자들의 현란하고 깊이있는 연주까지, 어쨌든 모두 전문가라고 불리기에 충분한 실력들을 갖고 있다. 실력이 바탕이 되기 때문인지, 일단 궤도에 오르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하면 여간해서는 잘 내려오지도 않는다. 그리고, 인기의 영역은 점점 확장된다. 심지어 국경의 장벽도 뛰어 넘는다. 그들이 다른 나라의 어떤 무대에 서도, 그들의 얼굴에서는 자신감과 자부심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들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고, 그 실력은 모두 치열한 연습과 훈련에서 나오는 것이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런 면모는 예외없이 발견된다.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보자면, 여러가지 사회적 혹은 다른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을 늘리기 위해서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정답이다. 예를 들어,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학교에 있는 학자는 물론이고, 금융시장에 있는 애널리스트와 트레이더도 기본은 리서치가 되어야 한다. 사고의 깊이는 정보의 총량을 늘리임으로서만 확장될 수 있고, 본인이 지적(知的)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도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쓴다고 해도, 개인이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절대량에서 차이가 심각하면 사실상 의미있는 경쟁이 어렵다. 아무리 열정이 있다고 해도, 그러한 차이는 본격적인 경쟁의 국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나는 가수다"에서 반복해서 목격한다. 경쟁, 그것도 목숨을 건 경쟁, 에서 개별 인간의 에너지의 총량의 사이즈는 감추어지기 어렵다. 단순한 노래 실력의 문제가 아니다. 열정은 물론, 경연을 대하는 전략, 마음 상태의 발란스까지 포함한, 개인의 총체적인 에너지의 문제다.
에너지의 총량을 늘리는 것이 대충 마무리되면, 이제 우리는 그 역량을 잘 배분해 써야 한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 아니라 분산과 분할은 실패하는 지름길이다. 세상에는 공부도 잘하고, 연애도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말 엄청난 승부를 앞두고 연애도 잘 하고, 공부도 잘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뿐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불가능하다. 그렇게 보이는 사람도 있을 수도 있지만, 다른 일에 한눈을 팔지 않았다면, 본업에 '더욱' 성공했을 것이다. 올해를 돌아보면, 나 역시 골프를 그만 두었기 때문에, 다른 많은 일(독서, 피아노, 글쓰기, 보컬 트레이닝)을 할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 역시 애플에 돌아온 다음에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을 할 것인가, 여부를 결정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지 말 것인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트레이딩에서도 이 원칙은 마찬가지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를 고민해서는 에너지를 진짜 효율적으로 쓰기 어렵다. 정말 승부하기 위해서라면, 일단 우리는 무엇을 접고, 무엇에 몰입할 것인지 먼저 정해야 한다.
이렇게 집중하고 몰입하는 젊음을 보게 되는 건 기쁜 일이다. 이런 역동성이 깔려 있는 한국의 미래는 참 밝다. 앞으로 20년은 끄덕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이 경우에 따라서 좌절스러운 일도 많지만, 또 한편으로는 참 신나고 재밌는 일이다. 다만, 한국의 미래가 밝다는 사실이 꼭 내 미래가 밝은 걸 의미하는 걸 아니란 사실은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어떤 이유로든 가장 중요한 시기에 에너지를 쌓거나 잘 배분하는데 실패한 사람들에게는 참 힘겨운 곳이다. 이곳은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아직은 한참 모자라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아직 한국 금융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역량은 상대적으로 다른 분야보다 떨어지는 듯 하고, 그것은 참 쪽 팔린 일이다. 더 공부하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깨닫는 수 밖에 다른 길이 없다. 나 자신도 반성해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