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박근혜는 이번 선거의 진정한 승자 중에 한 사람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박근혜의 위기가 아니라 박근혜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번 선거를 기점으로 한나라당의 이니셔티브는 완전히 박근혜로 넘어갈 것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맞붙은 FC 서울이 5:3으로 졌다. 그 3골은 전부 박근혜가 넣었다. 그럼 그 경기의 패배로 박근혜의 3골은 빛이 바랬을까? 박근혜는 애초부터 나경원의 당선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여자인 나경원 서울시장의 존재는 대통령을 노리는 자신에게도 분명한 부담이다. 박근혜의 입장에서 최선의 결과는 애초부터 질 것이란 패배감이 만연했던 경기에 박빙의 흥미진진함을 던져 준 후 아슬아슬하게 지는 것이다. 이번 선거의 결과는 정확히 박근혜의 의도에 부합한다. 게다가 박근혜는 이번 선거를 통해서 나경원, 오세훈, 이명박과는 여러가지 면에서 급이 다른 정치인이란 걸 확인시켰다. 지금부터 1년 동안 박근혜가 해야할 일은 이명박과 정확하고 분명한 전선(戰線)을 긋는 것이다. 박근혜에게 호감을 갖고 있거나, 반감이 적은 사람들중 엄청나게 많은 숫자가 이명박에게 적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명박을 심판하고 싶다는 욕구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다. 지금부터 박근혜에게 필요한 것은 이명박과의 긴장관계이며 필요하다면 강력한 전선을 형성하는 것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당선되면 이명박은 사법처분하겠다는 암묵적 시그널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무기일 수 있다.민주당/ 정당정치의 기능이 퇴색되었다는 언론들의 호들갑과 달리,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의 진정한 승자다. 이번 선거는 어차피 큰 표차이로 이길 수 밖에 없는 선거였고, 그런 의미에서, 나라면 절대 박원순과 같은 시민운동가에게 서울시장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보다 안전한 길을 걸었고 결과는 나쁘지 않다. 민주당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박원순은 절대 당선될 수 없었다. 제 1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못한 민주당의 정치력은 안타깝다. 하지만, 이번 선거로 민주당은 보폭과 입지를 확연히 넓혔다. 민주당은 내년도 총선에서 충분히 지금까지 지리멸렬했던 이미지를 벗고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다. 지금 민주당의 능력을 회의하는 사람은 내년도 총선 이후에 생각을 바꾸게 될 것이다. 문제는 민주당이 얼마나 멋진 경기를 할 수 있는가 여부인데, 다른 말로 하면, 총선이야말로 민주당이 내년도 대선에서 박근혜를 이길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손학규/ 손학규 역시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세간의 분석과는 달리, 성공을 거두었다. 손학규의 문제는 너무 생각이 많고 우유부단한 사람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너무 생각이 많아서 여자에게 대시도 하지 못하는 남자, 처럼 그는 보인다. 아무리 얼굴이 멀끔하고 경력이 화려해도 우유부단한 (것처럼 보이는) 남자에게 여자들은 유혹되지 않는다. 그런 남자도 여자와 차를 마실 수 있고, 밥을 먹을 수도 있으며, 심지어 결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절대 여자들은 그런 남자에게 유혹되지 않는다. 손학규의 진짜 문제는 생각이 너무 많아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자신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는 자신 스스로가 생각해보면 충분히 알 수 있고, 고칠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듯 하다. 물론 자기 정체성을 바꾸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서, 현재 손학규의 캐릭터로는 대중을 유혹할 길이 없다. 사랑은 설득하는 게 아니라 매혹시키는 것이다. 불공평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그리고, 박근혜와 달리, 손학규에게는 손학규의 이해관계를 위해 몸을 던질 측근이 부족하다. 그는 대중을 유혹하기 전에 자신의 측근부터 유혹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자기 과에서 인기없는 남자가 다른 학교에서 인기가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과욕이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이제는 승부를 걸어야할 때다.
안철수/ 얼핏 보면, 이번 서울시장 재선거라는 드라마는 안철수가 주연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중의 나경원과 박원순에 대한 감정을 보면, 안철수의 미래가 보인다. 박원순과 한명숙과 나경원은 결국 같은 그룹에 넣을 수 있다. 그들은 비교적 깔끔하고, 도덕적이며, 그다지 흠잡힐 곳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막상 (어느 정도는 사실을 포함하는) 네가티브와 (전혀 근거가 없는) 흑색 공세가 계속되자 그들의 이미지는 상처 받았다. 여자들은 말로는 도덕적인 남자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실재로는 카사노바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연애와 유혹이라는 공간에서 위선보다는 위악이 힘이 훨씬 세다. 듣기 거북하겠지만, 이명박이 속한 곳은 존 F. 케네디나 빌 클린턴이 있는 곳과 같다. 이명박이 "사실은 20년간 만난 정부(情婦)가 있었다"라고 고백한다고 해도, 대중이 지지했던 그의 정체성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것이 도덕적인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안철수가 포지셔닝하고 있는 공간은 이명박이 속한 곳이 아니라, 반대 방향이다. 그가 '무릎팍 도사'에서 말한 것처럼 "단란하게 술 마시는 곳"이 진짜 단란주점이라고 믿고 있는지 아닌지 여부는 별 의미가 없다. "알고 보니 그도 여자가 있다더라" 혹은 "알고 보니 그도 부패했다더라"라는 루머와 마타도어에 그가 취약하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정치인을 혐오하는 이유는 정치인이 갖고 있는 더러운 속성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인이 아닌 사람이 정치를 하면 좋겠다고 희망한다. 하지만, 대중의 속셈은 유능하면서 깨끗하면 좋겠다는 것이지, 무능하고 따분해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대중의 원하는 그런 정치인은 환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유능하고 매력있는 것이 따분하고 깨끗한 것보다 좋다. 정치인들은 일종의 면죄부를 받고 출발한다. 안철수에게는 면죄부가 없다. 안철수가 머리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면, 당을 만들거나, 본인이 대통령 후보가 되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그런 야망은 지금의 환상적인 지지율과는 달리 현실성이 없다. 정치적이 역할을 하고 싶다면 결국 야당의 이름 아래서 할 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나경원/ 나경원은 이명박이나 오세훈과 차별화를 통해 자신의 품격을 박근혜 수준으로 높일 수 있는 기회를 걷어 차 버렸다. 나경원이 사용했던 전략은 상대를 이기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선거의 승리는 상대후보를 논쟁에서 제압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그 싸움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서 얻는 것이다. 나경원이 내밷는 말을 들으면서 통쾌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나경원을 찍을 골수 보수들이다. 하지만, 많은 중간세계 사람들은 그녀의 그런 말투를 보면서 환멸을 느꼈다. 40억이 넘는 그녀의 재산, 그녀가 받는다는 고급 피부마사지,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가 갖고 있다는 사학재단의 이미지가 그녀의 오만한 표정과 어투와 맞물려서, 그녀는 된장녀 정치인의 이미지로 강렬하게 남았다. 나라면 당선 가능성이 낮은 2년 짜리 임기의 선거에 그런 식으로 정치적 자산을 훼손하진 않을 것이다. 안철수가 박원순에게 양보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안철수와 아름다운 승부를 펼치기를 내심 기대했는데, 아쉽지만 박원순씨와 멋진 승부를 기대한다"고 코멘트 했을 것이다. 박원순의 학력조작은 막후에서 문제를 제기했겠만 오히려 본인은 시대의 아픔을 이해하는 논평을 냄으로서 감동을 줬을 것이다. 아파트 월세에 대한 문제 제기는 했겠지만, 시민운동가조차로 자유로울 수 없는 강남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를 드러내며 교육이나 도시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를 표현했을 것이다. 병역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했겠지만, 역시 그런 식으로는 아니었을 것이다. 박근혜라면 나경원처럼 하지 않았을 것이나,나경원이 박근혜처럼 할 수 없는 이유는 첫째, 그녀의 사람 됨됨이가 박근혜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나경원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내�았을 뿐이고, 그건 가장 낮은 급의 정치인들이나 하는 짓이다. 둘째, 나경원의 주변은 나경원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싸워주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이해관계, 기껏해야 한나라당의 이해관계를 위해 싸웠을 뿐이다. 하지만, 나경원이 획득한 그 자리 (강남의 된장녀 정치인)도 그다지 나쁜 것은 아니다. 본인이 만족하기만 한다면.이명박/ 이번 선거에서 그는 민주당의 엑스-맨 역할을 확실히 했다. 노후를 준비하기 전에, 더 중요한 걸 조심해야 할 듯한데, 단순히 머리가 나쁘다는 해석만으로는 이번 사태가 쉽게 해석되지 않는다. 미스테리한 인물이다.
오세훈/ 머리가 나쁘다. 똑똑한 친구가 주위에 없다. 있어도 친구의 말을 듣지 않는다. 정치적 재기는 불가능하다. 공천을 받기만 한다면 국회의원은 할 수 있겠지만.
문재인/ 노무현과 박근혜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이기려고 하지 않았다. 노무현은 자잘한 승부에서 지는 과정에서 자신의 캐릭터와 이미지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그게 의도된 것이었든 아니든, 그러한 그의 승부사 기질은 패배 속에서 매력을 더했다. 사람들은 패배하는 노무현 속에서 승리의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박근혜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누군가를 논쟁에서 제압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녀는 말로 중언부언하지 않고,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그녀의 캐릭터를 인식시켰다. 위기 순간에서 한나라당 사람들은 박근혜를 쳐다 보았고, 그녀는 그 눈빛에 맞는 위엄과 행동을 보였다. 심지어 한나라당 밖에 있는 중간세계의 사람들도 그런 기대를 걸어보고 싶어하게 만들 만큼 그녀가 쌓아올린 이미지는 강력하다. 안철수의 박원순 지지선언 때, 나경원은 "협찬 정치"로 비난했지만, 박근혜는 함구했다. 그런 모습이 나경원과 박근혜 사이에 놓인 간극이다. 유시민은 논쟁에서 이기지만, 진짜 승부에서는 진다. 사람들이 논쟁에서, 경쟁에서, 혹은 전투에서 이긴 사람에게만 매혹된다면 이땅의 수컷은 모두 조폭이나 경찰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삶의 진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논쟁에서 이긴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논쟁에서 나오는 그 사람의 태도에 매혹된다. 문재인이 갖고 있는 캐릭터는 유시민보다는 박근혜에 가깝다. 그는 그런 이미지를 상당히 잘 구축했다. 게다가 그는 경상도 출신이고, 현역 특전사 출신이고 변호사였다. 그가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이명박에게 정중하게 인사하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에게 권력의지가 있다면, 민주당의 유일한 대안으로 올라설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기엔 먼저 손학규를 넘어서야 한다. 쉽진 않겠지만 박근혜보다 어렵진 않다. 문재인 또한 이번 선거의 승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