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March 30, 2011
기사 두 가지
이 사장은 "당장 수익모델을 걱정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김범수 의장도 "가입자를 많이 확보하면 수익모델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다. NHN에서 수천억원을 번 김 의장은 지금까지 카카오에 들어간 100억원의 운영비를 모두 개인 자금으로 댔다.
-매달 적자지만 회사가치 1000억 넘어… "회사 팔아라" 전화 하루 30통씩 받죠-
2.
올해만 세 명째 자살한 카이스트 학생들
학점이 2.0이 안 되면 등록금을 전액 내야 하는 카이스트 시스템. 학점이 나빠도, 설령 다니다 짤려도 이들은 우수한 학생일 것이다. 그런데, 왜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걸까.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정상적인 생각을 못하기 때문이다. 근데 카이스트의 이 경쟁구도, 어디서 많이 보던 거 같지 않은가?
Tuesday, March 29, 2011
단상

1.
가끔 내가 왜 블로그를 하는지 자문할 때가 있다. 블로그를 하기엔 너무 바쁘고, 블로그를 안 하기엔 생각이 너무 많다. 요새는 불필요한 트레이딩을 안 하기 위해 블로깅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2.
중앙대가 두산에게 인수된 이후, 분위기가 많이 바뀐 듯 하다. 두산이란 회사에 대해서 나는 호/불호가 별로 없지만, 자신에게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학생들에게 상식선 이상으로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두산이 학교를 인수한 건 사회적 영향력을 위해서일 것이다. 대학이나 언론사는 이익을 내지 못해도 사회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손해만 안 내도 남는 장사다. 취업을 목표로 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두산의 이상한 행동은 아주 사소한 문제일 것이다. 사소하지만 간과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이익을 걸고 투쟁한 동료학생들에게 연대하지 못해주는 것. 이 사회의 단절된 이해관계의 구조를 본다.
3.
어제 업계의 동료 선배들과 저녁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금 4개 메이저 시중은행의 행장들이 모두 이명박의 친구들이란 것에 화제가 이르렀다. 그 중 두 분은 자신을 보수이자 한나라당 지지자로 자임하는 분이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비난이 아닌 욕을 퍼부었다. 대학친구와 교회친구들로 메이저 은행장직을 채우면 기분이 좋을까. 그 와중에, 임명된 전직 장관의 산업은행 총재의 연봉을 인상하겠다고 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무산되었다. 보수의 실패는 이런 것이다. 이런 뻔한 협잡과 더러운 야합에 아무도 힐난하지 않는다는 것.
4.
신정아가 책을 내고 파문이 커졌는데, 이 여자의 인생도 참 파란만장하다. 무엇보다 예일대 박사학위를 브로커를 통해 구매했던 것 자체도 범상치 않다. 그런 발상을 하기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문제는 그 학위가 진짜 예일대 학위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위조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신정아는 학교를 안 다녔을 뿐, 브로커를 통해서 진짜 박사학위와 거의 유사한 학위를 샀다. 그래서 동국대와 예일대의 소송에서 예일대는 궁지에 몰려있다. 예일대 학위를 사겠다는 발상을 하기도 어렵지만, 예일대 학위를 살 수 있는 경로를 파악하는 것도 보통의 네트워크로 되는 일은 아니다.
예일대 학위를 갖고 동국대 교수가 된 신정아는 정계, 학계, 관계의 인사들과 교우하는데 그 인사들은 신정아/변양균 스캔들이 전면에 떠오르자 모두 안면몰수한다. 그 스캔들로 수많은 문화계 인사들이 자신의 학력이 가짜였다고 고백하는 사태가 생긴다. (그 중에 한 분과 얼마전에 우연히 식사를 같이 했는데, 기분이 묘했다) 신정아는 1년 반 정도의 수형생활을 마친 후, 자서전을 통해 여러가지 주장을 하는데, 그 주장의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역시 많은 인사들의 꼴이 우스워졌다. 일종의 반전이자 복수극인 셈이다.
신정아의 인맥중에서 재계의 인사가 없는 게 재밌다. 하긴, 재계나 금융계 인사들이 관심 가질만한 캐릭터는 아니다.
5.
얼마 전, 아마존에서 몇 권의 책을 주문했다. 원래는 e-book으로 사고 싶었는데, 아마존도 아이북도 갖고 있지 않았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완독한 영어책은 어윈 쇼우의 "야망의 계절"이었다. 그 책을 다 읽고 페이퍼 백이 너덜너덜해져서 복사해서 하드 커버로 제본했다. 사촌동생이 미국간다고 해서 기념으로 그 책을 주었는데, 그 책이 내게 무슨 의미인지 (잘 설명했지만) 잘 모르는 것 같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완독한 영어책이란 꽤 설레이는 대상인데 말이다. 내가 두 번째로 완독한 영어책은 에릭 시갈의 "Doctors"였다. 이 책은 그 뒤로도 3번 정도 더 읽었다. 읽을 때 마다, 재밌고 즐거웠다. 페이퍼 백이 너덜너덜해지고, 책이 두 쪽으로 갈라져서 이번에 하드커버로 다시 주문했다. "the Class"와 더글라스 케네디의 "The Big Picture"와 함께 같이 주문했다. 도착한 책들을 보니, 새 책인데 너무 오래 보관해서인지 20년은 지난 고(古)도서 같다. 바라보고 있으면, 제주 신라호텔에 쳐박혀 이 책들을 읽고 싶어진다. 소설을 안 읽기 시작한지 제법 되었지만, 에릭 시갈의 책을 다시 읽는 건 꽤 즐거울 것 같다.
내가 책을 구매하는 양태를 보아하니, 이제 e-book이 페이퍼 북을 압도할 날은 얼마 남지 않은 듯 하다. 나만 해도, 공간의 부족 때문에 더 이상 페이퍼 북을 살 여유가 없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다른 모든 낭만적인 이유들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Monday, March 28, 2011
성공의 독배
"부자가 천국에 가기란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 보다 더 어렵다"라는 예수의 말은 사실이다. 그건 내가 그 말을 처음 들었던 아이 시절에 가졌던 생각처럼 부자가 되는 치부 과정에서 생긴 나쁜 행위 때문이 아니라, 부자의 도덕적 인센티브 구조가 보통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종류의 부도덕한 일은 부자에게 아주 낮은 비용을 지불해서 큰 편익을 누릴 수 있는 일일 뿐이다. 따라서 불법이 아니라 단지 윤리적 부도덕함이 문제라면, 그리고 그 문제의 대부분을 상대적으로 작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부자가 왜 그 편익을 누리지 않아야 할까? 그게 부자든, 예술가든, 그리고 심지어 종교인이든 세속적 의미에서 성공한 사람이라면 남다른 인센티브 구조를 갖게 된다. 돈과 권력이 그런 payoff를 갖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성공한 종교인이 부정(不貞)을 저지르는 것도 그들의 종교상 교리에는 어긋나지만 인간이 대면하는 보편적인 경제법칙에는 정확히 부합한다. 그래서, 종교의 관점에서 보자면, 성공이란 사실상 독배와 같다.
변화의 조짐
누가 더 솔직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올해 6월이 되면 알게 될 것이고, 주식, 채권 그리고 원자재 시장은 모두 그 사실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아마도 버낸키의 지금 입장과 머리 속 생각은 분명히 다를 것이고.
경쟁이란 무엇인가
2박 3일로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안에서 DMB로 '나는 가수다'를 보았습니다. 가수들의 표정이 이전보다는 밝아 였습니다. 재도전 기회를 허용해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나는 가수다'의 경쟁 시스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김건모가 쿨하게 탈락을 받아들였어도 사람들은 그를 여전히 멋진 노래잘하는 가수로 인정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순진한 생각입니다. 그런 식으로 김건모가 잃을 게 없다면, 조용필, 신승훈, 서태지는 왜 출연하지 않을까요? 그들은 잃을 게 많습니다. 이런 게임은 정엽이나 김연수 같은 가수들은 출연할 충분한 인센티브를 가집니다. 하지만, 소위 '국민가수'들은 다릅니다. 이런 게임에 출연해봐야 그들은 챙길 본전도 없습니다.
김건모 자신의 이해관계만 놓고 보자면, 애초에 이 게임은 출연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물론, 그가 출연한 이유는 자신이 탈락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착각이죠. 이 게임은 김건모와 같은 사람에게 굉장히 불리하게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만약, 방청객이 1등부터 7등까지 순위를 매긴 후 점수를 합산하는 방식이거나, 방청객이 탈락시켜야 하는 가수를 고르는 방식이라면 김건모가 떨어질 가능성은 확연히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나, 방청객이 1위인 가수를 고르고, 1위 표를 가장 덜 받는 사람이 떨어지는 방식이라면, 김건모가 떨어질 가능성은 대폭 올라갑니다. 명성과 인지도에 대한 프리미엄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김건모의 매니저는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람들은 김건모가 노래부를 때 손을 떨었다며 그 긴장감에 감동을 받은 것 같습니다. 감동을 불러일으킨 것은 김건모의 진정성이지만, 김건모의 진정성(생산성)을 만든 것은 시스템입니다. 거기 모여있는 가수들을 긴장시키고 20년 된 '국민가수'를 떨게 만드는 것의 정체는 탈락에 대한 공포입니다. 그런 공포가 존재하는 이유는 이 게임의 구조 때문입니다. 그 공포가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면, 당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내일부터 분기당 한명씩 내부 투표를 진행시켜 가장 적게 표를 받은 팀원을 해고한다고 가정해보기 바랍니다. 일단 한명이 잘리고 나면, 회사 분위기가 어떻게 바뀔지. 그리고 그 해고된 동료에게, "당신은 여전히 일 잘하는 직원"이라고 위로해 보세요. 과연 얼마나 위안을 받을지.
우리 사회에서는 대학교에서 학기 당 한명의 교수를 골라 임용에서 탈락시키거나, 분기 당 한명의 팀원을 해고시키거나 하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학원강사의 강의를 한달 만에 폐강하거나, 비정규직 직원이나 인턴의 50%를 재계약하지 않는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요컨데, 이런 네가티브 경쟁을 감안하고 들어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이거나 아주 경쟁이 치열하고 승자가 이익을 독식하는 산업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명박은 대학생을 정원보다 많이 뽑은 후, 학점이 나쁜 학생은 과감하게 자르자고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그의 인간성에 회의적이긴 하지만, 경쟁의 본질이 무언인지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긴 합니다.
심지어, 이런 네가티브 경쟁이 그 산업의 본질인 곳도 있습니다. 연예계, 화류계, 그리고 프로 스포츠 산업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화류계는 심지어 '나는 가수다'와 같은 일이 매일 반복적으로 일어납니다. 자신이 아무리 미모의 소유자로 텐프로의 여신이라고 해도, 그녀는 매일밤 손님들 앞에서 선택을 받아야 합니다. 선택을 받지 못하면 일을 할 수 없고, 일을 하지 못하면 돈을 벌 수 없습니다. 산업의 속성이 이러한 곳에서 "이곳은 너무 경쟁이 치열한 곳이라 부당하며 재도전 기회를 달라"는 요구가 통할 리 없습니다.
앞으로 '나는 가수다'란 프로그램이 어떻게 진행될까 예상해 보는 것은 이제 쉬운 일입니다. 가수도 관객도 이 게임의 본질이 경쟁이란 것에 눈을 뜨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의견은 다양하지만, 의견들의 총합을 보면 시행착오를 거쳐서 결국 구조나 본질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이 프로그램이 계속 진행되기만 한다면 사람들은 갖가지 다른 자기의견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을 볼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재밌기 때문이죠. 누군가가 자발적으로 노예들처럼 선혈 낭자한 경쟁을 벌여 무엇인가 근사한 것을 만들어내는데 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결국 이 프로그램의 성공은 가수들의 허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경쟁의 강도를 낮추되 시청자들을 유인할 수 있는 수준의 경쟁의 강도는 유지하는 데 달려있습니다. 그렇지만, 김건모와 같은 대형가수는 이제 보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그런 가수를 보게 된다면, 그와 그의 매니저는 바보임에 틀림없습니다.
Friday, March 25, 2011
Douglas, Kennedy, The Big Picture
- page 7, The Big Picture-
나의 iPad에서 보냄
Thursday, March 24, 2011
피곤한 한 주
1.이번 주는 피곤하기만 하고 별루 돈을 못 벌었다. 거래량은 많고, 벌리는 돈은 없고, 이런 한 주는 초조함이 더해져 피곤하다. 시장 참여자들은 점점 독해지고.
2.
공자가 말한, 생각하고 배우기를 같이 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말은 젊은 날 들었으면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하려면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배우려면 나보다 똑똑한 사람이 필요하다. 결혼하지 않은 젊은 남자라면, 세상의 시간은 1) 배울 것이 있는 지적인 사람, 2)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고 혼자, 그리고 3)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매력있는 이성과 보내야 한다. 결혼한 사람이라면, 3)대신 가족이 들어갈 것이다.
3.
김건모 인터뷰를 읽었다. 온 인터넷과 신문이 이 프로그램으로 도배된 한 주였는데, 내 예상대로 이 프로그램이 계속되는 한 시청율은 오르면 올랐지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
이 사건이 발단이 된 재도전 허용이란 결정이 왜 그토록 사람들을 분개시켰을까?
1) 공정한 한국사회가 아니란 증거이기 때문에.
2) 원래 시청자와 한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3) 재미가 떨어져서.
많은 사람들은 1)과 2)를 이유로 드는 모양인데, 나는 3)이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 1)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프로그램이 1등이 우승하는 게 아니라 왜 꼴등이 탈락하게 되어 있는 구조로 되어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건 가수를 위한 경쟁이 아니라, 시청자들의 쾌락을 위한 경쟁이다. 2)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프로그램의 이해관계 당사자에 방송사(회사)와 시청자(소비자)와 이외에 왜 가수(노동자)가 포함되어서는 안 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가수가 포맷의 변화를 요구할 권리는 없나? 없다면 왜 없나? 이미 룰을 알고 숙지하고 들어왔기 때문에? 그런 식이라면, 이미 불리한 고용계약을 알고 들어온 비정규직 노동자가 부당한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일이란 퇴직 말고는 없을 것이고, 학교가 개판인줄 알고 들어온 대학생은 학교에게 개선을 요구할 자격이 없을 것이다.
경제학적인 설명은 3)이다. 재도전을 허용하게 되면, 이 가수들의 생산성은 현저하게 떨어질 것이다. 그건 마치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는 검투사들의 시합과 같은 것이다.
4.
우주는 신정아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하긴 모든 사람의 우주는 다 본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법이다. 변장관이 신정아를 위해 남용한 권력은 예상외로 작았던 점을 감안하면, 윤리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신정아 사건에서 잘못한 것은 배우자가 아닌 여자와 섹스한 변장관, 유부남과 섹스한 신정아, 가짜 학위로 동국대학을 속인 신정아다. 유부남과의 섹스는 사실 논리적으로 보자면, 유부남이 배우자에 대해서 책임질 일이지 배우자가 없는 신정하가 책임질 일은 아니다. 하지만, 신정아는 자신은 옳지 않은 방법이긴 하지만 어쨌든 예일 대학 학위를 취득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자신은 잘못한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부정행위를 하긴 했지만 어쨌든 시험은 잘 봤다는 것이고, 의대를 안 다니고 학위를 사서 의사가 됐지만 어쨌든 라이센스는 진짜라는 것이다. 상당히 심각한 윤리적 불감증이다. 어쨌든 신정아의 "부정행위로 인한 피해자"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행위에 비하면, (설령 그녀의 주장이 전부 사실이라고 해도) 정운찬 전총리의 지분거림이 그의 도덕수준을 질타당할 정도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 지분거림의 디테일을 듣고 클린턴의 르윈스키 사건이 생각난 건 왜일까. 그런데 왜 하필 클린턴의 상대는 르윈스키였을까.
Tuesday, March 22, 2011
입장
이건 콜로세움 경기장에 모인 대중이 7명의 검투사 중 패배한 한명을 골라 죽이는 게임이다. 재도전의 기회를 달라고 하는 동료들의 호소와 그에 응한 로마황제는 피에 굶주린 대중을 실망시킨다. 그런 식이라면 앞으로는 어떤 방식으로 도대체 누굴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너희들 중 한명을 죽이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이 경기를 보기로 결정했다. 너가 그 약속을 배신했다면 나는 너희를 응징할 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로마황제도,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했던 검투사에게도 저주를.Monday, March 21, 2011
나는 가수다
- 내가 MBC에 결정에 분개했을 줄 알았다는 사람이 회사에 많았다. 이게 칭찬인지 욕인지 아니면 가치중립적인 묘사인지 헤깔린다.- 나는 분개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건모의 선택과 MBC의 대처와 사람들의 반응을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다.
- MBC의 결정 때문에 시청률이 타격 받을 것이란 의견이 많았다. 아마도,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의 영향이 없거나, 오히려 시청률이 오를 것이다. 그게 방송의 속성이다.
- 사람들은 MBC가 시청자이나 평가단과 약속한 게임의 룰을 깼기 때문이라며 분개하고, 김건모가 왜 재도전을 하려고 하는지 궁금해한다. 나는 왜 김건모가 다른 가수들과 공정한 게임을 하려고 했는지 궁금하다. 세계 권투 챔피언이 동네 챔피언과 싸우는 일은 두 가지 경우 뿐이다. 미쳤거나, 거기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받았거나.
- MBC가 김건모를 원했던 것은 당연하다. 김건모 없는 6명은 그저 그런 가수들이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솔직히 나도 7명의 가수를 죄다 알지는 못했다. 예를 들어, 박정현과 김범수의 이름은 알았지만, 특히 박정현은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는 몰랐다. 이소라의 노래는 좋아해본 적이 없다. 그녀가 불렀던 노래들은 들으면 알지만 기억하진 못한다. 결국 MBC는 김건모에 대한 예의를 갖춘 것이다. 그리고 그 예의는 애초에 예정되어 있었던 것일 가능성이 높다.
- 사람들은 김건모 같은 선수가 탈락하는 걸 보고 싶었던 듯 하다. 아마도 그것이 공정한 경쟁의 산물이라고 느끼고 그런 쾌감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프로의 컨셉은 애초부터 공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노래를 불렀던 것도 아니고, 자신이 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고를 수 있지도 않다. 검도 선수가 쌍절곤을 들고 싸우는 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수는 마치 그것이 자신의 역량인양 다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시청자는 말한다. "일단 약속했으면 승복하란 말이다." 그런데, 김건모는 왜 그런 이겨봐야 본전인 게임에 응했을까? 누군가 김건모는 한물간 가수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조용필은? 신승훈은? 나훈아는? 그들이 이 게임에 나오면 과연 살아 남을까?
-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이 분명하게 보여주는 경제학적 함의가 있다. 경쟁이 치열하면 할수록 차별은 없어진다. 그리고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그러나, 참여자들은 피곤하고 괴롭다. 사람들은 경쟁이 싫다고 말하고, 신자유주의를 증오하지만, 이 경쟁의 속성이 주는 결과물(리메이크된 노래들)에 환호한다. 그리고, 그러한 높은 생산성(감동)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Sunday, March 20, 2011
주말 단상
1.學而不思卽罔 (배워도 생각하지 않으면 맹목적이되고)
思而不學卽殆(생각해도 배우지 않으면 얄팍해진다)
2.
생각하고 배워도 소용없는 문제들의 공자의 결론은 "나는 모른다"였다. 종교(귀신)의 문제에 대해서 공자는 "거짓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생각하고 배워도 모르는 문제였기 때문에 그는 그저 "모른다"고 했다. 상식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에서 그는 인간과 삶을 이야기했다.
3.
지진을 맞은 일본인들의 태도를 두고 인류의 진화라느니 말이 많다. 하지만, 6일 동안 물자를 공급받지 못한 상황에서 "공무원들이 다른 일로 바쁠 것"이라고 말하는 그들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이틀만 지나도 흥분하고 격앙할 한국인들이 반응이 나는 훨씬 맘에 든다. 메이지 유신의 성공은 일본 지배계층의 빠른 각성과 양보로 가능했다. 하지만, 일본의 군국주의 도발의 가장 일차적인 피해자는 바로 일본인 자신이었다. 그 점을 일본인들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는 데 일본의 비극이 있다. 정치인들의 선의에 자신들의 운명을 맡기는 짓은 어떤 시대, 어떤 정부, 어떤 국가에서도 해서는 안 된다.
4.
월드 인베이젼에 대한 악평이 쏟아지는 가운데, 혼자 그 영화를 봤다. 블랙 스완보다는 10배 쯤의 집중력을 갖고 봤다. 특히, 인도계 민간인 남자의 죽음 후, "더 이상 민간인의 희생은 안 된다"고 부하들을 독려하던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미국 영화를 보면서, 오글거린다는 느낌을 갖기 쉬운데, 미국에 몇 년 살다보면, 저 사람들은 진짜 저렇겠구나 싶을 때가 많다. 대학원 때, 어너 코드(honor code)를 보고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미국인들은 정말로 명예를 지키고 반칙을 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하고, 시험지를 집에 가져가서는, 자기가 시간을 재고 문제를 푼 후에 제출해서 점수를 받는다. 미국 교회를 다녀 봤을 때도 비슷하게 느낀 진지한 정서가 있다. 복음주의 기독교의 근본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진지함과 그 진지함을 비웃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는 참 대단한 것이다.
5.
대개의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예를 들어, 서울대를 가는 사람은 "대개" 운이 좋은 사람이나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라,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은 "대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사회구조가 바뀌어서, 서울대를 가는 사람은 "대개" 부자 부모를 둔 사람이 되버리거나, 부자가 되는 사람은 "대개" 부자의 자식이 되어버리면, 그 사회는 문제가 생긴다.
다른 이야기지만, 일본에서 지진이 나는 이유는 그 땅에 사는 사람이 죄를 지었거나, 예수를 안 믿었거나, 조상이 나쁜 짓을 해서가 아니라, 지진이 나는 곳에 사람들이 일본이란 나라를 만들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은 그곳이 지진이 빈번하게 나는 곳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그 땅에 살아온지 몇 천년이 되었다. 보통의 인간은, "이곳이 지진이 나기 쉬운 곳이 다른 곳으로 가야돼"라는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처지에 있지 않다. 슬픈 일이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그런 형편을 타개하는 게 비교적 쉬워졌다는 것이다. 이제는 꼭 자신의 태어난 나라를 죽을 때까지 조국으로 섬겨야할 필요는 없어졌으니까.
6.
무려 6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중인데, 주말에 또 2권의 책을 더 샀다. 김용옥의 논어한글역주 3권과 소나무 출판사의 "관자" 완역. 8권의 책을 동시에 있는 인간의 심리란 "초조함"과 "탐욕"일 것이다. 점점 소설을 사지 못하고, 사도 읽지 못하고, 양징본이면서 페이지가 300 페이지는 넘어가야 맘이 놓이는 상태가 된다. 이제 인생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Friday, March 18, 2011
event driven market의 일반적 경향
이러한 event-driven market의 특징을 요약하자면, 1) 영향력을 형량하기 어려운 사건에 대한 반응은 생각보다 놀랄만큼 늦다. 2) 가장 반응이 빠른 곳은 역시 해당국가의 주식시장이다. 3) 미국은 자국 이외의 시장의 사건에 대해서 둔감하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민감하다. 3) 패닉이 계속되면 정책이 나오고, 정책은 가격 움직임을 되돌린다. 아주 의미있는 정도로. 그게 계속 유지될지는 사건의 규모와 정책의 적확성에 달렸다.
니케이
Nikkei
엔달러
Dollar/Yen
코스피
KOSPI
국채선물
KTB futures
S&P
S&P 500
원달러
USD/KRW
원유
WTI
샹하이
Shanghai Index
포스코
POSCO
Wednesday, March 16, 2011
이글즈
재난을 대하는 자세
영화 2012을 보면 지진이 나자, 주인공 존 쿠삭은 지진을 피해 미친듯이 달리고 비행기를 띄우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실재로 지진이 나고 쓰나미가 몰려오면 대개의 사람들은 꼼짝도 못한다. 우리는 차에 앉아 있다가 쓰나미를 맞아서는 안 된다. 내려서 물에 뜰 준비를 하고, 뭔가 높고 든든한 것을 잡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틸 궁리를 해야한다. 혼자서라면 거의 90%의 사람은 그렇게 대응할 수 없다. 길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자동차가 뛰어들어도 마찬가지다. "자, 이제 자동차가 뛰어 들거야, 피해봐"라면, 꽤 잘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도, 갑자기 자동차가 뛰어들면 꽤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 것 같은데도 사람들은 차를 피하지 못한다. 판단을 내리는 속도로 몸이 반응하는 결단을 내리다보면 결국 사람은 차에 치이고 만다.달려오는 차를 피하는 사람은, 쓰나미를 피하는 사람은 그래서 두 부류 뿐이다. 타고난 사람과 훈련된 사람. 좋은 매뉴얼은 상황을 조금 개선시켜주긴 하지만, 역시 해결을 하진 못한다. 매뉴얼을 찾아 볼 사이도 없이 등장하는 재난이 있기 때문이다. 트레이더가 포지션을 들고, 중동사태나 일본 지진사태를 맞이하는 것도 본인에게는 급작스럽게 닥쳐오는 재앙이다. 그 재앙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멍하니 가격의 변화를 바라보고 있는 트레이더도 한 둘이 아니다. 어떤 트레이더에게 그건 엄청난 축복일텐데.
Monday, March 14, 2011
조용기
금요일 밤에, 처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본 지진 사태를 기독교 신앙과 관련지어서 망언하는 목사가 나올 것이란 예상을 했었다. 예상대로, 그런 목사가 있었다. 순복음교회는 우리나라에서 정통 보수 교회의 상징처럼 인식되지만 순복음교회는 오순절파로 다른 교단에서는 이단처럼 취급받던 시절이 있었던 교회다. 물론 순복음교회처럼 교세가 커지고 성도가 많은 교회를 이단으로 몰기는 몹시 어려운 일이다.조용기 목사가 말한 바가 설령 자신의 신념이라고 해도, 그의 발언은 정황상 참 어리석다. 그 발언을 듣고, "아, 그렇구나. 이제 천재지변을 피하기 위해서 우린 민족은 기독교를 믿어야겠구나"하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발언은 잘 되야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아무 일 없이 지나갈 뿐이고, 잘못되면 사회적 비난과 파장이 큰 발언이 되기 십상이다. 물론, 대개의 인간은 잘되야 본전이고 잘못되면 파멸인 그런 황당한 선택을 많이 하지만(버트란트 러셀은 남편이 자고 있는데 옆에서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나는 여자 원시인의 심리에 대해서 언급한 바가 있다), 그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교회 창립 목사의 수준이라면 좀 곤란한 일이다.
조용기의 발언은 지금 일본의 처지를 보면, 특히 가족을 잃고 슬픔에 빠진 일본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참 무례하다. 무례함이 나쁜 이유는 말로서 죄를 짓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이 죽일 때 사건의 발단이 되는 것은 대개 돈이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계기가 되는 것은 결국 말이다. 말 한마디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 모든 종교에서 행동으로 짓는 죄만큼이나 말로 짓는 죄를 경계하고 있는 이유는 그 죄가 빈번하면서도 무겁기 때문이다.
Sunday, March 13, 2011
충동과 본능
충동은 갑자기 든 감정이다. 근거 없다. 실패하면 후회한다.
훈련과 학습을 통해 본능은 어느 정도 근거를 갖고 움직이다. 그게 설령 두근거리는 심장, 같은 추상적인 것이라도. 실패해도 후회하지 않는다.
윤종신의 노래 "본능적으로"의 가사를 "충동적으로"로 바꿔 부르면 코메디가 된다.
최고의 가르침
"효란 무엇입니까?""무위(無違), 즉, 거슬림이 없는 것입니다"
"거슬림이 없다니, 그 말은 도대체 뭘 두고 하신 말씀입니까? 아버지가 자식에게 도둑질을 하라고 가르친다면 그 뜻에 거스리지 않는 것이 효입니까"
"아버지의 명령이 윤리에 어긋날 때, 우리는 얼마든지 불복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복종에는 하나의 단서가 있는데, 그것은 불복종조차도 예로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것이 꼭 무례함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나, 돌아가셨을 때나 일관되게 예로서 섬기는 것, 그것이 바로 무위(無違)입니다."
비단 효에만 관련된 말이 아니다. 부부도 이해관계가 다를 때 싸우게 된다. 하지만,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부부간의 믿음에 금이 간다. 친구간에 무리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부탁을 받을 수있다. 그럴 때도 예의를 다해 거절하면 된다. 부모 자식간의 사랑, 부부간의 사랑, 그리고 친구간에 우애에 이토록 그럴 듯한 충고가 있을까.
종교적 믿음
최재천 박사에게 누군가 이렇게 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창조론을 믿지 않으시냐요?" "저는 창조론을 믿지 않습니다. 저의 과학적 양심은 인간의 진화를 지지합니다. 하지만, 제 처는 독실한 기독교인입니다. 종교는 인간의 진화를 위해 큰 기여를 했습니다. 저는 종교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2.
김용옥의 논어역주를 읽는데, 공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제사를 지내야 할 하느님이 아닌데도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첨하는 것이다" 김용옥은 이렇게 말한다. "남들이 믿기에, 예배하는 곳에 참여하지 않으면 괜히 외토리가 되는 것 같기에, 사회적 불이익이 따르는 것 같기에, 문화적으로 뒤쳐지는 것 같기에, 어영부영 예배에 참여하는 인간들이들이야말로 허위의식에 빠져있는, 대중적 종교성에 매몰되어 있는 나약한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3.
공자는 말한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이것이 곳 아는 것이다"
4.
안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리적 규정을 하는 대신, 공자는 앎에 대한 우리의 도덕적 자세를 통해 앎을 규정한다. 아는 게 무엇인지 아는 것이 어떠한 실존적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적어도 안다고 우길 필요가 없어진다. 나쁜 트레이더는 미래가 어디로 갈지 모르면서, 마치 안다고 생각하며 트레이딩을 하는 존재다. 그런 행동이 반복되다 보면, 그런 트레이더는 시장에서 곧 사라지게 된다.
5.
자신이 나약함을 깨닫는 인간이 종교에 귀의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그럴 수만 있다면, 공자처럼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개념에 대해서는 유보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것, 진위를 가릴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태도를 갖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학문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태도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바로 그 유보 때문에 나약한 인간이 공포에 질리는 것이다.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기제로 종교라는 믿음을 갖는 것은 분명히 어떤 사람에게는 "효율적"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삶의 "커먼 센스"를 갖고 현실을 돌파할 수는 없지 않나? 자신의 나약함을 깨닫는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 더 이상 나약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Wednesday, March 09, 2011
잡담
1.어제 회사 후배 J군이 청담동 야마모토 스시에서 저녁을 먹으러 갔다가 화장실 다녀오는 길에 옆테이블 남자의 아이폰을 우연히 보게됐다고 한다. 아이폰에 손담비, 이름 석자가 뜨길래, "한심하군"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10분 뒤 진짜 손담비가 박진희와 함께 나타나 옆자리에서 그 젊은 남자와 저녁을 먹어서, 너무 부러웠다고.
2.
블랙 스완을 보는데, 전혀 집중을 못했다. 당연히 감동도 없었다. 원래 그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서 (유일하게 끝까지 본 영화가 '레슬러'였고 물론 감동 못 받았다) 망설였는데, 밤새 그 영화의 이미지와 잔상에 매혹되었다는 영화 게시판의 댓글에 나쁜 선택을 하게 되었다.
스토리는 일단 전혀 흥미롭지 않고, 인위적인 사운드는 불쾌하며, 내가 아는 발레의 세계와는 너무 거리가 멀어서 보는 내내 집중이 어려웠다. 테크니칼하게 잘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 영화적 테크닉이란 게 내게는 더 큰 문제거리가 됐다. 나로서는 '니나'라는 캐릭터에 도무지 공감하고 집중할 수가 없었다.
미국 유학시절 미국의 유명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와 소개팅을 한 적이 있었다. 가끔 전화통화를 하고 보기도 했는데, 시원시원하고 똑똑하고 멋진 사람이었지만, 하루에 4시간씩 몸을 풀어야 하고, 근육이 망가질까봐 긴 거리를 걷거나 등산도 할 수 없는 사람과 사귀는 건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전성기가 30대 초반에 끝나버리는 몸이 자산인 예술가가 자기 중심적이지 않기를 바라는 건 어리석은 일이고, 나는 그런 예술가를 배려할 여유(혹은 이유)가 여러가지로 없었다.
그 친구에게 한 어리석은 질문 중에 남자 무용수와의 2인무에 대해서 부담스럽지 않냐고 물었더니, 세계의 탑무용수는 러시아 무용수를 빼면 거의 게이들이라 별로 부담스럽지 않다는 대답을 들었던 게 기억난다. 무용은 매력적인 예술이고, 어린 날엔 많이 매혹되었었지만, 다시 태어나더라도 무용을 하고 싶은 생각은 안 든다. 무엇보다 육체의 전성기가 끝났을 때, 너무 낙심스러울 것 같아서.
진검승부
1.지인이 말하길, 검도에는 방어술이 없다고 한다. 진검으로 하는 승부이다보니, 방어술을 가르칠 이유가 없는 것 같다고. 트레이딩 역시 수비가 필요없다. 검술 대련에서 어설픈 공격이 곧 상처요 죽음이라면, 어설픈 트레이딩 포지션은 곧 손실일 뿐이다. 어설픈 공격으로 손목이 잘리고 발목이 잘릴 수 있기 때문에, 대결에 나선 검사는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하지만, 스크린 속 세상의 승부에서 사람들은 어설픈 공격이 곧 손실일 것이란 사실을 잊는다. 가만히 있으면 최소한 죽진 않을 수 있는데, 설부른 움직임으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다. 공격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 같다면,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2.
이명박이 무릎을 꿇고 통성으로 기도한 것에 대해서 말이 많다. 이명박은 3500명이 모인 조찬기도회에서 통성으로 기도해서 욕을 먹고 있다. 비난의 핵심은 첫째, 많은 사람 앞에서 대통령이 무릎을 꿇고 그 사진이 촬영되는 의전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고, 둘째는 종교갈등이 대통령에 의해서 자초된 마당에 그 갈등을 더 심화시키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종교는 개인적 영역이지만, 불교도인 대통령이 매일 108배를 하거나, 무슬림인 대통령이 매일 다섯번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 적극적으로 보도되는 사회가 조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통성으로 기도하자는 제안을 거부했다면 그 자리는 심하게 어색했을 것이고, 대통령은 동료 기독교인에게 대통령이기 이전에 기독교인임을 명심하라며 욕을 먹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해프닝의 책임은 그 제안을 한 철없는 목사에게 돌아가는 것이 옳다. 그는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하러 갔지만, 대통령을 궁지에 빠뜨린 무책임한 인간이다. 무심코 그랬다면 철없고 무식한 경망스러운 노인네고, 알고도 그랬다면 자기가 돋보이기 위해서 남에게 피해를 준 참 나쁜 인간이다.
3.
[전문기자 칼럼] '부처님 손바닥'에서 일하기
Tuesday, March 08, 2011
스폰서
세속의 인간의 삶이란 결국 스폰서를 찾는 인간의 역사다. 공자의 생애도 역시 그의 사상의 스폰서를 찾는 것이었고, 그의 제자 자공은 그의 든든한 스폰서였다. 정치부터 연예계 그리고 교회와 화류계까지, 경쟁이 치열한 곳일수록 스폰서에 대한 갈증은 크다. 목사의 성공 스토리에는 든든한 후원자가 등장하는데, 그들은 자신의 스폰서가 예수 뿐이라고 강변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럴 수 있었던 사람은 예수 뿐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예수의 초기 스폰서는 사도 요한이었겠지만 예수는 그의 곁을 과감히 떠났다.스폰서 없는 세속의 성공에 나는 회의적이다. 성공의 지속성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도 정신적 물질적 스폰서가 있었다. 물론 나의 가장 강력한 스폰서는 부모님이였다. 과연 그들의 나의 스폰서인지는 내가 곤란해지면 금방 알 수 있다. 누군가는 나의 재기를 확신하면서 누군가는 재기여부와 상관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나도 그 때 도움을 주셨던 분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게 스승이란 이름이든 멘토란 이름이든 강력한 스폰서를 얻는 일은 성공의 지름길이지만, 괜찮은 스폰서를 구하는 첫째 조건은 괜찮은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자신의 가치를 비굴하지 않게 내보이는 것이다. 서로 스폰서가 되어주려는 사람이 되려면 가능성이 돋보이거나, 매력이 넘치거나, 이해관계가 맞아야 한다.
김태원은 훌륭한 멘토의 모습을 보여 찬사를 받았다. 누구나 그런 멘토를 바란다. 누군가는 스폰서를 구하려다 변태와 마주쳤다. 참으로 슬픈 이야기다.
나의 iPhone에서 보냄
Monday, March 07, 2011
China's annual NPC meeting : Key Indicators for the 12th five year plan
Friday, March 04, 2011
3월 15일, 이글즈
프로와 아마추어
프로 트레이더와 아마추어 트레이더의 차이는 프로 트레이더는 벌지는 못해도 터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자신의 손실을 제한시키는 것, 그것이 핵심이다. 트레이딩을 처음 했던 몇 년은 어떻게 하면 돈을 벌까만 생각했다. 왜 이렇게 훌륭한 뷰로 이만큼 밖에 벌지 못할까, 가 나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러나 최근 1년 동안은 어떻게 하면 돈을 터지지 않을까만 생각했다. 내가 회사를 떠나서 트레이딩을 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한 건, 돈을 터지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 어느 정도 머리 속이 정리가 되가면서부터.Tuesday, March 01, 2011
자축 혹은 위안
조급해하는 사람들에게 "인생은 한방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자주 말해준다. 착실한 성공이란 사실 드문 사례다. 세상의 모든 세속적인 성공은 불꽃같은 한방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한방이라는 말은 "막 살아도 운이 좋으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에너지를 축적해가다 보면 언젠가는 발산할 날이 온다"는 위안인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런 위안을 해줄 사람이 필요한 법이다.
김태용, 만추
현빈은 고급매춘을 직업으로 삼는 남자다. 레빗은 '수퍼 괴짜 경제학'에서 고급매춘이 싸구려 매춘과 어떻게 다른가 설명한 적이 있다. 시간당 100만원 정도의 돈을 지불하고 여자를 사는 사람은 단순히 섹스만을 사는 것은 아니라고 그는 설명한다. 내 식으로 부연하자면, 고급매춘을 구매하는 고객의 결혼은 매춘보다도 더 비싸다. 그런 사람에게 이혼은 너무나 비싼 선택이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결혼상태를 유지하면서, 현재의 결혼상태가 주지 못하는 효용을 찾는다. 상냥하고 다정하며 지적인 대화가 통화는 고급 매춘의 상대는 매춘부라기 보다는 사실상 '트로피 와이프'에 가깝다고 레빗은 설명한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재벌의 딸과 결혼한 남자는 상대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쉽게 이혼하기는 어렵다. 그의 일상의 행복 뿐 아니라 행복도 다 그 결혼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남자가 고급 매춘부를 찾는 건 놀랍지 않다. 아마도 그녀의 다른 이름은 '애인'이겠지만.현빈의 서비스를 이용했던 여자 옥자(김서라)는 마피아의 부인이다. 그가 현빈에게서 남편이 주지못하는 그 무엇인가를 돈을 주고 구매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옥자는 어느 순간 자신의 결혼에서 결여된 그 무엇인가를 잠깐 즐기는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일탈한다. 그녀가 현빈에게 "이제 나하고 같이 살자"고 하는 순간, 그녀는 금기를 넘어서게 된다. 당연히 그녀의 결혼은 위험해진다. 위험해진다는 것은 "얻을 것을 적은 대신, 잃어야할 것은 많은" 그런 상황을 말한다. 게다가 그녀의 남편은 무섭고 폭력적인 사람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현빈이 그런 그녀의 제안을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빈은 자신이 옥자가 원하는 그런 남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더 잔인하게 말하면, 현빈은 옥자가 꿈꾸는 환상적인 남자가 되어주는 서비스를 그 정도의 가격에 응할 용의가 없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청을 거부하고 일어선다. 신랄하고 잔인해 보이지만, 그 둘 관계의 매카니즘이 그렇다.
현빈이 옥자때문에 위험해지는 사건이 진행되는 사건과 병렬하여, 현빈은 탕웨이에게 선의를 베푼다. 그는 돈을 받지도 않았는데 그녀에게 섹스할 뻔 했고, 그녀와 말동무를 해주며, 그녀가 어머니의 육체와 이별할 때, 사랑했던 사람에게 애증을 발산할 때 동행해준다. 왜 그는 그런 행동을 하는가? 왜 그는 그녀에게 말을 걸고, 그녀에게 웃음짓고, 그녀를 위해 분노하는가? 왜 그는 그녀가 감옥으로 돌아가는 여정에 동행하는가? 그의 이 모든 선의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이 영화를 보고 밋밋하다고 느꼈던 사람들, 이 영화를 보고 현빈이 그 역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이 영화를 보고 긴장감을 느끼지 못했던 사람들은 아마도 현빈의 선의를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현빈이 탕웨이에게 30 불을 빌리던 그 순간부터, 비닐봉투에 머리를 담겨져 끌려가고, 달려가 탕웨이를 안고 키스한 그 장면까지 나에게는 이 영화의 많은 장면이 파워풀했다. 충분히 감정이입을 했던 것이다. 오랜만에 본 좋은 영화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