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인 여자 선배에게서 들은 말이 있다. 강간으로 기소된 자에게 최악의 판사는 여자 판사가 아니라 딸을 둔 아빠 판사라고. 그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인간이 형량하는 이해관계과 리스크. 여자 판사의 의지에 반해서 본인이 강간당할 가능성은 미미하지만, 남자 판사의 의지에 반해서 딸들이 강간당할 가능성은 훨씬 높다. 아빠의 적개심은 이해가 가는 구석이 있다. 둘째, 판결의 자의성. 판사는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는 말은 법이 판결의 기준이 되지만, 양심이라는 보이지 않는 기준에 따라서 얼마든지 판결의 수위가 자의적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법률과 양심에 따라서 판결을 하는' 판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때문에 비난을 받고 있다. 판결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하는 것과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고, 구별되어야 한다. 설령 우리가 판사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제한한다고 해도, 그 판사가 마음속으로 정치적 편향성을 갖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낸 판사에게 정치적 판결을 맞길 수 밖에 없는 것은 법률 시스템이 갖고 있는 구조적인 한계일 뿐이지,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해서, 정치적 편향성이 어느 정도 판결에 반영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예컨대, 딸을 둔 아빠 판사가 강간 사건을 맡는 걸 배제하기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사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비난하는 건, 논란에 핵심이 되는 판사들이 SNS라는 사적 공간에 의견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파급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파급효과는 (보수언론이 대변하는 보수진영)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반하고 있다.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 우리의 헌법적 가치를 지켜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비용을 요구한다. 우리는 헌법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지만, 그것이 다른 가치와 충돌할 경우 헌법적 가치에 한계를 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암묵적 동의가 이루어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 같은 말을 교수가 하면 시비거리가 되지 않지만 교사가 하면 해임의 사유가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자의로 고등학교를 택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학교가 예배를 강요하면 거부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종교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는 한 고등학생이 지루한 법률적 투쟁을 거쳐서 겨우 보호받을 수 있었다) 사실상 형식절차에 지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지만, 여전히 몇몇 사립대학의 교수가 되려면 개신교 신자가 아니면 안 된다. 그 학교들의 시장 지배력을 고려할 때, 그러한 절차는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에 반한다, 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본질적인 헌법적 가치가 다른 이해관계 혹은 더 하위의 법률 때문에 한계가 설정되고 용인되는 사례는 너무 많다.
미국에 경우 토요일 안식일을 지킬 수 없어서 해고된 안식교 신자(집에 와서 찾아 보니 그의 이름은 Adell Sherbert다)가 실업급여 지불과 관련해서 종교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가 침해 받았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리했다. 심지어 종교의식에 사용하기 의한 마약 소지를 처벌하는 법률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이라며 낸 소송에서도 Alfred Smith란 이름의 마약 소지자는 연방대법원에서 5대 4라는 근소한 차이로 졌을 뿐이다. 지난 21일, 캔자스 주에서는 주지사의 강의를 듣던 에마 설리번이란 이름의 고등학생이 "주지사가 말이 많고 개판이라고 욕을 해줬다"는 허위 트위터 멘션을 올렸다가 주지사가 사과를 요구하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난에 오히려 주지사가 사과를 해야 했다. "헌법의 풍경"이란 책을 쓴 김두식 교수에 의하면, 헌법적 가치라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지 "그러나"의 정신으로 제한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미네르바나 PD 수첩 사건의 본질 역시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여러가지 비용에도 불구하고 보호할 것이냐의 문제다. 다행스럽게 내려진 판결의 결과는 비록, 인터넷으로 쓴 글이나 보도 내용이 (의도적으로 혹은 실수로)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 그 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명예훼손에 대해서 상당히 포괄적으로 처벌하고 있다. 도둑인 자를 도둑이라고 공공연하게 비난해도 만약 이러한 사실의 적시가 그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켰다면 명예훼손죄가 성립된다. 그렇다고, 한국이 명예를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느냐하면 현실은 별로 그렇지 않다. 명예훼손은 자주 언론과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침해하는 방식으로 이용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강용석 사건. 강용석은 20여명의 대학생들을 앞에 두고 여러가지 실언을 하는데, 그 중에는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줄 각오가 되어야 하는데 마음의 준비가 되었냐?"라는 말도 포함되어 있다. 발언의 대상인 여학생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말함으로써 이 발언은 정의상 성희롱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이 여학생은 강용석을 상대로 고발하지 않았다. 엉뚱하게도, 아나운서들이 자신들의 직업이 모욕을 당했다며 민사상/형사상 고발을 했다. 그리고 민사에서는 패소했지만, 형사에서는 유죄가 선고되었다. 2심에서 받은 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강용석은 국회의원직을 유지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집단모욕죄라는 게 광범위하게 적용된다면, "기자(혹은 교사)들은 촌지나 받고 사회정의(바른 교육)에는 관심도 없다"는 표현이나, (한 개그맨이 표현했듯이)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이익대신 자신들의 안위만 신경쓴다"는 표현, 그리고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대부분은 잠재적 성매매자"라는 식의 표현은 모두 집단모욕죄에 해당된다. 특정집단의 일부에서나 가능할 법한 행위를 전체로 확대하여 그들이 추상적인 명예란 가치를 훼손했다는 점에서, 아나운서를 잠재적 성매매자로 표현한 강용석과 국회위원을 저질 집단으로 싸잡아 비난한 개그맨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죄질로 따지자면, 비교적 사적 모임에 가까운 곳에서 발언한 강용석의 발언보다 방송에서 공공연하게 명예를 훼손한 개그맨이 더 나쁘다. 만약, 같은 말을 해도, 개그맨이 아니라 (공적 지위에 있는) 국회의원이 하면 다르게 다뤄야 한다는 논리라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이슈에 발언하는 판사야 말로 엄벌에 처해야 할 것이다. 집단모욕죄라는 게 이런 식으로 포괄적으로 인정되어 경찰 전체가 자신을 모욕했다며 시민을 고발하고, 의사협회 전체가 환자 개인을 고발하는 사회는 생각만 해도 우울하다. 만약, 최효종에 대한 소송이 실제로 진행이 됐다면 최효종은 그다지 여유있게 대응하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법원이 최효종에게 유죄를 선택할 가능성은 (국민정서상) 높지 않지만, 법리면으로 봤을 때 터무니없는 소송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단모욕제 사건은 많은 경우 피해를 입은 집단과 발언을 한 개인간의 소송일 것이다. 개인(혹은 약자. 예컨대 아나운서 협회를 상대로 하는 강용석, 강용석을 상대로 하는 최효종)으로서 집단을 상대로 그런 소송을 진행해야 하는 것은 대단한 스트레스다.
강용석은 여러가지 점에서 내가 좋아하기는 어려운 인간이지만, 지금 강용석에게 가해지는 비난과 처벌은 저지른 잘못과 처벌이 조화를 못 이룬다는 점에서 부당한 면이 있다. 어쨌든, 그걸 다채로운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강용석도 은근히 대단(이건 칭찬일까 욕일까)한 면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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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한 판사가 성희롱 관련 판결에서 이런 말을 했답니다. "If we had no sexual harassment we would have no children."
ReplyDelete러시아스럽게 좀 과장된 말이긴 하지만. 어쨌던 말로 희롱하는 것에 대해서 피해자의 고발도 없는데 형사범으로 유죄판결 내는 것은 어색하다는데 동의합니다. 그런 언급 자체가 죄라면 대한민국 남자 99%는 이미 감옥에......
Indiz/ 그 1%가 있다는게 놀랍네요.ㅋㅋ
ReplyDelete대법원의 전파가능성 이론만 봐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부장판사의 변명은 도저히 판사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우리법연구회에 들어가면 판사들이 다들 이상하게 변하는 건지 아니면 이상한 판사들이 우리법연구회에 들어가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ReplyDeleteindiz/ 포인트를 잘못 잡으신 것 같은데요. Hubris 님 글은 아나운서 집단 명예훼손이 가능하냐는 거죠. 그 말을 들은 사람에게 성희롱이 성립한다는 건 별개의 문제죠. 강용석이 여자 대학생들에게 언어적 성희롱을 한 것은 분명하구요.
ReplyDelete님 댓글이 대한민국 99% 남성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인데요.
anonymous/ 역시 포인트를 잘못 잡으신 듯. SNS에서의 표현의 자유와 법관의 정치적 중립 문제에 왜 명예훼손죄에서의 전파가능성 이론이 나오는 거죠?
두 분 다 법을 읽다 마신 듯.
마지막 익명/
ReplyDelete제가 글을 잘못 썼나 반성중이었어요.
자주 놀러오기는 하지만, 이 게시물 읽고서 Hubris님이 법리에도 매우 밝으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익명)
ReplyDelete첫 문단을 읽고 참 오래 생각했는데요, 저 얘기의 어느 구석이 기분이 나쁜 걸까 하고.
ReplyDelete1. 그 여자 선배는 왜 강간으로 기소된 자에게 최악의 판사는 "딸을 둔 여자 판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2. 여자 판사의 의지에 반해서 본인이 강간당할 가능성과, 남자 판사의 의지에 반해서 딸들이 강간당할 가능성의 차이가, 혹은 그 차이만이 적개심의 강도를 결정하는가.
여자판사가 딸을 둔 남자 판사에 비해 강간범죄에 가혹하지 못하다면, 그게 사실이라면, 그걸 현실적으로 범죄에 노출될 확률이 적어서, 따라서 그런 일을 자기 일로 여기지 않고 안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건 좀 부당하지 않나 싶어요. 길게 쓰신 글의 내용에 비하면 지엽적인 부분이겠지만요.
강용석의 배짱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타고난 능력? MB 조카사위라는 배경? 그런데, 1년 지나면 시한 만료될 MB 약발을 믿고 아직 앞 길이 창창한 그가 이런 대담한 모험을 무릅쓴다? 그렇다면 타고난 그의 담대함? 정말 알 수 없네요.^^ 누가 말했냐가 현실적으로 중요한 무게를 갖는 것에 동의합니다. 국회의원이 아나운서를 꿈꾸는 대학생들 앞에서 그런 말을 했다면 대부분 믿게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대학생들은 선배 아나운서들을 다 준것으로 오인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정신적으로 이미 아나운서들은 집단모욕당한 것이 아닐까요?
ReplyDelete익명/
ReplyDelete익명으로 글을 쓰시는 분들이 지칭이 어렵네요.^^ 1)의 포인트는 좋은 지적이네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금 판사들주에 여성비율이 아주 많이 올라갔지만, 50대 전후의 부장판사들 중에서 여성 판사의 비중은 아직 적은 편이니까요. 2)에 대해서는 그것만이라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결국 그게 압도적이라고 보입니다. 인간이 의사결정을 할 때는 비용과 편익이 가장 큰 요인이라 저는 보니까요.
그렇군요,,, 내용들 잘읽고 갑니다.. From es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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