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y 09, 2011

에이미 추아, 타이거 마더

어제 예술의 전당에서 보리스 베레조프스키가 수원 시향과 협연한 세 개의 협주곡을 들었다. 이 러시아 피아니스트는 여러가지 면에서 한국인들과 잘 맞는다. 러시아인들은 한국 사람들처럼 즉흥적이고, 다혈질이며, 열정적인데, 베레조프스키의 연주 스타일은 아무리 부드러운 타건을 보여줄 때에도 힘이 바탕이 된다. 다른 피아니스트들이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가 "너무 간질간질해서 좀 더 뚫고 가줬으면" 하는 바램을 갖게 한다면, 베레조프스키는 "조금만 강도를 낮춰도 될텐데"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요즘의 내 심리상태는 베레조프스키의 연주 스타일이 딱 맞고, 매우 좋았다. 특히 리스트와 라흐마니노프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 영혼을 공중부양시키고 라흐마니노프의 마지막 악장에서는 내 온갖 감정이 뒤엉키다 못해 무념무상의 경지에 들어갔다. 그리고 3년만에 처음으로 기립박수를 쳤다. 하루에 피아노 협주곡 3개에 앵콜 4곡이라니.

키신이나 안츠네츠 혹은 베레조프스키 수준의 음악가가 되는 것은 15세가 되기 전 (혹은 그 이전)에 결정난다. 다른 말로 하면, 본인이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자신의 인생에 대한 선택권을 발휘해서 음악을 시작할 때 즈음이면 이미 늦다는 말이다. "그러면 뭐 어때, 그냥 음악을 좋아하고 즐기면 그만이잖아?"라고 하면 그렇게 살면 된다. 하지만 인생의 비극은 이미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나서, 본인에게 음악적 재능도 있고 하고자 하는 욕망도 있지만,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다. 그때부터라도 열심히 하면 되잖아, 라고 말하는 건 "인생은 원하는 일을 하고 살아야 즐거운 법"이라는 원칙에 비춰 보면 맞는 말이지만, 남자 나이 23살이 되어서 군대에 다녀온 후에 야구를 시작해서 메이저 리그를 가거나, 피아노를 시작해서 쇼팽 콩쿨에서 입상하거나, 수학 공부를 시작해서 MIT 수학과에 박사과정에 입학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세상에 무엇인가 그럴 듯한 업적을 쌓는 예술가나 학자들은 이미 20살 무렵에 대가가 될 준비를 다 끝내 놓는다. 유감스럽지만 그게 분명한 사실이고 현실이다. 늙어서 정신을 차리면 많은 경우 이미 늦다. 물론 자율적으로 선택권을 행사하는 나이가 되면 열심히 하기는 한다. 하지만, 먹고 살 지경은 될지 몰라도, 대가가 되긴 이미 글렀다.

줄리어드에서 박사 학위를 마치고 지금은 미국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국민학교 동창인 친구 K는 피아니스트다. 국민학교 시절에 시험을 보면 월말고사 대부분을 만점을 맞았을만큼 총명한 아이여서 피아니스트가 되지 않았더라도 다른 방면에서 성공했을 것이라고 친구들은 자주 이야기하곤 했다. 그 친구 때문에 내 국민학교 동창 중에는 안츠네츠와 저녁 먹고, 키신과 차 마시고 사진 찍은 친구들이 있다. 나는 페이스 북을 하진 않지만, 그 친구 덕분에 내 텅빈 페이스 북을 열면 알만한 클래식 음악가들이 제법 보인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내가 골목에서 야구하고 축구할 때 그녀는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었다. 예일대에서 박사를 마치고 칼텍을 거쳐 지금은 서울대 교수로 있는 친구 K. 국민학교 동창이자 고등학교 시절 짝이며 수학자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수학여행을 갔는데, 아이들이 춤추고 담배 피고 술 마시고 놀고 있을 때, 이 친구는 백지 하나 꺼내 놓고 수학문제를 풀고 있었다. 그 당시 이미, 문제집이나 참고서가 필요 없었던 레벨이었던 건 둘째치고, 그에게는 수학문제를 푸는 게 담배피고 술 마시고 쓸데 없는 소리 하는 것 보다 재밌었던 것같다. 지금은 경제학과 교수로 있는 선배 S형. 내가 친형보다 더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S형이 하버드에서 박사과정에 있을 때,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점심을 사 주던 S형이 말했던 게 몇가지 기억나는데, 1) 너는 내가 점심을 함께 하는 최초의 방문객이다, 2) 빤스를 빨 시간이 없어서 이틀 입고 버리고 있다, 3) 여기에 오기 전에는 경제학이 여자 친구 만나는 것 다음으로 재미있었는데 이제는 데이트 하는 것 보다 더 재밌는 것 같다.

주말 동안 에이미 추아의 타이거 마더를 읽었다. 에이미 추아의 책이 출판될 즈음에 그녀는 월 스트리트 저널에 왜 중국 엄마들이 우월한가?"란 글을 썼다. 그녀의 책을 읽지 않고, 그녀의 글을 읽은 사람들의 대부분의 반응은 재수없고, 독선적이며,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녀는 자신의 딸들에게 절대로 못하게 금지했던 것들의 목록이 다음과 같다고 했다.

• attend a sleepover (친구집 가서 자고 오기)
• have a playdate (친구집에 교대로 가서 놀기)
• be in a school play (학교 연극 참여)
• complain about not being in a school play (학교 연극을 못하는 걸 불평하기)
• watch TV or play computer games (TV 시청이나 컴퓨터 게임)
• choose their own extracurricular activities (방과후 활동을 직접 고르기)
• get any grade less than an A (A 이하의 점수 받기)
• not be the No. 1 student in every subject except gym and drama (체육과 드라마를 제외한 나머지 과목에서 일등 못하는 것)
• play any instrument other than the piano or violin (피아노나 바이올린 이외의 악기 연주)
• not play the piano or violin.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연주하지 않는 것)

내가 그녀의 책을 읽기 전, 칼럼만 읽고 한 생각은 이랬다. "그녀의 양육방법(지나친 자유는 아이에게는 벌에 가깝고 "비교"는 아이에게 자극제가 되며 부모의 기대치가 높아야 아이의 성과가 좋아진다는 식)은 어떤 아이들에게는 성공할 것이고, 어떤 아이들에게는 실패할 것이다. 그녀의 철학대로 성공하는 쪽은 남자보다는 여자가 많을 것이고, 둘째보다는 장남/장녀에게 적합할 것이다." 그녀의 책을 읽어보니, 그녀는 내가 예상한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한다." 첫째 딸은 그녀의 교육법을 비교적 잘 따라와줬고, 둘째는 성공하긴 했지만 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했다. 그녀의 교육철학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그녀의 둘째 딸의 기질(내 방침을 따르지 않으려면 나가라, 는 위협에 둘째 딸은 나가겠다, 고 오히려 엄마를 위협한다)이 그녀의 방침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이들은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지 않는 존재라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꼭 해야 할 일은 부모가 정해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재미를 느끼는 것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일 경우보다는 자신들이 잘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은데, 문제는 아이들은 혼자서는 노력해야 하지 않는다. 엄마가 아이들이 노력하게 도와주고, 노력해서 좋은 결과를 얻게 되면 주변의 칭찬을 받고 친구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자신감을 갖게 되고, 재미없던 공부들도 재미가 있어진다. 이러한 그녀의 주장은 별로 모순이 없다. 구구 절절히 맞는 말이다. 내 경우도 그렇고, 위에 언급한 내 친구들의 경우도 죄다 그렇다. 문제는 그렇게 만들기가 몹시 어렵다는 것이다. 대개의 인간은 미래의 효용보다는 당장의 쾌락에 더 몰입한다. 어린 아이 뿐 아니라 어른들 역시 마찬가지다. 내일이 시험인데 공부를 않고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건 비단 아이들만 하는 짓이 아니다. 하물며, 아이들에게 당장 재밌는 것 대신에 미래에 더 유익한 것을 하라고 설득하기는 몹시 어렵다.

30대 이상의 어른 중에서 10대에 더 담배피고 술마시고 게임하고 TV 볼 껄 못해봤다고 후회한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직 한 사람도 보지 못한 것 같다) 대중가요를 들을 시간에 피아노 정도는 배워놓을 껄 후회하는 사람은 본 적이 있다. 게임할 시간에 영어 공부를 좀 제대로 해 놓을 껄 하고 후회하는 사람도 본 적이 있다. 내 경우를 보자면, 어린 시절에 배워 놓아서 흐믓해 했던 것은 수영 뿐이다. 나머지 산만하게 했던 놀이들은 그 뒤로 해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딱히 추억이나 향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른 시절에 조금 하다가 포기해서 후회하는 것은 피아노다. 나이 들어서라도 배웠으니 후회는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테니스다. 나이 들어 시도는 해보았으나 이건 나이 들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완전히 체념했던 것은 바이올린과 수학이다. 나이가 들어서 후회하는 것 중 하나는 왜 그렇게 쓸데 없는 소설들을 많이 읽고 쓰잘데 없는 영화를 많이 보았을까 하는 것이다. 무협지와 무협영화들은 안 보는 편이 좋았지만, 그 시간이 딱히 무얼 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들을 그런 식으로 아깝게 써버렸다, 는 자괴감은 지금도 있다. 하지만 나의 10대에는 배워두면 평생을 두고 즐거울 그런 것들에 집중하고 몰입하지 못했다. 부모님들은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갈 자신이 없었고, 나는 자율을 감당할 능력과 의지가 없었다. 부모님들은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으면 좋다고 생각했고, 나는 그에 대한 반작용과 반발심으로 내게 자유를 주길 원했다. 나는 학교에 남아 숨어서 몰래 이상한 책들을 읽고 우쭐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대학에 떨어지고 종로학원에서 자유를 얻자, 내가 낭비하는 시간은 극단으로 많아졌다. 재수시절 나는 학력고사를 일주일 앞두고도 학원근처 국제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 때문에, 에이미 추아는 아주 극단적인 논리-"중국식 교육방법이 미국식 교육방법보다 낫다"-를 전개했던 듯 보이고, 이런 주장은 보나 마나 많은 반발을 일으킨다. 아마존 서평 역시 극단으로 나뉜다. 호평인 쪽은 "나도 이런 엄마가 있었더라면 더 나은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란 생각을 갖고 있는 듯 하다. 악평인 쪽은 "이런 사고 방식은 구소련에서나 갖고 있는 것이고 아이들의 인생은 끔찍할 것이다"란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주장을 꼼꼼히 따져보면, 아이들이 엄마의 가르침을 제대로 수용해 내기만 한다면 당연히 중국식 교육 방법이 낮다. 문제는 어떤 아이들은 기질상 이런 엄마에게 아주 극렬하게 저항한다는 것이다. 나나 그녀의 둘째 딸 룰루가 그랬던 것 처럼. (에이미 추아, 중앙일보 인터뷰)

게임이론적으로 보자면, 부모의 입장에서 최적의 전략은 일단 에이미 추아와 같은 디서플린이 강한 교육방침을 일단 고수하는 것이다. 만약, 아이가 수용한다면 부모는 계속 연료를 공급하면서 아이들은 연마시키면 된다. 만약 아이가 거부한다면, 부모는 적절한 당근을 제공하면서 아이와 타협할 필요가 있다. 에이미 추아가 그랬던 것처럼. 이렇게 아이에 따라서 차별적인 전략을 써야 하는 것은 여자/남자 혹은 첫째/둘째들이 서로 다른 효용함수를 갖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부모의 인정이 중요하지만, 누군가는 친구들의 인정이 중요하다. 누군가는 순종적이지만 누군가는 반항적이다. 누군가는 긴 안목을 갖지만 누군가는 짧은 견해를 갖는다. 그걸 바꾸기 보다는 타협하는 게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다.

이 책은 양육방식에 관해서가 아니라 인생 전반에 대해서, 두 가지 생각해볼 거리를 제공한다. 하나는 부모와 자식관계의 본질이 무엇인가, 이고 다른 하나는 도대체 행복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내 경우를 보자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결국 무엇인가를 성취했을 때 찾아오는 것이었다.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들은 그닥 불행했던 적도 없고, 그닥 행복했던 적도 없었다. 그냥 저냥한 일상의 연속일 뿐이었지. 에이미 추아의 두 딸도 자신들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꼽는 순간이 있다. 역시 고된 노력 끝에 아름다움 무엇인가를 성취한 순간이고, 그 노력이 없었더라면 절대 맛 볼수 없는 것이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인생은 본질적으로 슬픈 것이고, 행복은 이따금씩 찾아와 한순간 찾아왔다가 사라진다"고 말한 바 있다. "매 순간으로부터 그 핏방울을 뽑아내야 한다"고. 아마도 그 핏방울을 뽑아내려면 노력없이 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김연아도 비슷한 말을 했다. "행복했던 추억보다 힘들었던 기억이 많다"고. 그렇다고 해서 김연아가 힘들었던 기억이 별로 없는 우리와 자신의 인생을 바꾸고 싶어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까, 행복이란 게 지금 괴롭지 않은 상태라고 생각하면 아이에게 자율권을 주고 아이가 시간을 낭비하든 말든 방치하는 것도 그닥 나쁜 생각은 아닌 듯 하다. 하지만, 인생의 의미있는 성취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아이에게 디서플린을 지키도록 하는 건 좋은 생각같다. 문제는 부모에게 아이에게 그것을 가르칠 능력과 시간과 돈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3 개의 댓글:

  1. 앞부분에 써 주신 음악가들과 그외 뛰어난 지인들의 사례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해요.

    그런데 그 이론을 일반적으로 적용하는 데는 문제가 있는 것이 (또는 많은 일반인들이 타이거마더의 육아법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겠지요),

    (1) 일찍 discipline을 시작한다고 해서 누구나 다 그렇게 진작부터 적성을 찾아 head-start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극소수의 재능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2) 일찍 discipline을 시작하고 싶다고 해서 모든 부모가 art of discipline을 적용할 줄 아는 게 아니다. 수많은 부모들은 본인도 self-discipline을 잘 하지 못하고, 자식도 일관성 없이 이랬다저랬다 잡기만 할 뿐.

    이야기하다 보면 성공한 타이거엄마의 성공재생산 식 스토리에 반감을 느끼는 많은 엄마들을 봅니다. 저 개인은 추아 교수의 육아법에 많은 부분 동의하지만, I don't want to preach what I practice 가 적용되는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이 아닐까 싶네요. 어디 가서 난 타이거맘 이야기에 공감하고 동의한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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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1)과 (2)를 합쳐서 생각해보면, 부모 자신의 디서플린 운용에 대한 역량이 있는 경우엔 비교적 자식들이 큰 부작용 없이 따라오는 듯 해요. 하지만, 역량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인생에 대한 회한에서 출발해서 운용의 묘를 살리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 붙이면 아이들이 행복해하지 않거나(왜 우리 부모는 나에게 만족하지 않을까?), 자존감이 낮아지거나(난 아무리 해도 안 되는구나), 반발심이 커질(자신들 인생도 별 볼일 없었잖아?), 가능성이 높지 않나 싶습니다.

    디서플린을 심어주되 나이가 들면서 점점 자율성을 주는 것, 이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싶어요. 김용옥 선생이 일관적으로 주장하는 내용이기도 하죠. 어렸을 때는 그런가 싶었는데, 결코 만만하고 쉬운 원칙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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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내일의 효용을 위해서 오늘을 희생한다는 건 10대, 20대에 국한 되는 거 아닐까요? 40대, 50대가 오늘을 희생해서 50대, 60대에 얻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요?
    당장 생각안나서 물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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