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September 28, 2010

아침 풍경

어제 아침 출근하다가 이상한 광경을 봤다. 기사가 운전하는 파란색 소나타에서 단구의 50대 후반의 여자가 내렸는데, 약간 키가 더 큰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의 여자가 두개의 커다란 핸드백을 들고 옆에서 따라갔다. 여자는 수행원인 듯 한데, 방금 내린 소나타하고는 잘 연결이 안 되서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 봤더니, 여성 가족부 장관이었다.

백장관의 딸은 엄마의 핸드백을 들어줄까? 아니, 백장관은 자기 핸드백을 딸에게 들게 할까? 저 비서는 자기 엄마의 핸드백도 들어줄까? 그리고 마지막- 저 비서는 자기 시어머니의 핸드백을 들어본 적이 있을까?

장관이나 사장이 가방이나 핸드백을 들라고 했을 때, 그 앞에서 들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것은 회사를 안 다니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떤 사람은 '이게 비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냉큼 들 것이고, 어떤 사람은 '비서란 가방따위를 드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거부하고 회사를 그만 둘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비서가 할 일'을 정해주고 비서를 쓰는 사람은 없다. 비서를 하겠다고 맘을 먹었다면, 냉큼 가방을 드는 쪽이 (설령 그 다음날 비서짓을 그만 두더라도) 현명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러나, 장관보다 자기 엄마가 소중하지 않은 건 아닐텐데, 누구도 냉큼 자기 엄마의 핸드백을 들지는 않는다. 그것 역시 너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Monday, September 27, 2010

사람의 눈물

충주에 다녀왔다. 아이들은 신비로운 존재다. 원하는 것을 모두 해주어도 아이를 망치지만, 꼭 필요한 것을 해주지 않으면 아이는 채워지지 않는다. 채워지지 않는 아이들은 진짜로 웃지 않는다. 아이들을 재워 놓고, 맥주잔을 앞에 놓고 후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죽고 난 다음에 영혼의 구원이 없다고 생각하면 모든 게 허무해요"

다음 날 오후, 집에 돌아와서, 남자의 자격 '하모니'의 마지막 편을 본다. 하모니를 만들어낸 그들이 서로를 안고 운다. 2달 동안 함께 했던 합창단이다. 대부분 무명이었고, 대부분 자신들이 누군지 확인 받기를 원했던 사람들이다. 그래도 그들의 눈물의 디테일은 각자 나름의 사연을 갖고 있고 의미도 조금씩 다를 것이다. 그러나, 그 눈물의 심연, 눈물의 본질에 흐르는 아쉬움과 아픔은 비슷한 것이다.

"이제 나는 영영 그에게 가 닿을 수 없다. 죽지만 않았어도 어떻게 해보겠는데 이젠 다 틀렸다. 다시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삶과 죽음은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지만, 그 두 세계는 영원히 만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영원히 만날 수 없다."
-김연수, 잘 가세요 나의 대통령-

Friday, September 24, 2010

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

2010년에 나온 책 중에서 '삼성을 생각한다'는 아주 의미심장한 책이다. 이 책은 생각보다 아주 유려하고 촘촘한 문장들로 쓰여졌다. 읽는 것 자체가 즐겁다. 김용철이란 사람은 강한 자의식을 가진 사람이고 글쓰기를 꾸준히 해온 사람인 듯 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내용을 이런 문장으로 쓰기 어려웠을 것이다. 법적인 사고의 훈련을 받았고, 어떤 사물에 깊게 생각하는 편이어서인지, 그는 사실 관계를 전달하는데 정교할 뿐 아니라, 사물의 이면을 바라보는 시각도 상당히 깊다.

이 책이 갖는 중요성은 일차적으로 팩트 자체를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는 데 있다. 이런 종류의 팩트 자체를 아는 사람이 드물고, 팩트 자체를 아는 소수는 아무도 그걸 기록으로 남기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팩트들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다양한 생각거리를 준다. 삼성에 10년을 다녔어도, 이 책을 읽지 않고서는 삼성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올바로 깨닫는 게 어려운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삼성에서 능력으로 임원이 되고자 한다면 구조본을 가야 한다. 그게 가장 쉽고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다. 만약, 구조본에 갈 수 없거나, 가고 싶지 않다면,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임원이 되려면 능력 뿐 아니라 충성심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은 애초에 충성심이 없고, 어떤 사람은 충성심이 있어도 믿어주지 않는다. 적어도, 삼성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삼성이 이상한 회사니까 떠나라는 게 아니다. 다른 곳으로 가면 삼성보다 낫다는 보장이 있는가? 그런게 아니라면, 삼성에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책을 보고 공부할 필요가 있다.

삼성을 다니지 않는 사람에게도, 이 책은 중요한 텍스트가 될 수 있다. 김용철은 아들이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고 생각할까봐 이 책을 썼다고 했다. 하지만, 정의가 '항상' 이기는 것도 아니고, 이기는 게 정의일 리도 없다. 둘 다 틀린 말이다. 우리는 정의가 승리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만, 정의가 항상 승리한다는 허황된 생각을 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한, 모든 이기는 것이 정의라고 인식할 리도 없다. 다만, 이기는 게 정의, 라고 믿고 행동하는 자들은 결국은 자체의 결함과 모순으로 붕괴된다. 왜 정의롭지 않은 삼성의 경영방식이 성공했을까? 그건 이건희가 저지른 부정과 이건희가 거둔 성공이 별개의 매카니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건희가 겪을 파국은 이건희가 저지른 부정과 상관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상관은 있지만, 결정적이지 않아서 문제일 뿐이다.

이건희는 자신이 저지른 부정에도 불구하고 왜 성공할 수 있었는가? 김용철의 묘사대로 이건희는 회사에 출근도 하지 않았고, 명품에 취해서 여러가지 황당한 짓(황당한 명품회사를 인수하는)을 한 적도 많았고, 여러가지 경영상의 오판도 저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저지른 부패를 가능하게 해 준 것은 삼성전자의 성공이었다. 그리고, 그의 경영상의 판단이든, 그의 용병설의 총명함이든, 삼성전자의 성공에는 그의 능력과 운이 작용했다. 그리고 그 능력의 핵심은 '생각하는 힘'이었다. 아마도, 그는 어떤 이슈에 대해서 몰입해서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이건희를 재수 없는 인간으로 생각하지만, 그가 내린 의사결정이 성공한 이면에는 그의 생각하는 힘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예로, 이명박이 현대건설에서 성공하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데에는 이명박의 생각하는 힘이 작용한 결과다. 이명박이 가진 여러가지 인간적 약점과 그의 성공은 분명히 별개일 것이다. 물론 그의 성공은 우리의 불행이지만, 그런 것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서 삼성의 미래를 읽을 수도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재용의 삼성으로는 10년을 버티기도 어려울 것이다. 경영자가 가져서는 안 되는 여러가지 단점은 골고루 보이는 반면, 그에게는 경영자가 가져야 할 장점이 도드라지게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이건희는 그 문제에 대해서 누구보다 더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이건희가 냉정한 사람이라면, 그는 이재용 대신 이부진을 택할 것이다. 김용철은 이부진에 대해서도 좋은 디테일한 정보를 주고 있는데, 그것은 이건희가 이부진을 총애한다는 것과 이부진이 너무나 평범한 남자를 남편으로 골랐다는 것이다. 이부진이 삼성을 차지할 야망이 없다면, 그런 남편을 고른 것은 true romance에 가깝다. 만약, 이부진에게 야먕이 있다면, 그런 남편을 고른 것은 이부진이 기본적으로 대단한 판단력과 결단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런 결정은 누가 권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설득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삼성에 다니지도 않고, 삼성의 미래에 관심없으며, 역사적 기록에도 흥미를 못 느끼는 사람이더라도 이 책은 재밌을 수 있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치부를 고발하고 있지만, 반대로 이 책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냉정하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테일에 주목하면서도 김용철이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 공감한다면 이 책으로 얻을 것은 다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

수퍼 배드 (Despicable me)

아이들을 데리고 이 영화를 보려고 했는데, 내가 애완하는 '랜드 시네마'(영화봐서 쌓은 포인트로 MP3를 받았다)는 더빙 버전밖에 하지 않았다. CGV는 자막 버전을 하고 있는데, 전화 예매자체가 너무 어려웠다. 결국 이틀 전에 예매해서, 어제 9시에 상영하는 걸로 봤는데, 막상 가보니 어른들이 아이들 보다 더 많았다. 좌석이 움직이는 4Dplex였는데, 7살인 큰 아이는 꽤 좋아하면서 봤고, 5살인 둘째는 좀 지겨워했다. 나는 7살과 5살의 중간지점에서 봤다. 가끔 재밌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좀 지루했다. 캐릭터가 너무 전형적이어서인 듯 하다. 혼자서 온 어른 관객도 많았는데, 혼자 이런 영화를 볼 생각은 이제 조금도 안 든다.

용산 CGV 주차장에만 가면 공간감각을 상실하는데 어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이파크 몰과 CGV와 이마트가 서로 엉켜있는데, 찾아가는 설명은 전혀 친절하지 않다. 그러고 보니, 용산 이마트는 잠시만 들어갔다 나와도 몸과 영혼이 피곤과 짜증에 찌든다. 여의도 이마트와도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재래시장인 용문시장이나 노량진 수산시장을 걷다보면 활력이 생기는데, 용산 이마트와 같은 대형마트를 카트를 밀고 걸으면 형무소 소장이 된 것처럼 정말 한없이 우울해진다. 용산 이마트에서 유일하게 맘에 드는 건 와인 샵 뿐인데, 이젠 와인도 즐기지 않으니 갈 이유가 없다.

그래도, 역전회관의 바싹 불고기는 훌륭하지.

리스트

읽고 있는 책의 목록
1. 조철수, 예수평전
2. 무라카미 하루키, 1Q84 3권
3. 로버트 스키델스키, 존 메이나드 케인즈
4. Jack D. Schwager, Stock market wizard
5. Carmen M. Reinhart, Kenneth Rogoff, This time is different,

막 다 읽은 책
1. 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
2. 김종대,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

사려고 하고 있는 책
1. 김용옥, 도마복음 이야기 2, 3
2. 유홍준, 화인열전 (2001)
3. 김혜리, 진심의 탐닉 (2010)
4. 정병설, 조선의 음담패설 (2010)
5. 강병관, 조선의 뒷골목 풍경 (2003)
6. 이덕일, 조선선비살해사건 (2006)
7. 진산, 더 이상 칼은 날지 않는다 (2007)

Thursday, September 16, 2010

찰나가 모여 운명이 된다

1. 아침에 지하철을 탔는데, 누군가 아는 척을 했습니다. 예전에 같은 회사에 근무했던 분입니다. 반가운 마음에 명함을 받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누군가 갑자기 손으로 밀치는 느낌이 듭니다. 뒤를 돌아보니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줌마입니다. 아마도, 지하철이 덜컹거리면서 자신쪽으로 들어오니까 비키라고 손으로 밀친 모양입니다. 누군가를 아무말없이 손으로 밀어버린다, 는 행동에 황당해서 얼굴을 쳐다보니 차가운 표정으로 인상을 쓴 채 노려봅니다. 어이가 없어서 그냥 웃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분과 광화문 역에서 같이 내렸습니다. 나오는 출구는 달라서, 저는 5번 출구로 나왔습니다. 광화문 역은 출근하는 사람이 많아서 아침에는 각종 광고물을 나눠주는 분들이 입구에 늘어서 있는경우가 많고, 매일 아침에 보는 그 분들 중에는 낯이 익은 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많은 회사원들은 광고물을 받지 않고 그냥 지나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유독 광고물을 잘 받는 경우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젊고 예쁜 여성인 경우고 다른 하나는 인사 하면서 밝게 웃는 청년입니다.

아마도 오늘 아침에 저를 손으로 밀쳐 버린 아줌마는 자신의 삶과 오늘 아침 자신의 행동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 겁니다. 예를 들어 그 아줌마가 2명의 자식을 키우는 유치원 원장이라면 혹은 보험 세일즈라면, 아침의 무뚝뚝한 표정과 무례한 행동이 자신의 비지니스, 자신과 자식과의 관계, 자신과 남편과의 관계와는 무관할 것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식의 무례함 그런 식의 퉁명스러움과 짜증은 삶을 망가뜨립니다. 사람들은 중요한 그 순간에만 밝은 표정, 예의바른 말투를 가지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불가능합니다. 퉁명스러움과 짜증은 표정을 망가뜨리고, 평소의 무례함은 결정적인 순간에 약점으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인터넷에서 읽은, 차인표論은 이런 것을 잘 입증합니다. 차인표란 사람이 다른 스타들과는 다르다, 고 사람들이 믿는 이유는 그가 공식적으로 하는 행사 이외에도 이런 일반인들과 맺는 사소한 대화들이 크게 작용합니다. 차인표의 이런 사소한 행동들은 좋은 결과들로 나타납니다.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만큼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없고, 그 삶을 채우는 것은 어투와 표정과 예의입니다.

며칠전
아내에게
우리도 차인표 신애라 부부처럼
어려운 아이 하나 입양해 키우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아내는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말라며
아주 원초적인 얘기를 했다
"내 자식도 가끔 꼴보기 싫은데
남자식을 어떻게 키워.
그리고 차인표? 신애라?
뭘 좀 알고 얘기해라
그사람들은 자기들이 안키우잖아
다 도우미가 집에와서 키워주겠지
그 바쁜 사람들이 애 키우는 고생하겠어?"

나는 나도 모르게
"그사람들은 그렇지 않을거야"
라고 변호했다.

매스컴을 통해
교인 차인표의 스토리들을 보며
"그도 그저 그런 교인중 하나" 라는 생각을 차마 하지 못한건
순전히 밀라노에서의 그 두번의 조우 때문이었다

남에게 보여주려는 의도가 없던때의
차인표를 두눈으로 본 탓이다.
- 여준영, 차인표論-


2.
어제는 싱가폴에서 온 고객과 저녁을 먹었습니다. 한국에 왔으니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더군요. 몸이 피곤해서 거절하려다 오죽하면 나에게 연락을 했겠는가 싶어서 그러자고 했습니다. 과연 저녁 식사값은 누가 내야할까 고민을 했었는데, 막상 식사를 하고 나오니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무 말도 오고 가지 않았지만, "나는 내지 않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사소한 몸동작에서도 충분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사귀는 이성의 본심을 알 수 없어 답담함을 호소하는 글을 인터넷에서 읽을 때가 있는데, 아마 그들도 실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자신의 느낌이 맞는지 직접 말로 듣고 확인하고 싶어서 그럴 뿐이죠. 하지만, 말로 듣어도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3.
왜 특별한 순간에만 좋은 표정, 선한 표정을 짓는 (일종의 연기를 하는) 게 어려울까 생각해 봅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좋은 표정이라는 것은 웃을 때 눈과 입이 옆으로 벌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좋은 웃음을 가진 사람은 웃을 때 입이 옆으로 좀 더 벌어집니다. 입꼬리가 올라가고 입이 커보입니다. 선한 눈을 가진 사람도 역시 웃을 때 눈이 옆으로 좀 더 확장됩니다. 어른 보다는 아이들에게서 이런 웃음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죠. 잘 안 웃지 않는 아이들은 이런 웃음을 할 줄 모릅니다. 타고난 성품이 팍팍하고, 자라난 환경이 각팍하면 표정은 점점 나빠질 수 밖에 없겟지만, 노력을 통해서 극복하려고 해야 합니다.

Tuesday, September 14, 2010

두 개의 세계관

1.
옷을 둘러싼 두개의 시각이 있다. 시각이라기 보다는 철학이나 인생관에 가까운 것들인데, 하나의 세계관은 옷은 내 감각의 표현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진 여자들은 남자처럼 짧은 커트 머리를 하기도 하고, 야구모자를 쓰고 작업복 바지를 입기도한다. 그런 생각을 가진 남자들은 온몸을 드러내는 스키니 진을 입기도 하고, 양복에 하얀 운동화를 신기도 한다. 또 다른 관점은 옷은 자신의 신분과 취향을 드러내는 "기표"라고 보는 것으로, 그런 관점을 가진 사람은 옷을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추구한다. 즉, 여자가 옷을 입는 목표는 남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자처럼 짧은 커트는 절대 하지 않는다. 대신, 긴 생머리에 적당한 웨이브를 추구한다. 남자라면, 단정하고 정돈된 머리길이에 깔끔한 구두를 신고 헐렁하지도 꽉 끼지도 않은 회색 수트를 주로 입는다. 결국 옷을 나를 위해서 입을 것인가, 남을 위해서 입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아주 단순한 일이 이 우주를 생성하고 구성한다. 분명한 것은 목적을 갖고 옷을 입는 쪽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더 목표지향적이란 것이다. 당연히, 목표가 없는 사람들에 비해서, 목표를 쉽게 이룬다.

지금은 없어진 논현동 마르쉐 앞은 절친한 친구 K의 집이 있었다. 그를 만나서 저녁 먹고 어스렁거리면서 선릉공원까지 산보하다 보면, 근처 미장원에 수많은 20대 여성들이 드라이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추구하는 스타일은 모두 긴 생머리에 자연스러운 웨이브. 그들은 자신들의 선호를 숨기고, 다른 사람(손님)들의 선호에 자신들의 스타일을 맞추고 있었다. 목표는 꿈보다 더 상위의 개념이다. 꿈은 모호하지만, 목표는 분명하다. 꿈은 실현불가능한 것이지만, 목표는 실현가능하다. 꿈을 이루면 행복은 오히려 달아나지만,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행복은 체감하기 어렵다. 하지만, 목표만 이루고 (이루지 못할 망정) 꿈이 없으면, 인간은 허무해진다. 목표를 매일 꾸준히 이루고 꿈은 조금씩 채워 가는 것- 이것이 가장 효율적인 삶이 아닐까. 그래서 패션은 생활의 목적에 부합하면서 자기감정을 포기하지 않는 방식으로 추구하는 것이 가장 좋다. 예컨대, 결혼을 하고 싶어하면서 대부분의 이성이 싫어하는 스타일의 옷을 입거나, 취직이 목적이라면서 대부분의 직장상사들이 싫어하는 옷을 입으면 그런 인간은 구원의 가능성이 없다.

2.
인간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경계한다. 인간은 자신과 같은 사람에게 끌린다. 자신과 아주 이질적인 사람에게 끌린다면, 그 이유는 그 사람이 자신이 되고 싶은 무엇인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3.
아이폰을 아무 불만 없이 쓰고 있다. 갤럭시 S는 전혀 호감이 안 가지만 딱 하나, mp4로 변환하지 않고 동영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끌린다. 그래도, 갤럭시 S는 절대 사지 않을텐데, 그 이유는 삼성이기 때문이다. 이명박보다 이건희가 나는 요즘 더 싫다.

Monday, September 13, 2010

말과 생각

1.
1Q84를 선물해주신 분이 3권이 출간되고 나서 선물로 줘서 읽는 중이다.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일단 펴서 읽으면 역시 하루키란 생각이 들고, 빠져서 읽게 되지만, 손에 잘 잡히지가 않는다. 절대 시간의 부족을 절감하는 요즘이기도 하지만, 얼마전에 누가 읽을만한 책을 추천해달라고 해서 책을 고르다보니, 그 책들중에 절반은 금융과 경제에 대한 책이었다. 워런 버핏의 삶을 다룬 "스노볼", 헷지 펀드에 관한 "헷지 호깅(Hedgehogging)", 헷지 펀드의 LTCM의 흥망성쇄를 다룬 "천재들의 실패", 최고의 트레이더들을 인터뷰한 Inside the house of money 같은 책들은 읽는 동안 너무 흥미진진해서 말 그대로 책을 아껴가면서 읽었고, 심지어 걸어다니면서도 읽었다. 금융이외의 책 중에서 그 정도로 재밌었던 책은 지난 10년 간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유일했던 듯.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그토록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건 내 인생의 축복, 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한창 소설에 빠졌던 바람에 10대와 20대 초반에 잃었던 학력고사나 토플의 점수는 그다지 안타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이 아니고서야 무슨 수로 등장인물의 목록을 노트에 적어가며 소설에 빠져들 수 있을까.

2.
똑똑한 사람 중에서 말을 못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겠다. 한비자는 말더듬이여서 자신의 사상을 펴는 데 실패했다고 하니까. 하지만, 말 잘하는 사람 중에서 똑똑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말을 잘한다는 것은,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지는 인터뷰에서 말을 잘한다는 것은, 정말 똑똑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Friday, September 10, 2010

명품의 경제학

몸에 걸치고 다니는 것들만 4억 정도 한다는 소위 '명품녀' 이야기가 화제다. 가끔 들르는 게시판에서도 그걸 이슈로 갑론을박하더니, 점심 시간에 회사 사람들도 그녀가 국세청에 소환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영화평론가인 정성일이 이런 말을 했다.

"명품을 걸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가 볼품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자기가 볼품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광고하고 다닐까"
- 정성일 트위터-

원래 '명품'은 '아주 잘 만든 제품'이란 뜻이다. 아주 잘 만든 제품을 골라서 사는 사람들은 심미안이나 있거나 취향이 좋은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성일같은 사람에게서 볼품없는 속물 취급을 받고 있다. 정성일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명품이 품질에 비해서 가격만 높은 제품이고, 그런 제품을 사는 인간들은 본질 보다는 외양을 중시해 턱없이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멍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성일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멍청한 사람이 있을 수 있는 있다. 하지만,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비싼 제품을 원할 때는 좀 더 복잡한 매카니즘이 있기 마련일 것이고, 1) 정성일의 말처럼 볼품없음이 드러나지만 다른 이유 때문에 계속 명품을 쓰려고 하거나 2) 정성일의 말과는 달리 볼품없음이 감춰지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사람들은 왜 비싼 명품이란 걸 살까.

1. 소득이 높거나, 자산이 많다.
소득이 높고 자산이 많은 사람들이 높은 가격의 제품을 소비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게 집이든, 차든, 시계든, 옷이든, 교육이든, 섹스든, 부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값비싼 것에 가난한 사람보다 더 많이 지출하고 있을 것이다. 누구는 옷에 더 지출하고, 누구는 섹스에 좀 더 지출하고, 누구는 집에 더 지출하겠지만, 큰 그림으로 평균내서 보면, 부자들은 모든 카테고리에 남들보다 더 비싼 제품을 사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소득이 많은 사람에 비해서 (부모에게서 물려 받은) 자산이 많은 사람들은 좀 더 편하고 쉽게 그리고 남보다 더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지출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스스로 일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은 함부로 돈을 쓰기 어렵다. 당연히, 스스로 일해서 벌지 않은 돈으로, 그런 과도한 소비를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많은 반감을 산다.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공연하게 언론에 나와서 자신의 모습을 과시한 명품녀의 홈피에 악플이 욕먹는 것은 놀랍지 않다. 오히려 그 악플에 반응하는 그녀의 신묘한 정신세계가 흥미롭다.

2. 소득이 높거나 자산이 많은 것처럼 보이고 싶다.
대개 소득이 높거나 자산이 많은 사람들이 명품 소비를 많이 하다보니, 그들처럼 행세를 하고 싶으면 명품소비를 통해 그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기 쉽다. 물론, 집이나 골프 회원권 같은 정말 비싼 것들을 부자로 행세하기 위해서 구매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도 하다. 어차피 사람들의 확인이 어렵다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차나 옷 혹은 시계 같은 것으로 그런 목적을 달성하려 들기 쉽다. 그리고, 이 정도만 해도 사람들을 속이기에는 충분하다.

어떤 사업가는 사업 목적상 부자인 척 해야하고, 어떤 사람은 연애(혹은 섹스) 목적으로 부자인 척 해야 하고, 어떤 사람은 열등감을 감추기 위에서 일 것이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좀 더 나은 인간관계 때문일 것이다. 목적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실재의 자신의 처지를 과장하는 데 '명품' 소비는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다.

다른 말로 하면, 명품을 무기로 사기치는 사람에게 속지 않으려면, 신발보다는 시계를, 시계보다는 차를, 차보다는 집(주택)을, 집보다는 가문을 확인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3. 명품 그 자체로 너무 갖고 싶다.
하루키의 단편 '토니 다키타니'을 보면, 명품에 사로잡힌 여자(남자 주인공의 부인) 이야기가 나온다. 더 이상 명품을 사지 말라는 말을 듣고 정신줄 놓고 있다가 사고를 당하는 그녀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디테일해서, 명품에 집착하는 그녀의 모습과 그녀의 유품에 얼굴을 파묻고 감동하는 여자 비서의 모습은 동정을 넘어 공감이 간다. 52만원 짜리 페레가모 하얀색 가죽 스니커즈보다 8만원 짜리 필라의 인조가죽 스니커즈가 좋다면, 1억 5천만원 정도하는 포르쉐의 카이엔보다 대우의 1천만원 짜리 경차가 좋다면, 정신병 아니면 위선이다. 사람들이 정성일의 말에 한편으로는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짜증내는 이유는, 그가 복잡한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해탈한 척 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보자면, 명품을 입어도 짝퉁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고, 짝퉁을 입어도 명품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다. 특히, 명품과 보통의 제품 그리고 짝퉁을 적절하게 잘 조화시키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의 경우 공부 뿐 아니라 다른 잡다한 세상살이에 몹시 능하다. 본인도 즐겁고, 주변 사람도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추측컨대, 정성일은 명품을 입어도 짝퉁처럼 보이는 스타일일 것이란 것에 만원 건다.

엉망진창 금통위

한국은행 금통위가 어제 금리를 동결했다. 지난 십 년동안 한국은행에 실망한 사례의 대부분은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왔다. 정작, 잘못된 판단 때문인 적은 별로 없었다는 이야기다. 얼마전, IMF에서 MOSF(기재부)의 금통위 참석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해친다고 그만 둘 것을 권고했지만, 기재부에서는 오히려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다며 일고의 여지도 없이 무시해버렸다. 지난 수 주일동안 김중수 총재가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강조해서, 시장은 이번 금통위에서 금리를 올릴 것으로 믿었다. 그것이 소위 '시그널'이라는 것이다.

이번 주에 소개팅이 잡혀 있는데, 역시 난 정장을 입은 남자가 멋있다고 주변 여러 사람들에게 그것도 여러번 계속 이야기하면, 남자는 정장을 입고 소개팅에 나가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여자는 엄마가 그 남자의 조건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전화도 받지 않고, "실은 나는 정장 입은 남자 싫어"라고 말하고 딴 이유를 핑계로 댄다면, 참 싸가지가 없는 인간이다. 마찬 가지로, 시그널을 열심히 줘놓고도, 금리인상을 하지 않으면서 이리 저리 다른 핑계를 대는 중앙은행 총재의 모습은 참 후져 보인다.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옿다. 부총재가 가야 하는 잭슨 홀 컨퍼런스까지 따라가서 해외언론과 인터뷰까지 해 놓고, 실은 장기적인 원론을 이야기한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건 어이가 없다. 그 분이 기자회견을 할 때마다, 그걸 영어로 번역해서 실시간으로 고객에게 번역해주다 보면, 당황스럽다. 영어로 번역이 안 되는 횡설수설이 너무 많아서다. 아마도 본인도 할 말이 없어서 그런 것이겠지만, 매 금통위마다 앵무새처럼 GDP gap 이야기 밖에 할 줄 모르는 모습도 참 안습.

그나마, 지난 10년 동안 가장 나은 총재는 이성태 총재였다. 김중수 총재의 문제는 무능이 아니라 너무 정치적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척 하려다 보니, 앞뒤가 안 맞는 거다. 앞으로, 총재의 말은 무시하겠다고 일부에서 이야기 하지만, 그러긴 어렵다. 한 나라의 중앙은행 총재의 발언을 개짖는 소리 쯤으로 무시할 순 없는 일이다. 행간을 읽는 노력을 더 할 수 밖에 없는 데, 그게 결국 정부(청와대)나 기재부의 말에 더 집중하는 것이 된다. 슬픈 이야기다.

디플레이션에 대한 미국채권시장의 프라이싱

미국 경제가 둔화되고 있는 이유로 재정지출효과가 사라지고, 재고 사이클 효과가 줄어들엇다는 점을 든다. 지난 4월 3.99%를 찍었던 미국 10년 금리는 2.5%까지 빠졌다가, 20비피 조금 더 올랐다. 오바마는 500억불의 인프라스트럭쳐 건설 계획을 발표했지만, 미국 경제에 비해서 굉장히 적고, 실제 부양계획의 핵심은 세금 감면 기간을 연장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게 될지 안 될지, 미국 정치 상황에서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고, 그 불확실성이 경제와 금융시장은 싫다.

재밌는 건, 미국 10년 금리가 엄청나게 빠지면, 2/10년 스프레드는 굉장히 큰 폭으로 축소되었는데, 10/30년 스프레드는 엄청나게 확대되었다. 2년에 비해서 10년은 크게 빠진 반면, 30년은 이를 못 따라가서 생긴 현상이다. 그나마, 125bp까지 벌어졌던 10/30년 스프레드는 최근 금리가 오르면서 107bp까지 축소되었고, 195bp까지 축소되었던 2/10년 스프레드는 219bp로 벌어졌다.

2/10년 스프레드 축소가 성장둔화와 인플레이션 프리미엄 감소(디플레이션 리스크)로 생겼다면, 10/30년 스프레드는 왜 확대되었을까? 30년 채권은 경기부양을 위한 공격적인 재정정책과 디플레이션을 막으려는 연준의 극단적인 정책(중단기 국채의 매수)에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말로 하면, 디플레이션을 걱정하지만, 연준이 이를 잘 처리할 걸로 보는 시간이 있고, 장기적인 관점에서보면 그걸 더 크게 본다는 것이다.

Monday, September 06, 2010

합창의 기억

1.
국민학교 3학년 말의 일이다. 모든 학생은 차례를 기다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노래의 1절씩을 불러야 했다. 그리고, 학생들은 두 집단으로 분류되었다. 합창부를 해야하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 합창부를 한다, 는 게 무슨 의미인지 그때는 잘 몰랐지만, 그건 다른 특활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것과 (남학생들도) 하얀색 빵모자와 반바지 그리고 팬티 스타킹(이런, 젠장)을 입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야구부나 축구부같은 활동 대신에 합창부는 매주 2, 3번 정도 방과후에 남아 노래연습을 해야 했다. 합창부의 담당 선생은 합창부 운영에 관한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이유없이 합창부 연습에 빠지면 개패듯이 학생들을 팼다. 남녀불문이었다. 3년간 단 한 명의 학생만이 합창부를 나갈 수 있었다. 야구를 시키겠다며 부모까지 나섰지만, 무단 불참의 사유로 엄청나게 두들겨 맞은 다음에야 비로서 합창부를 떠날 수 있었다.

합창부는 간헐적으로 방송출연을 했다. 일년에 2번 이상은 꼭 TV에 나왔다. 그 당시만 해도, 국민학생이 주인공이 되는 공개방송형 프로그램이 많았다. 학교 입장에서는 학교를 홍보하는데, 합창부는 여러가지로 모양새가 좋았다. 그렇게 폭력적인 수단을 쓰지 않는 한, 국민학교 고학년 남자아이들이 합창부를 할 이유는 그때나 지금이나 없기 때문에 어쩌면 '체제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운영방식은 건전하지 않았고, 공포와 강제를 통해서만 성과가 유지되었기 때문에, 합창부를 해야만 했던 학생들, 특히 남자아이들의 그 담당 교사에 대한 분노는 30년 가까운 시간이 훌쩍 넘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동창회에서, 그 선생이 암에 걸려 교감을 끝으로 세상을 떠난 것을 알았지만, 아무도 그를 동정하고 추모하지 않았다.

세상 인심이란 게 그렇다.

딱 하나 좋았던 점. 공부 잘하고 얼굴 예쁜 여학생들은 죄다 합창부였다. 그래봤자, 장난기가 심하고 치기어린 남학생과 새침한 여학생이 서로를 터부시 했던 당시 분위기 상 그다지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건 즐거운 일이었다. 나이가 들고 동창회에서 만나 보아도, 합창부 출신 여학생들이 공부도 잘하고 시집도 비교적 잘 갔다. 그리고 그 중 두 명의 여학생은 음악가가 됐고, 그 중 한명은 제법 유명하더니 미국 대학의 음대교수가 됐다.

'남자의 자격'이란 프로그램에서 합창을 재미있게 연습하는 모습을 보니,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다시 그 시절로 간다면, 나는 합창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보다 훨씬 재밌고, 의미있는 걸 할 수 있는 시기를 합창부 때문에 하지 못했다. 대중이 모며서 하는 모든 집단행동(합창, 집단응원, 시위 등)에 대한 나의 개인적 비호감은 그때 어린 시절 합창을 하면서 몸속에 체화된 것이다. 어린 시절의 좋은 기억은 "자발성"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형성되지 않는다.



2.
미국의 8월 고용지표가 생각보다 좋게 나오면서 주식은 랠리하고, 채권금리는 많이 올랐다. 장중 한 때 미국 10년 금리는 15비피 가까이 올랐다. 고용은 1월부터 5월까지 좋았다가, 7월에 나빠졌지만, 점점 나쁜 수준이 감소하고 있다. 이번에도 6월과 7월 숫자는 상당히 개선되었다.

이번 고용지표에서 관심을 모은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 센서스 조사관련된 고용이 감소할 것이 확실해진 상태에서 얼마나 고용의 절대 숫자가 나빠질 것이다. 센서스 관련고용은 11만 4천건이 줄었지만, 여전히 8만2천 건은 센서스 관련 고용이었다. 예상과 비슷한 숫자였다. 둘째, 향후 고용을 암시하는 임시고용은 꾸준히 늘다가 7월에 크게 줄었다. 이것이 일시적인 통계상의 돌출현상인지 아니면 향후 고용의 악화를 암시하는 것인지가 관심이었다. 8월의 임시고용은 1만7천 건이 늘었어서, 7월의 악화가 일시적일 것이란 희망을 줬다. 또 한 가지. 4월 이후, 처음으로 건설부문의 고용이 증가했다.

고용지표만 보면, 연준이 고용 때문에 새로운 완화적 통화정책을 내놓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다만, 성장율이 2% 밑으로 내려가는 듯 하면, 버낸키는 효율적인 경기부양을 위해 머리를 짜낼 것이다. 그것과 관련없이 오바마는 추가적인 경기부양 대책을 내놓을 것이고, 상당부분은 부동산 시장과 세금에 관련될 것이다.

3.
이정순 교수: 담배의 경제학

"흡연자들은 생전에 많은 의료비용을 초래하지만 이들은 빨리 죽기 때문에 정부가 노인을 위해서 지출하는 의료보건, 연금, 주거 등의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Friday, September 03, 2010

진중한 악이 바로 절대악이다

1.
감기 몸살에 걸렸다. 나이가 드는데, 체형을 관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지 못하니, 일주일에 몇일은 제대로 운동을 한다. 자전거도 타고, 웨이트 트레이딩도 하고, 빠르게 뛰기도 한다. 그러면 깊이 오래 잠을 자야 하는데, 7시에서 8시 사이에 일은 끝나고, 사람들을 가끔 만나고 하면, 절대적으로 수면이 부족하다. 쥬니어 트레이더가 그만 둔 뒤로는 장중에 집중해야 하는 시간도 훨씬 늘었다. 게다가, 회사에서 계속되는 자질구래한 사고가 생긴다. 정치적인 해결은 긴장을 부른다. 악순환이다. 그런 와중에 아프게 되면, 운동을 쉬고, 근육이 풀어지면서 생기는 자잘한 고통이 있다.

2.
미국 경제를 보면, 개인과 기업의 상태가 괴리되는 게 눈에 보인다. 유감스럽게도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기업들은 현금을 쌓아놓고 투자할 곳을 찾지만, 개인은 소득이 줄고 저축도 줄고, 대출과 부채는 늘어난다. 정부들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부양정책을 쓰고, 그것에 낙관하는 주식은 잘 빠지지 않는다. 그러는 와중에 미국금리를 엄청나게 빠졌다.

과연, 미국은 디플레이션 경제로 들어갈까? 대답은 그럴 수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버낸키의 연준은 어쨌든 최선을 다하고 있고, 아직도 쓸 수 있는 카드가 있기 때문이다. 디플레이션으로 경제가 들어간다고 해도, 그 속도가 완만하면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고통은 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아시아 경제와 미국/유럽 선진국 경제와의 디커플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10년 전만해도 디커플링 이론은 완벽한 신화에 가까웠지만, 이제는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다'에 가까워졌다.

3.
사람들의 생각과 다른데도, 내 나름의 견해로 확신하는 것 두 가지.
1) 미네르바 사건은 조작되었다.
2) 천안함은 북한에 의해서 침몰하지 않았다.

Donald Gregg 전 주한 대사가 천안함에 대해서 한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그레그 前 대사 '천안함 북한 소행, 이해할 수 없어')했다. 뉴욕 타임즈에 그의 글 "Testing North Korean Waters"는 내 생각과 거의 같다. 물론 그의 글과 그의 인터뷰는 소위 조중동에 의해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4.
유명환과 그의 딸 유현선이 검색어 순위 1위와 2위를 나란히 차지했다. 이런 일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멍청한 것이고, 문제가 되도 밀고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면 오만한 것이다.

김지운의 "나는 악마가 보았다"를 보면, 우리가 흔히 접하기 힘든 절대악에 가까운 존재가 등장한다. 선악의 구분이 어렵긴 하지만, 최민식이 저지르는 악행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런 악은 물론이고, 관점에 의해서 악에 가까운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갖는 의문과 수수께끼는 과연 왜 악한 존재들이 잘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세상에 인과응보라는 것이 있을까? 과연 악한 존재는 선한 존재에 의해서 응징 받는가? 전두환이 아직도 잘 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악한 행위에 대한 응징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악한 존재의 과연 악한 힘의 관성으로 영원히 잘 살 수 있을까? 이것에 대한 대답을 오래 생각해보았는데, 악의 존재가 갖는 속성에는 자기 파멸적인 구석이 있어서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악이라는 존재가 헛점을 보이는 기본적인 속성은 중용를 벗어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오버하지 않는 악이라는 게 있다면, 그것이 절대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양들의 침묵'의 렉터 박사는 아주 습하고 무거운 공포감을 주지만, '악마를 보았다'의 최민식은 비루하고 코믹하며 더러운 느낌의 공포감을 준다.

그런 면으로 보자면, 유명환과 그 딸도 역시 인간의 사악함이 병행하는 속성- 오만함과 경솔함을 피해가지 못했다. 나쁜 행동에는 분명히 자기파멸적인 속성이 있다.

Thursday, September 02, 2010

파란 갈매기 프랭크

프랭크는 파란 털을 가진 갈매기였습니다. 자라나면서 프랭크의 몸은 파란색 털로 뒤덮였습니다. 프랭크의 친구들은 그런 프랭크를 보고 놀렸습니다.

"재 좀 봐, 온몸이 파래. 파충류인가봐"

그런 친구들의 놀림에도 프랭크는 상처 받지 않았습니다. 상처 받을 여린 마음 대신 진짜 친구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프랭크가 좋아하고 프랭크를 좋아해준 친구는 거북이 잭이었습니다.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은 프랭크가 잭을 찾아가면 잭은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슬퍼하지마 프랭크. 그런 애들은 모두 집에서 아빠 엄마 한테 학대 받고서는 너한테 화를 내는 거란다. 너는 좋은 엄마와 아빠가 있잖아"

프랭크는 좋은 아빠 엄마가 있어서 기뻤지만, 잭이 있어서 더 기뻤습니다. 잭은 넓은 마음을 가진 친구였습니다. 걸음걸이는 느렸지만 누구보다 단단한 갑옷을 입고 영리한 머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프랭크는 해가 저물때까지 잭과 함께 놀았습니다. 프랭크의 아빠와 엄마는 프랭크가 다른 갈매기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와 했지만, 잭이란 좋은 친구가 있는 걸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프랭크에게도 슬픈 순간이 있었습니다. 겨울이 되면 갈매기인 프랭크는 거북이인 잭과 헤어져야 했습니다. 갈매기 프랭크는 엄마와 아빠를 따라 따스한 남쪽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거북이 잭은 찬바람이 불면 겨울잠을 잘 준비를 했습니다. 프랭크는 잭을 떠나기 싫었지만, 잭이 없는 겨울은 더 싫었습니다.

프랭크는 아빠와 엄머와 함께 따스한 남쪽 나라로 떠났습니다. 따스한 남쪽 나라에서도 프랭크는 이따금 잭을 생각했습니다. 남쪽나라의 바다는 온화하고 모래는 부드러웠습니다. 하늘은 파랗고 먹을거리가 많았습니다.

"잭도 함께 있다면 좋았을텐데"

그런데, 오느날 다른 갈매기에서 나쁜 소식을 들어왔습니다. 큰 폭풍우가 닥쳐 잭이 자던 바닷가 해안이 엉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프랭크는 그 소식을 듣고 슬펐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더 슬펐습니다.

프랭크는 잭을 찾아 떠나기로 했습니다. 아빠 엄마 몰래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잭의 소식을 듣고 모른 척 할 수는 없었습니다. 드디어 떠나기로 한 날의 새벽이 밝았습니다. 아직도 눈을 뜨지 않고 있는 아빠와 엄마 몰래 둥지를 나온 프랭크는 힘차게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습니다.

Wednesday, September 01, 2010

몰입해보지 못한 인생에 대해서

1.
최근 생각하고 예상한 것들이 대부분 맞아들어가는 현상. 그러나, 어제는 누군가 환율에 대한 내 의견을 물어보는데, 아주 막연하기 짝이 없는 하고 말았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어설픈 대답이 나온다.

2.
황농문의 "몰입"이란 책을 읽고, "몰입"이란 상태가 이해가지 않았다면 참 안타까운 인생이다. 그게 소극적 몰입이든 적극적 몰입이든 몰입상태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지나간 인생에 단 한번도 치열하게 살지 않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는 인생에서 한 3번 정도 극단적인 "몰입"의 경지를 경험했던 것 같은데, 황농문 교수가 말하나는 적극적, 긍정적 몰입을 맛 본 것은 시기적으로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아니었나 싶다. 그때는 하루 24간 내내, 시장(market)만 생각했다. 2006년 겨울 한달 내내 미국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는데, 어느덧, 미국은 부동산 거품 때문에 몰락을 경험할 것이란 확신에 찬 결론에 도달했다. 그런 경험을 갖고 "몰입"이란 책을 읽으니, 그의 주장이 눈과 귀에 쏙쏙 박힌다.

최근 읽고 있는, 아이의 두뇌패턴(좌뇌/우뇌)에 관한 책과 함께 이 책을 읽으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나는 전형적인 우뇌형 인간인데, 나를 좌뇌형 인간에 가깝게 보이게(요새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본다) 만드는 것은 내가 경제학을 공부했기 때문이다. 경제학과 철학을 공부하면, 구조적 사고가 가능하고, 구조적 사고는 직관에만 의지하는 우뇌형 인간의 장점이자 단점을 극복하게 해준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황농문이 말하는 것처럼, 경제학을 몰입해서 공부하다보면, 시장에 몰입해서 일하다가 보면, 내 삶을 그것들을 연구하고 공부하는데 던져도 전혀 아깝지 않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경제학의 가치, 금융의 가치 때문이 아니라, "몰입의 가치" 때문이다. 몰입의 경험이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경제학을 평생 공부하는 인생의 허무함" 또는 "직업을 위해서 다른 생활을 희생하는 고통"에 관해서 논한다. 하지만, 긍정적 몰입의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 몰입의 쾌감 때문에 다른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황농문은 이런 몰입의 쾌감을 종교의 영역에까지 확대할 수 있다고 보는데, 동의한다. 모든 종교적 주제는 몰입해야만 풀 수 있다. 불교에서 화두를 잡고 깨달을 때까지 몰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참선은 화두를 붙잡는 육체적인 수단이고. 행복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인간은 어디서 온지 알고 싶다면, 현자나 성인을 만나서 물어봤자 소용없다. 스스로 깨달아야 하고, 그 과정은 '몰입'의 경험없이는 불가능하다.

3.
논현동 한정식당인 '가시리'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남녀 대여섯명이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한 후, 우산을 펴면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옷입은 모양새도 심상치 않은데, 말하는 어투와 매너도 형편없다. 목소리가 크고, 상소리가 섞여으며, 머리는 단정하지 않고, 옷들의 색깔은 산만하다.

그 사람이 말하는 모양새, 옷입는 스타일, 머리를 관리하는 방식만 보아도 그 사람에 대해서 80%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첫인상에 속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하는 말일 뿐이고, 사실은 말투와 표정 그리고 목소리를 포함한 외모를 통해서 인간은 거의 모든 것이 파악될 수 있다. 좋지 않은 말투와 표정 그리고 목소리를 갖고서 (조폭과 같이 그런 게 장점인 곳에서는 일하는 것이 아닌한) 인생을 성공하긴 어렵다.

4.
제대로 된 인간은 가까운 사람에게 더 친절하다. 다소 모자르고 떨어지는 인간들은 가까운 사람에게 차갑고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하다. 가까운 사람의 대표격인 가족을 예의바르게 대하고 격식을 갖춰 말을 하는 사람은 인격적으로 아주 성숙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결국 나쁜 운명도 좋게 바꾸고, 힘든 인생도 쉽게 개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