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ugust 25, 2010

15년 최저수준인 7월 미국의 기존주택판매

미국의 기존주택판매가 전월보다 27.2% m-m가 떨어졌다. 1995년 이후 15년내 가장 나쁜 숫자인데, 전년동월비로도 25.5% 추락해서 아주 좋지 않다. 주택 구매자에게 tax credit을 주는 제도가 끝나고 나서 미국 주택지표는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월주택공급이 8.9개월에서 12.5개월로 늘었고, 전체 기존 재고도 조금씩 늘어나는 것도 좋지 않다. 재고가 떨어지면서 판매가 주는 것은 향후 가격 상승의 전조이지만, 재고가 늘어나면서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향후 깊은 침체의 시그널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어제 공개된 금통위 의사록에서 일부 금통위원들이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나면서도 주택가격이 하락하는 것에 대해 우려했는데, 이것 역시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금리가 싸서 집을 사려는 사람은 늘어나고 있지만, 그것으로도 가격하락을 막는데 충분하지 않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지금 정책금리보다 더 금리를 낮춘들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것 같지 않다.

미국 주택시장 지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부언하자면, 미국의 주택지표는 크게 주택판매, 착공, 허가로 나누고, 다시 가장 중요한 판매지표는 신규주택판매, 기존주택판매, 잠정주택판매로 나눈다. 신규주택판매는 전체 주택판매의 20% 미만을 차지하지만 가장 중요한 지표다. GDP에 들어가는 부분일 뿐 아니라, 가장 비중이 큰 기존주택판매의 선행지표이면서, 경제주체들이 주택시장에서 하는 신규투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기존주택판매는 신규주택판매보다 시간에 후행하는 속성이 있긴 하지만, 판매량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에 중요하다. 잠정주택판매는 모든 판매의 20% 정도를 차지하고 가장 덜 중요하다. 건설허가지표는 주택착공지표와 같이 본다. 허가는 착공지표에 영향을 주지만 완전히 직접적이진 않다. 허가가 착공으로 이어지는 시간은 보통 2개월 정도로 잡는데, 착공은 허가보다 훨씬 노이즈가 많기 때문에, 굳이 말하자면 허가가 착공보다 좀 더 의미있는 지표다. 주택착공지표는 건설허가보다는 건설지출과의 상관관계가 더 높다.

Tuesday, August 24, 2010

William Steig, Amos and Boris

William Steig는 1907년에 태어나 1971년에 '아모스와 보르스'를 그렸다. 조각가이자 만화가였으며, 캐릭터 슈렉(Shreck)을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바다가 그리워 스스로 배를 만들어 바다로 나간 생쥐 아모스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고래 보리스와 친구가 된다.

"아모스가 해안에 닿기 까지는 1주일 걸렸지. 그러는 동안에, 아모스와 보리스는 서로에게 깊이 감동하게 되었어. 보리스는 아모스의 갸날픔과 떨림, 가벼운 촉감, 작은 목소리, 보석처럼 빛나는 모습에 감동했지. 아모스는 보리스의 거대한 몸집과 위험, 힘, 의지, 굵은 목소리, 끝없는 친절에 감동했고."

해변에 도착한 그들이 헤어지려고 할 때, 보리스가 말한다.

"우리가 영원히 친구로 남게 되면 좋겠다. 우린 영원히 친구가 될 수는 있지만, 함께 있을 순 없어. 너는 육지에서 살아야 하고, 나는 바다에서 살아야 하니까. 그래도 난 절대로 널 잊지 않을 거야."

세월이 지나서, 보리스는 태풍에 밀려 해안에 떠내려 온다. 모래사장에서 욺직이지 못하게 되었을 때, 죽음을 예감하는 그 앞에서, 거대한 코끼리 두 마리와 함께 친구 아모스가 나타난다.

우정은 한쪽의 호의로 시작해서, 한쪽의 보답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그 관계를 채우는 것은 그리움이다. 이성에 대한 애정이 삶을 움직이는 자극이라면, 동성에 대한 우정은 삶을 지탱시키는 근원적인 힘이다. 저 대목을 읽어 주는 데, 나도 모르게 뭉클했다. 아이는 내 옆에서 열심히 아모스가 타고온 배를 그렸다.

여름의 한 가운데서

1.
아이들을 데리고 여의도 고수부지 수영장에 다녀 왔다. 올림픽대로를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수영장에 데려가 달라고 소리쳤던 큰 애 때문이다. 9시에 도착해서 11시 쯤 나오려고 했는데, 30분 이상 줄을 서야 해서 12시가 거의 다 되서 나왔다. 내리 쬐는 태양 아래서 줄을 서는데, 큰 아이는 온 몸을 비틀고 힘들어 한다. 작은 아이는 한 마디 불평도 없다.

'마시멜로 실험'이라는 게 있다. 마시멜로가 담긴 접시를 보여주고, 1분을 참았다가 먹으면 2개를 먹을 수 있고, 참지 않고 먹으면 하나만 먹어야 한다. 참았다가 2개를 먹는 아이들이 학업성과가 좋았다, 는 유명한 실험이다. 나와 큰 아이는 못 참는 그룹에 속하는 것 같다. 그래서, 큰 아이의 미래는 걱정이 되지만 애정도 간다.

4인 가족이 15만 정도 써야 하는 워커힐 수영장 대신 1만 3천원이면 충분한 고수부지 수영장을 다녀온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런데, 남은 여름, 다시 가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알러지가 심한 둘째는 그 뒤로 온몸을 긁고 있고, 기침은 심해졌다.

2.
수영장에 다녀와서 자전거가 없는 둘째에게 자전거를 사줬다. 키스 해링이 디자인한 아주 근사한 자전거를 사주려다가, 빨리 크는 막내에게 그것도 오버인 듯 하여, 여의도 진주 아파트 상가의 삼천리 대리점에서 13만원 주고 샀다. 아이는 너무 만족해한다. 자전거를 끌고, 윤중중학교 운동장으로 갔는데, 두 놈을 데려가는 동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두 놈 모두 달리고 싶어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둘째는 실제로 자전거를 맘대로 제어하지 못한다. 내리막길에서는 그냥 달려버린다. 놀래서 달려가 붙잡은 게 여러 번이다.

저녁 7시가 가까운 윤중 중학교는 텅 비어있다. 텅빈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달리고, 또 달린다. 큰 아이의 자전거 바람이 빠진 걸 몰랐다. 자전거가 잘 굴러가지 않으니 성을 낸다. 동생과 아빠와 달리기 시합을 하는데, 아빠가 제일 빠르고, 동생이 그 다음이다. 몹시 분해한다. 지는 걸 못 참는 성격이다. 그런 건 또 나와 다르다. 나는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경쟁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해가 지고, 달이 뜨는데, 아이들도 서서히 지쳐간다. 물을 내놓으라고 울먹거리며 난리치는 건 역시 큰 아들이다. 칭얼거리는 아이들을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땀이 비오듯 한다.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겠다는 건 환상에 불과하다. 마치 히딩크 감독의 삑삑이 처럼, 나는 큰 애의 자전거과 작은 애의 자전거 사이를 왕복 달리기 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지는 해와 떠오르는 달이 함께 하는 하늘은 보니, 즐겁긴 즐겁다.

3.
한나라당은 DTI를 10% 정도 올릴 계획인가 보다. 강남 3구의 DTI는 40%다. 서울은 50%, 수도권은 60%. 이걸 10% 올리려는 이유는 서울의 부동산 가격이 거래량 위축과 함께 급격히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9월 말이면 새집을 인수해서, 10월 말이면 입주할 예정이다. 알러지가 심한 둘째 때문에 처는 새집을 들어가는 걸 꺼리지만, 나는 바닥과 벽을 다 고친 후에 새집에 들어갈 생각이다. 몇가지 이유가 있지만, 부동산 시장의 상황이 새집을 전세주고, 오래된 집에 전세로 들어간 뒤에 생기는 문제들을 쉽게 다룰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지표에서 나타나는 것보다 부동산 시장의 상황은 험악해지는 분위기다. 만약, 남의 집에서 알러지 문제가 심해지면 이래 저래 손 쓸 방법이 없다. 정책담당자의 입장에 비유하자면, 아주 낮은 금리하에서 미국의 디플레이션을 맞아야 하는 중앙은행의 심정과 비유할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금리를 올려 놓는데, 여러모로 편하다. 마찬가지로, 새집의 환경을 최대한 개선을 시도했는데도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쓸 수 있는 수단은 여러가지가 있다. 전세로 들어간 헌집에서 아이가 아프면 쓸 수 있는 수단이 제한된다.

최근 정부는 거래세 감면을 연장하려는 생각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부동산 규제를 완화해서 거래를 활성화 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셈인데, 다른 한편으로는 은행들에게 대한 규제를 강화해서 PF 관련 충당금을 더 쌓도록 압박하고 있다. PF 관련된 연체비율은 작년의 1.67%에서 올해 2.94%까지 올랐다. 금감원이 은행들에게 충담금을 쌓도록 압박하면서, 은행의 순이익은 2분기에 5.6조나 되는 충당금(1분기는 2.6조) 덕분에 61%나 떨어졌다. 이러한 상황은 3분기에도 계속될 수 있고,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건설사들은 유동성을 확보하는데 더 애를 먹겠지만, 정책적으로는 맞는 방향이다. 부동산 경기의 궤멸을 막는 미시적 정책은 은행의 건정성 악화를 막는 정책과 같이 가야 한다. 이런 와주에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은 공격적인 금리인상보다는 미래에 쓸 수 있는 통화정책 수단 확보 수준에 그칠 것이다.

Tuesday, August 17, 2010

여름 밤의 자전거

페라리나 포르쉐를 몰고, 자유로를 달리다 터널속에서 250킬로를 찍으면, 터널의 불빛이 일직선으로 보이는 경험을 한다고 한다. 자전거를 타고서는 일직선은 고사하고, 날라오는 벌레들에 얼굴을 부딪히고 깜짝깜짝 놀라는 경험을 할 뿐이지만, 라이딩의 즐거움은 드라이빙의 쾌감 못지 않다. 무엇보다, 근육의 존재감을 느끼고 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즐거움이 크다.

한국말에 "바람든다"라는 말이 있는데, 바람을 맞는 쾌감을 경험하고 나면, 바람이 들어버린다. 바람이 들어버린 인생은 바람을 느끼지 못하면 우울하고 슬프다. 다른 말로 하면, 바람만 맞을 수 있다면, 삶은 물밑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버틸 수 있다. 라이딩의 즐거움을 알고 자살 같은 선택을 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람의 소리를 듣고, 바람의 촉각을 느끼는 건 아주 분명한, 살아있는 쾌감이기 때문이다.

여의도 샛강 공원에서 출발해서 반포대교를 찍고 집으로 돌아오면 정확히 40분이 걸린다. 지난 주 어떤 날엔 반포대교에서 동작대교로 오는 지점에서 하얀 바이크를 탄 사람에게 추월당했다. 얇은 바퀴가 눈앞에 획 지나갔는데, 내 자전거의 열세를 인정하기 싫어서 결국 한강대교를 가기 직전에 추월해버렸다. 그리고, 추월당한 그나, 추월한 내가 무안하지 않도록 더 전력으로 63 빌딩이 보이기 전까지 달렸다. 그리고, 이제는 쉬어도 되겠다고 생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가 내 뒤에 와서 말했다.

"어디까지 가세요?"
"저는 이제 다 왔습니다"
"얼마나 빠르신지 따라갈 수가 없네요"
"아이고, 별 말씀을. 안녕히 가세요"

덥다. 온 몸에 열기가 오르는데, '바람'이 곧바로 식혀주는 '바람'에 땀은 거의 흐르지 않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데, 어떤 아가씨가 묻는다.

"좋은 자전거를 타시네요"
"네? 그닥 좋은 자전거는 아닙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 1)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사람과 2)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없는 사람. 당연히 걸 수 있는 사람이 더 적극적이고, 활동적이며, 성경험이 많(을 것 같)다.

Thursday, August 05, 2010

모욕, 무시, 그리고 차별

'달콤한 인생'에서 김영철은 오른팔이었던 이병헌을 땅에 묻고 손가락을 부러 뜨린다. 표면적인 이유는 자신의 젊은 애인이었던 신민아를 감시하라고 했던 이병헌이 자신의 지시를 듣지 않고 자기 멋대로 그녀를 용서했기 때문이다. 사지에서 살아나온 이병헌은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는 대신 돌이킬 수 없는 복수의 길을 폭주한다. 달리는 그 길에서 그는 억울하고 분하다. 자신은 그런 벌을 받을만큼 잘못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이 흔들렸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로맨스는 딱 거기까지였다. 그의 온몸이 피로 넘쳐흘러도, 그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어 뭐라 한 마디 하고 싶어도, 그녀는 그의 삶이 마감되는 맥락을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다.

"왜 그랬어요?"

이병헌의 총을 겨누고 김영철에게 마지막으로 묻는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이 말이 적당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 이병헌은 김영철에게 방아쇠를 당긴다. 그리고, 그의 인생은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 순간을 향해 빨려 들어간다.

김영철이 그런 말을 한 이유를 하지 못한 이유는 내가 그 동안 "모욕감"이란 말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영철이 신민아를 애인으로 둔 이유는 그녀와의 섹스 때문이다. 돈 많고 힘센 (늙은 조폭인 그) 남자가 젊고 아름다운 애인을 두는 이유는 단 하나, 섹스 때문이다. 신민아에게 흔들리는 이병헌에게 김영철이 느낀 것은 젊음에 대한 질투였다. 햇빛에 바싹 말려 널어놓을 수 있을 것 같은 이병헌의 풋풋한 감정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그런 감정을 느낀 대가로 이병헌이 지불해야 하는 것은 너무 가혹했지만, 이병헌의 그런 식의 흔들림은 곧 김영철에게는 모욕이었다. 차라리, 이병헌이 신민아와 섹스했다면, 이병헌은 기꺼이 목을 내밀었을 것이고, 김영철은 모욕감을 느낀 게 하니라, 부하의 배신을 가혹하게 응징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김영철은 신민아를 가운데 둔 이병헌과의 관계에서는 약자였다. 강자는 모욕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에르메스(Hermes) 빽이 있는 여자는 설사 비밀봉지를 들고 거리에 나왔더라도 코치(Coach) 빽을 든 여자를 부러워 하지 않는다. 벤틀리를 집에 놓고 택시를 타고 가고 있는 사람은 길거리의 렉서스를 보고 부러워 하지 않는다. 그들은 '코치'와 '렉서스'를 무시하고 경멸할 수 있다. "모욕감"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모욕감과 무시당한 느낌은 기본적으로 약자가 강자에게 느끼는 감정이다. 그리고, 그런 느낌 때문에 생기는 복수극은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주고, 그런 모욕을 받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참아내는 것은 참 힘이 든다. 그것은 약자이기 때문에 그렇다. 고부간의 갈등이 가장 첨예한 것은 결혼 초반이다. 누가 강자고 누가 약자인지 잘 판단이 안 서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는 강자와 약자, 갑과 을의 관계가 정해진다. 일단 정해진 관계는 (모든 관계가 그렇듯이) 뒤집기가 매우 어렵다. 강자가 약자를 무시하면 그 관계는 지뢰밭 투성이다. 모욕감은 목숨을 건 듯한 난투극을 벌이게 맏드는 신기하고 강력한 감정이다.

그런데, 우리는 살면서, 약자에게 별 생각없이 모욕감을 준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시어머니로서 며느리에게, 형으로서 동생에게, 선생으로서 제자에게 다양한 무시와 모욕감을 준다. 약자의 비참함과 비분강개는 강자로서는 도무지 짐작할 길이 없다. 따라서, 고부간의 갈등이 빈번하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아직은 시어머니가 그 고부간의 관계에서 강자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며느리가 강자라면 그 관계의 끝은 갈등이 아니라, 어느 한쪽의 체념 혹은 어느 한쪽의 이해로 끝났을 것이다.

아마도 차별은 모욕의 가장 저급한 형태일 것이다. 차별은 모든 약자들의 마음을 분노로 채운다.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강자는 약자의 심정을 알지 못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약자는 강자의 행동을 이해할 길이 없다.

Tuesday, August 03, 2010

네 가지 상념

오랜만에 글을 쓰니 내 블로그가 남의 블로그처럼 낯설다. 지난 2주 동안 너무 바빴고, 더웠고, 몸은 힘들었으며, 생각들은 심하게 산란했다. 인셉션이란 영화를 연이어 두 번 봤고, 몇 권의 책을 읽었고, 몇 권의 책을 샀으며, 누군가 떠나갔으며, 덕분에 많은 일들을 새로 배웠다. 지난 주말은 너무 더운데다 기압은 낮고, 공기는 탁하고, 습도는 높아서 서울에서 산다는 것이 새삼스래 곤욕스러웠다. 알러지가 있는 둘째는 기침을 멈추지 않고, 마치 서울의 결함이 내 탓이라도 되는 듯 불편하고 불안한 주말이었다.

1. 강용석
국회의원 강용석이 대학생들에게 했다는 발언은 참 유치하고 졸렬하다.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주어야 한다"거나 "여자는 자동차라 나이가 들수록 값이 내려가고 남자는 부동산이라 나이가 들수록 값이 올라간다" 따위의 발언은 그 발언의 진위와 관련없이, 그 발언 자체가 갖고 있는 가벼움 때문에 국회의원이 해서는 곤란한 말이다. 물론, 인간은 편견을 가질 권리가 있고, 편견을 말할 자유가 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모든 의견은 하나의 편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언이 불편한 이유는 젊은 국회의원이라면 (그게 비록 한나라당이라고 해도) 현상에 대한 올바른 인식, 옳지 않은 현상에 대한 당위적인 접근, 그리고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진중한 접근중에 적어도 하나 정도는 갖기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강용석 사건이 진짜 흥미로운 이유는 그 발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의 전개 방식이다. 강용석 발언이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술자리에서 개인적인 차원에서 자신의 편견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런 종류의 발언은 흔하지만 그런 발언이 언론을 통해서 공개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에, 아마도, 중앙일보가 그 발언을 보도한 것에는 분명하고 실체적인 맥락이 있을 것이다. 그게 종합편성권을 둘러 싸고 조선일보를 일방적으로 편들지 말라는 중앙일보의 이명박을 향한 강력한 메세지인지, 아니면 영포회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이상득파의 이재오파에 대한 반격인지 혹은 그 둘 다인지 알 수 없지만, 강용석은 어떤 악의를 가진 (자기네 편처럼 보이는) 사람들에 의해 "희생"된 것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과정의 압권은 한나라당의 윤리위원회의 제명 결정이다. 비윤리적 행동을 한 "혐의"가 있는 동료를 제명하겠다는 한나라당 "윤리"위원회의 제명과정은 전혀 윤리적이지 않았다. 강용석의 해명을 듣는 절차도 없었고, 그 자리에 있었던 대학생들에게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윤리위원회의 부위원장인 주성영의 악명높은 과거와는 상관없이, 이 사건의 발단부터 결말까지는 한편의 재미없는 희극이다.

2.
성주D&D 회장 김성주의 발언은 다음 세가지로 요약된다.
1) "우리나라 상류층 딸, 며느리들이 아침부터 고급 식당에 가서 노닥거리면서 어디서 쇼핑할지, 어디서 놀지만 생각하는 것을 보면 가슴을 치게 된다"
2) "대학 나오고 유학까지 가서 공부한 여자가 사회탓을 하면서 집에 있으려고 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3) "직업군인제를 해서 여성도 군대를 갈 수 있도록 해 복무기간을 1년으로 줄여야 한다."

김성주가 아무리 비분강개해도 김성주의 말을 듣고, 상류층 여자들이 대오각성하고 내일부터 고급 카페에서 노닥거리는 대신 열심히 사회생활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녀들이 그렇게 집단적으로 노닥거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그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자신들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노닥거리면서 그녀들은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다른 사람과 정보를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회에 나간들 그녀들을 삼백만원 이상 월급주고 받아줄 곳은 별로 없는 반면, 그들의 가사와 육아에 들이는 노력은 돈으로 환산하면 그보다는 훨씬 대단하다. 부인들이 하는 가사노동의 가치, 혹은 육아노동의 생산성을 정의하는 것은 그들이 하루에 얼마만큼의 빨래를 돌릴 수 있는가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 청소용역 직원의 생산성이 중국 청소부의 몇 배인 이유는 미국인들의 청소방법이 몇 배 더 창의적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들이 미국에서 태어난 것 자체가 그들의 생산성의 대부분을 결정해버린다. 마찬가지로, 주부들의 생산성을 정의하는 것은 그들이 하루에 몇 개의 그릇을 씻을 수 있는가에 있지 않고, 가계(즉, 그녀들을 노닥거리게 해주는 남편)의 소득이 얼마인가에 달렸다.

김성주의 편견과는 달리, 그래서 미국에서도 몇 백만불 이상의 연봉을 받는 월스트리트 투자은행 직원의 부인이 사회생활에 몰입하는 법은 별로 없다. (스칼렛 요한슨의 주연한 Nanny's Diary를 보면 된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고, 그들로서는 더 중요한 다른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나 고급 카페에서 우아하게 차를 마시며 고급 정보를 나누고 싶지, 허접스러운 회사에서 허접스러운 일을 하면서 인생을 낭비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게다가, 김성주에게는 세계 명품시장의 동향이 고급정보겠지만, 상류층 여자에게는 최고 학원강사가 누구인가가 고급정보다. 무엇보다 그들이야말로 김성주 회사의 잠재적 고객이다. 노는 것보다 일하기 좋다는 말(나도 한때 그랬다)은 제대로 된 소모적이고 허접스러운 노동을 안 했기 때문에 나오는 사치스런 소리다. 대학을 졸업한 여자들이 몇 년이 지나면 결혼을 해서라도 직장을 쉬고 싶어하는 경향이 생기는 것은 그들이 멍청하가거나 생각이 짧아서가 아니라, 지루하고 보람없으며 생산성 떨어지는 일상에서 탈출하고픈 나름 합리적인 욕망이다. 그들에게 투자은행에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거나, 아나면 재벌의 딸로 태어나 물려받을 회사가 있었더라면, 혹은 부모가 물려받아 형제들과 싸워 나눠 가질 재산이 있었더라면 그들도 조금은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모병제가 여러문제가 있지만, 여자의 징병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비용에 비해 편익이 적기 때문이다. 여자들을 병사로 쓸 때 생기는 비용은 아직은 현격히 그 편익에 비해서 크다. 만약, 편익이 더 커진다면, 누가 뭐래도 사회는 여자들을 징병할 것이다.

3.
얼마전 자주 가는 게시판에서 "효도는 셀프"란 표현을 봤다. 며느리인 부인에게 효도를 강요하지 말고 효도를 하고 싶으면 (남편인) 너나 하라는 뜻일 것이다. 안 된 이야기지만, 그런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응당 시어머니와의 사이가 좋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남편하고의 관계도 그러할 그럴 것이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 누구와의 관계도 좋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부모와의 관계도 딱히 그럴 듯 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서 '셀프'로 되는 일이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아주 현실적으로 보자면, 효자인 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는 부담스럽고, 어떤 경우에는 편안한 것이다. 일반화할 수 없다는 얘기다. 만약 개천의 용으로 살아남은 남자, 예컨대, 가난한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명문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대기업 직원인 아들인 효자라면 상당히 부담스러운 게 (안타깝지만) 당면한 현실이다. 하지만, 좋은 집안에서 화목하고 유복하게 자라나 사회적으로도 괜찮은 지위에 있는 남자가 효자라면 그게 의미하는 것은 그가 아주 원만한 성격을 가진 훌륭한 신랑감이란 걸 의미한다. 그러니까, "효도는 셀프"임이 옳다고 결론을 내린 여자는 그다지 훌륭하지 않은 집안의 남자와 결혼을 한 경험을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런 사고 방식으로 남자에게 접근해서는 결코 좋은 집안의 남자와는 결혼할 수 없다. 훌륭한 집안의 남자라면 그런 여자와는 결혼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좋은 집안의 남자와 결혼할 생각이 없다, 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런 신념대로 살면 된다. 그리고, 평생 "효도는 셀프"를 외치고 살면 된다. 참 행복할 것이다)

좋은 집안의 남자라는 건 뭘까. 좋은 집안의 사람들은 첫째 건강하고, 둘째 명석하며, 셋째 가족간의 유대감이 강하다. 가족중에 몇 명만 일방적으로 공부를 잘하는 게 아니라 대개가 좋은 대학에 진학한다. 당연히 가족중에 일부가 형편없이 가난한 경우도 드물며, 설령 그렇다고 해도 가족을 그들을 외면하는 법이 없다. 어떤 경우에는 그들은 보험에 가입할 필요조차 없다. 가족 자체가 보험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이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이런 가정에서는 자식을 기본적으로 신뢰의 눈으로 바라본다. 부모의 믿음 없이 자식이 성공하기란 매우 어렵다. 성취를 향해서만 에너지를 쓸 수 있는 사람과 상처를 극복하고 분쟁을 조정하는 데 에너지를 분산해야 하는 사람은 그 노선이 다른다. 같은 성취를 이루어도, 그 질이 다르다.

좋은 가족을 가진 사람에 데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느끼는 선망은 참 크지만, 실제로 좋은 가족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라도 구경하고 나면, 선망은 질투로 바뀔 것이다.

4.
그 게시판에서는 회사 동료들과 분쟁하는 사람들이 가끔 글을 쓴다. 안타깝지만 그런 경우 해결방법은 빨리 자신을 업그레이드 해서 회사를 옮기는 수 밖에 없다. 나는 배우자의 모습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라고 주장하는데, 회사 동료의 모습 역시 정도는 약해도 그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조금 다른 말이지만,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의 레벨은 곧 나 자신의 레벨이다. 나보다 턱없이 높은 레벨의 사람이 나를 아무 즐거움이나 어떤 효용없이 나를 계속적으로 만나주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딱히 그가 계산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간의 관계란 참으로 자연스럽게 인간의 수준을 따라간다. 그럼 무엇이 인간의 레벨을 결정할까? 다행히 배우자를 고르는 과정과는 달리, 친구나 동료의 경우는 그 과정은 비교적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 외모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지식이나 경험 그리고 재미와 화술같은 것들의 비중이 높을 것이다.

바꿔 말해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수준이 지난 수년간 올라가고 있다면 나는 발전하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적어도, 나는 좋은 운을 타고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수준이 점점 떨어지고 한심해지고 있자면, 나는 점점 퇴보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니면 아주 나쁜 운을 만나 허덕이고 있는 중일 것이다.

사람의 관계에서, 정말 훌륭한 사람을 친구로 두고 좋은 대화를 나누면, 그 다음부터는 허접한 사람과 친해지고 깊어지기란 쉽지 않다. 연애에서, 정말 괜찮은 이성과 사귀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허접한 사랑은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눈을 질끈 감고 누군가를 만나도 공허함이 온 몸을 감싸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그런 경우, 내 앞에 놓인 길은, 내 한계를 돌파하든지, 아니면 평생을 아쉬움에서 옛날을 추억하면서 사는 것이다. 옛사랑, 옛우정, 옛 전성기를 추억하면서 담배연기에 파묻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