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을 쓰니 내 블로그가 남의 블로그처럼 낯설다. 지난 2주 동안 너무 바빴고, 더웠고, 몸은 힘들었으며, 생각들은 심하게 산란했다. 인셉션이란 영화를 연이어 두 번 봤고, 몇 권의 책을 읽었고, 몇 권의 책을 샀으며, 누군가 떠나갔으며, 덕분에 많은 일들을 새로 배웠다. 지난 주말은 너무 더운데다 기압은 낮고, 공기는 탁하고, 습도는 높아서 서울에서 산다는 것이 새삼스래 곤욕스러웠다. 알러지가 있는 둘째는 기침을 멈추지 않고, 마치 서울의 결함이 내 탓이라도 되는 듯 불편하고 불안한 주말이었다.
1.
강용석 국회의원 강용석이 대학생들에게 했다는 발언은 참 유치하고 졸렬하다.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주어야 한다"거나 "여자는 자동차라 나이가 들수록 값이 내려가고 남자는 부동산이라 나이가 들수록 값이 올라간다" 따위의 발언은 그 발언의 진위와 관련없이, 그 발언 자체가 갖고 있는 가벼움 때문에 국회의원이 해서는 곤란한 말이다. 물론, 인간은 편견을 가질 권리가 있고, 편견을 말할 자유가 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모든 의견은 하나의 편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언이 불편한 이유는 젊은 국회의원이라면 (그게 비록 한나라당이라고 해도) 현상에 대한 올바른 인식, 옳지 않은 현상에 대한 당위적인 접근, 그리고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진중한 접근중에 적어도 하나 정도는 갖기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강용석 사건이 진짜 흥미로운 이유는 그 발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의 전개 방식이다. 강용석 발언이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술자리에서 개인적인 차원에서 자신의 편견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런 종류의 발언은 흔하지만 그런 발언이 언론을 통해서 공개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에, 아마도, 중앙일보가 그 발언을 보도한 것에는 분명하고 실체적인 맥락이 있을 것이다. 그게 종합편성권을 둘러 싸고 조선일보를 일방적으로 편들지 말라는 중앙일보의 이명박을 향한 강력한 메세지인지, 아니면 영포회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이상득파의 이재오파에 대한 반격인지 혹은 그 둘 다인지 알 수 없지만, 강용석은 어떤 악의를 가진 (자기네 편처럼 보이는) 사람들에 의해 "희생"된 것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과정의 압권은 한나라당의 윤리위원회의 제명 결정이다. 비윤리적 행동을 한 "혐의"가 있는 동료를 제명하겠다는 한나라당 "윤리"위원회의 제명과정은 전혀 윤리적이지 않았다. 강용석의 해명을 듣는 절차도 없었고, 그 자리에 있었던 대학생들에게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윤리위원회의 부위원장인 주성영의 악명높은 과거와는 상관없이, 이 사건의 발단부터 결말까지는 한편의 재미없는 희극이다.
2.
성주D&D 회장 김성주의 발언은 다음 세가지로 요약된다.
1) "우리나라 상류층 딸, 며느리들이 아침부터 고급 식당에 가서 노닥거리면서 어디서 쇼핑할지, 어디서 놀지만 생각하는 것을 보면 가슴을 치게 된다"
2) "대학 나오고 유학까지 가서 공부한 여자가 사회탓을 하면서 집에 있으려고 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3) "직업군인제를 해서 여성도 군대를 갈 수 있도록 해 복무기간을 1년으로 줄여야 한다."
김성주가 아무리 비분강개해도 김성주의 말을 듣고, 상류층 여자들이 대오각성하고 내일부터 고급 카페에서 노닥거리는 대신 열심히 사회생활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녀들이 그렇게 집단적으로 노닥거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그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자신들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노닥거리면서 그녀들은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다른 사람과 정보를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회에 나간들 그녀들을 삼백만원 이상 월급주고 받아줄 곳은 별로 없는 반면, 그들의 가사와 육아에 들이는 노력은 돈으로 환산하면 그보다는 훨씬 대단하다. 부인들이 하는 가사노동의 가치, 혹은 육아노동의 생산성을 정의하는 것은 그들이 하루에 얼마만큼의 빨래를 돌릴 수 있는가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 청소용역 직원의 생산성이 중국 청소부의 몇 배인 이유는 미국인들의 청소방법이 몇 배 더 창의적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들이 미국에서 태어난 것 자체가 그들의 생산성의 대부분을 결정해버린다. 마찬가지로, 주부들의 생산성을 정의하는 것은 그들이 하루에 몇 개의 그릇을 씻을 수 있는가에 있지 않고, 가계(즉, 그녀들을 노닥거리게 해주는 남편)의 소득이 얼마인가에 달렸다.

김성주의 편견과는 달리, 그래서 미국에서도 몇 백만불 이상의 연봉을 받는 월스트리트 투자은행 직원의 부인이 사회생활에 몰입하는 법은 별로 없다. (스칼렛 요한슨의 주연한 Nanny's Diary를 보면 된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고, 그들로서는 더 중요한 다른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나 고급 카페에서 우아하게 차를 마시며 고급 정보를 나누고 싶지, 허접스러운 회사에서 허접스러운 일을 하면서 인생을 낭비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게다가, 김성주에게는 세계 명품시장의 동향이 고급정보겠지만, 상류층 여자에게는 최고 학원강사가 누구인가가 고급정보다. 무엇보다 그들이야말로 김성주 회사의 잠재적 고객이다. 노는 것보다 일하기 좋다는 말(나도 한때 그랬다)은 제대로 된 소모적이고 허접스러운 노동을 안 했기 때문에 나오는 사치스런 소리다. 대학을 졸업한 여자들이 몇 년이 지나면 결혼을 해서라도 직장을 쉬고 싶어하는 경향이 생기는 것은 그들이 멍청하가거나 생각이 짧아서가 아니라, 지루하고 보람없으며 생산성 떨어지는 일상에서 탈출하고픈 나름 합리적인 욕망이다. 그들에게 투자은행에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거나, 아나면 재벌의 딸로 태어나 물려받을 회사가 있었더라면, 혹은 부모가 물려받아 형제들과 싸워 나눠 가질 재산이 있었더라면 그들도 조금은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모병제가 여러문제가 있지만, 여자의 징병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비용에 비해 편익이 적기 때문이다. 여자들을 병사로 쓸 때 생기는 비용은 아직은 현격히 그 편익에 비해서 크다. 만약, 편익이 더 커진다면, 누가 뭐래도 사회는 여자들을 징병할 것이다.
3.
얼마전 자주 가는 게시판에서 "효도는 셀프"란 표현을 봤다. 며느리인 부인에게 효도를 강요하지 말고 효도를 하고 싶으면 (남편인) 너나 하라는 뜻일 것이다. 안 된 이야기지만, 그런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응당 시어머니와의 사이가 좋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남편하고의 관계도 그러할 그럴 것이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 누구와의 관계도 좋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부모와의 관계도 딱히 그럴 듯 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서 '셀프'로 되는 일이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아주 현실적으로 보자면, 효자인 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는 부담스럽고, 어떤 경우에는 편안한 것이다. 일반화할 수 없다는 얘기다. 만약 개천의 용으로 살아남은 남자, 예컨대, 가난한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명문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대기업 직원인 아들인 효자라면 상당히 부담스러운 게 (안타깝지만) 당면한 현실이다. 하지만, 좋은 집안에서 화목하고 유복하게 자라나 사회적으로도 괜찮은 지위에 있는 남자가 효자라면 그게 의미하는 것은 그가 아주 원만한 성격을 가진 훌륭한 신랑감이란 걸 의미한다. 그러니까, "효도는 셀프"임이 옳다고 결론을 내린 여자는 그다지 훌륭하지 않은 집안의 남자와 결혼을 한 경험을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런 사고 방식으로 남자에게 접근해서는 결코 좋은 집안의 남자와는 결혼할 수 없다. 훌륭한 집안의 남자라면 그런 여자와는 결혼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좋은 집안의 남자와 결혼할 생각이 없다, 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런 신념대로 살면 된다. 그리고, 평생 "효도는 셀프"를 외치고 살면 된다. 참 행복할 것이다)
좋은 집안의 남자라는 건 뭘까. 좋은 집안의 사람들은 첫째 건강하고, 둘째 명석하며, 셋째 가족간의 유대감이 강하다. 가족중에 몇 명만 일방적으로 공부를 잘하는 게 아니라 대개가 좋은 대학에 진학한다. 당연히 가족중에 일부가 형편없이 가난한 경우도 드물며, 설령 그렇다고 해도 가족을 그들을 외면하는 법이 없다. 어떤 경우에는 그들은 보험에 가입할 필요조차 없다. 가족 자체가 보험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이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이런 가정에서는 자식을 기본적으로 신뢰의 눈으로 바라본다. 부모의 믿음 없이 자식이 성공하기란 매우 어렵다. 성취를 향해서만 에너지를 쓸 수 있는 사람과 상처를 극복하고 분쟁을 조정하는 데 에너지를 분산해야 하는 사람은 그 노선이 다른다. 같은 성취를 이루어도, 그 질이 다르다.
좋은 가족을 가진 사람에 데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느끼는 선망은 참 크지만, 실제로 좋은 가족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라도 구경하고 나면, 선망은 질투로 바뀔 것이다.
4.
그 게시판에서는 회사 동료들과 분쟁하는 사람들이 가끔 글을 쓴다. 안타깝지만 그런 경우 해결방법은 빨리 자신을 업그레이드 해서 회사를 옮기는 수 밖에 없다. 나는 배우자의 모습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라고 주장하는데, 회사 동료의 모습 역시 정도는 약해도 그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조금 다른 말이지만,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의 레벨은 곧 나 자신의 레벨이다. 나보다 턱없이 높은 레벨의 사람이 나를 아무 즐거움이나 어떤 효용없이 나를 계속적으로 만나주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딱히 그가 계산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간의 관계란 참으로 자연스럽게 인간의 수준을 따라간다. 그럼 무엇이 인간의 레벨을 결정할까? 다행히 배우자를 고르는 과정과는 달리, 친구나 동료의 경우는 그 과정은 비교적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 외모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지식이나 경험 그리고 재미와 화술같은 것들의 비중이 높을 것이다.
바꿔 말해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수준이 지난 수년간 올라가고 있다면 나는 발전하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적어도, 나는 좋은 운을 타고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수준이 점점 떨어지고 한심해지고 있자면, 나는 점점 퇴보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니면 아주 나쁜 운을 만나 허덕이고 있는 중일 것이다.
사람의 관계에서, 정말 훌륭한 사람을 친구로 두고 좋은 대화를 나누면, 그 다음부터는 허접한 사람과 친해지고 깊어지기란 쉽지 않다. 연애에서, 정말 괜찮은 이성과 사귀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허접한 사랑은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눈을 질끈 감고 누군가를 만나도 공허함이 온 몸을 감싸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그런 경우, 내 앞에 놓인 길은, 내 한계를 돌파하든지, 아니면 평생을 아쉬움에서 옛날을 추억하면서 사는 것이다. 옛사랑, 옛우정, 옛 전성기를 추억하면서 담배연기에 파묻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