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y 31, 2010

코끼리가 아니라 캥거루

"코끼리 얘기 그만 하고 이제 캥거루를 보자"에서 이진순은 구구절절 맞는 이야기를 한다. 그녀의 주장은 다음 몇 문단으로 정리 가능한데 설득력이 상당하다.

"2008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미국 친구에게 “누가 대통령이 되겠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오바마가 될 거라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야한다고 주장하고, 공화당 지지자들은 오바마가 되서는 안된다고 얘기하고 있어.”

유시민이 한명숙보다 나은 점은 오세훈이 안 되어야 하는 이유보다 유시민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사람들에게 심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부시행정부가 부자에 대한 세금 축소를 “세금경감(tax relief)”이라고, 상속세를 “사망세(death tax)”라고 명명했을 때, 그걸 모든 언론이 그대로 받아 쓰고 그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마저 같은 용어를 쓰는 순간, 이미 게임은 끝났던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등에 진 무거운 짐을 정부가 “덜어” 주겠다는 데 누가 감히 반대를 하겠으며 “죽어서까지” 세금을 내야 한다는 데 누가 흔쾌히 찬성할 것인가. 레이코프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매우 단순하며 강력하다."

천안함 사건이 한나당에게 선거의 호재가 아니라 악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정부 발표 다음 날의 주가 폭락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조중동의 홈페이지에서 주가 폭락 기사는 그날 완전히 사라졌었다. 다음 문단은 그래서 강한 설득력을 가진다.

"선거때마다 저들이 북한관련 사건을 한건씩 터뜨리고 나와서 “안보태세론”을 들먹인다고 불평하지 말자. 그들이 그렇게 하는 건, 우리가 번번히 그런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천안함 블랙홀에 휘말려 맥을 못추던 와중에 단연 돋보인 것은, 한명숙 선대위 이정희 대변인이 “전쟁세력과의 한판전”으로 선거를 규정한 논평이었다. 이 논평으로, 수비에 급급하던 진보진영이 약간의 공세적 입장으로 선회할 수 있었던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평화체제가 국가경쟁력”이고, 평화가 곧 우리의 경제력이라는 걸 더 일찍 전면에 내세웠어야 했다."

진보의 운명

지난 2년간 이 문제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왔다. 역사책도 들춰보고, 경제학 이론에 비추어 생각도 했다. 결론은 조금 우울하다.

부자가 부자를 위한 정당을 지지하고,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들 위한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이 부자를 위한 정당을 지지한다면, 그건 "무지" 때문일 것이다. 만약,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당을 지지한다면 그것은 "선의"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의 무지"는 "부자들의 선의"에 비해서 훨씬 빈번하고 일관적으로 일어난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아도, 경상도 농부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일은 강남 주민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 보다 훨씬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런데, 가난한 형편이면서 부자들을 위한 정당을 지지하는 무지야말로, 그 사람이 가난하게 된 사정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상은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나 인권에 대해서는 냉혹하다. 물론,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형편에 눈 뜰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뀐 것도 금융위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우리나라에서 김대중이 집권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IMF 경제위기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와 같은 극한의 위기에 몰려서야 가난한 사람들은 비로서 자신들이 가진 마지막 카드인 투표권을 행사한 것이다. 그렇지만 형편이 조그만 풀려도, 무지한 사람들은 자신의 진짜 처지를 잊는다.

따라서, 그런 극한의 경우로 나라를 몰고 가지 않으면서도 나라가 진보하려면, 무지한 사람이 무지에서 깨어나는 걸 기대하거나, 부자가 자신이 이익을 접고 가난한 사람들의 이익을 배려하는 선의를 기대해야 한다. 그런데, 무지한 사람이 스스로 무지에서 깨어나는 일은 몹시 어려워 보이는 반면(그게 가능하다면 그는 아마도 가난하지 않을 것이다), 부자의 호의는 드물지만 꽤 일어난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부자가 가능한 이유는 그런 배려가 부자 자신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고,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그들의 그런 견해는 상당한 이론적 역사적 근거가 있다.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가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는 이유도 그런 맥락이다. 그들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주는 그런 정책들이 장기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믿는다. 얼마전 "진정성'에 관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진정성의 근간은 장기적 안목이고, 그들의 삶에는 어느 정도 이상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결론적으로, 세상의 진보를 믿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사람들이 무지에서 깨어나 스스로의 계급적 이익에 눈뜨게 만드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부자가 되어서도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 배려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장기적 관점을 현실에서 관철하는 것이다. 많은 운동가들은 전자를 택하는 데, 그게 방법적으로 옳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게 더 현실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호의를 행사할 자격을 갖추는 일, 즉, 부자가 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부자가 되어 자신의 이상을 관철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고, 조지 소로스나 워런 버핏은 유형은 다르지만 그런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런 그들을 고깝게 여기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그들의 선의야말로 이 사회를 진보시키는 데 중요한 원동력이고, 지금보다 먼 장래에 더 그러할 것이다.

세상에는 두 가지 방법에 다 자신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적 운동을 할 정신적 육체적 힘도 없고, 선의를 행사할 경제적 사회적 힘도 없다. 그런 경우, 자신의 계급적 이익에 충실하기만 해도 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고, 그런 경우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명박이 집권한 지난 2년 동안,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발휘했던 선의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무시되거나 억압되었고, 소로스나 버핏과 같은 특별한 사람들의 선의는 한국에서 눈을 씻고 찾아 보려도 드물었다. 이런 우울한
상황에서, 트레이딩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 조선일보를 확 인수해린 후, 없애버리는 상상을 지난 2년 동안 수 없이 많이 했지만, 나는 조지 소로스도 워런 버핏도 아닌, 그저 먹고 사는 데 급급한 수 많은 트레이더들 중에 하나일 뿐이다. 사실 작년부터 "조선일보를 인수해서 없애 버리는 천재 트레이더"란 소재를 갖고 장난 삼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주인공의 "선의"를 소설적으로 풀어쓰는 데서 막혀 완성하질 못했다. 조지 소로스나 워런 버핏이 선의를 갖게 되는 내적 계기는 그닥 소설적이지 않고, 그렇다고 개인적 일화로 풀어내면 재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원하는 주제에서는 멀어진다.

하긴 그런 소설을 쓴들, 1000권이나 팔면 다행일 것이다.

2012년 세계 경제는 다시 망가진다, 는 Andy Xie

모건 스탠리의 아시아 담당 이코노미스트였던 Andy Xi가 "Global economic recovery: W, Not V"를 썼다. Andy Xie는 내가 2001년도에 금융시장에 들어왔을 때 Stephen Jen과 함께, 가장 눈에 띄이는 사람이었다. 골드만 삭스가 모델과 합의를 중시하는 team approach를 하는 느낌이라면, 모건 스탠리는 개인 애널리스트들의 역량에 의존하는 느낌이었다.

Andy Xie는 글로벌 경기가 V자 회복을 보이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하지만, 잘 읽어보면 이번 회복이 곧 거꾸러질 것이란 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금리를 올리는 시기가 올텐데, 그 때 글로벌 경기가 망가질 것이고, 그 때가 2012년 쯤이란 것이다. 제목의 선정성에 비해서는 내용이 좋다.

Thursday, May 27, 2010

자꾸 나온다

노무현 정부의 전청와대 보좌관이었던 박선원씨가 "김태영 국방장관에 묻는 천안함 사건의 8가지 의문가지 의문점"을 썼다. 존스 홉킨스 대학 교수인 서재정 교수도 "버블효과는 없었다"
[한반도 브리핑] 충격파 흔적도 없었다…천안함의 진실은?"
이란 글을 썼다. 합조단의 노고를 이야기했지만, 서교수의 그 말은 사실 힐난에 가깝다.

내가 궁금한 건 선거 결과와 선거 이후의 대북정책이다. 많은 애널리스트들이 이번 사태도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한다. 선거이후 이명박이 원래의 대북정책으로 돌아간다면 그 말은 맞다. 선거에 이용한 건 한심하고 괘씸하지만, 그래도 다행스런 일이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좀 다를 것이다. 그런 일이 생길 때, 내가 외국인 투자자라면 나는 한국 주식을 팔 것이다.

Wednesday, May 26, 2010

진정성

머리가 좋은 사람에게 진정성을 느끼기란 어렵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머리가 좋은 사람은 자신의 이익에 밝기 때문일 것이다. 머리가 좋은데 진정성이 있다는 느낌을 주면 개인으로서는 굉장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셈인데, 진정성이란 게 인위적으로 조장하려고 해도 그렇게 하기 어렵다. 진정성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당장의 구체적인 이익을 희생하고 미래의 손에 잡히지도 않는 이익을 추구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몸가짐 자체를 바꿔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주변을 둘러봐도 진정성이 느껴지는 사람은 한 움큼 뿐. 다른 사람들도 날 보면 진정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다고 할지도 모르니, 인터넷의 익명성을 고맙다고 해야할지.

Tuesday, May 25, 2010

오늘 주식시장 붕괴의 의미- 햇볕정책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오늘 코스피 폭락은 시사해주는 바가 큽니다. 1시 25분 현재, 코스피는 1539으로 전일보다 65포인트가 하락했습니다. 이렇게 4% 넘게 하락한 것은 어제밤 스페인에서 일어난 지방은행 국유화 사태도 관련이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남북한의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핵실험을 해도 끄덕이 없던 금융시장이 휘청거리고 있는 데는 다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남한 정부가 지금까지 남북한의 관계를 사실상 규정지었던 경제협력의 틀을 깨버리겠다고 나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수 년동안 북한의 핵실험 같은 이벤트에도 한국의 금융시장은 매우 평안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런 반응의 이면에는 근저에 깔린 남북한의 경제적 관계가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온 사실이 있습니다. 북한 경제의 남한 경제에 대한 예속도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증가해왔기 때문입니다. 남한에 대한 북한의 경제적 의존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둘 사이의 군사적 긴장관계는 감소할 수 밖에 없지요.

역사적으로 보면, 북한의 경제적 붕괴가 시작된 것은 92년부터였습니다. 92년은 소련 연방이 무너지고,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동서독이 통일의 경로를 밟기 시작했던 때입니다. 주변국 누구도 독일의 통일을 원하는 나라는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독일의 통일은 급격히 이루어졌습니다. 92년부터 98년까지 대부분의 공산국가들은 이행 경제(transition economy)의 상황에서 급격한 성장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소련의 개혁과 개방에 자신들의 문을 철저히 걸어 잠갔죠. 개방 대신 폐쇄를 택한 마당에 설상가상으로 전무후무한 가뭄과 기근이 강타하면서 21세기를 앞둔 북한은 참혹한 내핍의 시대를 겪어야했습니다. 이러한 북한이 회복을 시작한 것은 2000년 이후였습니다. 최악의 기근이 끝나고,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시작되던 시기였습니다.

99년부터 회복을 시작한 북한은 2008년에야 비로서 98년의 경제수준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시기 동안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선언하고, 북한을 아주 천천히이기는 하지만 개방이라는 방향으로 이끌어냈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원칙을 이어 받았습니다. 여러 차례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의 경제적 관계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깊어졌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초기에 흘렀던 남북한의 긴장감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보수 정치인들은 햇볕정책의 기본적인 틀을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햇볕정책 이후, 경제적으로는 개성공단을 시작한 이후, 북한 경제는 남한경제에 상당히 종속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종속을 유발한 근본적 힘은 남한의 자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북한이 초근목피로 겨우 연명하는 나라로 알고 있지만,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끔찍하게 낮은 편은 아닙니다. 최근 20년 동안 급성장한 중국과 비교하면 1/3 수준 밖에 되지 않지만,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8년 기준 약 1100불 정도로 인도, 라오스, 그리고 베트남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경제적 궁핍이 심각한 이유는 국방비에 대한 비중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국방비 지출은 GDP의 약 25% 정도로, 한국의 국방비 지출이 3% 미만인 것을 감안하면, 너무나 높습니다. 경제규모가 30배 가까이 큰 남한의 국방비 규모를 따라가기 위해서, 국방비 지출을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의 국방비 격차는 이미 5배가 넘습니다.

경제규모가 30배, 국방비 격차가 5배 이상 차이 나는 나라와 군사경쟁을 계속 하면, 그 말로는 뻔합니다. 한쪽은 사생결단 하듯 먹을 것 대신에 총을 들어야 하지만, 한쪽은 지갑에서 약간의 돈을 지출하는 데 불과하다면 몇년이 지나지 않아서, 한쪽은 배도 곯고 나라도 지킬 수 없지요. 결국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지갑을 늘리던지, 국방비를 줄이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게 어느 쪽이든 북한은 이미 받고 있는 남한의 도움을 더 필요로 합니다.

북한 경제가 남한에 이미 상당부분 종속되었다는 것은 북한의 경제구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비록 북한 전체 GDP에서 수출이 차지는 비중은 5%에 불과하지만, 북한의 최대 수출국은 2007년을 기점으로 중국에서 남한으로 바뀌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북한 전체 수출에서 개성공단의 비중이 20%가 넘고, 남한으로의 수출에서 개성공단의 비중은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는 것입니다. 개성공단은 비록 정부가 투자금액의 상당부분(약 80%)을 보증해주긴 하지만, 남한 기업들의 투자를 통해서 이루어진 산업 단지입니다.

남한 기업들이 왜 북한처럼 정치적 위험이 높은 곳에 기업을 투자할까? 물론, 기업인들의 선의가 이유중의 하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북한의 노동력이 질이 좋은 반면 아주 싸기 때문입니다. 개성공단이 북한 주민에게 지급하는 평균임금은 월 70불~250불 정도인데, 이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임금보다 10배 정도 쌉니다. 북한 주민들의 교육 수준은 외국인 노동자들에 비해서 높은 편이고, 의사 소통에도 문제가 없고, 교육을 통한 학습 속도도 굉장히 빠릅니다. 이런 북한 노동자들의 높은 생산성 때문에, 남한 기업들로서는 북한의 정치적 위험을 감수할 충분한 유인이 존재합니다.

최근 남북한 간에 흐르는 정치적 긴장관계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개성공단의 기업들을 쫓아내는 것은 자국의 경제적 이익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자국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단지를 폐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마찬가지로, 남한이 개성공단을 스스로 폐쇄하고, 남한 기업들을 철수시키는 것도 어렵습니다. 개성공단은 남한 기업들이 투자한 사유재산이기 때문이죠. 남한 정부가 이들 기업들을 철수 시키려려면 상당한 재정적 비용을 감수해야 합니다. 만약, 그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남한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를 경색시키려 한다면, 시장은 더 큰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수구 세력들은 햇볕 정책이 퍼주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금융시장의 반응을 보면서 그건 "퍼주기"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퍼오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햇볕정책을 그냥 쉬운 말로 바꾸자면, 돈으로 평화를 사는 정책입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혐오스러운 정책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김정일에게 벗어나고 싶은 북한 주민들이나, 북한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싫은 남한의 우파 정치인들에게는 특히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정책으로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사실 남한의 저소득 노동자들입니다. 북한 붕괴의 충격에 대비할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어서, 북한 붕괴와 동시에 도시빈민으로 전락할 사람들입니다. 그 다음은 대부분의 평범한 남한 중산층이죠. 그럼 모든 이해관계자가 행복한 그런 대북정책은 없을까?


그런 정책은 세상에 없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제가 통일이나 그에 준하는 상태가 멀지 않았다고 보았던 것은 순전히 남한과 북한의 경제적 관계에 주목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예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통일의 시작은 두 쪽 모두에게 상당히 고통스러울 수 있을 겁니다.

Monday, May 24, 2010

인터넷의 힘

연휴기간에 시골에 다녀왔다. 이달곤이 유세하는 걸 보았다. 김을동 얼굴도 보고. 이달곤은 김두관에게 질 것 같다. 더불어, 유시민은 김문수를 이길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안희정이 이겼으면 좋겠고 이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명숙은 오세훈을 이기기엔 역량이 좀 달린다. 한명숙이 오세훈을 이기면, 이번 선거는 드라마가 될테지만.

인터넷은 힘이 세지만, 아직은 전반적으로다 좀 모자란다. 시간이 필요하지만, 진짜 문제는 시간이 아닌지도 모른다.

Friday, May 21, 2010

천안함은 과연 어떻게 침몰했나

이상한 정황들

1.
한겨레 신문에 합리적 의심 낳는 비이성적 ‘천안함 정국’란 글을 기고한 장정일에 의하면, 해경 관계자는 천안함이 배에 물이 새면서, 5km를 표류한 뒤 침몰했다고 말했다. 당시 천안함 함수에 있는 생존자는 모조리 해경에서 구조했다. 그런데, KBS는 슬그머니 오보라며 발을 뺐다.

"거의 두 달 가까이 국민의 관심을 샀던 이번 비극의 ‘공식적’ 결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나는 지난 4월2일 <한국방송>(KBS) ‘9시 뉴스’가 했던 보도를 굳게 믿을 작정이다. 사건 상황을 정리한 해경 관계자가 나섰던 그 뉴스의 요지는 ‘배에 물이 새면서, 5㎞를 표류한 뒤 침몰’이다. 무슨 까닭에서인지 <한국방송>은 슬그머니 그것을 오보라고 뒤집었지만, 그게 오보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취재에 응했던 해경 관계자가 자신의 말을 취소해야 한다."



2.
국방부는 TOD 영상을 공개하면서 천안함 함미가 침몰하고 함수만이 남아 있는 상태의 동영상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시 지진파가 났다는 시간과 맞추기 위해서인지, TOD 동영상에 나오는 시간은 실제 시간과 차이가 난다고 말한다. 그러다, 며칠 후, 국방부는 천암함이 반토막이 나오기 전 TOD 동영상보도 발견했다며 공개한다. 물론, 이것조차도 마지못해 겨우 공개한 것이다. (4월 7일 MBN 뉴스) 그런데, 여기서의 시간은 또 다르다. 역시, 실제 시간과 차이가 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두 동영상의 중간은 텅 비어있고, 두 동영상의 시간은 서로 다르고 실제 시간과 틀리다. TOD 영상을 찍는 장비는 왠만한 고물 시계보다 더 형편없고, 이 동영상을 촬영한 군인은 시계에 배가 출현했는데, 동영상을 찍다 말고 외계인이라도 찍었는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배가 둘로 갈라진 후, 함미가 침몰한 후에야 다시 찍기 시작했다, 고 주장한다. 당나라 군대도 이렇게 개판은 아니겠다. 하지만 담당 군인을 징계했다는 말은 아직까지도 들리지 않는다.

해군이나 해안 경비대에 일했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말이 있고, 이 말은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인터뷰한 사람도, 지금은 애널리스트인 후배도 하는 말이다. "TOD 동영상이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재밌는 건,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국회본회의장에서 TOD 동영상 원본이 있으며, 그 원본을 본 사람의 누구인지 밝힌 일이다. 비록 실명을 공개한 건 아니지만. TOD 동영상이 있으면, 지금의 논란의 대부분은 없어질테지만, 지금까지의 패턴으로 봐서는 있었더라도 폐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3.
바보가 아닌 한, 잠수함도 아닌 구축함이 해저에 가라앉았는데, 50시간이 넘을 때까지 해저에서 생존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건 말도 안 된다. 만약, 그런 생각을 해서, 생존자를 구출하겠다며, 소중한 군자원인 UDT 대원을 사지로 밀어 넣은 사람이 있다면 당연 징계감이다. 그때의 나쁜 기상으로 인해서, 미군 잠수요원은 원칙에 의해서 잠수를 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럼 도대체 왜 우리 군인은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잠수를 해야만 하는 것일까? 생존자를 구하기 위해서라는 이상한 대답을 하는 군관계자가 있다면, 문책을 해야 한다. 생존할 가능성이 극히 낮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원칙을 어겨서까지 멀쩡한 군인을 사지에 밀어 넣었다는 것인데, 왜 이런 짓에 책임을 묻는 사람은 없을 것일까?

게다가, 한준위가 사망한 곳이 함미가 가라앉은 곳도 함수가 가라 앉은 곳도 아닌 제 3의 장소라는 것은 KBS 뉴스 보도로 이미 나온 사실이다. 재밌는 건, 이 보도 역시 KBS에서 오보라며 발을 뺐다.

4.
이미 배가 가라앉을 때부터 조선일보에서 나온 어뢰 공격설. 피로파괴로 배가 쪼개질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피로파괴로 배가 반으로 쪼개지는 경우는 구글에서 조금만 검색해도 수 많은 사례를 발견할 수 있지만, 어뢰 공격으로 배가 둘로 갈라져 침몰하는 마당에, 물기둥도 없고 (함수 군인들을 구조한 해경요원들의 증언에 의하면, 함수 갑판에는 물기가 거의 없었다. 함수 군인들은 뽀송뽀송한 상태에서 구조되었다), 어뢰가 터졌다는데 죽은 물고기도 발견되지 않는 친환경 어뢰, 게다가 함미에서 발견된 군인들은 시신은 대부분 온전한 형태인 것으로 알려졌고, 함수에서 살아 돌아온 군인들의 상태는 어뢰에 맞고 퇴각한 군인치고는 너무나 멀쩡하다.

5.
군인들이 자신들의 배가 가라앉은 것은 피로파괴나 충돌로 인한 좌초가 아니라, 적의 공격 때문이라며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이 코메디같은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도둑질 하지 않아놓고 꼭 감옥에 가야 하기 때문에 혐의를 뒤집어쓰는 어느 희극속의 배우들 같은 꼴이다. 기자회견 장에서 외국인 기자의 질문에, "잠수함의 공격은 어느 나라도 막을 수 없다"고 답변하는 군인 아저씨의 말이 많다면, 잠수함이야 말로 완벽한 공격무기네.

6.
조선일보가 기자회견 하루 전에 드디어 결정적 단서로 발견했다는, "북한만이 특징적으로 사용하는 XX1이란 일련번호"는 파란색 매직으로 쓴 1번, 이란 글자였다. 최소한 조선일보 그 기자는 오보에 대해 사과를 하든, 부연설명을 하든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아니면, 설마 진짜 "1번"이 북한 글씨체라고 개그하고 싶은 걸까?

7.
어뢰로 적을 몰래 공격해 놓고는 자신의 나라를 비워놓고 중국에 갔다고 김정일은 싸이코 똘아이일까? 게다닥, 검열단을 파견하겠다는 북한의 반응도 참 흥미롭다. 딱히 과학적이기 어려운 증거들을 제시한 상태에서 검열단을 부인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점점 재밌어진다.

어제 금융시장서 일하는 22명에게 메신저로 물었다.

오늘 기자회견을 믿나요?
예/아니요
.

2명이 반반이라고 해서 제외했지만, 예라고 대답한 사람이 4명. 아니오라고 대답한 사람이 16명이었다. 4명 중에 2명은 통일부와 국정원에 다니는 친구의 친구에게 그게 북한이라고 들었다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친구를 믿느니, 과천 동물원의 아프리카 코끼리를 믿겠다. 그래도, 16명이 아니오, 라고 대답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Thursday, May 20, 2010

Fed의 2012년까지의 전망치

미국 연준의 어제 공개한 FOMC 의사록에 나온 2012년까지의 경제성장률과 물가 예측치를 보면 상당히 낙관적이다. 이대로 이루진다면, 또 다른 Goldilocks인데.

미국의 4월 CPI

미국의 경기회복 형태는 사실상 V자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고용시장 상황이 좋지 않고, 인플레이션이 낮아 금리인상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제 밤 발표된 미국의 4월 소비자 물가는 시장 예상치인 0.1% m-m보다 낮은 -0.1% m-m를 기록했고, 근원 물가 역시 예상치인 0.1% m-m보다 낮은 0% m-m를 보였는데, 근원 물가가 전월대비 같은 수준을 보인 것은 벌써 두 달째지면 이번 달 core는 +0.047%로 완전한 0% 증가로 보기는 좀 어려울 듯 싶다.

부동산 시장의 부진이 계속 되고 있어, 렌트를 인상하기엔 집주인들의 부담이큰 듯 하다. core에서 거주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40%나 된다. 의류 가격이 -0.7% m-m하락했고, 운임도 -0.5% m-m 하락했다. 헤드라인 CPI의 상승을 막은 것은 자동차용 휘발류 가격의 하락이었다. 최근 유가의 움직임을 볼 때, 5월 CPI는 유가 하락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듯. 어쨌든 전년대비로 헤드라인 CPI는 2.2%, 근원 CPI는 0.9% y-y로 아직 여유가 많다.

Wednesday, May 19, 2010

이상한 나라의 이정희



이정희의 주장이 옳을지도 몰라서 슬픈 게 아니라, 그녀의 주장을 옳고 그름을 냉정하게 따질 수 있는 시스템이 없는 나라인 게 우울한 것이다. 애초부터 TOD 영상의 앞부분도 있고, 뒷 부분도 있는데, 중간만 없다는 게 이상한 것이란 걸 무시하는 게 이상한 것이다. 이정희의 이 주장은 보도도 되지 않고 무시될 것이다. 이상한 나라다.

세상은 아직도 좋은 사람들이 많다

"왜 항상 세상은 내게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일을 맡길까. 국가인권위 소속으로 교도소 재소자 건강 조사사업을 참여했을 때에도,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건강에 대한 논문을 쓸 때에도 수없이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은 나보다 좀 더 경험이 많고 또 준비되어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데.

오랫만에 만난 친구가 들려줄 게 있다며 녹음기를 켰다. 거기에서는 앳된 여성 노동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다 23살에 백혈병으로 죽은 황유미 씨의 동료였다,

“그 방사선 막아주는 소리내는 장치있잖아요. 그게 일하는 내내 계속 울렸다가 멈췄다가를 반복하는 거예요”

가슴이 먹먹해졌다. 다들 눈치챘겠지만, 그녀가 말하는 방사선 장치는 그녀를 보호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하고 있는 그녀 주위의 방사선 허용정도가 이미 위험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리는 경고 장치이다. 그 경고장치가 일하는 내내 계속 울렸다 멈췄다를 반복했다고 말하는 여성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데, 그게 아니라고 그 소리가 나는 동안에 당신은 계속 위험한 수준의 방사선에 노출되고 있었던 거라고 입밖에 내지는 못하고 혼자 중얼거리는데 다음 이야기가 들려왔다.


김승섭, 누군가는 그들 편에 서야 한다
김승섭, [기고] 반도체 뒤의 황폐함, [Challenging the chip] 번역 후기

Tuesday, May 18, 2010

현자 활용법

게시판에서 곤경에 처한 자신을 설명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는 질문글을 읽으면 재밌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용한 점쟁이도, 도대체 나는 누구랑 결혼해야 할까요, 나는 어느 회사에 들어가게 될까요, 라는 질문 같은 걸 하면 그럴 듯한 답을 주기 어렵다. 그렇다고 점쟁이를 비난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나마, 역술이란 걸 제대로 이용하려면, 나는 두 여자(혹은) 남자 중에서 누구랑 결혼하는 게 맞을까요, 혹은 나는 전자회사와 증권회사중에 어디로 가는 게 나을까요, 같은 질문이 낫다. 그런데, 그런 질문이라도 제대로 하려면, 제법 영리해야 가능하다

대부분의 그런 질문은 질문 자체에 답이 있는 경우가 많고, 본인 스스로도 답을 알고 있는 데 확인받고자 하는 것 뿐인 경우가 태반이다. "저 어장관리 당하고 있는 건가요?"란 질문의 대답은 결국 "맞다"일 수 밖에 없고, "저 이 회사에 떨어질 거 같지 않나요?"란 질문의 대답 역시 "그렇다"일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누구나 자신의 주변에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하게 대답해주는 현자 하나 쯤은 있게 마련이다. 그게 절대적으로 조금은 후지더라도 나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현명하다면, 혼자서 끙끙거리는 것 보다는 백배는 나을 것이다.

그런데, 현자들의 말을 사람들은 잘 듣지 않는다. 역설적인 것은, 현자의 말을 듣지 않을수록 사람들의 삶은 현자의 존재감에 더욱 더 종속된다. 외려 현자의 말을 듣고 그 결과가 좋으면, 사람들의 삶은 현자에게서 독립된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배운대로 풀어서 맞추고 나면, 내 것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경제가 호황과 불황의 변주에 불과하고, 시장은 상승과 하락장의 반복에 불과하듯이 한번 경험하고 극복한 어려움은 결국 비슷한 형태로 반복되기 때문에, 한번 어려움을 제대로 된 방식으로 넘어서면 그 다음은 훨씬 나아진다.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충고까지 나누어줄 형편이 되는 것이다.

수습의 법칙

인간은 누구나 사고를 친다. 다만 어떤 경우는 감당할 수 있고, 어떤 경우는 감당하기 어려울 뿐이다. 어린 시절, 유리창을 깨거나 부모가 아끼는 도자기를 깨면 겁이 덜컹 난다. 하지만, 우리가, 그게 내가 됐건 가족이 됐건, 감당할 수 있는 사고는 어떤 의미에서 괜찮은 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사고의 연속이고,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진면목이 나와고, 삶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리창은 다시 달면 되고, 도자기를 다시 사면 된다. 하지만, 인간의 인생에서 때론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더러 생긴다. 비가 억수로 와서, 담이 무너지고, 지붕까지 잠길 지경이면, 빨리 이불을 박차고 나와서, 밤을 새워서라도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인간의 매카니즘은 반대로 움직인다. 우리는 충분히 수습가능한 일들에 대해서 넘치는 걱정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막상 움직여야 할 큰 사태에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 버린다. 맙소사.

술과 일

과로사로 쓰러졌다는 남자들은 많이 봤는데, 과로사로 쓰러졌다는 여자들 소식은 과문한 탓인지 들은 적이 없다. 생각해보니, 술만 먹다가 죽었다는 남자도 없지만 일만 하다가 죽었다는 남자도 별로 못 본 것 같다. 결국은 남자들이 술도 먹고 일도 하다가 죽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 된다.

일을 하다가 술을 먹으면 위험한 이유는 술을 마시기 전에 이미 에너지를 완전히 쓰고 나오기 때문에, 술을 먹기 시작할 때는 완전 바닥까지 탈탈 털린 상태에서 쓸 수 있는 에너지란 게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중력있게 일을 하지 못하지만, 집중력있게 쉬지도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술이 들어가면, 자신이 얼마나 탈진한 상태인지 인식하지 못한 채 취해 버린다. 그런데, 기초 체력이 부족하거나, 술이 체질적으로 약하면 몸이 버티지 못하고 항복한다.

그런데, 술은 왜들 그렇게 열심히 마시는 것일까.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찾는 것은 결국 스토리 텔링이다. 스토리에 굶주려 있는 것이다. 술자리에서 목숨을 걸면서까지 스토리를 찾는 남자들의 심리는 여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그런 몰이해와는 별개로,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싶다면 남자들도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타협의 전제는 자신의 에너지가 유한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면 마트에서 2시간 동안 장을 보는 일 같은 건 저절로 접게 된다.

셀리그 해리슨, 김정일 방북의 이유

북한 문제에 관해서 가장 읽을 만한 글을 쓰는 셀리그 해리슨이 "[세계의창] 김정일이 중국에 간 이유 "를 썼다. 한나라당과 이명박이 취임 후 벌인 대북정책이란 것은 북한의 이익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다. 문제는 그것이 남한의 이익도 줄인다는 것인데, 이명박의 머리 속에 남한의 이익이라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미미하고, 장기적으로는 자기가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가득 차 있다.

남북한이 경협으로 얻는 이득은 북한도 맛보지만, 남한이 훨씬 더 많이 가져간다. 무역과 투자는 상호간에 이득이지만, 개도국에 투자를 한 모든 외국회사들은 개도국보다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가져가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북한이 조금의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것도 싫다는 사람들도 있고, 그 사람들은 북한의 경제를 궤멸시켜서 빨리 붕괴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북한이 그런 식의 접근 방법에 "네"하고 붕괴될 때까지 기다릴 리는 만무하다. 그 정도 돈은 이미 중국도 넘치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통해서 중국이 얻는 경제적 이득은 (남한이 얻고 있는 이득과 마찬가지로) 북한이 얻을 이득보다 훨씬 크고, 미국을 견제할 군사적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점에서도 중국에게는 너할 나위 없이 좋은 전개 방향이다. 그렇다면, 왜 북한은 그 동안 중국을 통한 개방을 주저해왔을까. 사회주의적 연대감이 사라진 마당에 아무래도 중국은 북한에게 두려운 존재이자 믿을 수 없는 존재였다. 북한의 입장에서 중국정부가 남한정부보다 믿을만 한지도 의문이지만(김대중과 노무현정부의 경우에 특히), 중국기업들이 남한기업보다 더 큰 신뢰를 주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에서도 자유롭고자했던 북한이 중국에서 사실상의 항복을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게 해리슨의 분석이다. 그리고, 그러한 멍청한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달콤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매우 멍청하다.

Monday, May 17, 2010

임상수, 하녀

임상수의 '하녀'는 불편한 영화입니다. 박찬욱의 '복수의 나의 것'도 불편한 영화로 꽤 악명이 높지만, 사람들은 '복수는 나의 것'이 불편한 이유가 인간의 폭력의 보여주는 잔인함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결 편한 불편함이지요. '하녀'가 표방한 것은 에로티시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왜 불편한지 이해하기가 조금은 어려워 하는 듯 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계급의 속성을 이해하고 나면 모든 등장인물의 행동은 쉽게 이해되고, 그 행동에는 한치의 논리적 모순도 없이 전개됩니다. 이 영화에서 계급은 가족간의 관계, 가족 밖에서의 관계, 개인과 개인간의 관계, 즉 모든 관계를 철저하게 지배합니다. 물론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피상적이나마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계급적 함의를 본능적으로 읽어 냅니다. 그리고, 일부는 그것이 임상수의 오버라고 생각하고, 일부는 그 계급적 관점이 도대체 자신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회의합니다. 이 영화는 2010년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김기영의 '하녀'와는 완전히 다른 영화였지만, 김기영의 영화를 리메이크했기 때문에, 여러가지 비난을 교묘하게 피해갈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조선일보까지 임상수의 하녀를 언급하는 방식은 비판보다는 찬사에 가까웠으니까.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

식당 일을 하던 은이(전도연)는 엄청난 부자집의 (식모와 같은 의미인) 하녀 (영어로는 내니에 가까워 보입니다)가 됩니다. 벌이는 비슷하거나 더 좋을테니 전도연의 선택에는 하자가 없죠. 집은 넓고 쾌적하며, 먹을 것은 넘쳐납니다. 이 집에는 남편(이정재)과 아내(서우)가 나이 든 하녀(윤여정)를 거느리고 어린 딸을 키우고 삽니다. 이정재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즐겨 연주하고, 와인을 항상 마시며, 어린 시절부터 원하는 것은 모두 소유해야 직성이 풀리는 남자고, 서오는 식모가 머리를 감겨주고, 발톱 손질을 해주며, 마티스를 애완(愛玩)하며 여가를 보내는 여자입니다. 어느 날, 쌍동이를 임신한 부인과의 섹스가 실패하자, 발산할 섹스에 굶주린 이정재는 식모인 전도연의 방을 찾고 전도연은 거부하지 못합니다. 전도연은 남자가 자신에게 조금의 애정이라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이정재가 건네 준 수표를 보면서 자신의 현실을 곧 알아 차립니다. 몇 번의 관계 끝에 그녀는 임신합니다. 이를 당사자인 전도연 보다 더 빨리 눈치 챈 윤여정은 장모(박지영)에게 이 사실을 일러바칩니다. 박지영은 전도연을 2층에서 떨어뜨려 아이를 유산시키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1억을 제시하며 낙태를 종용하고, 전도연은 거부하지요. 서우는 남편이 한 짓을 알게 되지만, 돈과 권력을 잃지 않으려고 모른 척 하는 대신, 애가 떨어지는 한약을 지어와 전도연이 먹고 있는 애가 잘 자라는 한약 사이에 섞어 놓습니다. 약을 먹고 정신을 잃은 전도연을 박지영은 병원으로 데려가 완전히 낙태시키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정재는 장모에게 "당신의 딸이 낳은 자식만 내 자식은 아닌"데, "감히 어디 감히 내 자식을 유산시키려고 하느냐"라고 꾸중합니다. 박지영은 이를 악물지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여정은 유리한 쪽에 줄기차게 기생하며 자신의 몫을 챙기다가, 비열한 게임의 정도가 상승하며, 목숨이 왔다갔다 하자 발을 뺄 궁리를 합니다. 결국 전도연은 아이를 잃고, 1억도 챙기지 못합니다. 한 방에 신분상승을 노리던 그녀(이런 표현을 용서하시길)가 모든 기대를 접고 복수할 방법은 자신의 죽음 뿐이어서, 자신을 좋아해주던 아이의 앞에서 목을 매달고 분신합니다. 이정재는 아이의 눈을 가리고, 뛰어 나갑니다. 이정재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역시 근본이 천한 것들은 안 돼"입니다.

우리는 이정재와 서우가 속한 세상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들과 우리는 근본적으로 다른 세상 속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와 사실상 다른 시대와 다른 공간에서 살고 있습니다. 왕은 궁궐의 모든 여자와 섹스할 수 있습니다. 중전은 왕이 노쇄하면 자신의 자식을 내세워 영화를 누립니다. 중전이 오욕의 젊음을 참는 이유는 그런 욕망의 힘 때문입니다. 신분이 천한 무수리는 왕이 섹스를 원하면 섹스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녀의 신분은 무수리지만 왕의 태생을 낳으면 후궁이 됩니다. 이 시대에 신분제도는 없어졌지만, 계급은 엄연히 남아있죠. 다만, 계급이 다른 사람을 볼 일이 없어서 그 존재를 인식하기 어려울 뿐입니다. 이정재를 얼마전에 이혼한 모재벌의 후계자로, 서우를 그와 이혼한 또다른 모재벌의 딸로, 그리고 전도연을 그들의 이혼의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필리핀 보모로 대입하면 어떨까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 호연한 이정재는 대상그룹의 딸이자, 삼성그룹의 며느리였던, 임세령과 필리핀 여행을 함께 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임상수는 아무래도 천재같아요.

중전 일당에게 아이를 뺃긴 무수리 전도연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상궁과도 같은 존재인 윤여정이 그녀에게 준 복수의 기회란, 기껏 그들 앞에서 자해할 기회일 뿐 입니다. 그런데, 그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아기를 죽인 중전에게, 그리고 애정이 아니라 섹스를, 섹스도 아니라 자기의 '씨'에만 집착한 왕에게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임상수는 전도연에게 "우리는 모두 하녀의 속성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계급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만 있다면, 누구나 그 기회를 간절하게 원하고, 또 기회를 움켜잡을 것이란 걸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대중은 자신들이 전도연과 같은 존재일 뿐이란 걸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영화를 불쾌해합니다. 식당에서 허드렛 일을 하던 이혼녀가 과연 재벌 남자의 섹스 제안을 거부할 수 있을까. 그 섹스의 대가로 준 수표를 거부할 수 있을까. 섹스의 결과로 우연찮게 아기가 생겼을 때, 여자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아기 자체였을까, 아니면 아기가 가져올 신분의 변화였을까. 그 질문 자체가 불쾌합니다.

임상수가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던지는 비극적 조크는 이정재가 전도연에게 건낸 수표에 있는 듯 합니다. 그 금액이 얼마였을지 궁금해하는 관객이 자신의 머리속에 떠올린 금액이 바로, 관객 자신이 속한 계급입니다.

위험천만

이창동의 '시'를 보러가서, 극장 위층에 있는 중국집 '샹하이 베이'에서 짜장면 한 그릇을 먹었다. 건너평 창문에서 옥상에 있는 청년들이 광고판을 설치하는지 옥상 난간에 서서 왔다갔다 하는데 보는 것만으로는 가슴이 철렁했다. 재밌는 건 내가 앉은 자리 역시 창문에서 불과 30cm도 떨어지지 않았고, 그 창문 밑은 허공이었다는 것. 창문이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이 사람 마음에 이렇게 큰 차이를 준다. 하긴, 트레이딩을 하면서 수 없이 보고 경험하지 않은가. 얼마나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생각을 왜곡하는지.

Friday, May 14, 2010

조선일보

조선일보가 배달되어 온다. 1년 반이 넘었는데, 한번도 신문값을 받으러 온 적이 없다. 물론, 받으러 온다고 해도 줄 생각은 없다.

조선일보를 살살 들추다 보면, 사악한 기운이 슬금슬금 뿜어져 나온다. 대단한 포스다. 조선일보를 매개체로 하는 공포 영화를 만들어도 될다 싶다. 그 영화의 주제는 "귀신보다 조선일보가 더 무섭다"는 것.

칸느에 가 있는 임상수와 이창동이 화제가 되고 있어, 조선일보도 그들 영화에 대한 기사는 넘치지만, 정작 그 흔한 감독 인터뷰 하나 없다. 임상수와 이창동이 조선일보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싫어함은 감정에서 출발한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상당히 논리적인 정합성과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한 혐오에 가깝다. 누군가를 이렇게 혐오하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만, 혐오를 당하는 쪽은 그런 것에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제대로 된 '악'의 전형적인 자세다. 많이 배운다.

Thursday, May 13, 2010

Q&A

뉴욕에 있는 policy strategist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

Q: Do you have any good piece I should read about your housing markets?
A: Interestingly, there are not many pieces to read about Korean housing market out there. I think that many experts are not sure about the future of Korean housing market and they concerned about negative feedback from government because it is very sensitive issue. It is not surprising in Korea to see such an immature behavior of government- bashing analyst. For instance, MOSF official called and protested to a securities firm when its economist released negative growth forecast after subprime crisis and then the economist was in trouble. Maybe, I have to do my own research on the issue and I will send you as soon as I finish it.

Q: Do you think inflation is such that the CB should be hiking as I am not so sure
A: Regarding inflation, based on my mild assumption, the path of future inflation is going to rise for next 6 months. The back of envelope calculation suggests that we will have 3.4% y-y June CPI in July. Governor Kim also said yesterday that output gap was going to be positive as the economy was well on the right track and I agree with him. However, as I mentioned on my daily, I don't think that BOK will likely hike rates before G20 summit but the market is going to be volatile because it is hard justify holding policy rates given recently improving fundamentals unless governor Kim mention the real concerns like weak housing market.

Sunday, May 09, 2010

로버트 프랭크, 이코노믹 싱킹

"코끼리물범의 수컷은 대개 길이가 6미터에 몸무게는 2700킬로그램에 이른다. 반면 암컷은 360-540킬로그램밖에 안 나간다. 이처럼 성에 따라 암수의 모습이 크게 다른 현상이 대부분의 척추동물에 발견된다. 이에 대해 진화론은 대부분의 척추동물이 일부다처제를 고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수컷들은 가능한 한 많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벌여야 한다. 한쪽이 지치거나 다쳐서 물러날 때까지 몇 시간 동안 일대일 난투극을 벌인다. 이 싸움의 승자는 무려 100마리에 달하는 암컷 무리에 대해 거의 독점적 성적 접근권을 누린다. 이것이 바로 다윈이 말하는 "일류에게 주는 상"이고, 그것이 바로 수컷의 몸집이 그렇게 큰 이유를 설명해준다. 몸집이 특별하게 큰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수컷이 우세하기 때문에, 그 유전자가 다음 세대에 더욱 빈번하게 출현하게 된다."
- 로버트 프랭크, Economic naturalist-

후배의 집에서 빌려온 로버트 프랭크의 "이코노믹 싱킹"의 한 대목. 이 책에서 유일하게 시선을 잡았던 대목이 경제학이 아니라 생물학이라니. 그런데, 이 대목의 설명은 뭔가 어색하다. 과연 코끼리물범의 수컷이 암컷보다 큰 이유가 과연 일부다처제를 고수하기 때문일까? 싸움에서 이긴 숫컷이 모든 암컷을 성적으로 지배할 권리를 획득한다는 현상은 수긍할 수 있지만, 그것이 곧 일부다처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일처제는 몸집이 큰 숫컷이 암컷에 대한 성적지배력을 행사한 결과로 나타난 것일 뿐이다. 게다가, 비록 몸집이 큰 숫컷이 암컷에 대한 성적 독점권을 누리긴 하겠지만, 싸움에 진 숫컷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일부다처제를 수용하지도 않을 것이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릴 것이다. 인간의 세계만 봐도 흔한 일이다.

몸집이 큰 물범은 천적인 백상어에게 쉽게 잡아 먹힌다. "아프리카 영양에게 중요한 것은 치타보다 더 빨리 뛰는 게 아니라, 다른 영양보다 더 빨리 뛰는 것"이란 점에서, 물범은 쾌락를 얻는 대신 목숨을 내놓는다.

슈베르트 vs. 바하

힐러리 한(Hillary Hahn)의 바하의 바르티타를 처음 들었던 것은 97년도 여름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국이란 곳을 갔을 때다. 지금은 모교의 교수가 된 친구 K의 아파트에서 그 CD를 처음 들었다. 그 뒤로 그 CD를 사서 수 백번은 들었다. 큰 애가 태어났을 때도, 인간이 처음으로 태어나 들을만한 음악으로는 제격이라고 생각해서, 파르티타 1악장을 열심히 들려줬다. 악을 쓰고 울던 아이가 음악이 나오면 울음을 멈추고 눈을 멀뚱 멀뚱 뜨고 있어서, 음악 신동이 태어났나 싶기도 했다. 비교 감상을 해보라고, 기돈 크레머의 연주도 들려줬다. 힐러리가 2006년에 서울에 온다고 해서, 몇일 동안 설레서 기다렸는데, 그녀의 실제 연주는 음반에 비하자면, 맹숭 맹숭했다. 그 뒤로도 그녀의 CD는 죄다 샀지만, 그녀의 첫반째 음반 파르티타의 감동을 넘어서진 못했다.



어제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트리오 2번을 들었다. 이 곡은 주제 자체를 스웨덴 민요 '태양은 지고'에서 가져온 것이어선지, 곡 자체가 연주라기 보다는 노래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실제 많은 슈베르트의 곡들이 그런 느낌을 준다. 남성적이고 드라마틱한 구조에서 이렇게 감상적일 수 있다는 게 놀랍다. 거의 듣지 않던 슈베르트를 겨우 듣기 시작하게 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죽었을 때부터다. 그와 얽힌 개인적인 인연을 비롯한 모든 감상과 감정이 뒤죽 박죽이 되어 그 때는 정말이지 아무 음악도 들을 수가 없었다. 모짜르트 레퀴엠을 듣고 있으면 짜증이 확 올라왔고, 그렇게 좋아했던 바하의 피아노 콘체르토를 듣고 있으면 죽음을 택한 정치인의 심정과는 너무도 판이한 감정이 오버랩 되면서 비참해졌다. 그런 와중에 실수로 아이팟에 있던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듣게 됐다. 아, 이런 감정이었구나, 단순한 기쁨이나 슬픔과 같은 이박자의 감정이 아니라, 글로 표현하기 힘든 너무나 복잡한 상념을 달래주기에 완벽한 음악이었다. 듣고 또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는 조금씩 잊혀져 갔다.

"내가 운전하면서 자주 슈베르트를 듣는 것은 그 때문이야. 질이 높은 치밀한 불완전함은 인간의 의식을 자극하고 주의력을 일깨워주거든. 어떤 종류의 불완전한을 지닌 작품은 불완전하다는 그 이유 때문에, 인간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소세키의 <고후>와 마찬가지로 슈베르트의 D장조 소나타에서는 인간이 영위하는 한계를 듣게 되지. 어떤 종류의 완전함이란 불완전함의 한없는 축적이 아니고서는 실현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거야."
-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나의 음악의 촉수는 다시 바하로 돌아온다. 아무리 눈을 감고, 옷깃을 여미고, 귀를 종긋 세워도, 바하의 음악적 논리성만큼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없는 듯 하다.

Thursday, May 06, 2010

구스 반 산트, Finding Forrester

딱 10년 만에 이 영화를 다시 봤다. Forrest가 Jamal에게 헌사를 써서 남긴 자신의 마지막 소설- "Sunset"-을 카메라가 비추는 가운데, Bill Frisel의 "Somewhere over the rainbow"가 흐르는 장면. 타자기로 한자 한자 쳐내려간 그 소설의 묶음의 주는 존재감과 근사하게 차려입은 고집쟁이 할아버지 숀 코넬리가 자전거를 타고 차량 사이로 사라지는 모습과 함께 얼마나 근사한지.

예전에 같이 이 영화를 봤던 친구들이 그리워졌다. 아마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일 테지만.

이 영화에서 15살의 흑인 소년 Jamal(저맬이라고 읽는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은둔 작가 Forrest가 타이프 앞에서 쓸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소년에게 하는 말이 있다. 글이란 가슴으로 쓰는 것. 무엇이로든 일단 쓰는 것. 머리가 하는 것이 그 다음. 가장 가슴 떨리는 순간은 첫번째 드래프트가 완성되고 그것을 교정보는 바로 그 때.

그리스 사태와 채권시장

어린이 날이라고 노는 동안 유럽과 미국은 난리 도가니. 미국 채권시장은 금리가 12-15bp 씩 만기별로 빠졌고, 주식은 3% 이상 빠졌다. 금리가 제일 많이 빠진 나라는 독일로, 독일은 10년 국채 금리가 3%가 안 되는 나라인데, 20bp 가까이 금리가 빠졌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재정위기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강타하고 있고, 재정지출 축소를 약속하고 국가부도 사태를 막아야 할 그리스 국민들은 파업으로 정부를 성토하는 분위기다. 안타깝게도 그런 행동으로 얻을 것은 거의 없다. 그런 행동을 지켜보는 근검절약의 독일 국민들은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그리스를 도울 수 있는 나라는 유럽에서 독일 뿐인데.

정책금리 인상 절대 불가의 정부와 정부에 꼼짝없이 끌려가는 한국은행은 최근의 대규모 금리하락에 일조했는데, 금리하락의 이면에는 외국인들의 공격적인 채권 매수가 있었다. 최근 들어, 거의 매달 5조 이상씩 채권을 샀는데, 지난 달에는 7.5조나 채권을 샀다. 이런 채권 매수의 이면에는 지속적인 환율하락이란 현상이 있었다. 채권 금리가 좀 올라봤자, 환율이 빠지면 돈 번다는 시각으로 채권을 산 외국인 투자자가 많았단 말이다.

문제는 그리스 사태가 안전자산 선호를 부추켜 미국금리가 하락했는데, 과연 이것이 한국 채권의 호재인가 하는 것이다. 기계적인 강세기조에 금리 하락으로 반응하던 채권시장은 잠시 주춤하던 환율이 1시 넘어 1140원 위로 올라가면서, 금리 급등으로 급전환했다. 최근 들어 일방적으로 오르기만 하던 국채선물은 고점인 111.5에서 종가 111.01로 폭락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어벙벙한 투자자들이 아직 많으면, 추가적인 유럽의 혼란은 추가적인 손절을 부를 수도 있겠다. 당분간 긴 흐름의 투자는 채권시장에도 어불성설이고, 환율시장에 주목하면서, 유럽 상황에 대해서 심도있는 공부를 좀 하는 게 나을 듯.

Wednesday, May 05, 2010

이준익,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최근 나온 영화들을 대부분 봤었는데 별로 글을 쓰게 만드는 영화가 없었는데, 이준익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보고나니 이런 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얼마전 에피소드2까지 보았던 미국 드라마로 '스파르타쿠스'가 있다. 잔인한 폭력장면과 거침없는 성적 묘사로 화제가 되었다고 해서 보기 시작했는데(써놓고 보니 이상한 표현인데 실제로 그랬다), 로마 제국 성공의 근원이 로마가 다른 인근 나라들에 비해서 가졌던 "상대적 관용"(relative toleration)이란 점을 인지한다면, 주인공이 스파르타쿠스가 처한 처절한 상황에 대한 묘사는 상당히 가슴아프다. 로마의 상대적 관용이란 것은 지금 관점에서 보면, 터무니 없이 척박한 수준이고, 그런 상대적 관용조차도 점차 불관용으로 변해가던 시기에서 스파라타쿠스는 탈영의 혐의(실은 아내를 구하기 위해서였지만)로 노예가 된다.

아무리 개인이 초인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의지를 발휘해도, 노예로 전락한 검투사가 이룰 수 있는 꿈이란 건 제한되어 있기 마련이다. 스파르타쿠스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로마 병사들에게 농락당한 후 터키인에게 노예로 팔려간 아내에 대한 애정이다. 비록, 역사는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 실패했다는 것을 말해 주지만, 스파르타쿠스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아마 본인조차도 반란의 성공을 믿지 않았을 것 같다. 그 당시 "로마의 그늘은 너무 넓기" 때문이다. 아직 드라마를 다 본 것은 아니지만,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사회의 역사적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가 원했던 것은 그저 한 개인이 누리고 싶은 소박한 행복을 추구할 자유인의 신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한 소박한 희망도 피워낼 수 없게 강요하는 사회와 시대는 어떤 의미로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윤리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문명에서 그런 바람직하지 않은 환경이야 말로 늘상 있었던 폭력이었다. 일부 시점을 제외하면, 인간의 역사에서 최근의 60년 만큼 평온한 시간을 별로 없었다. 그 전까지 인간은 영문도 모른 채 폭력과 광기의 희생자가 되는 일이 훨씬 많았고, 일상적이기까지 했다. 국가는 서로를 약탈했고, 약탈의 방식은 육체적인 폭력을 수반했다. 남자는 죽임을 당하고나 노예로 팔렸고, 여자는 성적으로 농락당한 후 죽거나 역시 노예신분으로 살 수 밖에 없었다. 지난 1세기 동안 이데올로기를 쟁점으로 벌인 분쟁은 지난 수 백년 동안 인종이나 종교를 내세운 폭력에 비하면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었다. 기독교나 이슬람이 종교를 이유로 사람을 죽인 사례는 수도 없이 많고, 히틀러가 죽인 유대인과 슬라브인들을 합하면 수 천만 명이 넘는다. 히틀러는 독일 전력의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인종적 학살에 주력했다. 약소국의 개인이 겪는 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피지배 계급이 개인이 겪는 폭력은 죽음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자면 그건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그래도, 그 시대, 그 공간의 사람들은 어찌어찌 삶을 살아냈다. 인간의 뇌는 그런 환경에서도 인간이 살 수 있도록 잘 적응시켰을 것이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재밌는 것은 이몽학역의 차승원의 세계관이다. "대동계는 왜적을 막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썩어빠진 조정은 왜적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왜적을 물리친 자신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다"라는 차승원의 논리는 한치의 빈틈도 없다. 그래서, "조정을 뒤엎은 후 자신들이 정권을 얻은 후, 왜적을 막겠다"는 차승원의 결론은 사회적 약자로서 한번 쯤은 품어 볼만한 꿈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자로 태어나 자신의 형편을 비관하지만, 자신이 왜 그런 처지에 놓였는지에 대한 자각없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차승원에 대한 복수의 칼을 가는 견자 백성현의 모습은 참으로 무지스러워 보인다. 복수심에 불타는 백성현(솔직히 왜 불타는지 잘 모르겠다만)을 검객으로 훈련시키고, 차승원의 반역을 만류하는 황정학역의 황정민은 사실 차승원의 논리를 거부하지 않지만 (그가 차승원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죽이지 않고 죽음을 자처하는 모습이 차승원의 세계관을 피지배 계급으로서는 반박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차승원의 혁명이 성공할 수 없다는 그의 인식은 근본적으로 옳은 것이다. 수 많은 반역과 반란에도 조선은 300년 가까이유지되었고, 조선이 망하게 된 것은 사람들의 충성심이 약해져서가 아니라, 외부의 힘이였다. 그리고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것의 이면에는 생산기술의 발달과 노동력의 필요성이란 근본적인 동인이 있었다.

어차피 성공하지 못할 시도라도 해볼 것이냐 말 것이냐.

황정민은 하지 말라고 하고, 차승원은 해보아야 한다고 한다.


황정민은 차승원의 시도를 궁극으로는 승인하고 마는데, 차승원은 결국 백성현에게 자신의 목숨을 내주면서 높은 현실의 벽을 죽음으로 인정한다. (차승원 역시 백성현을 죽이는 대신 자신이 죽는 걸 택한다. 표면적으로 텅빈 궁궐을 점령하러 온 자신들을 조총으로 살육하는 왜군 때문이지만 사실은 황정민의 말이 옳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백성현은? 그는 자신의 사회적 한계를 극복은 커녕 인지하지도 못하고, 자신이 만든 상황에서조차 행복해지지 못한다. 그가 혁명가 이몽학을 죽이고 난 후 발견한 것은 자신을 둘러싼 조총을 든 왜군 병사들이다. 이쯤되면 역사는 허무가 되는데, 문제는 그 허무야말로 개인으로서는 분명한 실체라는 데 깊은 슬픔이 있다.

한지혜가 백성현에게,
"넌 이몽학을 이길수 없어"라고 말하는데,
"왜?"라고 반문하는 백성현에게 한지혜가
"넌 꿈이 없잖아"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몽학이나 스파르타쿠스처럼 꿈을 가지면 죽고, 꿈을 안 가지면 삶이 독하고 비루한, 도대체 이 잔퇴양난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어차피 우리 모두가 스티브 잡스가 될 순 없지만, 스티브 잡스가 생각하는 꿈은 꼭 이루지 못해도, 그 과정으로 충분히 행복한 종류의 꿈일 것이다. 그 과정으로 충분히 행복하려면 필수적인 사회적 조건은 우리가 절대로 양보하지 말고 지켜내야 하는 것들이다. 자유, 평등, 민주와 같은 극히 계몽주의적인 가치들.

Tuesday, May 04, 2010

골드만 삭스, Will Growth Slow? If Not, Does it Matter for the Fed?

워런 버핏이 골드만 삭스를 옹호해서 논란이 되는 모양이다. 골드만 삭스라도 미국 정부를 상대로 고집을 피우기는 어렵겠지만, 원칙적으로 그 딜의 책임이 골드만 삭스에게 있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그런 상품을 산 자들이 전문적인 투자 회사들이란 점에서 책임은 골드만 삭스보다는 그들 자신에게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가구 없이 집을 팔았는데 나중에 가구값을 물어내라는 것,과 같다는 버핏의 비유가 적절하다.

비관적인 골드만 삭스가 1분기 성장률이 나오면 전망을 바꾸지 않을까 했는데(1분기 성장율은 3.2%였다), 이번 위클리에서도 기존 전망를 유지했다. 다만, 전반적인 톤은 많이 바뀌었다. 자신들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다만, 그 경우에도 연준은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기존의 주장을 반복한다. 금리를 올리기 전에 재정지출을 줄일 것이기 때문이다.

골드만이 여전히 비관적인 생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지금의 경기회복이 재고를 쌓기 위한 생산 증가에 기인한 것이었고, 최종수요도 예상보다 증가했지만, 재정지출효과가 곧 감소할 것이고, 재고 사이클 효과도 곧 끝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특히, 1) 부동산이 여전히 과잉 공급을 해소해야 하는 단계이고, 2) 은행은 대출에 미온적이며, 3) 고용시장은 여전히 부진하기 때문에 온전한 회복까지는 멀다고 주장한다.

나는 골드만의 조금 후에 경기에 대한 전망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압력이 크지 않다는 그들의 주장은 맞다.

읽을 거리
골드만 삭스, Will Growth Slow? If Not, Does it Matter for the Fed?

봄날

일요일. 자전거를 타고 강가로 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잔디 밭에 모여 따스한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원효대교에서 출발해 동호대교까지 가는데 30분이 걸렸다. 강가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찰랑거리는 강물을 바라보다가 드러누워 음악을 들었다. Till Felner가 연주하는 바하의 평균율을 듣다가, 지겨워져서 이승철의 '시계'와 쿨의 '작은 기다림'만 반복해서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버드나무 나무가 보여서 사진을 하나 남겼다. 돌아오는 길이 외려 짧았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자전거 타는 법을 익혔을까. 자전거를 배우던 10살 시절을 떠올랐다. 힘들어 보이지만 나이가 들면 결국 다들 하고 있는 것들. 사랑도 미움도 행복도 아쉬움도 자전거 타는 것과 비슷한 것들일지도 모른다.

자가당착

[워싱턴에서] 천안함 사태, 미국은 우리 편? / 권태호

"북한 소행임을 강조하고, 희생자들에게 영웅 칭호 붙여주고, 안보의식 고취하면 당장은 정부와 군의 무능을 숨길 수 있다. 문제는 ‘천안함 정국’에서 빠져나올 퇴로도 스스로 메워버렸다는 데 있다. 한국 안에서야 물증을 찾지 못해도 ‘북한 유죄’를 선고할 수 있겠지만, 그런 정황 증거를 국제무대에 내놓을 수도 없고, 임의로 타격할 수도 없다. 작전권은 내주자면서 “반드시 응징하겠다”는 모순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이 칼럼은 지금 보수들이 처한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증거는 없지만, 정황상 유죄라고 주장하는 거야 맘대로겠지만, 미국과 중국과 같은 다른 나라들이 그런 황당한 주장을 수용할 리는 없지 않은가? 그걸 가르켜 천한함 사건의 국제공조가 깨진다는 조선일보의 주장은 한편의 코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