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제 쓴 글에 대해서, 저는 아주 평범한 일반론인데, 저는 설득력이 있는 일반론에 대단한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예상했던대로, 너무 평범한 일반론은 인생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반응이 있더군요. 맞는 말입니다. 그런 건 별로 도움이 안 될지도 모릅니다.
12월에는 거래가 한산하고 시장이 얇기 때문에 몇 권의 책을 동시에 읽었습니다. 김용옥의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앨리스 슈뢰더의 '스노볼', 그리고 하비 콕스의 '신앙의 시대'가 가장 기억이 남습니다. 그리고, 멘탈리스트 시즌 1을 미친듯이 봤습니다. 그런데, 이 책들과 이 드라마가 연결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김용옥의 책은 재밌있죠. 그의 책을 사서 후회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의 주장이 옳고 그르든 상관없이, 그의 책은 많은 정보와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언어로 글을 쓰기 때문에 굉장히 쉽고 재밌게 글이 읽힙니다. 남의 책을 옆에 놓고 적당히 바꿔 쓰는 것으로는 그러한 재미를 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쓴 불교에 대한 책을 읽고서, 저는 불교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다음 몇 문단은 김용옥이 불교에 관한 설명한 것을 그의 언어로 제가 간략하게 정리한 것입니다.
인간은 왜 고통스럽게 늙어가고 또 죽어야 하는가? 그 왜를 알고 싶다고 한 청년이 생각합니다. 마침, 당시 인도가 요구하는 삶의 윤리적인 동기나 목적은 '인간은 윤회한다'는 믿음으로 풀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주의 과학적 실상을 추구한 결과로서가 아니라, 어떤 윤리적 명제에서 출발한 지적인 작업의 결과로 윤회 사상이 생겨납니다.
다른 구도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보통의 인간이 일생 동안 받을 수 있는 모든 유혹의 가능성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욕망의 불길을 다스리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불길을 꺼서, 열반을 달성하고, 그 열반을 통하여 자유로움을 획득하고 해탈을 얻으려 듭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얻었다, 는 것이 불교를 이해하는 보통의 방법입니다. 하지만, 김용옥은 이러한 욕망의 제어는 "동서고금을 통하여 모든 수행인들이 일차적으로 정진하는 매우 기본적인 디시플린"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합니다. 그리고, 붓다가 궁극으로 얻으려고 했던 것은 바로 보리(Bodhi)였다고 주장합니다. 보리라면 무엇인가? 김용옥에 의하면, 그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입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상정등정각입니다. 무상정등상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각입니다. 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앎"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안다는 것인가?
6년 간의 고행끝에 얻은 한 인간의 깨달음은, 그 앎의 내용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최초의 언사는, "연기(緣起)"였다, 고 김용옥은 쓰고 있습니다. 연기를 보는 자는 법(法)을 보는 것이요, 법을 보는 자는 부처를 보는 것이라고 한 말은, 연기 그 자체가 지고의 법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연기의 방식으로 사물을 볼 줄 알아야 곧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매우 단순한 뜻입니다.
연기란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이 반드시 연하여 기한다는 것입니다. "연한다"는 것은 "원인으로 한다"는 뜻이요, "기한다"는 것은 "생겨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여 연기란, "A로 인하여 B가 기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A를 원인으로 하려 B라는 결과가 초래된다"는 뜻입니다. "연기"란 원인과 결과를 뜻하는 것이며, 그것을 축약하여 인과(causation) 또는 인과관계(causatioal relation)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연은 원인이요 기는 결과라 말해도 대차가 없습니다. 그래서, 붓다는 자신의 깨달음을 십이지연기로 정리합니다.
그런데, 이 설명을 읽으면서, 저는 김용옥에게 놀랐습니다. 너무 잘 설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너무 쉬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제가 놀라고, 깊이 생각해보게 된 것은 다음의 설명입니다.
붓다는 자신의 십이지연기를 "무식한 일반대중에게 설하는 데 무서운 당혹감을 느꼈다." 이것은 로버트 드 니로가 자신의 연기 세계를 김태희에게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김용옥은 이것을
자신의 내면적 사유과정을 생락한 채, 깨달음을 타인에게 온전하게 이해시키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김용옥의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붓다의 깨달음은 극히 형이상학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제기한 문제는 궁극적으로 우리 삶의 윤리적 문제입니다.
모든 지극한 지식이나 깨달음이 가장 평범하고 상식적인 체험 속에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상식적이기 어려운 이유는 추론을 입증하는 것이 어렵고, 설사 입증된다고 해도, 그것을 실재적으로 받아들이기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트레이딩을 하다보면, 끓어 오르는 충동을 참을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아이러닉한 것은 그 충동에 따라서 움직일 경우 결과는 비참하고 처참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Wisdom'의 Bert Barcharach을 흉내내서, 제 책상에는
"충동대로 살면 죽음 뿐"라는 포스트 잇이 붙어 있고, 다른 한 쪽엔는 "저쪽 메모를 볼 것(Look at the other notes)"이라는 메모가 붙어 있습니다. 사실, '충동대로 살면 죽는다'는 것을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겪었기 때문에, 저는 포지션을 쌓기 전에 아주 깊게 생각한 후에, 그 전략을 시행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전략대로 시장이 움직여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도 미리 고민해 봅니다. 그리고, 그런 고통스러운 순간이 찾아 와도, 내가 옳았을 것이란 느낌을 갖고, 어찌되었든 이를 악물고 원래의 논리를 기억하고, 원래의 다짐대로 행동하려고 애를 씁니다. 틀렸다면, 언제 그것을 인정하고 패배를 인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제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아무리 해도, 남들에게 이해시키긴 어렵습니다. 다만, 다른 전설적인 트레이더들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그리고 워런 버핏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나만 이런 고통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니란 걸 알고 위안받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런 글들, 그런 책들을 가급적 많이 읽으면서 교훈을 얻고 위로로 삼으려고 노력합니다. 제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충동에 쉽게 휩쓸리는 존재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하루 밤에 몇 십억이 넘는 돈을 잃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을 상상하는 것은 더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피하려고 충동의 포로가 되는 게 인간입니다.

멘탈리스트 시즌 1의 3번째 에피소드를 보면, 와이프를 음주운전으로 잃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딸마저 친구들에게 사랑하는 딸마저 살해당한 아빠가 등장합니다. 리스본은 그 아빠의 집에서 뒹그는 맥주병들과 남겨진 두 아이들에게서 자신의 예전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아이들을 두셨어요. 아이들한테는 당신이 전부입니다. 그러니까 잘 해주세요."
"전 잘해줘요."
" 우리 아빠도 당신처럼 좋은 사람이었지만, 엄마가 죽은 후, 자기연민에 빠진 알콜중독자가 됐어요. 꼭 당신처럼 말이죠. 그리고 자살했어요. 그때 저와 오빠들도 같이 죽을 뻔 했어요. 도움을 받으세요. 당신과 당신 아이들은 그럴만큼 소중한 사람이에요"
아마도, 아내와 딸을 잃었지만, 아직도 두 명의 어린 자식을 둔 아빠가 빠져야 할 것은 자기 연민이나 싸구려 감상은 아닐 겁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연민과 감상이라고 몰아부치는 건 너무 잔인하죠. 누구도 그런 종류의 아픔이나 슬픔을 경험하고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힘든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는 어려운 철학이나 종교 이론을 동원하지 않아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 상식이자 일반론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아야 할 도움은 언제나 "설득력있는 일반론"과 "그럴 듯한 각론"입니다.
예전에 문용린의 "열살 전에 사람됨을 가르쳐라"을 읽고, 다소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객관식으로 문제를 내 본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답을 잘 고랐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그게 객관식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은 답(바람직한 행위)을 찾는데 어려움을 느낄 겁니다. 알고 나면 그럴 수 밖에, 그것 밖에 답이 없는데 말이죠. 저는 사람들이 충동을 이기고, 언제나 일반적인 답을 잘 생각해 낼 수 있다는데 회의적입니다. 저 역시 많은 돈이 걸리고 순간에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잘 하지 못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늘 좋은 일반론, 충동을 다스릴 설득력있는 일반론, 에 배고파합니다.
그것은 제가 현명한 사람들과 좋은 책들을 도저히 멀리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