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연히, 김대중 대통령이 1994년도 Foreign Affairs에 기고한 "Is Culture Destiny? The Myth of Asia's Anti-Democratic Values"란 제목의 글 을 읽었다. 싱가폴의 이광요가 아시아에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맞지 않는다, 는 인터뷰를 한 것에 대해서 반박한 글이다. 아마도, 젊은 학생들에게 동일한 제목의 글을 쓰게 한다면, 이 글은 거의 모범적인 글쓰기의 전형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역사를 통찰하고, 논리의 균형을 맞추되, 독자의 성향까지 배려하는 정서가 느껴진다. 아마도,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대통령은 앞으로도 없었고, 이후로도 없을 것 같다.사상가나 정치가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김대중도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많은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늘 공부했고, 독재와 싸울때는 공격적이었고 표독스러웠지만 집권 전후로는 (아마도 노력에 의해서) 밝은 표정과 태도를 갖추었다. 지적인 노력과 감정의 조절 다 자신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꾸준히 노력했다는 말이다. 참 대단한 일이다. 당시 시대정신으로 보건대, 서울대를 졸업한 미혼의 이희호가 고졸의 정치인이자 홀아비였던 김대중의 남성적 매력에 반해서 결혼한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모든 부모와 친척, 친구들이 말린 결혼을 하는 당대의 똑똑한 여성을 움직인 것이 단지 사랑은 아닐 것이라고 정황으로 충분히 추론할 수 있다. 마치 예전의 미테랑이 그랬던 것처럼, 김대중의 여자에 대한 추문도 이희호는 다 덮었던 것 같다. 그게 힐러리 클린턴이 빌 클린턴의 추문을 덮고 계속 사는 것과는 조금 다른 성격이라는 것도 정황상 추론 가능하다. 이희호가 없었다면 대통령 김대중도 없었겠지만, 김대중과 같은 사람과 사는 게 아니었다면 이희호의 삶도 허무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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