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November 17, 2010

김종대,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

인권위 사태는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 사람들은 인권과 민주주의는 이만하면 됐고 이젠 좀 배가 따스해지길 원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배가 따스해지는 대신, 인권과 민주주의는 희생해도 상관없다는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다. 이론적으로나 실재적으로나 인권이나 민주주의를 희생한다고 경제가 발전할 리 없다. 이명박 정부는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얕고 천박하다. 그래서 결국은 보수적 인사인 안경환 교수가 이명박을 질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명백히 국가의 퇴행이다.

오바마 정부의 지금 모습은 흥미롭다. 오바마가 추진하고 있는 핵심적인 정책은 대부분 미국이 장기적인 성장과 발전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다. 의료보험개혁이 대표적이다. 전체인구의 20% 이상이 체계적인 의료보험 혜택에서 소외된 나라가 장기적 발전을 효율적으로 추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장기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는다. 당장 공공의 자원이 나를 위해서 사용되지 않으면 미래의 파이가 설령 커질 수 있더라도 반발한다. 미국처럼 작은 정부의 환상을 갖고 있는 곳에서는 착한 일을 하더라도 국가대신 내가 한다, 라는 생각도 강하다. 하지만 문제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정서가 돌출하는 현상이 아니다. 2천년 전부터 인간은 이런 식으로 살아왔다. 다만, 그걸 제대로 인식하고 극복하는 지도자가 있었을 뿐이다. 지난 8년간의 부시 정권하에서 미국은 퇴행했다. 오마바의 집권은 미국의 위기의식의 발로에서 가능했던 것이지만, 최근의 반동적인 정치 지형도는 다시 인간의 본성을 뒤돌아 보게 만든다. 2천년의 퇴행과 진전의 역사를 살펴 볼 때, 오마바의 실패는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그리고 그의 실패는 분명히 미국의 실패일 것이다. 그런 식으로 성했던 국가가 쇄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지도자라면 대중의 무지함에 불평하지 말하야 한다. 대중의 천박함에 가슴아파 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건 지극히 당연한 대중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김종대의 '노무현, 시대의 지평을 넘다'라는 책을 보면 노무현이 그걸 절실히 깨닫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노무현은 대중의 천박함에 가슴아파했고, 대중의 무지함에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그걸 극복한는 방식에 대해서 김대중 만큼 준비되어 있지 못했다. 그는 대통령을 하면서 그 방안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모든 대열과 진영에서 노무현을 일정부분 기만했고, 노무현은 오락가락했다. 보수적인 국방부나 외교부 뿐만 아니라 NSC 조차도, 그의 측근인 이종석 조차도 노무현을 속였고 조정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 그랬다. 노무현은 때론 분노하고 때론 울먹였지만 그것이 그라는 사람의, 그가 살았던 시대의 한계였다. 그리고 그의 한계를 밟고 등장한 것이 바로 이명박이었다. 이명박에게는 생활이 있을 뿐 이데올로기가 없다. 그의 정권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익집단이지 보수가 아니다. 이런 이 정권의 면모는 일정부분 다행스러운 부분이 있다.

사람들은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 때문에, 클린턴이 얼마나 대단한 리더인가를 잊는다. 그는 수사(rhetoric)와 본질을 구별할 줄 알았다. 노조를 위해 보호무역을 내세웠지만 실재로는 자유무역의 원칙을 어긴 적이 없었다. 노무현은 그런 걸 일일이 설명하려고 든다. 지지세력은 실망하고 반대세력은 여전히 반대한다. 노무현의 말 자체에는 잘못이 없다. 그의 말에는 진정성이 있었다. 하지만, 진정성에는 감동을 있을지 몰라도 국가의 흥망성쇄는 진정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누군가의 각성과 선전을 기대한다.

1 개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