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목사의 설교는 이런 내용이다. 세상의 풍요로워지면서 사람들의 천국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었다. 지금이 (천당에 가까운) 999당이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발딛고 사는 세상은 기본적으로 '싸움'을 피할 수 없다. 공부나 사업의 본질은 '싸움'이고, 싸움을 하는 우리가 현실에서 구원받을 수는 없다. 교회 성도 모두에게 "돈 많이 벌고 부자 되세요"라고 축도를 해봤자, 우리 모두가 부자가 될 수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천당에는 싸움이 없다. 구원을 통해 얻은 영원한 생명에는 분쟁이 없고, 평화만 있다. 그리고 그러한 구원은 믿기만 하면 이루어진다.기독교의 핵심은 '구원'이다. 그리고 '구원' 받기 위해서 우리는 죽어야 한다. 구약은 인간의 원죄에 대해서 다루고 있고, 예수는 인간의 원죄를 대신하여 죽었다, 는 게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인간이 원죄가 생긴 것이라기 보다는, 그것은 이기적 본성을 가진 다양한 능력을 가진 인간이 다른 인간과 관계할 때 어쩔 수 없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죄"에 과한 메타포일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죄를 짓는다. 그것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예수는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해서 말한 적이 거의 없다. 당연히, 기독교가 말할 수 있는 구원의 정체도 모호해졌다.
천국에서는 싸움이 없다는 말은 천국에서는 싸울 필요가 없거나 싸울 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 싸울 필요가 있고, 싸울 수 있다면 인간은 반드시 싸울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싸울 필요가 없을만큼 풍부한 자원이 있거나, 싸울 수 있는 공간이 허용되지 않음을 말한다. 하지만, 싸울 필요가 없을만큼 풍부한 자원이란 가정은 "전지전능한 신"이 가능한가, 라는 논리학 명제만큼이나 이상한 말이다. 정의할 수 있지만, 입증할 수 없다. 결국 천국이 싸움이 없는 곳이라면, 그곳에서 우리는 다른 영혼과 관계할 수 없다. 만약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외로움'의 원인이라면 천국은 외로운 곳이다. 따라서, 천국이 외롭지 않은 곳이 되려면, 우리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아야 한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상태는 잠과 같은 휴식 상태 말고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은 달콤한 잠을 자는 곳인가? 그렇다면 지옥은 끔찍한 잠을 자는 곳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관점이네요.
ReplyDelete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ReplyDelete논리상이라 그렇게 유추 할수도 있지만 어쨋든 천국을 가보고서 애기한 사람이 한명도 없는 관게로 그렇수도 그렇지 않을수도 아님 양쪽이 다같이 존재하는 모순일수도 있는 ( 물리학에서는 입자가 질량과 질량을 가지지 않는 파동성이 동시에 존재 하다고 하죠 ..ㅎㅎ ) 그러한 상태도 가능할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공관과 시간의 차원이 인간 이전에 존재 했다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말이죠 ..항상 좋은관점의 글 감사합니다.. from esahn ..
ReplyDelete나도 모르는 분이 내 삶의 근본이 잘못 되었다고 판단 합니다. 물론 그 분을 따르는 분들의 얘기죠. 내 생활 정직하게 열심히 살고..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는데..나보고 회개 하랍니다. 죄가 있답니다. 그분께 의지하랍니다. 왜요?
ReplyDelete가보지 않은 길을 그럴거라 예상 하며 대비하라고 부적을 권하는 거랑 머가 다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