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간 이 문제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왔다. 역사책도 들춰보고, 경제학 이론에 비추어 생각도 했다. 결론은 조금 우울하다.부자가 부자를 위한 정당을 지지하고,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들 위한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이 부자를 위한 정당을 지지한다면, 그건 "무지" 때문일 것이다. 만약,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당을 지지한다면 그것은 "선의"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의 무지"는 "부자들의 선의"에 비해서 훨씬 빈번하고 일관적으로 일어난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아도, 경상도 농부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일은 강남 주민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 보다 훨씬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런데, 가난한 형편이면서 부자들을 위한 정당을 지지하는 무지야말로, 그 사람이 가난하게 된 사정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상은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나 인권에 대해서는 냉혹하다. 물론,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형편에 눈 뜰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뀐 것도 금융위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우리나라에서 김대중이 집권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IMF 경제위기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와 같은 극한의 위기에 몰려서야 가난한 사람들은 비로서 자신들이 가진 마지막 카드인 투표권을 행사한 것이다. 그렇지만 형편이 조그만 풀려도, 무지한 사람들은 자신의 진짜 처지를 잊는다.
따라서, 그런 극한의 경우로 나라를 몰고 가지 않으면서도 나라가 진보하려면, 무지한 사람이 무지에서 깨어나는 걸 기대하거나, 부자가 자신이 이익을 접고 가난한 사람들의 이익을 배려하는 선의를 기대해야 한다. 그런데, 무지한 사람이 스스로 무지에서 깨어나는 일은 몹시 어려워 보이는 반면(그게 가능하다면 그는 아마도 가난하지 않을 것이다), 부자의 호의는 드물지만 꽤 일어난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부자가 가능한 이유는 그런 배려가 부자 자신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고,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그들의 그런 견해는 상당한 이론적 역사적 근거가 있다.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가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는 이유도 그런 맥락이다. 그들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주는 그런 정책들이 장기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믿는다. 얼마전 "진정성'에 관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진정성의 근간은 장기적 안목이고, 그들의 삶에는 어느 정도 이상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결론적으로, 세상의 진보를 믿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사람들이 무지에서 깨어나 스스로의 계급적 이익에 눈뜨게 만드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부자가 되어서도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 배려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장기적 관점을 현실에서 관철하는 것이다. 많은 운동가들은 전자를 택하는 데, 그게 방법적으로 옳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게 더 현실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호의를 행사할 자격을 갖추는 일, 즉, 부자가 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부자가 되어 자신의 이상을 관철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고, 조지 소로스나 워런 버핏은 유형은 다르지만 그런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런 그들을 고깝게 여기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그들의 선의야말로 이 사회를 진보시키는 데 중요한 원동력이고, 지금보다 먼 장래에 더 그러할 것이다.
세상에는 두 가지 방법에 다 자신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적 운동을 할 정신적 육체적 힘도 없고, 선의를 행사할 경제적 사회적 힘도 없다. 그런 경우, 자신의 계급적 이익에 충실하기만 해도 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고, 그런 경우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명박이 집권한 지난 2년 동안,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발휘했던 선의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무시되거나 억압되었고, 소로스나 버핏과 같은 특별한 사람들의 선의는 한국에서 눈을 씻고 찾아 보려도 드물었다. 이런 우울한 상황에서, 트레이딩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 조선일보를 확 인수해린 후, 없애버리는 상상을 지난 2년 동안 수 없이 많이 했지만, 나는 조지 소로스도 워런 버핏도 아닌, 그저 먹고 사는 데 급급한 수 많은 트레이더들 중에 하나일 뿐이다. 사실 작년부터 "조선일보를 인수해서 없애 버리는 천재 트레이더"란 소재를 갖고 장난 삼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주인공의 "선의"를 소설적으로 풀어쓰는 데서 막혀 완성하질 못했다. 조지 소로스나 워런 버핏이 선의를 갖게 되는 내적 계기는 그닥 소설적이지 않고, 그렇다고 개인적 일화로 풀어내면 재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원하는 주제에서는 멀어진다.
하긴 그런 소설을 쓴들, 1000권이나 팔면 다행일 것이다.
조금 우울하지만 재미난 글이네요. 잘 봤습니다. ^^
ReplyDelete확실히 세상을 바꾸는데 앞서나가는 사람은 엘리트들일수 밖에 없는 것이려나요...
Hubris님이 소설 내시면 반드시 1권 사겠습니다. 님의 매번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ReplyDelete가끔 내가 원하는 후보가 당선이 되어도, 조중동이 들개처럼 물고 늘어지면 정말 힘들겠다라는 생각에 차라리 당선 안되는게 낫지 않나란 생각까지도 해봤었습니다.(물론 절대 이겨야하지만..) 이 무슨 패배주의인지..
ReplyDelete이번 선거는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한 표를 행사하지만 그 표가 참 초라하게 느껴질 것 같아서 슬프네요.
강남 주민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
ReplyDelete----->
한국 민주당은 노란옷 입은 한나라당이라고 생각해서... 차라리 진보신당이 들어가는게 와닿았을거 같네요.
뭐 큰 맥락 자체는 뭘 말하고 싶은건지 알겠네요.
hubris 님도 그런 망상을 하시는군요! 가깝게 느껴집니다;
ReplyDelete익명/
ReplyDelete소설을 써도 익명으로 내야 할 거 같은 느낌이...
dasid/
망상 좀 안 하고 살고 싶어요.
잘보고 갑니다..~~ es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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