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pril 25, 2010

입장의 역사

'제국의 미래'를 쓴 에이미 추아에 따르면, 칭기즈칸이 세계를 정복해서 제국을 이루는 방식은 늘 같았다. 방어 시설이 되어 있지 않은 성 주변 농촌 마을을 공격해서 불을 지른 후 포로를 잡아 들이고 주민을 학살했다. 공포에 질린 난민들은 도시로 몰려들었다. 혼란, 공포, 기아, 두려운 소문들이 퍼졌다. 이제 포위된 도시의 주민들에게 단 한번의 기회를 주었다. 투항하면 관대한 처분을 받고, 투항을 거부한 주민들은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 칭기즈칸의 사위가 니샤푸트 전투에서 죽은 후, 그 도시의 주민들은 한 명도 남김없이 학살되었다. 남자, 여자, 어른아이의 베어진 머리를 하늘 높이 쌓아올린 무너기가 세 개나 되었고, 고양이 한 마리 살아남지 못했다. 무수히 많은 도시의 주민들이 몽골 군대에게 성문을 열고 항복했다. 귀족과 행정관들 그리고 저항하는 병사들은 모조리 죽였다. 그러나 성직자와 투항한 주민은 살려주었고, 기술을 가진 주민들은 적극적으로 채용되었다. 이런 몽고군의 행동과 칭기스칸의 전략은 소문으로 널리 퍼졌다. 다음 지역 주민들은 겁에 질렸고, 이러한 만행은 과장되었지만 그대로 믿어졌다.

침략전쟁의 잔혹성, 침략 후의 관대함을 일관적으로 표방한 칭기즈칸의 전략은 효과적인 것이었다. 그의 전략을 그대로 수행하기 위해서 몽고군은 잔혹했다. 몽골 병사중에서는 그 전략을 수행하기엔 지나치게 착한 병사도 있었을 테지만, 상관없다. 그는 명령에 따라야 했을 것이다. 송을 정벌할 때, 몽골 병사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성벽에서 몸을 던진 중국 처녀가 6만명에 달했다. 1215년의 일이다. 몽골 군대의 헝가리 공격은 잔혹하기로 유명했다. 죽은 시체가 낙엽처럼 길을 뒤덮고 피가 빗물처럼 흘렀다. 늙은 여자는 잡아 먹히고 젊은 여자는 집단 강간을 당한 후 잡아 먹혔다는 소문이 돌았다. 1240년의 일이다. 세상에는 세계정복의 꿈을 꾸는 칭기즈칸의 입장이 있고, 칭기스칸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몽골 병사의 입장이 있으며, 몽골 병사의 칼을 막고 살아남아야 하는 헝가리 기사의 입장이 있으며, 집단 강간을 당한 후 죽느니 성벽에서 뛰어내려야 하는 중국 처녀의 입장이 있다. 중국 처녀와 몽골 병사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준다고 한들 상황이 나아질 것은 없다. 그들이 처한 입장은 그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선의를 가진 몽골 병사가 아름다운 중국 처녀와 사랑에 빠져서, 그녀의 목숨을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서라도 살려주려 한다고 하면 어떨까. 한편의 아름다운 소설이 탄생하는 지점이지만, 그런 일은 아마 거의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모두 자신들의 입장을 갖고 있다. 남편으로서, 아들로서, 아버지로서, 사위로의 입장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하나도 바꾸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모두 자기의 입장을 이해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런 일은 몽골의 병사가 달려가 성벽에서 뛰어내린 중국처녀를 구해주는 일보다도 훨씬 드물게 일어난다. 하물며, 시장은 어떤가. 시장은 우리의 입장 따위는 전혀 봐주지 않는다. 시장 역시 묵묵히 자신의 입장을 관철할 뿐인 것이다. 어쩌면, 지난 40억년 간 인간을 포함한 생명을 지켜 보는 신의 입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신의 입장을 신의 섭리로 바꾼 들 무슨 차이가 있을까. 기도란 신의 입장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착한 몽골 병사를 만나길 바라는 송나라 처녀의 마음으로 기적을 갈구하는 힘든 과정.

3 개의 댓글:

  1. 인간을 그저 지켜볼 뿐이라는 것이 신의 가장 큰 특징이다. 라는 구절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때로 신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경향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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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흥미로운 관점으로 사물을 볼 때가 많으신 것 같아요.
    블로그 항상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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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글을쓰는 사람과 보는사람 그걸 퍼날르는 사람의 입장도 다르지 않을까 갑자기 생각해 봅니다... 내용 잘 보있습니다...from es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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