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pril 11, 2010

통일의 경제학 (1)

통일은 멀지 않았다. 통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남한과 북한의 경제적 절박함이다. 경제적 유인이 가져올 통일은 피할 수 없는 정치적 결과다. 정치적 결과로서의 통일은 필연적으로 경제적으로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를 가져온다. 일부 결과는 예상할 수 있지만, 일부 결과는 예상할 수 없는 것이다. 통일의 결과는 남북한 모두에게 유용할 것이다. 하지만, 남한의 어떤 계층은 통일의 폭풍에 표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영향은 통일을 원하는 그들의 선의를 감안하면, 부당한 것이다. 사회가 그런 부당함을 국가 전체가 맛볼 통일의 이익으로 보상할 수 없다면, 사회는 미숙할 뿐 아니라 불공평한 것이다.

지금 통일은 가깝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99년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때도 역시 많은 북한 전문가들이 북한의 붕괴,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이야기했었다는 것이다. 1999년과 2010년의 정황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왜 그때는 오지 않았던 통일이 가깝게 온 것일까? 한쪽에서는 중국이 북한을 후원하는 한, 김정일 정권은 붕괴되지 않을 것이며, 통일은 요원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럴 듯 한 이야기다.

북한의 경제적 붕괴가 시작된 것은 92년부터였다. 92년은 소련 연방이 무너지고,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동서독이 통일의 경로를 밟기 시작했던 때다. 주변국 누구도 독일의 통일을 원하는 나라는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독일의 통일은 급격히 이루어졌다. 92년부터 98년까지 대부분의 공산국가들은 이행 경제(transition economy)의 상황에서 급격한 성장을 경험했다. 하지만, 북한은 소련의 개혁과 개방에 자신들의 문을 철저히 걸어 잠갔다. 개방 대신 폐쇄를 택한 마당에 설상가상으로 전무후무한 가뭄과 기근이 강타하면서 21세기를 앞둔 북한은 참혹한 내핍의 시대를 겪어야했다. 이러한 북한이 회복을 시작한 것은 2000년 이후였다. 최악의 기근이 끝나고,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시작되던 시기다.

99년부터 회복을 시작한 북한은 2008년에야 비로서 98년의 경제수준을 회복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시기 동안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선언하고, 북한을 아주 천천히이기는 하지만 개방이라는 방향으로 이끌어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원칙을 이어 받았다. 여러 차례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의 경제적 관계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깊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초기에 흘렀던 남북한의 긴장감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보수 정치인들은 햇볕정책의 기본적인 틀을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햇볕정책 이후, 경제적으로는 개성공단을 시작한 이후, 북한 경제는 남한경제에 상당히 종속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종속을 유발한 근본적 힘은 남한의 자본이었다.

사람들은 북한이 초근목피로 겨우 연명하는 나라로 알고 있지만,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끔찍하게 낮은 편은 아니다. 최근 20년 동안 급성장한 중국과 비교하면 1/3 수준 밖에 되지 않지만,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8년 기준 약 1100불 정도로 인도, 라오스, 그리고 베트남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경제적 궁핍이 심각한 이유는 국방비에 대한 비중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북한의 국방비 지출은 GDP의 약 25% 정도로, 한국의 국방비 지출이 3% 미만인 것을 감안하면, 너무나 높다. 경제규모가 30배 가까이 큰 남한의 국방비 규모를 따라가기 위해서, 국방비 지출을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의 국방비 격차는 이미 5배가 넘는다.

경제규모가 30배, 국방비 격차가 5배 이상 차이 나는 나라와 군사경쟁을 계속 하면, 그 말로는 뻔한 것이다. 한쪽은 사생결단 하듯 먹을 것 대신에 총을 들어야 하지만, 한쪽은 지갑에서 약간의 돈을 지출하는 데 불과하다면 몇년이 지나지 않아서, 한쪽은 배도 곯고 나라도 지킬 수 없다. 결국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지갑을 늘리던지, 국방비를 줄이는 수 밖에 없다. 그게 어느 쪽이든 북한은 이미 받고 있는 남한의 도움을 더 필요로 한다.

북한 경제가 남한에 이미 상당부분 종속되었다는 것은 북한의 경제구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비록 북한 전체 GDP에서 수출이 차지는 비중은 5%에 불과하지만, 북한의 최대 수출국은 2007년을 기점으로 중국에서 남한으로 바뀌었다. 흥미로운 것은, 북한 전체 수출에서 개성공단의 비중이 20%가 넘고, 남한으로의 수출에서 개성공단의 비중은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개성공단은 비록 정부가 투자금액의 상당부분을 보증해주긴 하지만, 남한 기업들의 투자를 통해서 이루어진 산업 단지다.

남한 기업들이 왜 북한처럼 정치적 위험이 높은 곳에 기업을 투자할까? 물론, 기업인들의 선의가 이유중의 하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북한의 노동력이 질이 좋은 반면 아주 싸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이 북한 주민에게 지급하는 평균임금은 월 70불 정도인데, 이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임금보다 10배 이상 싸다. 북한 주민들의 교육 수준은 외국인 노동자들에 비해서 높은 편이고, 의사 소통에도 문제가 없고, 교육을 통한 학습 속도도 굉장히 빠르다. 이런 북한 노동자들의 높은 생산성 때문에, 남한 기업들로서는 북한의 정치적 위험을 감수할 충분한 유인이 존재한다.

최근 남북한 간에 흐르는 정치적 긴장관계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개성공단의 기업들을 쫓아내는 것은 자국의 경제적 이익 때문에 쉽지 않다. 자국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단지를 폐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남한이 개성공단을 스스로 폐쇄하고, 남한 기업들을 철수시키는 것도 어렵다. 개성공단은 남한 기업들이 투자한 사유재산이기 때문이다. 김대중의 햇볕정책은 개성공단으로 실재적인 결실을 맺었다고 할 수 있다. 개성공단이 갖는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게 되면, 통일이 왜 가까워졌는지 이해하는 데 한 발 다가설 수 있다.

8 개의 댓글:

  1. 예전에 듀게에 경제논리로 인해 생각보다 일찍 통일이 될 수 있다는 글을 쓰신 적 있으시죠? 그 때는 과연 그럴까 싶었는데 요사이 생각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 글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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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햇빛정책의 김대중 전 대통령사진도 좋지만 지난번 북한 처자들 사진이 31세의 남녘 남정네로서는 더 좋아요. 남남북녀라는 말의 설렘을 전해주는 사진이었달까요.

    남한이 북한의 최대 수출국이라는 사실을 이 포스트를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개성공단'이라는 말만 들었지, 경제적인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으니까요.

    빨리 2편, 3편 올려주시길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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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댓글을 보다보니 통일이 가까와지는 또다른 필연적인 이유가 있네요. 결혼이 어려워지고 있는 남쪽 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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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마지막 익명/
    약간의 이유가 되긴 하죠. 더 근본적인 동인은 따로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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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방문할 때 마다 좋은 글을 접하게 되네요. 그저 클릭 한 번 하는 것 만으로 이렇게 좋은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참 고맙네요. 꼭 책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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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개성공단의 의미를 아주 잘 설명해 주셨네요. 개성공단이 통일로 가는 단초가 될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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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김정일의 사망소식이 전해진 2011/12/19일 이후 2012 년도 이후 전망으로도 추가적인 포스팅 기대 됩니다만 ,, 제가 느끼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나라들의 이해관계에 함수 관게가 있겠지만 본다 근본적인 변화의 분출은 북한이 가지고 있는 임계량을 어디까지 버틸수 있느냐는 겁니다... 내부적 factor 든 외부적 인 trigger 가 작동을 했든 ...정치 사회적으로 에의 주시하는 2012년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from esh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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