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리오네의 영화 <웰컴>(2009)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가득하다. 사람들은 이민자들에게는 빵과 물도 (주는 게 아니라) 팔지 않고, 사람들은 이민자들을 차에 태워도 안 되며, 무료로 이민자들에게 밥을 주면 5년간 징역형을 살아야 한다. 그게 단지 우파 정권이 지배하는 21세기의 프랑스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엔 뭔가 좀 이상하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프랑스는 설사 우파정권이 지배하는 곳이라고 해도, 국가의 영향력이 개인의 영향력보다 압도적인 곳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하면, 주인공 시몽과 그의 전처인 마리온의 개인적인 감정이 국가적 모순(강력한 반이민자 정책)에 의해서 압도당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수영강사에 학교 선생일 뿐이지, 직업적인 운동가도 아니다. 그런데, 이민자인 비랄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들의 삶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변화한다.비랄은 이라크 구르드족의 17살 소년이다. 영국에 있는 여자친구(예쁜 아가씨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아빠의 강요에 의해 늙은이같은 사촌에게 시집을 가야한다)를 만나러 영국에 가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버스로 밀입국을 하려면 비닐을 뒤집어 쓰고 숨을 쉬지 않아야 하는데, 그에게 터키 정부가 8일 동안 비닐을 씌운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게 어렵다. (40리터 정도되는 용량의 한국의 하얀색 쓰레기 봉투를 보내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래서, 그는 34킬로가 넘는 도버 해협을 건너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가려는 계획을 세운다. 쿠르드족에게 무료 급식 봉사를 하는 진보적인 성향의 아내에 비해서 사회의식이 없는 수영강사(전 프랑스 400미터 챔피언)인 시몽은 이혼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아내에게 잘 보일 요량으로 비랄을 도와주기 시작한 듯 하지만, 이혼 자체를 막을 수는 없었고, 대신 그는 비랄과의 관계에 점차 깊게 빠져든다. 43킬로를 헤엄쳐서 사랑하는 여자에게 닿겠다는 열정은 시몽과 마리온을 전부 변화시키지만, 그 변화의 실체가 뭔지 본인들도 알지 못한다. 아마도, 그 변화의 정체는 누군가가 자신을 변화시키면, 그래서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면, 사랑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탐욕과 공포에서 모두 자유로운 사랑의 핵심은 건강한 관계다.
이 영화가 미국 영화였음으면, 비랄은 800미터 앞에서 미국 해경에게 (살아서) 잡혔을 것이다. 미국 언론은 사랑을 위해 바다를 건너온 아이로 신문 1면을 장식하고, 비랄은 재판정에서 자유와 사랑을 찾아온 자신을 열정적 연설로 변호함으로써 자유와 사랑을 모두 얻었을 것이다. 미국 영화나 프랑스 영화나 그런 면에서는 모두 전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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