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질서를 근간으로 한다는 국가 이데올로기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모든 사람이 인종이나 계급 혹은 성별에 관계 없이 모두 한표씩의 권리를 행사하는 민주주의 원칙과 사유재산제도를 근간으로 부자와 빈자의 존재를 긍정하는 자본주의는 정책과 제도 그리고 법률을 매개로 매번 충돌한다. 원칙적으로 말하면,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책을 부자는 부자를 위한 정책을 지지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지지하는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지지하는 부자들이 존재한다. 아마도, 전자는 무지 때문이고, 후자는 이타심 때문일 것이다. 무지한 빈자가 지지하는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추구하는 곳이 대체로 우파정당이고, 이타적인 부자가 지지하는 것은 좌파정당일 것이다. 물론,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제대로 된 좌파정당도 드물고, 부자들을 위한 제대로 된 우파정당도 드물다. 좌파정당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해를 미치는 정책을 추구하는 무지를 드러내는 경우가 빈번하고, 우파정당은 극단적인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을 추구해 자신들을 지지해준 중산층의 가슴의 상처를 입힌다.
크루그만의 이 책은 두 가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첫째는 미국에서 악화된 경제적 불평등이 현재의 정치적 양극화를 낳은 것이 아니라, 정치적 양극화가 소득의 불평등을 가져온 것은 아닐까? 둘째는 어떻게 소득의 불평등과 경제적 불평등을 가져오는 인기없는 정책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제도하에서 일관적으로 지지될 수 있었는가?
크루그만은 1870년부터 뉴딜정책이 등장한 1930년대까지를 도금시대라고 부른다.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이 이 시대의 특징이다. 이 시대는 막대한 부가 축적되면서 소득격차는 커지고, 가난한 노동자들은 늘어났지만, 소수의 부자들은 최소한의 세금만 냈다. 같은 시기의 독일에서 노인연금, 실헙보험, 국민의료보험 등의 제도가 도입되었고, 프랑스와 영국에서도 미국의 몇 배에 달하는 공적지원제도가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그러한 제도들이 고려되지 않았다. 크루그만은 그 이유를 다음 세 가지로 본다. 첫째, 다수의 미국 노동자들에게 선거권이 없었다. 즉, 미국 전체인구의 1/4에 달하는 이민자와 남주 흑인들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둘째는 민주당이 공화당에 비해서 선거자금면에서 절대적 열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세째는 선거부정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양당모두 선거 부정을 저질렀다.
이러한 도금시대를 종식시킨 것은 대공황이었다. 대공황 이전부터 좀 더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결정적 전환점은 역시 대공황이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개혁을 주도하기에 적절한 인물이었다. 경제사상가인 클라우디아 골딘과 로버트 마고는 1920-50년 미국에서 부유층과 노동자 계급의 차이가 줄고 노동자간의 임금차도 줄어든 현상을 대압착이라고 불렀다. 루즈벨트와 트루먼은 30년대의 보수주의자들의 반발을 무시하고, 소득과 부의 재분배를 극적으로 성공시켰다. 보수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대압착에도 불구하고 미국경제는 망가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향후 호황의 기반을 마련했다.
대압착의 시대가 끝났을 무렵, 50년대의 미국은 부유층의 소득이 줄었고, 소득 격차가 크게 줄었다. 사이먼 쿠즈네츠는 전후 미국 사회에서 소득분배가 대공황 이전보다 훨씬 평등해졌음을 입증했다. 그런데 이런 결과는 객관적인 시장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정치로 인한 것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평등화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면 질수록, 평등화는 객관적인 시장에 힘에 의한 점진적 반응이 아니라 정치적 힘의 균형의 급작스런 변화에서 기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부자들의 소득이 급감한 이유는 소득원천이 투자자본에서 노동으로 이동했기 떄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세금" 때문이었다. 투자자본에 의해 높은 세금이 부과되었고, 소득에 대한 세율조차 누진적으로 높게 적용되었다. 뉴딜정책은 부자들의 "소득 상당 부분, 어쩌면 거의 전부를 세금으로 거두어갔다"(69) 그리고 대압착시대가 시작된 이후 40년대 중반에서 70년대 중반까지의 30년 동안 육체노동자들은 황금기를 맞았고, 노동조합의 부활과 세계 대전이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기인했다. 루스벨트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연방정부는 노동자들의 노조를 조직할 수 있는 권리의 수호했고, 노조에 관한 정부정책이 180도 달라지면서 노조의 비약적인 발전이 가능했다. 물론, 리처드 프리만의 주장처럼 대공황으로 인한 임금삭감에 노동자들이 노조운동으로 대항한 결과일 수도 있다. 어쨌든 노조는 노조원들 뿐 아니라 비노조원들의 임금도 인상시켰다. 노조가입을 막으려면 임금인상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 2차 대전은 소득분배 평등화의 결과로 작용했다. 물가안정을 위해 임금을 통제한 정부의 규정이 저소득 노동자들의 임금을 상대적으로 인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루스벨트와 트루만의 정책이 성공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29-33년의 대공황으로 보수주의 이념에 대한 믿음은 부서졌고 33년부터 시작된 경제회복은 뉴딜개혁에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둘째는 전쟁이 정부의 간섭과 개입을 꼭 필요한 상황으로 만들었고, 급진적 방법에 대한 회의론을 일축시켰다. 또 하나, 50년에는 남부 백인들이 민주당을 지지했던 시기다. 그들이 민주당을 지지한 데는 민주당이 경제적 평등을 주장했지만, 한편 암묵적으로 짐 그로법을 인정했기 매문이었다. 남부는 미국에서 특별히 가난했고, 뉴딜의 혜택도 크게 받지 못했다. (경제적으로 가난하면서도 인종차별적인 남부 백인들의 행태가 미국 정치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들은 트루만의 단일지불체계의 국민의료제도보험을 좌절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것이 각 지역 병원에 인종차별폐지를 강요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1948-70년대쯤까지 뉴딜정책은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의 의견일치를 이끌어냈다. 양당의 경제정책에 큰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혁신적인 세금정책이 상류층의 부를 제한했지만, 그들에게 저항할 정치적인 힘이 없었다. 사회보장제도와 실헙보험은 절대적인 제도로 자리잡았고, 메디케어도 결국 그렇게 되었다. (105) 강력한 노조도 미국 사회의 일부로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이러한 균형은 1970년대 들어와 무너졌다. 크루그만은 공화당을 장악한 보수주의 운동의 씨앗이 린든 존슨(민주당)이 골드워터(공화당)을 누르고 당선된 1964년과 닉슨(공화당)이 조지 맥거번(민주당)을 누르고 승리한 1972년 사이에 뿌려졌다고 본다. 이 시기의 미국인의 다수는 경제번영이 가져온 만족감보다 미국 사회가 무너지고 있다는 불안감이 더 크게 작용했던 시기다. 범죄, 폭동, 마약, 혼전 성관계가 주는 공포감 그리고 민권운동과 그로 인한 변화에 대한 백인들의 반발을 공화당이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이용할지 배우게 된 것이다. 65년 존슨의 투표권법(Voting Rights Act) 제정이란 결단으로 인종 차별의 역사는 종지부를 찍었지만, 민권운동에 대한 낮은 인식과 기승을 부리는 소요사태가 맞물려 그 결과 보수주의 운동은 백안관과 연방의회를 모두 장악했다.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백인들의 반발과 공산주의에 대한 미국인들의 과대망상이라는 정서에 호소하는 두 가지 방법을 택했다. (크루그만의 표현이 재밌다. "캐나다인들은 그들 정부가 왜 캐나다의 뜻대로 세계를 이끌어나가지 못하는지 의아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미국을 위협하는 이들을 간단히 무력으로 제거할 수 있다고 너무 쉽게 생각했고, 이를 막아려는 이는 좋게 말하면 나약하고 나쁘게 말하면 반역자라고 간주해 버렸다"- 139-) 이런 보수주의 운동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낸 것은 경제계였다. 초기 보수주의 운동을 지원한 것은 노조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소규모 사기업이었다. 백화점 같은 중소기업 경영주들은 외국기업과 경쟁할 필요가 없어 추가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는 자동차업체나 다른 기업들과는 달랐다. 그들은 커져가는 노조의 요구에 분개했고, 위협적이라고 느꼈다. 반노동조합주의자들은 보수주의 운동의 첫번째 지지기반이었다.
신보수주 운동에 대한 지식인 계층의 지지는 밀턴 프리드만이 주축인 시카고 경제학자들과 어비 크리스톨이 이끌던 사회학자들로부터 왔다. 대공황의 기억이 사라지면서, 경기침체를 극복하하려면 때로는 정부의 역할 확대와 개입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1960년대 초반이 되자, 프리드만은 대공황이 시장 붕괴가 아니라, 정부 정책의 실패로 야기되었다고 주장했다. 크루그만은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했고, 지적인 양심과 비양심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지만, 이렇게 첨언했다. 프리드먼처럼 "뛰어난 경제학자들이 시장원리를 고집하기 위해 속임수라도 쓰고 싶게 만다는 것만 봐도 자유시장원리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헤리티지 재단, 케이토 연구소와 같은 보수주의 연구조직들이 생겨났다. 1960년대 말과 70년 초 사이, 신보수주의 지식인들이 부유층과 기업과들을 설득해 투자를 종용했다. 그리고 정해진 틀에 맞는 연구결과만 발표했다. 그리고 공급경제학이 만들어졌다. 공급경제학은 이론이 옳아서가 아니라, 단지 정치적으로 유용했기 때문에 주장되었다.
종전 후의 경기호황은 70년대 원유가격의 상승과 통제 불가능한 물가상승, 생산성 하락이 불러온 경제위기와 함께 끝났다. (160) 1980년대 들어서 위기는 끝났지만, 일반 노동자 한명의 생산성은 거의 50% 정도 향상되었지만, 소득은 점점 더 극소수에게만 집중되기 시작했다. 2005년 물가상승률을 활용한 정규직 남성가장의 소득 중앙값은 1973년보다 약간 낮아졌다. (163) 미국 사회는 예전에는 가장 뛰어나고 똑똑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게 후한 보상을 했지만, 지금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후한 보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두 가지 가능한 설명은 첫째, 세계화와 더불어 기술변화 떄문에 숙련된 노동자들에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두번째, 제도와 규범 그리고 정치권력의 변화가 주된 원인이다.
첫번째 설명은 숙련 노동자들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킨 기술발전이 소득 불균형을 악화시켰다는 가설(
SBTC: skill-biased
techincal change)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설명은 컴퓨터의 사용이란 시대상황과 잘 맞았고, 규범과 정칙권력이 아닌 수요와 공급만으로 설명이 가능해 경제학자들에게 익숙했으며, 불균형의 증가는 보이지 않는 손(기술)의 작용일 뿐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란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기술발전이 소득 불균형을 초래했다는 주장의 증거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크루그만의 말대로, 기술의 효과를 측정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방법이 사용되었다. 소득 불균형이 증가한 원인이 국제무역, 이민, 그리고 기술 때문이라고 하면 무역과 이민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은 모두 기술로 원인을 돌리는 식이었다. 하버드의 George
Borja와 Larry
Katz의 연구에 의하면, 이민 때문에 줄어든 소득은 어떤 계층에도 5% 미만이었다. 게다가 국제무역은 기껏해야 저학력 노동자와 고학력 노동자 간의 소득격차를 설명하는 데 그쳤다. 고학력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른 것은 맞지만, 생산성의 상승에는 미치지 못했던 현상을 설명하지 못했다.
결국
SBTC라는 불분명한 가설보다는 제도와 사회규범의 변화가 소득 불균형을 확대시켰다는 게 크루그만의 주장이다. 이유는 1) 현재의 소득불균형의 상황이 불균형이 완화된 1930-40년의 대압착시대를 연관짓게 만든다. 2) 선진국중에서 예외적으로 불균형이 급속하게 증가한 미국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다. 크루그만이 인용한 많은 경제학자들(MIT의 프랭크 레비와 피터 테민 등)은 30년와 40년대 불균형을 제한하는 사회적 규범과 제도가 70년대에 무너지면서 불균형을 초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왜 유럽 선진국과 달리 유독 미국에서만 이러한 불평등이 심화되었는가를 잘 설명해준다. 유럽에서는 노조가 여전히 강력하고, 과도한 소득에 대해 비판적이며, 노동자들의 권리가 중시된다.
그렇다면, 불평등을 유발시킨 사회규범과 제도의 변화는 어디서 시작된 것인가? 크루그만은 그 해답을 정치에서 찾는다. 그는 노동조합의 몰락을 예로 든다. 왜 노조가 몰락했는가? 통상적인 대답은 노동인구 구조의 변화였다. 제조업의 쇠퇴로 인해 노조가 몰락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왜 외국과의 경쟁이 없는 월마트에는 노조가 없는가? 그것은 70년대부터 기업들이 강경한 조치를 통해서 노조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크루그만의 주장에 의하면, 70년대 말과 80년대 초에 노조지지 노동자의 20명 중 적어도 한 명 (다른 추정치에 의하면 8명중 한 명)이 해고되었다. 특히 레이건의 당선이후 반노동조합운동은 활기를 얻었고, 다른 서방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노동조합운동의 몰락이 전개되었다. 그러면 보수주의 운동은 어떻게 강력한 힘을 얻게 되었을까?
크루그만은 먼저 양당의 분열이 어떤 성격인지 이해해보고, 그 원인을 이해하자고 한다. 1) 왜 공화당은 소득 불균형이 급증하고, 중산층과 빈곤층의 복지를 위해 부유층으로부터 세금을 거두는 정책이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시기에 복지국가를 무너뜨리려는 운동을 시작했을까? 2) 그렇다면, 그렇게 인기없을 수 없는 정책을 내세우면서도 선거에 여러 번 승리할 수 있었을까?
과도기적인 인물이었던 닉슨은 보수주의 운동의 정치전략을 사용했지만, 경제와 환경문제에 관한 진보적인 정책(74년의 종합의료보험계획Comprehensive Health Insurance Plan, 최저한도세Alternative
minimum tax를 포함한 세금인상 등)으로 통치했다. 최초의 보수주의 운동진영의 대통령은 레이건이었지만, 그는 임기 중 2년을 빼면 민주당이 다수당인 하원을 상대해야 했고, 나머지 2년도 온건파 공화당 상원의원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레이건은 사회보장제도의 재원 조성을 위해 세금을 인상해야했다. 공화당이 극단주의로 흐른 것은 레이건 이후였다. 심지어 90년대 공화당은 상위 10%의 부유층이 96%를 내는 상속세를 폐지하려하려는 시도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리고 2001년 부시의 세금인하는 상속세의 단계적 폐지조항을 포함했다.
크루그만은 첫번째 질문에 대한 해답은 쉽게 찾는다. 새로운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엘리트 그룹, 열렬한 반공주의자, 노조와 협상하는 데 진력이 난 사업가, 미국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분노와 해외안보에 대한 불안, 그리고 정치적인 조작능력이 총체적으로 결합한 것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소 허무하게도) 남부백인들이 공화당을 뽑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미국의 예외주의(
exceptionalism)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인종이라고 결론 맺은 것은 하버드의 경제학자 Alberto
Alesina, Edward
Claeser, and Bruce
Sacerdote의 최근의 체계적인 연구에서도 드러난다. 트루만이 도입하려고 했던 전국민 대상의 의료보험은 미국의학협회와 남부 백인들의 반대로 실패했다. 수혜자일 수 있었던 백인의 반대는 병원에서의 인종차별이 폐지될까 봐 두려운 그들의 인종주의 때문이었다. (국가안보나 종교는 인종만큼 중요한 역할 하지는 못한다고 크루그만은 본다. 전쟁을 위해 감수해야하는 세금인상과 부당이득단속이 보수주의 운동과 양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종교적인 백인도 그만큼 늘어나고 있다. 양쪽이 팽팽하면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절대적인 영향력은 약하다)
그러니까, 크루그만이 내린 결론은 이렇다. (그리고 이 결론은 한국에도 무시무시한 함의를 준다) "보수주의 운동의 기반을 이루고, 거대한 우익 음모론이 실제로 이루어지며, 서로 밀접하게 연계된 조직들 덕분에 보수주의 운동은 공화당을 장악하고 정책을 오른쪽으로 급격히 전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역에서 유권자들은 극우화된 공화당을 외면했고, 점차 민주당으로 표심이 옳아갔다. 그렇지만, 공화당은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고 결국 의회까지 지배하게 되었다. 이는 공화당이 남부지방에서 이기기 위해서 인종문제를 교묘하게 이용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공비결의 전부다." (231) 그런데 크루그만은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도대체 남부 백인들은 공화당이 실제로 무엇을 해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231) (이러한 크루그만의 질문은 이렇게 바꾸면 한국정치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도대체, 경상도의 노동자들은 한나라당이 실제로 무엇을 해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크루그먼은 2006년 민주당의 승리가 우연이 아니라고 말한다. 평등을 추구하는 새로운 추구에 대한 국민적 요구의 결과라는 것이다. 국민들은 소득 불균형의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이에 대해서 정부가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256) 그리고 크루그만은 이 새로운 요구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왜? 1) 우선, 경기가 회복되면서 경제적인 문제가 정치적인 힘을 잃었던 94년과는 달리, 지금은 경제에 대한 불만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2) 두번째, 그동안의 효력을 보였던 인종주의가 점차 위력을 잃고 있다. 미국의 백인이 감소하고 있고 특히 백인들 중에서도 인종차별주의자가 많이 줄고 있다. 크루그만은 특히 백인이 아닌 이민자들과 미국의 인종주의를 둘러싼 정치의 상호작용이 보수주의의 강력한 무기를 무력화 시켰다고 본다. (263) 즉, 기업들은 이민을 옹호하지만, 인종주의 유권자들은 이민을 반대한다. 이는 지지세력안의 분열을 의미한다.
자, 이제 장황한 설명을 끝내야 할 때다. 크루그만은 민주당 정권이 세상을 제대로 돌려놓기 위해 의료보험제로를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당위성에 대해서 한참 설명한다. 이것은 이 책의 11장을 참조하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정서적 핵심
"나는 상대적으로 평등한 사회가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서는 극심한 빈부격차를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민주주의와 시민의 자유, 그리고 법치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진보주의자이며, 나는 그것이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