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December 31, 2009

올해의 책

일부는 아직 읽고 있지만, 어쨌든 올해 사서 읽은 책을 정리해봤다. 책들에 대한 내 소감은 이 책들을 주관적 금액으로 환산하는 방식으로 적었다. 개중에는 액면 이하의 책도 있다.

벤 그레이엄, 현명한 투자자- 8만원
스티븐 래빗, 수퍼 괴짜 경제학- 5만원
Alan Greenspan, The age of turbulence- 3만원
Jack Schwager, The new market wizard - 10만원
로버트 스키델스키, 존 메이너드 케인즈 1, 2- 40만원
에드워드 윌슨, 인간 본성에 대하여- 3만원
Richard Dawkins, The greatest show on earth- 3만원
김용옥,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1- 5만원
김용옥, 도마 복음 이야기1- 15만원
크리스토퍼 히친스, 신은 위대하지 않다- 2.5만원
Barton Biggs, Wealth, war & wisdom- 4만원
David wessel, In Fed we trust- 2만원
에이미 추아, 제국의 미래- 20만원
앨리스 쉬뢰더, 스노볼- 100만원
폴 크루그만, 미래를 말한다- 7만원
로버트 쉴러, 야성적 충동- 1만원
필립 볼,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 8천원
조지 소로스, 금융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 5천원
무라카미 하루키, 1Q84- 10만원
김정운,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2만원
유시민, 후불제 민주주의- 2만원
더글라스 모크, 살아남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 3만원
마크 더글라스, 투자, 심리학에서 길을 찾다- 1만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2만원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5천원
Harvey Cox, The future of faith- 20만원
헤링 만켈, 하얀 암사자- 1만원
대니엘 길버트,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5만원
짐 로저스, 불 인 차이나- 5천원
스콧 피츠제랄드, 피츠제랄드 단편집- 1만원
마쓰모토 세이초, 마쓰모토 세이초 걸착 단편 컬렉션- 5천원
콜맥 매카시, 더 로드- 2만원
김별아, 미실- 2만원
정민, 다산 선생 지식 경영법- 4만원
하루키 + 하야오/ 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 2만원
이상헌, 매크로 스윙 트레이딩- 7만원
엘리자베스 퀴블러, 생의 수레바퀴- 10만원
김영하, 너가 잃어버린 것들을 기억하라- 5천원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5만원
김연수, 여행할 권리- 2만원

올해의 문단: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빌 게이츠 시니어가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사람들이 인생에서 성공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요. 나는 '집중'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빌도 똑같은 대답을 하더군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버핏이 말했던 '집중'이란 말의 의미를 온전하게 이해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버핏이 살고 실천했던 집중은 결코 필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탁월함의 대가인 강렬한 긴장을 의미했다. 미국 발명가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토머스 에디슨, 가족 오락 산업의 제왕인 월트 디즈니, 솔 음악의 대부인 제임스 브라운이 있게 한 규율 및 열정적인 완벽주의를 의미했다. 온 세상의 조롱거리가 될 것임을 뻔히 알면서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 미국은 참전하지 말아야 한다는 자기 의사를 의회 투표를 통해 유일하게 표현한 지네트 랜킨을 이끌었던 단호함과 정신적인 독립성을 의미했다. 이상에 오로지 한 마음으로 집착하는 것을 의미했다. '집중'은 투자 자본을 적절하게 배분함으로써 수십업 달러의 재산을 일구면서도 'No Tip'이라는 단순한 기호가 뜻하는 것을 알지 못해서 당황하는 것을 의미했다." (스노볼2, p 300)

Wednesday, December 30, 2009

스티브 잡스 2005년 스탠포드 졸업사

LTCM을 다룬 '천재들의 실패'를 읽고는 LTCM의 흥망성쇠에 대해서 다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스노볼'을 읽으면서 또 다른 관점에서 그 사건을 조망하게 된다. 어렸을 때, 애플에 대해서 경멸조의 이야기(왜 애플은 MS를 이기지 못했는가)를 들어왔는데, 이제 세상의 스마트 폰은 온통 iphone 밖에 없는 듯하다. 스티브 잡스의 2005년 스탠포드 대학 졸업사를 들으니, 그의 재기와 성공이 (당연히!) 우연히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감동적이다.

출생의 비천함을 극복하는 방법, 실패 자체에 좌절하지 않고 일어서는 방법, 그리고 죽음을 의식하면서 삶을 회복하는 방법- 어쩌면 현명한 인간이 갖고 있을 인생의 3가지 비밀을 잡스가 공개해준 것이다.

이 연설문을 통채로 외우고 싶다. 죽기 전에 꼭 읽어봐야 한다.

Tuesday, December 29, 2009

매춘의 경제학 (불평등의 경제학)

경제학자들은 논란이 되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일반적인 사람들과 시각과 관점을 달리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학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대신,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매춘은 나쁜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현실에서 매춘은 공공연하다. 마약이나 낙태같은 것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나쁘기 때문에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경제학은 전면적인 자유화와 전면적인 금지와 그리고 규제 사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길을 찾는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서, 사람들이 나쁜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방식이 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낙태의 경우도 낙태 자체가 인간(태아)의 존엄을 파괴하는 행위라는 도덕적 잣대를 단순하게 들이대지 않고 이제는 여성의 선택할 수 있는 권리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많은 선진국에서 일반화되어 있다. 워런 버핏도 1970년 초반 여성의 낙태 권리를 옹호하는데 도움을 주게 되는데, 그는 "젋은 여성들이 불법적인 낙태로 불구가 되거나 사망하는 사회적인 문제를 더는 방관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앨리스 쉬뢰더, 스노볼)

시카고 대학의 경제학자인 스티븐 레빗은 낙태의 합법화가 범죄율의 감소를 가져왔다는 주장을 해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낙태의 합법화가 범죄율의 감소를 가져오니까 낙태를 합법화해야 한다, 는 주장이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오해했고, 그를 비난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의 경제학적 함의는 낙태와 범죄율의 비극적인 인과성을 감안하면, 저소득 계층에 대한 과감하고 적극적인 복지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마약과 매춘 문제는 경제학에서 전형적으로 사회적 관념과 충돌하는 주제다. 경제학자들은 마약과 매춘을 합법화할수록 구성원의 경제적 효용이 높아지며 부정적인 부작용을 통제하기 쉽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세부적인 내용을 보면, 마약과 매춘은 다소 다르다. 우선, 마약과 매춘 모두 그것을 구매하고 소비하는 하는 개인들의 효용은 서로 높아질 뿐 감소하지 않지만, 마약의 경우는 구성원의 효용은 올라갈지 몰라도, 사회 전체의 효용은 감소할 수 있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이 늘어날 수록, 사회 전체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그것은 다른 국가와 경쟁해야 하는 국가 자신의 존폐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성을 사고 파는 매춘은 마약과는 다르다. 우선, 성을 사고 파는 행위를 통해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의 효용이 증가한다. 성을 사고 파는 행위를 통해 국가 전체의 효용이 감소하지도 않는다. 물론 생산성이 떨어질 정도로 성행위가 빈번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러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러한 문제는 결혼관계를 통한 성관계에서도 동일하게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성을 사고 파는 행위를 금지해야 할까. 결론적으로 그것은 철저하게 윤리적인 판단이다.

도덕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계시론적 윤리론만큼 매춘에 대해서 확실한 근거를 가진 것은 없다. 기독교처럼 계시론적 윤리론에 근거하는 종교에서는 계명이나 율법을 통해서 금지되어 있는 매춘이나 간통같은 행위를 사회적으로도 금지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매춘이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금지하는 것이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계시론적 윤리론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계시의 주체가 선인지 혹은 악인지 구별 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계시가 윤리의 절대적 기준이 된다는 점에 회의적이다. 현대사회에서 계시론적 윤리론과 부딪히는 대표적인 윤리적 관점은 아마도 공리론적 윤리론일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대개 공리론적 윤리론에 기우는 경향이 있다.

매춘이 나쁜 이유는 대개의 매춘이 갖고 있는 낮은 가격이라는 속성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의상의 매춘이란 누구와 하던, 얼마를 받던 상관없이 성을 매개로 돈을 주고 받으면 성립한다. 하지만, 가격이 싼 매춘과 가격이 비싼 매춘에 대해서 사람들이 갖는 생각은 이중적이다. 즉, 매춘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매춘이 싸기 때문이지, 만약 비싼 매춘이라면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는 달라 진다.

1993년 영화인 '은밀한 유혹'(Indecent Proposal)에서 데미 무어는 잘 생긴 억만장자 로버트 레드포드에게서 하루밤 대가로 백만 달러를 제의받는다. 재정적 위기에 빠진 데미 무어와 우디 해럴슨 부부는 고민끝에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데, 그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서 부부관계는 파탄이 나고, 데미 무어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끈질기고 로맨틱한 구애에 무너진다. 물론 영화는 데미 무어가 다시 우디 핼럴슨에게 돌아오는 체제순응적인 결말로 끝나지만, 이 영화를 통해서 생각해봐야 하는 건 만약 그가 로버트 레드포드가 아니라 배불뚝이 40대 한국 아저씨였다면, 백만달러가 아니라 10만원이었다면 영화가 어떤 식의 모습이 되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매춘이 파급시키는 본질적인 문제는 자의적인 기준에서 내려질 수 밖에 없는 매춘 자체의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매춘의 가격이 만들어내는 사회 경제학적인 것들이다. 가격이 비싸고 시장 진입자가 제한적인 고급 매춘시장과 가격이 싸고 시장 진입자가 비교적 자유로운 저급 매춘 시장을 예로 들어보자. 일년에 한번 2억에 성을 판매하는 매춘 여성은 근로여건이 좋고, 보상이 높으며, 윤리적 부담감도 적고, 법적이 구속을 받을 가능성도 낮다. 반대로 하루에 10명에게 10만원을 받고 성을 판매해야 하는 매춘 여성은 근로조건이 나쁘고, 보상이 낮으며, 윤리적 부담감이 높고, 단속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말로 하면, 성을 판매하는 행위를 국가가 적극적으로 단속할수록, 단속은 저급 매춘 시장에 한정되고, 성은 불평등해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성을 낮은 가격으로라도 팔고자 하는 사람과 성을 낮은 가격으로밖에 살 수 없는 사람들이 그러한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이 낙태를 할지 아이를 낳을지 선택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보는 진보주의자들도 낙태가 윤리적으로 옳은 행동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태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믿는 이유는 실재로 현상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행위를 전면적으로 금지시키는 것은 윤리적 선을 가장한 무지 혹은 위선이라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매춘의 경우도 다를 바 없다. 매춘이 없어져야 할 행동이라고 믿고, 성매매를 전면적으로 금지시키면, 성을 파는 입장에서는 낮은 가격에 성을 사는 입장에서는 더 높은 가격에 살 수 밖에 없다. (금주법을 실시했던 미국에서 생겼던 현상과 같다) 물론 이러한 비효율이 우리가 느끼는 도덕적 안도감에 대한 대가라고 사회의 다수가 생각한다면, 사회가 지불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정치적 비용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은 공정하지 않다.

충고

악의는 없다. 잘난 척 하려는 의도도 없다. 다만, 누군가 20년 전 내게 이렇게 진심을 다해서 말해주었더라면, 지금쯤 굉장히 고마워했을 것이다.

20살을 바라보는 소년에게

Monday, December 28, 2009

사라 장, 12월 28일


기돈 크레머는 늙었다. 막심 벤게로프는 아프다. 바담 레핀은 너무 얌전하고, 힐러리 한은 과대평가되어 있다. 길 샤함은 너무 착하다. 그래서 남은 것은 장영주 뿐이다. 좀 얄미운 구석이 있긴 하지만, 그녀는 대가다. 그녀는 태어나면서부터 비르투오조였다. 그녀가 연주하는 것은 그게 바하든, 브람스든, 모짜르트든 모두 장영주의 옷을 입는다. 당대에 그런 연주를 한 사람은 많지 않다.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오늘 연주는 훌륭했다. 반주자로 나선 앤드류 폰 오이엔의 타건은 부드러우면서도 정확하고 기품이 있었다. 나중에 따로 들을 기회가 있을 듯했다. 3곡의 앵콜(사랑의 인사, <사계>의 여름 프레스토, 그리고 G선상의 아리아)은 너무 영리해서 얄미운 구석이 있었지만, 뭐 한두번 겪는 일도 아니다.


오늘 공연의 어록은 어느 50대 중반의 아저씨가 만들었다. 20분전 쯤 입장하려는 순간 안내를 하고 있는 여직원에게 공연장안을 들여다 보며 이렇게 물었다.
"안에 화장실 있어?"

그리고 악장간의 박수가 2번 있었다. 한번은 이해할만 했지만, 앞의 한번은 생뚱 맞았다. 피아니스트이자 뉴저지 대학 교수인 권민경은 이렇게 말했다. 악장간의 박수는 연주가 너무 훌륭해서 치는 경우와 악장과 악장간의 구별을 못해서 치는 경우가 있는데, 전자의 경우라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연주자들은 둘 중 어느 것인지 대개 금방 알아차린다, 고.

Friday, December 25, 2009

운명을 개선하는 가장 쉬운 방법

인간의 운명의 99%를 결정하는 것은 어떤 부모밑에서 태어났는가 하는 것이다. 부모의 부의 수준(계급이라고 하자)을 의미있는 정도로 넘어서는 2세는 역사적으로 1%도 안 된다. 그게 부의 수준이든 교육 수준이든 교양의 수준이든 그 기준에서 "나쁜 부모" 밑에서 태어나 부모의 범주를 넘어서려면, 1%의 인간들이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의 끝은 다 그저 그렇다. 이 시점에서, 그 범주를 넘어서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는 경제자료를 보여줘야 할 테지만, 쉽다. 그런 건.

그럼 운명을 개선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제일 쉬운 것은 공부를 하는 것이다. 가난한 집 여자로 태어나 의사와 결혼하는 가장 쉬운 길은 공부를 열심히 공부해 의대를 가는 것이다. 부자집 딸로 태어나거나, 김희선의 미모로 태어나 심은하같은 스타가 되는 것은 노력을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왜 의사와 결혼하기 위해서 의대를 가야 하나? 아니다. 의사와 결혼하기 위해서 의사가 되라는 게 아니라, 의사와 결혼할 정도의 사회적 레벨에 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공부라는 것이다.

위안화는 어떻게 될 것인가

중국이 3분기 GDP를 9%에서 9.5%로 수정했다. 올해는 유달리 G2란 말이 신문지상에 유독 자주 등장했다. 신문기자들이란 항상 오버하는 존재이니까, 그런 말이 등장할 때 즈음에는 잘 생각해야 한다. 금가격이 온스당 1200불을 넘어섰을 때, 어땠는가를 생각해보면 된다. 지금 금 가격은 온스당 1000불이 간당간당한다. 당연히, 신문에서 금가격에 대한 기사는 다 사라졌다.

지금 미국 경제, 아니 세계 경제의 핵심적인 이슈는 미국 가계의 손상된 대차대조표를 어떤 식으로 구조조정할 것인가 여부다. 물론 이 과정의 해야하는 일은 미국 정부가 민간의 지출 감소를 대신할 충분한 재정지출을 하는 것이다. 크루그만의 계속적인 주장도 그렇고, 서머스도 이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커진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감은 아마추어들이 각가지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쓰게 만든다. 3조 달러의 외국 정부의 미국채 보유액 중 8천억 달러를 보유한 중국의 미국 국채를 대량 매도 시나리오(예컨대, 크루그만에게 무시다안 하버드의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와 그로인한 달러의 붕괴 시나리오도 그중 하나다. 허황된 이야기다.

중국이 그런 바보같은 일을 할리도 없거니와 설령 그런다고 해도 충격은 일시적이다. 결국은 미국의 저축 증가가 그 충격을 흡수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것은 그 말이 곧 미국 금리가 올라가지 않을 것이란 말은 아니란 것이다. 미국 금리는 상승할 것이다.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정책금리 0%에서 0.8%대인 2년 국채 금리는 아직 너무 너무 낮다. 하지만, 중국의 미국채 대량매도나 재정적자에 의한 국채발행증가 때문은 아니다.

중국 통화가치의 절상에 대한 논의는 중국이 그런 자멸적인 정책을 택할 리 없다는 정치적인 이해타산에 근거한 견해와 지금의 미국과 중국의 경상수지 구조는 유지될 수 없다는 구조적인 접근이 충돌한다. 1980년 초반 일본의 플라자 합의가 일본의 버블을 일으키는 요인이 됐다. 일본이 통화강세를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이 아닌 편리한 금리인하란 정책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라자 합의를 하지 않았더라면 일본은 미국을 능가하는 강국이 되었을까? 중국은 일본이 플라자 합의를 해서 망한 게 아니라는 걸 이해한다면, G2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다가서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직도 한참 갈 길이 멀다.

투자가 45퍼센트를 차지하는 지금의 중국경제의 성장은 유지될 수 없다. 더 이상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누적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기저에 깔린 매카니즘의 결과가 2007년부터 시작된 부동산 버블의 붕괴와 금융위기였다. 그런데, 투자가 경제의 45%를 차지하는 경제를 지지시키기 위해 중국정부는 대규모 재정정책을 앞당겨 집행했다. 그리고 소비자 보조금을 대량 지급했고 국영은행들은 자금을 방출했다. 이러는 동안 미국 경제가 살아나면 된다, 는 게 중국 정부의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미국 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위안화의 절상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위안화의 절상이 대중국 수출의 증가를 가져올 것인지는 회의적이지만, 적어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개선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구조적으로, 중국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중국을 뺀 나머지 나라들이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를 방관하기 어려워진다. 미국과 중국이 통화가치 문제로 갈등하면 세계 어느나라도 중국의 편을 들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자국 통화 절상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서 미국채를 투매하겠다고 협박할 수도 없다. 그런 짓을 해서 단기적으로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면 지금과 같은 무역 흑자는 당장 끝이다.

하지만, 중국의 입장에서는 지금의 부동산 버블이 골치거리다. 재밌는 건, 지난 10년 동안 주식의 붕괴에도 붕괴하고, 부동산은 불패신화를 이어갔고, 중국인민들은 "중국 정부가 부동산 거품의 붕괴를 원치 않고, 그것을 막을 수 있다"는 황당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 그것이 황당하냐면, 중국의 부동산 버블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중국 정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의 2004년 왜 버블 붕괴 직전까지 갔었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그 때 그린스펀은 4%까지 금리를 올려버렸다. 중국의 환율은 지금 달러에 사실상 페그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통화정책을 포기할 수 없다. 그 말은 물가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말이 된다. 역설적으로, 중국은 내심 위안화에 대한 절상 필요성을 자각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위안화를 절상시키는 순간, 경상수지의 감소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인플레이션의 창궐이라고 생각중일 뿐이다. 그래서, 막후에서 그들은 미국채를 팔고, 미국의 실물자산을 사는 쇼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 규모가 얼마가 춥분할까? 난 회의적이다. 결국 위안화는 3년 이내에 큰 폭으로 절상될 것이다. 그리고, 그 때까지 중국의 부동산 가격은 절정으로 갈 시점이다. 파티가 끌 날때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안 그러면 춥다.

2년 미국채 숏전략의 유용성

미국채 2년 금리의 움직임은 지난 리만 브라더스 파산으로 대공황의 가능성이 대두되었을 때, 0.65%를 기록한 후, 잠깐 올랐다가 다시 0.65% 레벨을 찍고 올라가는 중이다. 다시 0.65%를 찍었던 이유는 연준이 금리인상이 상당기간 없을 것이란 신호를 줬기 때문이다. 나는 2년 금리가 0.84%였을 때, 2년 국채선물을 108-1975에 숏치고, 연준의 FOMC에서 dovish한 성명서가 나오고 금리가 다시 0.75%까지 빠졌을 때, 108-2450애 추가로 숏을 애드했다. 그리고 2s/10s를 262bp에 스티프닝 포지션을 잡았다. 월초에 골드만 삭스의 bull flattening 보고서를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그 보고서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포지션을 잡은 셈이다. 그리고, 골드만의 손절 레벨인 108.00이 깨진 게 지난 화요일 오전이다. 상당한 스탑 로스 물량이 나았던 거 겉다. 역시 골드만이다. 따라 하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다.

연준 금리인상 이전의 비상 응급 조치들을 제거할 것이다. 대표적으로 유동성 공급을 통해서 은행들과 시중에서 사들인 모기지 채권을 방출할 것이다. 레포시장에서 모기지 채권을 담보로 자금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유동성을 흡수할 것이다. 또 연준이 지급준비금에 대해서 이자를 지급해서 은행들이 자금을 빼지 않도록 만들수도 있다. 이럴 경우, 모기지 채권의 금리가 오를 것이고, 10년 장기 금리가 오를 것이다. (모기지의 convexity는 옵션이니까 감마 헷지를 위한 스왑 페이 물량이 나올 것이므로) 결론만 말하면 이렇다. 연준이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2/10년은 스팁되고 10년 금리가 오를 것이다. 그 끝은 5.5%정도라고 본다. 만약 연준이 금리를 올리면, 2/10년은 플랫되고, 2년 금리가 오를 것이다. 그 끝은 2%보다 약간 위라고 본다.

Monday, December 21, 2009

결혼 이후의 경제학

엘리자베스 웨일이 New York Time Megazine에 "Married (Happily) With Issues"란 긴 글을 썼다. 이 글은 진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나는 괜찮은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더 나아질 수 있다. 가끔 남편은 나를 빡 돌게 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우리는 괜찮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학교나 우정이나 업무나 건강이나 육아에는 엄청난 힘을 쏟는다. 그런데, 결혼은 그렇지 않았다. 왜 그럴까?" 망설이는 남편을 설득해, 그녀는 더 나은 결혼, 행복한 결혼을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공부를 통해, 상담을 통해, 노력을 통해, 우리는 더 나은 결혼, 더 행복한 결혼에 종착할 수 있을까?

고린도 전서를 보면, 사랑은 온유하고 오래 참는다, 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그 말은 잘 해석해야 한다. 사랑을 하면 사람이 온유해진다는 말이 아니라, 온유한 사람만이 온유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온유하지 않고 오래 참지 못하는 인간은 사랑도 그 따위로 한다. 그런데 결혼은? 혼자 행복하지 않은 인간은 절대 결혼을 통해 행복해 질 수 없다. 혼자 행복한 사람마저도 결혼을 통해서 행복해지지 않는 경우도 태반인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사실, 좋은 인간이 아닌 이상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는 어렵다. (물론 좋은 인간이더라고 해도 좋은 배우자를 만난다는 보장은 없다) 좋은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고, 그 이후의 일은 기도하고 운명에 맏기는 수 밖에 없다. 나쁜 인간으로 태어나 나쁜 인간과 결혼해서 좋은 결혼을 성취하기란 당연히 매우 어렵다. 개과천선이 동시에 두 명에게서 동시에 이루이지길 기대하는 일은 확률상 무척 어렵다. 세상에는 결혼처럼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개선하기 어려운 일은 별로 없다.

Elizabeth와 그의 남편 Dan의 노력은 행복한 결혼에 이르는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준다. 우선, 그녀는 더 나은 결혼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란 질문에서부터 헤매기 시작한다. 더 나은 결혼은 더 행복한 결혼을 의미하는 것일까? 더 행복하다는 것은 뭘까? 더 친밀한 것? 더 안정적인 것? 더 많은 웃음꽃이 피는? 덜 싸우는 것? 더 잘맞는 파트너쉽? 더 흥미로운 대화? 더 훌륭한 섹스? 모든 이슈에 대해서 부부가 이견없이 일치하면 과연 행복할까? 아니면 24시간 동안 붙어지내면서 모든 기억과 추억을 공유하면 행복할까? 너무 친밀하면 자신에 대한 독립성을 상실한다. 너무 독립적이면 친밀함이 없다. 친밀함이 없으면 외롭고, 너무 친밀하면 그 관계를 답답해하는 것이 인간이다. 독립적인 영혼도 아니었고, 친밀함을 느껴 본 적도 없었던 인간이 결혼을 통해서, 돌연 그것을 얻는다는 게 과연 가능한가. 그게 지금 본인에게 없다면, 그게 결혼 탓인가, 아님 자기 탓인가?

시간과 노력을 거듭할 수록, Elizabeth는 점점 이 프로젝트에 회의를 느껴간다. 왜? 이런 것이다. 나은 결혼을 위해서 필요한 친밀감을 예로 들자. 친밀감은 자기가 가진 감정을 표현하고 그것을 듣는 사람이 공감과 이해를 해줄 때 생긴다. 이런 감정이 잘 들지 않으면 친밀감이 있는 관계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친밀감을 만들어서 더 나은 결혼으로 가자, 는 주장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이런 건 조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이건 마치 뚱뚱한 사람한테 날씬해지려면, 덜 먹고 많이 움직이란 말과 뭐가 다른가? 그녀의 이런 회의감은 "더 나은 결혼을 하고 싶으면, 더 나은 인간이 되라"는 내 주장과 별 다를 바가 없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결혼을 할 수 있다. 자식을 좋은 사람으로 키우려면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한다. '좋은 부모 된다'는 것은 '좋은 배우자가 된다'는 말처럼, 결국 '좋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과 거의 같은 말이다. 늦은 아침과 이른 점심의 차이일 뿐이다. 그건 자식을 백만장자로 키우려면 부모가 백만장자가 되라는 조언처럼 쓸 데 없어 보이지만 인생에 다른 정답은 없다.

그녀가 종착한 결론은 이렇다. 좋은 엄마란 아이를 사랑하고 그 아이가 감정적으로 건강한 성인이 되게 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삶에서 유연한 태도와 고난을 극복할 힘을 가질 수 있는 건강한 정신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좋은 엄마의 궁극적 목표이며, 좋은 결혼이라는 것도 배우자가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배우자가 용기를 갖고 세상을 대면하게 서로 돕는 것이란 것이다. 우리는 좋은 부모, 좋은 배우자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그건 좋은 인간이 되는 길이기도 하다.

긴 글이지만, 재밌게 읽었다.

Thursday, December 17, 2009

emotional running

트레이딩을 하기 전엔 탐욕(greed)과 공포(fear)가 어떤 감정인지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금은 탐욕과 공포는 다른 자잘하고 섬세한 감정들의 상위 감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해본다. 심지어 사랑이란 감정도, 탐욕과 공포의 왕복달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듯하다. 누군가를 갖고 싶다는 탐욕과 누군가를 잃을 것 같다는 공포가 사람들이 죽고 못사는 사랑의 실체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런 극단적인 감정상태가 아닌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건 성경에서나 구현가능하고, 그런 사랑은 미안하지만 로맨틱하지 않다.

트레이딩을 하다보면, 탐욕에 눈이 멀어 포지션을 애드해서 다치거나, 공포에 질려 손절한 것이 추세의 끝을 찍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 심리적 극한이 시장추세의 극단이 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행동하는 방식이 대체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기술적 분석을 높게 평가하지 않지만, 꼭 참조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냉정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인간인 이상 탐욕과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다만, 자신이 탐욕에 눌려있는지, 공포에 질려있는지 냉정하게 판단하려고 노력할 뿐.

Wednesday, December 16, 2009

세속주의 vs. 문화적 상대주의

Sholto Byrnes가 "Europe's problem with Islam"에서 이슬람에 대한 유럽인들의 태도를 비판했다. 얼마전 스위스에서는 이슬람 모스크의 첨탑(미너렛minarets이라고 부른다) 건축규제를 통과시켰다. Bynes는 그걸 과거 나찌에 의해 핍박받았던 유대인들의 돈을 갈취했던 스위스 역사에 빗대었다. 그의 말대로, 그 법안을 통과시킨 우파들은 베일을 쓴 아랍여인들이 미사일처럼 생긴 첨탑을 배경으로 서있는 광고를 통해서 거부감을 자극했다. 하지만, Bynes가 언급한 것처럼 이 문제는 어떤 종교가 "불법을 자행하지 않는 이상 종교적 자유를 누릴 권리"에 관한 단순한 논쟁을 넘어섰다. 그 어떤 종교인 이슬람은 우파적 가치 뿐만 아니라, 좌파적 가치 또한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파 보수주의자 뿐 아니라 좌파 세속주의자들도 이슬람의 종교적 자유에 반대표를 던졌다. 쉽게 말하면, 나쁜 종교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인데, 문제는 그 나쁜 종교를 특정 지역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있다는 것이다.

Bynes는 마지막 문장에서 "what really is so scary about a few minarets?"라고 사회적 각성을 촉구하는 듯 하지만, 사람들, 특히 좌파 세속주의자들의 거부감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여성을 대상으로는 하는 수많은 명예살인(honor killing)의 사례들 그리고 여성들에게 자행되는 범죄에 가까운 관습들- 예를 들어, 많은 이슬람 국가에서 자행되는 여아들의 클리토니스를 제거시키는 할례(female circumcism clitoridectory)- 를 보자. FGM(femal genital mutilation)이라고도 불리는 여아 할례는 이슬람의 이름으로 흔하게 행해지는 윤리적, 물리적 범죄다. 공공장소에서 히잡이나 차도르를 착용하지 않으면 여자들이 햇볕을 볼 수 없게 하는 그들의 법 또한 다른 국가에서 흔히 충돌을 일으킨다. 물론 그들의 대답은 일관되게 "종교적 자유" 혹은 "문화적 상대주의(cultural relativsim 혹은 cultural paricularism)"에 관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적 질서와 인권적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그들에게 과연 종교적 자유를 줘야 하는가? 그들이 설령 그 종교적 자유를 악용해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훼손한다고 해도? 아마도, 조금은 다른 접근이 필요하고, 갈등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프랑스 정부가 공립학교에서 여학생들의 히잡을 금지시킨 것은 그런 면에서 잘한 일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언제든 본인의 의지에 따라 입고 벗을 수 없는 옷이란 어떤 이름으로 존재하든 폭력의 한 형태다.

한밤의 진정성

웨스트 윙 DVD들을 사서 시즌 3까지 보다 말았었다. 몇일 전, 친구가 ipod에 전 시즌을 넣어줬는데, 오늘에서야 다시 봤다. 시즌 1의 첫번째 에피소드부터.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생소한데, 몇몇 대사와 인물들은 서서히 귀와 눈에 들어온다.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인 대통령 마틴 쉰은 마지막 5분에서야 등장한다. 그리고 모든 혼란과 소요들을 단숨에 잠재운다. 전달하는 메세지는 단순하다.

"대통령이 바로 가장 큰 사람이란 것"이다.


한 기업의 사장이 그 기업을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통제하고, 가장 잘 이끄는 사람이란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우리 주변에는 경영능력과 상관없이 기업을 물려받은 재벌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 정권의 수장인 대통령이 실은 가장 뛰어난 정치력과 가장 선명한 이상의 소유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다행히, 우리도 바틀렛같은 대통령을 가져 보긴 했다. 그가 항상 옳았던 건 아니지만, 그에게는 감동이란 게 있었다.


Tuesday, December 15, 2009

인간의 유형

얼마전 한 후배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자존감 혹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가, 에 대해 논쟁했다. 후배는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다, 는 입장이었고, 나는 그런 사람은 많다, 는 입장이었다. 스노볼을 보면 워런 버핏이 B부인이라고 부르는 로즈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 부인은 제정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혈혈단신으로 건너온 여자다. 그녀가 어떤 식으로 미국으로 왔는지는 책에 자세하게 (그러나 몹시 건조하게) 묘사되어 있다. 중국을 거쳐 화물선에 몸을 싣고 천신만고 끝에 온 그녀는 수 십년 후, 자신의 가구점 제국을 이룩한다. 그녀가 소위 대형 할인가구점의 개념을 도입하여 가구를 팔자, 그녀의 가게 때문에 매출이 줄어든 백화점들은 화가 단단히 났지만 그녀에게는 철학이 있었다. 그 철학이란 "사람들이 자기를 불쌍하게 여기는 것보다 자기를 미워하게 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었다.

버핏은 그녀의 가구회사를 인수한다. "버핏은 단지 또 한명의 비범한 인물을 자기 목록에 추가한 것만이 아니었다. B부인이 가지고 있던 불굴의 의지, 그녀가 걸었던 고난의 역사, 그리고 그녀의 비범한 성격이 지녔던 힘 등이 버핏을 경외심으로 사로잡았다"고 스노볼은 쓰고 있다. 재밌는 것은 괴팍하기 짝이 없는 그 노부인이 회사를 넘긴 이후 손자들과 불화하자, 홧김에 또 다른 가구회사를 세워버렸다는 것이고, 문제는 그 회사가 너무 잘 되었다는 것이다. 버핏은 부리나케 달려가, 손자와 할머니를 화해시키고, 그녀의 매장을 빌리는 값으로만 500만 달러를 지급하겠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아흔아홉 살 노인을 상대로 비경쟁 조항에 싸인하게 만든다. 어떻게 보면 어처구니없는 노릇이었지만, 철저하게 현실적인 버핏은 99살의 할머니도 치명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불공평한 시스템의 희생자라고 쉽게 생각해버린다. 그런 생각은 너무나 유감스럽다. 왜냐면, 너무나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들의 대부분은 이 더럽게 불공평한 운명의 희생자일 것이다. 이러한 운명을 제도적으로 개선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총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 노력은 계급간의, 인종간의, 그리고 성별간의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연대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적인 차원의 노력 이전에, 우리는 그러한 운명을 개선하기 위한 개인적 노력 또한 기울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을 존중해야 한다. 왜냐면, 그러한 노력없이는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주체적인 삶 없이는 어떤 제도적 도움이 있다고 해도 인간은 행복해질 수 없다. 사회적인 불의와 폭력을 개인적 노력만으로 극복하라는 이데올로기의 허구를 밝히는 노력과 개인적 노력으로 사회적 불의와 폭력과 운명의 불공평함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동등하게 높게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구체적으로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문제의 근원적 심각성은, 그 방법을 누구도 가슴에 와닿게 가르쳐 줄 수 없다는 데 있다.

그것은 마치 김태희에게 연기하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없는 것과 같다. 스스로 깨닫지 않는 한, 누구도 어떤 언어와 방법을 동원해도, 그걸 가르쳐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자. 사람들은 커피 전문점에서 일하는 걸 우습게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시간을 때우고, 시간당 수입을 벌어갈 뿐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다르게 행동하고 생각한다. 왜 이 시간대에 사람이 몰리는지, 왜 특정 성별이 많은지, 왜 특정 컵이 없어지는지, 왜 특정 제품이 잘 팔리는지, 왜 특정 아가씨에게는 웃어주는 남자가 많은지 그리고 그게 커피 판매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왜 특정 매장은 잘 되는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원동력은 살아야겠다는 본능 이전에 호기심이다.

강훈이란 사람이 있다. 요새 한창 많이 생기고 있는 커피 베네라는 커피 체인점의 사장이다. 그가 신세계 백화점의 일개 직원일 때, 스타박스를 도입하기 위해 미국으로 파견되어 연수를 받는다. 외환위기 때문에 도입을 꾸물거리는 백화점을 뛰쳐나와 "할리스"라는 커피 집을 차린다. 그것을 2백억인가에 팔고, 그는 3년을 쉰다. 물론, 동종업계에서 일하지 못하게 한 계약관계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계약관계가 끝나자 커피 베네를 시작한다. 마치 99살의 할머니 B 부인처럼, 그는 커피 베네를 시작한다. 한예슬의 얼굴을 한 커피 베네가 궁극으로 망할지 성공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떤 쪽이든, 그는 신세계에 남아 있는 것보다는 훨씬 만족스러울 것이다. 그는 이미 홀리스로 벌만큼 벌었고, 그는 커피 산업에 관한 전문가다. 그의 머리속에 들어 있는 건 누구도 훔쳐가지 못한다.

사람들은 취직을 하려고 목을 맨다. 회사에서 짤릴까 전전긍긍한다. 당연한 일이다. 인류의 99%는 그렇게 산다. 그걸 비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평생 어떤 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자신이 일한 산업에 대한 총제적 이해가 없어서, 짤릴까봐 전전긍긍하는 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미래가 슬퍼서가 아니라, 그렇게 덧없이 산 과거가 슬퍼서다. 도대체 지난 수 십년 동안 어떻게 그 힘들고 지루한 삶을 버텼을까?

진짜 교육의 문제


SAS의 회장인 Jim Goodnight이 조선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미국은 새로운 아이디어나 제품 혁신과 관련된 감(感)을 잃어가고 있다. 가령 전기자동차만 봐도 배터리는 미국이 아닌 한국·중국에서 대부분 생산되고 있다. 미국이 힘을 되찾으려면 현재의 교육 시스템을 전폭적으로 개혁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선 아이들을 하루 12시간 이상 교육하고, 배움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킨다고 들었다. 지금 아시아의 인재들이 혁신과 창의력 분야에서 큰 성과를 내는 것을 미국은 경고로 느껴야 한다."

오바마가 한국의 교육열에서는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할 때, 한국인들은 "오바마가 한국을 너무 모른다"고 생각한다. 짐 굿나이트 회장의 말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교육제도에 얼마나 불만인지 모르고, 저들은 저렇게 순진한 소리를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물론,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하루에 12시간씩 공부를 하는 게 정상은 아니다. 내 젊은 날을 떠올려 봤을 때, 나도 그렇게 잔인하게 많은 시간을 공부하라고 강요당했다. 하지만, 강요당하는 것과 실제로 그렇게 하는 건 별개다. 나는 내가 알아서 잘 놀았다. 하지만, 강요당하는 바람에 스스로 자문하고 노력해서 배우는 것도 꽤 많았다. 그렇지만 어쨌건 학교에서 배울만 한 것은 별로 없었다. 선생들을 불신했던 탓이다. 내 주위에는 선생보다 뛰어난 학생이 있었고, 나는 그들에게 더 많이 배웠다.

한국이 이 정도로 성장한 이유는 훌륭한 인적자본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공부를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미국처럼 소수의 "nerd에 가까운 천재"(폴 크루그만과 빌 게이츠는 모두 너드였다)가 나라를 이끌어가는 곳에서 나머지 사람들이 학창시절에 가장 몰입하는 게 뭘까? 주어진 자유와 에너지를 과연 무엇을 위해서 쓸까? 물론 그들도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지만, 우리보다 그들이 절대적으로 확실하게 몰입하는 건 바로 "섹스"다. 우리나라 고등학생을 입시지옥에서 풀어줘봤자, 그들이 그다지 생산성적인 일을 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미국 학생들이 그렇듯이 그들도 예민해진 본능에 충실하려고 할 뿐이다. 대부분의 평범한 학생은 공부대신 섹스할 것이다.

공부대신 섹스에 몰입하는 게 그럼 나쁘냐? 물론,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나쁠 건 없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란 것이다 다만 그게 총체적으로 모이면, 나라가 부실해진다는 데 문제점이 있을 뿐이다. 그럼 그건 나쁘냐? 개인이 가장 젊고 아름다운 시절에 공부와 일 대신 섹스에 몰입하는 게, 설령 조금 덜 배가 부르게 되더라도, 나쁜 일이냐? 그건 국가적 가치관의 문제다. 브라질같은 나라도 있고, 일본같은 나라도 있고, 프랑스 같은 나라도 있으니까. 다만 우리에게는 브라질이 가진 천연자원이 없고, 프랑스같이 훌륭한 조상(다른 나라들을 약탈해준 광폭한 그러나 자손들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없이 훌륭한 조상)도 없다. 다만 무지하게 더운 여름과 겁나게 추운 겨울과 석유 한방울 나지 않는 척박함과 중국과 일본과 러시아라는 까칠한 이웃이 있을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핀란드"를 닮자고 이야기한다 그곳에는 경쟁없이도 높은 학업 성취도를 뽑낸다. 잘 생각해보자. 왜 그곳은 높은 학업성취도를 갖는가. 우리의 낮은 학업 성취도는 투입(많은 공부량)에 비해서 (지적) 산출물이 부실하다는데 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창의성보다는 암기 위주의 학습에서 찾는다. 하지만, 암기와 주입식 교육이 아이들을 위해서는 아주 효율적인 학습방법이라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도 이미 입증된 바다. (이 책을 참고- "Daniel Coyle- The Talent Code: Greatness Isn't Born. It's Grown. Here's How.") 문제는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주입식 교육을 제대로 할 능력이 없는 교사의 수준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에겐 훌륭한 교사가 없는가? 교사 임용시험은 그렇게 어려운데, 왜 그렇게 어려운 임용과정을 통해서 임명된 교사들은 (학원 강사들에 비해서) 후지다고 생각할까?

핀란드는 작은 나라다. 그 나라에서 노키아를 빼면 제대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역동적인 조직은 별로 없다. 주식시장도 작다. 큰 은행도 없다. 사회민주주의하에서 교사는 아주 좋은 직업이고, 많은 훌륭한 학생들이 교사를 지망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촉망받는 인재라면 교사를 하며 만족할 리가 없다. 제법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미 우리나라 교사의 월급도 방학을 감안하면 높다. 하지만, 나 역시 교사의 연봉이 1억이라도, 그걸 할 생각이 없다. 지루하고 지겨울 것이다. 딱히 사명감도 없는 주제에 그런 일을 할 자신이 없다.

한국의 교육열이 장점인가? 물론 그렇다. 한국의 교육제도가 문제가 없는가? 그건 아니다. 문제 투성이다.. 그렇다면 핀란드가 대안인가? 그건 아니다.

Saturday, December 12, 2009

부조화의 영화들

지난 이틀동안, 윤재구의 "시크릿"과 Gary Gray의 "모범시민"(Law abiding citizen)을 봤다. 나는 영화에 관대한 사람이다. 9,000원의 가치만 충족시켜주면, 더 이상 까다롭게 굴지 않는다. 이 두 영화 역시 9,000원의 값어치는 했다. 하지만, 아무리 지구가 멸망하고 친구 한명 없이 세상에 홀로 남는다고 해도, 이들 영화를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모든 게 비현실적인 등장인물들이 등장해서 역시 영화는 현실이 아니란 사실을 일깨워주고 끝나는 게 "시크릿"이고, 라면 한 그릇을 끓이기 위해서 주유소를 폭파시키던 모범시민 제라드 버클러는 결국 라면 한 숫가락 제대로 뜨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간다.

- 아무리 평소에 열등감에 사로잡혔다지만, 친구의 남편을 유혹한 다음에, 그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너 딸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사이코패스다.

- 친구가 사이코패스로 드러났는데, 거기에 화를 내면서 문을 걸어 잠구고 칼로 그 친구를 죽이는 여자도 역시 대단한 사이코패스다.

- 남편이 자기 친구와 바람을 피웠다고 살인을 청부하는 부인이 있을수도 있다. 특히, 딸이 그 사건 때문에 죽었으니까. 하지만, 그 정도 외모의 여자가, 그런 식으로 차려입고, 그런 장소에, 살인을 청부하러가는 여자는 아무리 사이코패스라도 너무 하는 거다.

-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의외로 옛날 비디오 보면서 울고 그러지 않는다. 6형제 중에서 둘과 남편까지 잃은 할머니는 천수를 누리고 사실 수 있었던 이유.

- 온갖 트릭과 명연기로 엘리트 경찰과 초특급 살인마를 속이고 마약을 빼돌릴 정도의 실력의 남자가 그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직전 너무 찌질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건 비현실적이다. 무림 최고수를 제압하기 직전에 동네 양아치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송윤아 정도의 여자가 빨간 색 메르세데스 쿠페 타고 살인청부하러 가는 건, 나 기억했다가 잡아 가세요, 하는 것과 다름없다. 누구든 선명하게 기억할테니까. 왜 그런 여자가 형사와 결혼을 했는지, 그 아파트와 자동차는 무슨 돈을 샀는지는 그냥 넘어가준다고 해도.

Thursday, December 10, 2009

학자의 존재감

Newsweek의 Evan Thomas가 "Obama’s Nobel Headache"에서 여전히 비판적인 진보진영의 크루그만을 다뤘다. 그는 은행 구제법안에 비판적이고(그는 은행들을 국유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에 대해서 비관적(이건 그의 정치적 성향과는 관계없는 그의 경제학적 직관)이다. 크루그만은 정치가가 아니다. 따라서, 그게 부시든 오바마든 사안에 따라서 비판할 수 있고, 자신이 누군가를 지지한다고해서, 옳지 않은 정책(그의 은행국유화 주장이 설득력이 있느냐 없느냐와는 별개로, 그가 그렇게 믿는다는 점에서) 에 대해서 함구한다면 그는 정치인이지 학자는 아니다.

이 기사에 나온 에피소드 하나. 1992년 클린턴의 당선 후, 리틀 락에서 클린턴이 크루그만에게 물었다.
"균형재정과 건강보험 개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까요?"
크루그만이 대답했다.
"아니요. 당신은 그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합니다"
나중에 크루그만은 자신의 그 대답이 잘못됐다고 말했다. 클린턴이 로라 타이슨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그녀가 한 대답이 맞는 대답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었다.
"둘 다 가능합니다. 당신은 케이크를 가질 수도 있지만, 먹을 수도 있죠"
그 뒤로, 로라 타이슨은 클린턴의 경제자문회의의 의장으로 임명됐다. (Thomas가 이 코멘트에 대해서 로라 타이슨에게 확인을 요청했지만, 반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놀랍지 않다.)

부모가 모두 U.Penn의 경제학 교수였고, 삼촌은 폴 새뮤얼슨(새뮤얼슨도 형을 따라 성을 summers로 고쳤다고 함), 그리고 외삼촌은 케네스 애로우 (그러니까 삼촌과 외삼촌을 노벨상 수상자였다)였던 래리 서머스와는 달리, 가난한 러시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공부만 생각하는 nerd로, 아시모프의 공상소설에서 위안을 찾았던 보잘것 없는 소년이 경제학자로서는 노벨상을 받았고, 칼럼니스트로서는 지난 8년간 부시의 가장 큰 골치거리였다. 어쨌든 그는 (엘리트 코스를 거쳐 정책에 직접 개입하는) 서머스와는 다른 경로를 살았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Wednesday, December 09, 2009

폴 크루그만, The Conscience of a liberal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질서를 근간으로 한다는 국가 이데올로기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모든 사람이 인종이나 계급 혹은 성별에 관계 없이 모두 한표씩의 권리를 행사하는 민주주의 원칙과 사유재산제도를 근간으로 부자와 빈자의 존재를 긍정하는 자본주의는 정책과 제도 그리고 법률을 매개로 매번 충돌한다. 원칙적으로 말하면,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책을 부자는 부자를 위한 정책을 지지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지지하는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지지하는 부자들이 존재한다. 아마도, 전자는 무지 때문이고, 후자는 이타심 때문일 것이다. 무지한 빈자가 지지하는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추구하는 곳이 대체로 우파정당이고, 이타적인 부자가 지지하는 것은 좌파정당일 것이다. 물론,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제대로 된 좌파정당도 드물고, 부자들을 위한 제대로 된 우파정당도 드물다. 좌파정당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해를 미치는 정책을 추구하는 무지를 드러내는 경우가 빈번하고, 우파정당은 극단적인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을 추구해 자신들을 지지해준 중산층의 가슴의 상처를 입힌다.

크루그만의 이 책은 두 가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첫째는 미국에서 악화된 경제적 불평등이 현재의 정치적 양극화를 낳은 것이 아니라, 정치적 양극화가 소득의 불평등을 가져온 것은 아닐까? 둘째는 어떻게 소득의 불평등과 경제적 불평등을 가져오는 인기없는 정책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제도하에서 일관적으로 지지될 수 있었는가?

크루그만은 1870년부터 뉴딜정책이 등장한 1930년대까지를 도금시대라고 부른다.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이 이 시대의 특징이다. 이 시대는 막대한 부가 축적되면서 소득격차는 커지고, 가난한 노동자들은 늘어났지만, 소수의 부자들은 최소한의 세금만 냈다. 같은 시기의 독일에서 노인연금, 실헙보험, 국민의료보험 등의 제도가 도입되었고, 프랑스와 영국에서도 미국의 몇 배에 달하는 공적지원제도가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그러한 제도들이 고려되지 않았다. 크루그만은 그 이유를 다음 세 가지로 본다. 첫째, 다수의 미국 노동자들에게 선거권이 없었다. 즉, 미국 전체인구의 1/4에 달하는 이민자와 남주 흑인들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둘째는 민주당이 공화당에 비해서 선거자금면에서 절대적 열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세째는 선거부정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양당모두 선거 부정을 저질렀다.

이러한 도금시대를 종식시킨 것은 대공황이었다. 대공황 이전부터 좀 더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결정적 전환점은 역시 대공황이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개혁을 주도하기에 적절한 인물이었다. 경제사상가인 클라우디아 골딘과 로버트 마고는 1920-50년 미국에서 부유층과 노동자 계급의 차이가 줄고 노동자간의 임금차도 줄어든 현상을 대압착이라고 불렀다. 루즈벨트와 트루먼은 30년대의 보수주의자들의 반발을 무시하고, 소득과 부의 재분배를 극적으로 성공시켰다. 보수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대압착에도 불구하고 미국경제는 망가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향후 호황의 기반을 마련했다.

대압착의 시대가 끝났을 무렵, 50년대의 미국은 부유층의 소득이 줄었고, 소득 격차가 크게 줄었다. 사이먼 쿠즈네츠는 전후 미국 사회에서 소득분배가 대공황 이전보다 훨씬 평등해졌음을 입증했다. 그런데 이런 결과는 객관적인 시장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정치로 인한 것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평등화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면 질수록, 평등화는 객관적인 시장에 힘에 의한 점진적 반응이 아니라 정치적 힘의 균형의 급작스런 변화에서 기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부자들의 소득이 급감한 이유는 소득원천이 투자자본에서 노동으로 이동했기 떄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세금" 때문이었다. 투자자본에 의해 높은 세금이 부과되었고, 소득에 대한 세율조차 누진적으로 높게 적용되었다. 뉴딜정책은 부자들의 "소득 상당 부분, 어쩌면 거의 전부를 세금으로 거두어갔다"(69) 그리고 대압착시대가 시작된 이후 40년대 중반에서 70년대 중반까지의 30년 동안 육체노동자들은 황금기를 맞았고, 노동조합의 부활과 세계 대전이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기인했다. 루스벨트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연방정부는 노동자들의 노조를 조직할 수 있는 권리의 수호했고, 노조에 관한 정부정책이 180도 달라지면서 노조의 비약적인 발전이 가능했다. 물론, 리처드 프리만의 주장처럼 대공황으로 인한 임금삭감에 노동자들이 노조운동으로 대항한 결과일 수도 있다. 어쨌든 노조는 노조원들 뿐 아니라 비노조원들의 임금도 인상시켰다. 노조가입을 막으려면 임금인상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 2차 대전은 소득분배 평등화의 결과로 작용했다. 물가안정을 위해 임금을 통제한 정부의 규정이 저소득 노동자들의 임금을 상대적으로 인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루스벨트와 트루만의 정책이 성공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29-33년의 대공황으로 보수주의 이념에 대한 믿음은 부서졌고 33년부터 시작된 경제회복은 뉴딜개혁에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둘째는 전쟁이 정부의 간섭과 개입을 꼭 필요한 상황으로 만들었고, 급진적 방법에 대한 회의론을 일축시켰다. 또 하나, 50년에는 남부 백인들이 민주당을 지지했던 시기다. 그들이 민주당을 지지한 데는 민주당이 경제적 평등을 주장했지만, 한편 암묵적으로 짐 그로법을 인정했기 매문이었다. 남부는 미국에서 특별히 가난했고, 뉴딜의 혜택도 크게 받지 못했다. (경제적으로 가난하면서도 인종차별적인 남부 백인들의 행태가 미국 정치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들은 트루만의 단일지불체계의 국민의료제도보험을 좌절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것이 각 지역 병원에 인종차별폐지를 강요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1948-70년대쯤까지 뉴딜정책은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의 의견일치를 이끌어냈다. 양당의 경제정책에 큰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혁신적인 세금정책이 상류층의 부를 제한했지만, 그들에게 저항할 정치적인 힘이 없었다. 사회보장제도와 실헙보험은 절대적인 제도로 자리잡았고, 메디케어도 결국 그렇게 되었다. (105) 강력한 노조도 미국 사회의 일부로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이러한 균형은 1970년대 들어와 무너졌다. 크루그만은 공화당을 장악한 보수주의 운동의 씨앗이 린든 존슨(민주당)이 골드워터(공화당)을 누르고 당선된 1964년과 닉슨(공화당)이 조지 맥거번(민주당)을 누르고 승리한 1972년 사이에 뿌려졌다고 본다. 이 시기의 미국인의 다수는 경제번영이 가져온 만족감보다 미국 사회가 무너지고 있다는 불안감이 더 크게 작용했던 시기다. 범죄, 폭동, 마약, 혼전 성관계가 주는 공포감 그리고 민권운동과 그로 인한 변화에 대한 백인들의 반발을 공화당이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이용할지 배우게 된 것이다. 65년 존슨의 투표권법(Voting Rights Act) 제정이란 결단으로 인종 차별의 역사는 종지부를 찍었지만, 민권운동에 대한 낮은 인식과 기승을 부리는 소요사태가 맞물려 그 결과 보수주의 운동은 백안관과 연방의회를 모두 장악했다.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백인들의 반발과 공산주의에 대한 미국인들의 과대망상이라는 정서에 호소하는 두 가지 방법을 택했다. (크루그만의 표현이 재밌다. "캐나다인들은 그들 정부가 왜 캐나다의 뜻대로 세계를 이끌어나가지 못하는지 의아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미국을 위협하는 이들을 간단히 무력으로 제거할 수 있다고 너무 쉽게 생각했고, 이를 막아려는 이는 좋게 말하면 나약하고 나쁘게 말하면 반역자라고 간주해 버렸다"- 139-) 이런 보수주의 운동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낸 것은 경제계였다. 초기 보수주의 운동을 지원한 것은 노조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소규모 사기업이었다. 백화점 같은 중소기업 경영주들은 외국기업과 경쟁할 필요가 없어 추가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는 자동차업체나 다른 기업들과는 달랐다. 그들은 커져가는 노조의 요구에 분개했고, 위협적이라고 느꼈다. 반노동조합주의자들은 보수주의 운동의 첫번째 지지기반이었다.

신보수주 운동에 대한 지식인 계층의 지지는 밀턴 프리드만이 주축인 시카고 경제학자들과 어비 크리스톨이 이끌던 사회학자들로부터 왔다. 대공황의 기억이 사라지면서, 경기침체를 극복하하려면 때로는 정부의 역할 확대와 개입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1960년대 초반이 되자, 프리드만은 대공황이 시장 붕괴가 아니라, 정부 정책의 실패로 야기되었다고 주장했다. 크루그만은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했고, 지적인 양심과 비양심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지만, 이렇게 첨언했다. 프리드먼처럼 "뛰어난 경제학자들이 시장원리를 고집하기 위해 속임수라도 쓰고 싶게 만다는 것만 봐도 자유시장원리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헤리티지 재단, 케이토 연구소와 같은 보수주의 연구조직들이 생겨났다. 1960년대 말과 70년 초 사이, 신보수주의 지식인들이 부유층과 기업과들을 설득해 투자를 종용했다. 그리고 정해진 틀에 맞는 연구결과만 발표했다. 그리고 공급경제학이 만들어졌다. 공급경제학은 이론이 옳아서가 아니라, 단지 정치적으로 유용했기 때문에 주장되었다.

종전 후의 경기호황은 70년대 원유가격의 상승과 통제 불가능한 물가상승, 생산성 하락이 불러온 경제위기와 함께 끝났다. (160) 1980년대 들어서 위기는 끝났지만, 일반 노동자 한명의 생산성은 거의 50% 정도 향상되었지만, 소득은 점점 더 극소수에게만 집중되기 시작했다. 2005년 물가상승률을 활용한 정규직 남성가장의 소득 중앙값은 1973년보다 약간 낮아졌다. (163) 미국 사회는 예전에는 가장 뛰어나고 똑똑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게 후한 보상을 했지만, 지금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후한 보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두 가지 가능한 설명은 첫째, 세계화와 더불어 기술변화 떄문에 숙련된 노동자들에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두번째, 제도와 규범 그리고 정치권력의 변화가 주된 원인이다.

첫번째 설명은 숙련 노동자들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킨 기술발전이 소득 불균형을 악화시켰다는 가설(SBTC: skill-biased techincal change)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설명은 컴퓨터의 사용이란 시대상황과 잘 맞았고, 규범과 정칙권력이 아닌 수요와 공급만으로 설명이 가능해 경제학자들에게 익숙했으며, 불균형의 증가는 보이지 않는 손(기술)의 작용일 뿐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란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기술발전이 소득 불균형을 초래했다는 주장의 증거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크루그만의 말대로, 기술의 효과를 측정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방법이 사용되었다. 소득 불균형이 증가한 원인이 국제무역, 이민, 그리고 기술 때문이라고 하면 무역과 이민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은 모두 기술로 원인을 돌리는 식이었다. 하버드의 George Borja와 Larry Katz의 연구에 의하면, 이민 때문에 줄어든 소득은 어떤 계층에도 5% 미만이었다. 게다가 국제무역은 기껏해야 저학력 노동자와 고학력 노동자 간의 소득격차를 설명하는 데 그쳤다. 고학력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른 것은 맞지만, 생산성의 상승에는 미치지 못했던 현상을 설명하지 못했다.

결국 SBTC라는 불분명한 가설보다는 제도와 사회규범의 변화가 소득 불균형을 확대시켰다는 게 크루그만의 주장이다. 이유는 1) 현재의 소득불균형의 상황이 불균형이 완화된 1930-40년의 대압착시대를 연관짓게 만든다. 2) 선진국중에서 예외적으로 불균형이 급속하게 증가한 미국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다. 크루그만이 인용한 많은 경제학자들(MIT의 프랭크 레비와 피터 테민 등)은 30년와 40년대 불균형을 제한하는 사회적 규범과 제도가 70년대에 무너지면서 불균형을 초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왜 유럽 선진국과 달리 유독 미국에서만 이러한 불평등이 심화되었는가를 잘 설명해준다. 유럽에서는 노조가 여전히 강력하고, 과도한 소득에 대해 비판적이며, 노동자들의 권리가 중시된다.

그렇다면, 불평등을 유발시킨 사회규범과 제도의 변화는 어디서 시작된 것인가? 크루그만은 그 해답을 정치에서 찾는다. 그는 노동조합의 몰락을 예로 든다. 왜 노조가 몰락했는가? 통상적인 대답은 노동인구 구조의 변화였다. 제조업의 쇠퇴로 인해 노조가 몰락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왜 외국과의 경쟁이 없는 월마트에는 노조가 없는가? 그것은 70년대부터 기업들이 강경한 조치를 통해서 노조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크루그만의 주장에 의하면, 70년대 말과 80년대 초에 노조지지 노동자의 20명 중 적어도 한 명 (다른 추정치에 의하면 8명중 한 명)이 해고되었다. 특히 레이건의 당선이후 반노동조합운동은 활기를 얻었고, 다른 서방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노동조합운동의 몰락이 전개되었다. 그러면 보수주의 운동은 어떻게 강력한 힘을 얻게 되었을까?

크루그만은 먼저 양당의 분열이 어떤 성격인지 이해해보고, 그 원인을 이해하자고 한다. 1) 왜 공화당은 소득 불균형이 급증하고, 중산층과 빈곤층의 복지를 위해 부유층으로부터 세금을 거두는 정책이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시기에 복지국가를 무너뜨리려는 운동을 시작했을까? 2) 그렇다면, 그렇게 인기없을 수 없는 정책을 내세우면서도 선거에 여러 번 승리할 수 있었을까?

과도기적인 인물이었던 닉슨은 보수주의 운동의 정치전략을 사용했지만, 경제와 환경문제에 관한 진보적인 정책(74년의 종합의료보험계획Comprehensive Health Insurance Plan, 최저한도세Alternative minimum tax를 포함한 세금인상 등)으로 통치했다. 최초의 보수주의 운동진영의 대통령은 레이건이었지만, 그는 임기 중 2년을 빼면 민주당이 다수당인 하원을 상대해야 했고, 나머지 2년도 온건파 공화당 상원의원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레이건은 사회보장제도의 재원 조성을 위해 세금을 인상해야했다. 공화당이 극단주의로 흐른 것은 레이건 이후였다. 심지어 90년대 공화당은 상위 10%의 부유층이 96%를 내는 상속세를 폐지하려하려는 시도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리고 2001년 부시의 세금인하는 상속세의 단계적 폐지조항을 포함했다.

크루그만은 첫번째 질문에 대한 해답은 쉽게 찾는다. 새로운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엘리트 그룹, 열렬한 반공주의자, 노조와 협상하는 데 진력이 난 사업가, 미국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분노와 해외안보에 대한 불안, 그리고 정치적인 조작능력이 총체적으로 결합한 것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소 허무하게도) 남부백인들이 공화당을 뽑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미국의 예외주의(exceptionalism)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인종이라고 결론 맺은 것은 하버드의 경제학자 Alberto Alesina, Edward Claeser, and Bruce Sacerdote의 최근의 체계적인 연구에서도 드러난다. 트루만이 도입하려고 했던 전국민 대상의 의료보험은 미국의학협회와 남부 백인들의 반대로 실패했다. 수혜자일 수 있었던 백인의 반대는 병원에서의 인종차별이 폐지될까 봐 두려운 그들의 인종주의 때문이었다. (국가안보나 종교는 인종만큼 중요한 역할 하지는 못한다고 크루그만은 본다. 전쟁을 위해 감수해야하는 세금인상과 부당이득단속이 보수주의 운동과 양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종교적인 백인도 그만큼 늘어나고 있다. 양쪽이 팽팽하면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절대적인 영향력은 약하다)

그러니까, 크루그만이 내린 결론은 이렇다. (그리고 이 결론은 한국에도 무시무시한 함의를 준다) "보수주의 운동의 기반을 이루고, 거대한 우익 음모론이 실제로 이루어지며, 서로 밀접하게 연계된 조직들 덕분에 보수주의 운동은 공화당을 장악하고 정책을 오른쪽으로 급격히 전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역에서 유권자들은 극우화된 공화당을 외면했고, 점차 민주당으로 표심이 옳아갔다. 그렇지만, 공화당은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고 결국 의회까지 지배하게 되었다. 이는 공화당이 남부지방에서 이기기 위해서 인종문제를 교묘하게 이용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공비결의 전부다." (231) 그런데 크루그만은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도대체 남부 백인들은 공화당이 실제로 무엇을 해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231) (이러한 크루그만의 질문은 이렇게 바꾸면 한국정치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도대체, 경상도의 노동자들은 한나라당이 실제로 무엇을 해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크루그먼은 2006년 민주당의 승리가 우연이 아니라고 말한다. 평등을 추구하는 새로운 추구에 대한 국민적 요구의 결과라는 것이다. 국민들은 소득 불균형의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이에 대해서 정부가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256) 그리고 크루그만은 이 새로운 요구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왜? 1) 우선, 경기가 회복되면서 경제적인 문제가 정치적인 힘을 잃었던 94년과는 달리, 지금은 경제에 대한 불만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2) 두번째, 그동안의 효력을 보였던 인종주의가 점차 위력을 잃고 있다. 미국의 백인이 감소하고 있고 특히 백인들 중에서도 인종차별주의자가 많이 줄고 있다. 크루그만은 특히 백인이 아닌 이민자들과 미국의 인종주의를 둘러싼 정치의 상호작용이 보수주의의 강력한 무기를 무력화 시켰다고 본다. (263) 즉, 기업들은 이민을 옹호하지만, 인종주의 유권자들은 이민을 반대한다. 이는 지지세력안의 분열을 의미한다.

자, 이제 장황한 설명을 끝내야 할 때다. 크루그만은 민주당 정권이 세상을 제대로 돌려놓기 위해 의료보험제로를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당위성에 대해서 한참 설명한다. 이것은 이 책의 11장을 참조하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정서적 핵심

"나는 상대적으로 평등한 사회가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서는 극심한 빈부격차를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민주주의와 시민의 자유, 그리고 법치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진보주의자이며, 나는 그것이 자랑스럽다"

Tuesday, December 08, 2009

낙관론자 vs. 비관론자


메릴린치BOA(이하 걍 메릴-""2010: Only the beginning")와 도이치가 World outlook에서 내년도 세계경제가 4.4%(이하 모두 yer-to-year chang vs. -0.8%)와 3.9%(vs. -1.1%)씩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렇게 말하면, 감이 안 올텐데, 메릴의 내년도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가 3.2%(-vs. 2.5%)고, 도이치의 전망치는 3.6%(vs. -2.5%)다. 올해 성장률이 -2.5%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굉장히 좋은 숫자다. 한국의 경우 올해 성장률이 +0.3%(메릴 추정) 정도인데, 내년도 메릴의 전망치는 +4.9%다. KDI의 +5.5% 보다는 낮지만, 결코 낮은 숫자는 아니다. 물론 이런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골드만 삭스가 전망하는 내년("The Federal Fnds Rate-How Low for How Long?")도 미국의 성장률은 2.1%. 특히 하반기 성장률은 1.5%밖에 안 된다.

나는 그럴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지만, 골드만 삭스의 주장이 맞다면, 연준은 내년은 물론이고 2011년까지도 정책금리를 올리지 않을 수도 있다. (골드만은 테일러 룰에 근거해서 상당기간 연준이 실질정책금리는 -로 가져가야 한다고 본다. chart 참조) 그런 성장률이라면, 미국의 core CPI는 1% 근처일 것이고, 실업률은 10% 내외일 것이다. 연준으로서는 서둘 이유가 없다. 대신, 재정정책을 서서히 긴축으로 가져갈 것이고, 자산 매입을 줄이면서 양적 완화를 끝낼 것이다. 골드만의 연준정책에 대한 자신들 전망의 리스크로 1) 성장률이 예상보다 훨씬 좋은 경우 2) 자산가격이 급등하는 경우를 들고 있는데, 후자는 내가 보기에도 별로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다음 세가지를 쓸데 없는 걱정(bugbears)라고 무시하는데, 1) 달러 폭락 2) 잠재성장률의 급락 3) 인플레이션 창궐, 이다.

골드만이 맞든 안 맞든 세 가지 중에 둘은 나도 별로 걱정을 안 하지만,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다소 유보적이다. 골드만의 주장처럼 인플레이션은 수요측에서 올 가능성은 높지 않더라도, 비용측면에서 올 가능성을 완벽하게 배제할 수 없다. 디플레이션에 비하자면, 인플레이션은 중앙은행의 입장에서는 다루기 편한 놈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을 다루는 과정은 고통스럽다. 자산가격은 꺼질 것이고, 원자재와 메탈 가격은 하락할 것이고, 원자재와 메탈 수출국의 통화는 약해질 것이다. 따라서, 0%의 기준금리가 조정되는 시점은, 인플레이션과 고용이 회복될 때고, 그 때 미국 경기는 좋겠지만, 자산가격은 좋은 경기와는 별개로 힘을 못 쓸 가능성이 높다. 결론은 버블을 즐기려면 다음 2년 동안이 최적이라는 것.

Monday, December 07, 2009

The price of privacy

타이거 우즈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자신이 잘못하긴 했지만, 자신의 사생활은 보호받아야 한다고 썼다. 원칙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뉴욕 타임즈가 "Does Tigher Wood have right to privacy?"에서 이 문제에 대한 여러 의견을 다뤘다. U of Penn의 아니타 알렌이 말한 것처럼 타이거 우즈는 기독교계의 도덕적 리더였다가 간통사실을 시인했던 재시 잭슨(Jesse Jackson) 목사가 아니다. 그는 단지 골프 선수일 뿐이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공허하다. 왜냐면, 그들의 명성은 필연적으로 호기심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fame breeds curiosity) 게다가, 18개의 공을 홀에 넣는 행위(골프라는 스포츠)를 해서 10억불 이상의 돈을 벌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그 대중의 호기심이다. 게다가, 이제는 디지털 카메라, 휴대폰 그리고 블로그들이 24시간 유명인을 감시하고 있다. 빠져나갈 현실적인 방법은 사실상 없다.

예전에 하루키가 한 말이 생각난다. 자신이 텔레비젼 쇼에 나가지 않는 이유는 익명성을 갖고 싶어서라고- 신문 인터뷰는 아무리해도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데, TV는 단 몇 초만 나가도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생긴다, 고 말했다.

익명성의 편익을 누리려면 다른 걸 잃어야 한다. 김연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몇 개의 광고를 찍고 수십 억을 벌었다. 사생활이 일일이 공개되고, 한국에서 시합하는 게 다른 나라에서 하는 것 보다 몇 배는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을 불평해봤자 소용없을 것이다. 김연아가 그 돈을 벌게 된 이유는 스케이트를 잘 타서가 아니라, 결국 사람들의 호기심 때문이니까. (그림은 브리트니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을 보여주는 클립)

시장 예상을 상회한 비농업고용


미국의 11월 비농업 고용이 -1.1만건 줄었다. 시장 예상인 -12만건 보다 훨씬 좋은 숫자고 2007년 12월 이후로는 제일 좋다. 시장보다 좋을 것이라고 봤던 내 예상(-5만건 정도)보다 더 좋았다. 덕분에 미국 채권금리는 만기별로 9~11bp 정도 올랐다. 이전에 언급했듯이, 고용과 인플레이션만 미국의 지나치게 낮은 금리를 지지하고 있었는데, 고용개선의 폭이 깜짝 놀랄만큼 좋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미국의 고용회복에 대해서, 미심쩍은 눈길이 많다. 연준도 당분간 그런 태도를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취할 것이다. 하지만, 내심은 조금 다를 것이다. 고용지표의 디테일을 보면 확연히 좋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선 디테일이 좋다. 11월만 좋은 게 아니라, 10월 숫자도 -19만건에서 -11만건으로, 9월 숫자도 -21.9만건에서 -13.9만건으로 수정되면서 질적으로 좋아졌다. 이번 달에 좋아진 것도, 5.2만건의 임시직 고용이 늘어난 영향이 큰데, 임시직 고용이니까 질이 나쁜 게 아니라, 기업들이 일단 임시직을 늘리고 정규직을 늘린다는 것을 감안하면, 외려 좋은 시그널이다. 아마도, 계절 조정 요인을 빼도, 확연히 고용은 좋아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선행지표들인 ISM 고용지표나 주간실업청구 건수에서 이러한 추세를 확연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2010년초반까지 고용지표는 계속 좋게 나온다, 고 봐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Saturday, December 05, 2009

prenup의 경제학


결혼생활을 10년간 유지해야 2천만 달러를 주기로 혼전계약(Prenuptial agreements)을 했던 타이거 우즈가 7년만 더 결혼생활을 유지하면 8천만 달러를 주기로 계약을 바꾼다는 말이 있나 보다.
에스콰이어의 Sean Cunningham이 "7 Marriages That Can Teach Tiger (and You) About Saving Money"에서 타이거 우즈를 비꼬면서, prenup이 있었던 7개의 결혼을 언급했다.

1. Michael Douglas and Catherine Zeta-Jones (2000): 섹스중독이었던 마이클 더글라스는 캐서린에게 바람피면 5백만불, 매년 280만불을 주기로 했다. 현재까지 줘야 하는 돈이 무려 2800만불.
2. Elizabeth Taylor and Larry Fortensky (1991): 8번째 결혼 이후, 공사장 노동자와 결혼했는데, 그는 5년 뒤 이혼하면서 달랑 백만불을 받았다.
3. Steven Spielberg and Amy Irving (1985): prenup을 냅킨에 적는 바람에 천만 달러를 위자료로 줬던 스필버그의 재산은 금방 회복해서 지금은 재산은 30억불.
4. Tom Cruise and Katie Holmes (2006): 2006년에 결혼한 홈즈가 11년 간 결혼을 유지하면 탐 크루즈의 2500만불 재산의 절반은 홈즈 것이 된다. 그 전까지는 매년 3백만불.
5. Russell Crowe and Danielle Spencer (2003): 3년 동안 결혼이 유지되어야 1500만불을 받을 수 있었는데, 맥 라이언과의 스캔들로 한 때 물건너갈 뻔 했다.
6. Teresa Heinz and John Kerry (1995): prenup을 맺은 첫번째 대통령 후보가 된 존 케리. 테레사 하인즈가 남편의 비행기 사고로 받은 유산은 5억불.
7. Charlie Sheen and Denise Richards (2002): 간통시 4백만불을 지급한다는 규정을 가진 prenup을 맺었지만, 이혼과정은 좀 지저분했던 모양이다. 드니스는 찰리 쉰이 도박, 마약, 매춘 중독이라고 소장에서 언급.
타이거 우즈 사건을 생각하면서 빌 클린턴과 휴 그랜트의 얼굴을 떠올리는 게 비단 나 뿐일까?

무라카미 하루키/가와이 하야오, 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


스노볼 2권과 더글러스 모크의 "More than kin and less than kind" 그리고 하비 콕스의 "the future of faith"를 읽다가, 좀 머리가 쉴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이 책을 들었다. 그리고, 2시간만에 다 읽었다. 가볍게 읽기에 좋은 책이지만, 이상하게 들리지만, 내용은 결코 쉽지 않다. 생각해 볼만한 내용이 있다. 동등한 위치에서의 대화가 아니라, 소설가 하루키가 심리학자 하야오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가르침을 구하는 듯한 느낌이 있는데, 역시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서 그런지, 하야오는 그런 티를 전혀 내지 않는다.

가와이 하야오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현실에서도 밀고 나가려는 일관성을 보인다. 예를 들어서, 그는 인간이란 어떤 식으로는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져야한다, 고 믿는다. 그의 믿음에 따르면, 하루키에게는 그것이 (다행히도) 우연히 글을 쓰는 행위였던 것 뿐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서, 예컨대 살인을 함으로만 가능한 사람도 있다. 살인을 해서 치유될 수 밖에 없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지만, 심리학자인 자신으로서는 "어떻게든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 의문을 제기하며 궁리한다. 그는 그것을 "살인의 상징적 실현을 사회적으로 허용된 형태로 해나가는 것"이라고 부른다.

그는 결혼도 일종의 자기표현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듯 하다. (물론 표현은 좀 달랐다. 하루키는 "부부란 일종의 상호 치료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다. 그는 "엄청나게 많이 있지요. 그래서 괴로움도 그만큼 심한 것 아니겠습니까? 부부가 서로 이해하려면 이성만으로 대화해서는 안 됩니다. '우물'을 파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결혼해서 부부가 되는가를 말한다면, 괴로워하기 위해서, '우물 파기'를 하기 위해서라는 게 내 결론입니다. 우물 파기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까 뭐 꼭 결혼하지 않다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라고 대답한다) 그의 설명과 나의 해석에 의하면, 결혼이 '우물 파기'가 되는 이유는 남편과 부인이 모두 결혼을 자기표현의 방식 혹은 상호치료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아무도 이해하지 않고, 결혼을 '로맨틱 러브'의 결과로 포장한다. 일본의 경우보다는 미국의 경우가 심한 것 같다, 는 게 그의 주장이다.

결혼의 심리학적 매카니즘이 로맨틱 러브가 아니라는 그의 분석은 공감가는 면이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믿고 싶어하는 부분이지 결혼의 본질은 아니다. 물론 우리는 인간이고, 인간은 문명이란 외양을 입고 있기 때문에, 로맨틱한 러브도 버릴래야 버릴 수 없지만.

어쨌든 하루키는 이런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10년 동안 조금씩 성장하다가, 결국 <1q84>라는 소설을 썼다. 이 대담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역시 하야오 선생의 다음 문장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아사하라 쇼코(옴진리교 교주)같은 사람도 치유될 가능성이 있습니까?
가와이 하야오/ 그건 어떤 상담자를 만나는가에 따라 다르겠지요. 결국은 그릇이 어떤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그 사람보다 내 그릇이 크면 치유할 수 있고, 그의 그릇이 크다면 불가능하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정말로 인간 대 인간의 승부입니다. 여섯 살짜리 아이라도 나보다 그릇이 크면 내가 지게 됩니다.

굉장히 솔직하고, 겸손하며, 깊이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다. 비관료 출신으로 드물게 문화청 장관을 지냈고, 2번의 유임요청을 받고 4년간 일했다. 2007년 7월 79세의 나이로 죽었다.

Friday, December 04, 2009

85엔이 엔화의 바닥일 가능성


엔화 가치가 최근 8월개월 동안 10% 이상 상승했다. 작년 연말 환율수준이다. 88.21엔. 일본정부의 시장 개입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보고서들이 슬슬 나오고 있다. 오늘 모건 스탠리에서도 "Intervention risks rising in USD/JPY"란 보고서를 Sophia Drossos가 냈다. 이런 보고서를 냈다는 것은 결국 엔/달러 환율이 대충 바닥을 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시장 개입이 추세를 바꿀 수는 없지만, 추세가 바뀔 무렵에 개입을 하면 효과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 개입을 해야 할까?

Sophia Drossos는 정부 입장에서 개입을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은 대충 네 가지라고 설명한다. 1) 상대적인 성장율 전망에 대한 시장의 오판(market mispricing of relative growth outlooks) 2) 실질환율이 역사적인 추세에서 너무 벗어나는 것(significant deviation of the real exchange rate from historic trend) 3) 시장 포지션의 쏠림 (excessive market positioning) 4) 환율 움직임의 모멘텀 증가 (increased momentum in exchange rate moves) 그에 의하면, 일본정부가 개입에 나설 가능성은 매우 높다. (물론 개입이 당장 있지는 않을 거라고 발을 빼긴 한다) 논의를 단순화하자면, 네 가지 조건이 상당히 충족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올해, 일본 정부가 엔화 절상에 대해 특별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것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부산물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위험회피와 디레버리징 움직임의 결과다. 그리고 엔화는 달러에 비해서는 강해졌지만, 브라질이나 호주같은 원자재 통화보다는 약세였다. 하지만, 일본 경제의 전망은 지금으로 봐선 별로 밝지 않고, 엔화가 더 절상되면 일본 경제는 힘들어진다. 다른 선진국들도 자국 통화가 너무 절상되었다는 인식도 하고 있고, 이것은 정부의 절하노력에 비판적이지 않을 것이란 말도 된다. 사실, 일본의 가장 큰 고민인 디플레이션 극복을 위해서 환율의 절하 노력은 양적환화의 강화(추가적인 국채매입)나 금리인하(내릴 것도 얼마 없긴 하지만) 보다도 더 적절한 선택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문제는 개입이 효과를 보려면 추세를 거스려서는 안 된다는데 있다.

모건 스탠리는 09년 말 85엔인 엔/달러 환율이 10년 말에는 100엔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본다. (이 하우스의 Stepen Hull도 이런 맥락의 보고서 "Time to fund in Yen insated of Dollar?"란 보고서를 냈다) 일본 정부는 2003년부터 2004년 초까지 개입을 했지만, 추세를 바꾼 것은 2004년 말이 되면서였다. 아마도, 엔화 환율이 상승을 본격화하는 것은 다른 나라들이 금리를 인상할 때, 일본은 디플레이션 때문에 가만히 있거나 오히려 인하를 해야 하기 때일 것이다. 이 논리가 맞다면, 그것은 내년 2분기 말과 3분기초가 될 것이다.

오늘 밤 고용지표


오늘 밤 나올 미국의 비농업 고용지표는 고용과 인플레이션이 중앙은행의 행동을 막고 있는 상황에서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의미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미국의 비농업고용은 5월의 -30.3만건, 6월 -46.3만건을 기록한 이후, 계속 개선되고 있다. 지난 10월 비농업고용은 -19만건이었는데, 이번은 -10만건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잠재성장률인 3% 성장을 가능하게 해주는 고용증가가 약 10만건 정도임을 감안하면, 오늘 밤 미국의 비농업고용이 예상치인 -12만 건 이하로 줄어든다면, 시장에는 다소 큰 의미를 줄 것이다.


이번 비농업고용이 개선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우선, 계절조정효과 때문이다. 아마도, 이러한 계절조정효과(seasonal adjustment)는 비농업고용 뿐 아니라, 실업률의 하락으로도 나타날 것이다. (전월 10%, 이번달 컨센서스 10.2%, 비농업고용 컨센서스는 -12만건) 그렇다면, 계절조정 효과 때문에 나타나는 고용 회복은 가짜인 것일까? 아마도 아닐 가능성이 높다. 최근의 다른 고용지표를 보면, ADP 데이터의 숫자들은 부진했지만, 주간 실업청구건수나 ISM의 고용데이타를 보면 상당한 고용회복이 진전되었기 때문이다. (주간실업청구 건수의 4주 이동평균은 1.4만 건이 줄어서 48.1만건이 됐다. 2008년 11월 1일 이후 가장 낮은 숫자다)

Thursday, December 03, 2009

무라카미 하루키, 1Q84


<상실의 시대> 이후, 하루키가 쓴 가장 완벽한 소설. 완벽한 소설이란 말은, 문학적으로 완벽하다는 말이 아니다. 작가가 쓰려는 의도에 비춰 봐서, 더 이상 늘릴 것도 줄일 것도 고칠 것도 없는 소설이란 말이다. <상실의 시대>는 그 자체로 완벽한 박자와 리듬을 가졌다. 그런 소설은 읽고, 또 읽을 수록 차분해진다. 어느 언어로 읽던 그 차분하게 가라앉는 느낌은 똑같다. 이 소설, <1q84>도 어느 정도 그렇다. 다만, 상실의 시대보다는 덜 완벽한 대신, 더 자의식이 강하다. 그래서, 캐릭터들은 작가의 의지에 의해서 힘이 주입되고, 꿈틀거린다. 모든 캐릭터들은 자신들을 묘사하는 압도적인 문장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그리고 두려움이란 것을 알지 못한다. 자신의 직감을 믿고, 일단 마음을 정하면, 그것을 관철한다"- 174, 1Q84-

, 라고 노부인을 묘사한 부분. 이 한 줄로 노부인이 무엇인지는 자명해졌다. 관념적인 단어들을 조합해서 살아있는 존재를 실재적으로 묘사하는 스타일은 하루키가 아니면 누구도 부자연스럽다.

그리고 보니, 노부인은 이렇게 자신을 덧붙였다.

"알다시피 나는 지극히 신중한 사람이에요. 우연이나 달콤한 전망이나 행운 같은 것에 기대지 않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보다 온건한 가능성을 탐색하고, 도저히 가능성이 없다고 판명되었을 때에만 "그것"을 선택하지요.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행할 때에는 생각할 수 있는 온갖 리스크를 제거합니다. 모든 요소를 세세하고도 면말하게 검토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이제 괜찮겠다는 확신이 선 뒤에 당신에게 부탁합니다. 그러니 지금까지는 문제라고 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이 문단만 떼어 놓고 본다면, 마치 워런 버핏이 하는 말 같다.

하지만, 이것은 하루키 소설이고 그녀는 워런 버핏이 아니라 살인을 교사하는 노부인이다.

"그 순간, 폭력적인 사념이 강력한 전류처럼 아오마메의 살갗을 뚫고 지나갔다. 포니테일의 손이 쓰윽 뻗어나와 그녀의 오른 팔을 잡으려 했다. 그것은 신속하고 정확한 동작일 터였다. 공중의 파리를 잡을 수 있을 정도의 신속함. 그런 생생한 순간의 낌새가 엄습해왔다. 온몸의 근육익 긴장했다. 소름이 돋고 심장이 한 박자씩 건너뛰었다. 숨이 차오르고 등에는 얼음벌레가 기어갔다. 강한 백열광 세례가 아오마메의 의식에 쏟아졌다. 지금 이 사람에게 오른 팔을 잡히게 된다면 권총은 잡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내게 승산은 없다. 이 남자는 감지하고 있다. 내가 뭔가를 했다는 것을. 방 안에서 "뭔가"가 일어났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인지하고 있다.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심히 부적절한 일이. 그의 본능은 "이 여자를 잡아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바닥에 넘어뜨려 힘껏 체중을 싣고 우선 어깨 관절부터 빼버리라고 지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직감에 불과하다. 확증은 없다. 단순한 착각일 경우, 지독히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그는 격렬하게 망설이고, 그리고 결국 포기했다."

이 문장이 하루키라는 인간의 깊이를 말해준다. 경험하지 않고도,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다는 건 기적이다. 하루키가 그저 그런 통속소설의 작가라고 생각하는 유종호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문장을 쓰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우리 아빠는 빈 라덴


오사마 빈 라덴의 아들인 오마르 빈 라덴이 쓴 책 Growing up bin Laden: Osama's wife and son take us inside their secre world란 책에서 베니티 페어가 "My Father, the Terrorist"란 제목으로 발췌했다. 아버지에 대한 순전히 개인적 기억들은 나열하고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테러리스트가 어떤 유형의 인간인지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되지만, 그 밖에 용도로는 그다지 유용하지 않을 것 같다. 오마르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몹시 단편적이지만 일관적인 구석이 있다.

신(神)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믿고, 코란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줄줄 외웠을 정도로 종교적인 사람이었고, 성욕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17살에 결혼해서 20명의 자식을 두었으며(배고픔을 잊기 위해 매일 하겐다스 아이스크림과 초코렛을 20개씩 먹은 남자와 비슷한 거 같기도 하다), 아들들에게는 엄격했지만, 부인과 딸들에게는 큰 소리 한번 지른 적 없는 사람이었다. 계산기보다 더 정확한 산수실력을 뽑냈고(사막 사람들이니 이런 걸 자랑할만도 하다), 이슬람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냉장고를 못 쓰게 할 정도로 꽉 막힌 사람이었지만, 축구를 몹시 좋아해서 축구공만 보면 입이 귀에 걸렸던 사람이었다. 이런 아버지에 대해, 오마르는 자신의 아버지가 한 끔찍한 일은 사과하지만, 자신에게 아버지는 정말 산과 같이 우뚝한 존재였다고 고백한다. 20명이나 되는 아들 중에 하나였으니, 그럴만도 하다.

일부다처제가 결과가 20명의 아이들일수도 있단 사실을 가끔 잊는다. 세뱃돈 만원씩 주면 20만원이다.

Wednesday, December 02, 2009

미국의 형법적 정의- 범죄의 경제학

약 230만명의 미국인이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 1인당 수감 비율은 캐나다의 6배, 프랑스의 8배, 일본의 12배고, 다른 어떤 나라 보다도 압도적으로 많다. 러시아나 벨라루스보다 40%는 더 많다. 무엇보다도 수감된 사람들의 50%는 한 종류의 사람들이다. 가난한 젊은 흑인. 흑인의 인구는 전체의 인구의 13%밖에 안 되지만, 백인 수감률의 8배나 된다. 백인과 흑인은 불평등하다. 고용률은 2대 1, 비혼인 출산률은 3배 1, 영아사망률은 2대 1, 자산의 규모는 5대 1로 불평등하다. 하지만, 수감률에 비할바는 못 된다.

이러한 불평등은 1950년대 분리주의가 횡횡하던 시절보다 심해진 것일까. 놀랍지만, 대답은 "그렇다", 다. 그 당시 흑인들은 전체 수감자중에서 30% 밖에 안 됐다. 60년이 지난 지금 흑인과 라티노들을 빼면 수감자들은 30%밖에 남지 않는다. 1965년과 1969년 사이에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중태한 흑인의 60%는 감옥에 한번 이상 다녀왔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부모가 감옥에 있는 아이들이 커서 감옥에 갈 가능성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7배나 높다. 인종적으로 흑인이나 히스패닉, 그리고 낮은 교육수준과 소득수준 그리고 게토에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이 감옥을 다 채운다. 흑인 고등학교 중퇴자의 60%가 감옥에 가지만, 흑인 대졸자는 5%만 감옥에 간다. 하버드 교수인 Henry Louis Gate는 자기 집에 들어가려다 경찰에 체포됐다. 최조의 흑인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이 그 사건으로 경찰에 유감을 표시했다가 사과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David Cole은 "Can our shameful prisons be reformed"에서 미국 감옥의 현실에 대한 세 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Paul Butler라는 조지 워싱턴 법대 교수다. 시카고 남부의 가난한 싱글 맘 밑에서 성장한 그(물론 흑인이다)는, 예일학부와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후, 연방검사로 일한다. 그야 말로 아메리칸 드림이다. 그런데, 연방검사로 일하던 그가 주차장 문제로 이웃과 생긴 분쟁 때문에 수갑이 채워쳐서 체포되어 기소된다. 법정에서 경찰은 거짓말을 하고, 버틀러의 집주인은 증언을 거부한다. 이런 한심한 상황에서도 그는 배심원들에 의해 무죄로 풀려난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던 사회적 지위와 법지식 때문에 가능했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 사건이 그의 인생을 바꾼다. 그는 연방검사를 그만두고, 오늘날 미국을 지배하고 있는 형사적 정의에 대해 저항하는 데 투신하기로 결심한다.

1975년에 10만명당 100명에 불과했던 수감률이 35년 뒤에 700명으로 치솟은 것은 범죄율과는 상관이 없다. 처벌이 가혹해졌기 때문이다. 범죄에 엄격해지겠다는 정치적 슬로건, "three strikes law"등에 의해 처벌강도는 5배까지 올렸다. 그렇지만, 범죄율의 감소는 10%에 불과했다. 하버드의 사회학자인 Bruce Western의 주장이다. 1982년 레이건이 시도한 "마약과의 전쟁(war on drugs)"의 결과로 1980년 부터 1997년사이의 마약 관련자들의 수감되는 숫자는 1100% 증가했고, 비슷한 기간동안 수형자의 80%를 마약관련 범죄자들이 차지했다. 물론 백인 마약관련 수감자도 늘었다. 그렇지만 흑인 마약관련 수감자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경제학적으로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흑인들은 이미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사회적 지위에서 마약관련된 일로 생게를 유지하고 있다. 소위 비용-편익 분석에 의하면,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서 범죄의 비용이 늘어나면 범죄가 감소해야 한다. 하지만, 마약 관련된 일이 아니면,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가난한 흑인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결국, 흑인 수감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그런데, 비용-편익 분석에 의하면, 처참한 실패는 마약 범죄에 대한 형량을 크게 늘린 자들에게 왔다. 미국에서 한 명의 수감자를 수형하는데 드는 비용은 1년에 2만 달러다. 주립대학의 1년 등록금 보다 비싸다. 1980년에는 70억불을, 이제는 600억불을 지금의 수감제도를 유지하는데 쓴다. 경제적으로 터무니 없을 뿐, 아니라 윤리적으로 형편없는 정책적 선택이다. 이렇게 수감자가 늘어나니, 당연히 전과자도 늘어난다. 늘어나는 전과자가 다시 재수감될 확률도 엄청나게 높아졌다. 2008년 70만명이 석방되서, 3년 이내에 이중 47만 명이 재수감됐다. 이 뿐만이 아니다. 마약 범죄의 처벌이 강화되면서, 이전과 달리 마약과 관련된 다른 범죄들이 굉장히 잔혹해지고 빈번해졌다.

윤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이런 상황은 개선해 한다. 법적 타당성(ligitimacy of the criminal justice sytem)이 확보되지 않으면, 법을 지키고자 하는 인센티브가 사라진다. 그리고,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매년 석방되는 전과자들을 갱생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처벌이 아니라 갱생(rehabilitation)을 의도했던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그들이 사회로 돌아올 것이란 걸 전제로 교육(educate, train and counsel prisoners)해야 한다. 법을 지키면, 집과 직업과 건강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믿을 수 있어야 그들이 다시 죄를 짓지 않을 것이라고 Anthony Thomson(세 권의 책 중의 한권인 "Releasing prisoners, redeeming communities: Reentry, race, and politics"의 저자)은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집을 구하려해도, 직업을 구하려해도, 그들에 대한 차별은 공공연하게 이루어진다. 그는 이런 현실의 전환이 없는 한, 범죄와 수감의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도 없고, 전과가 없는 사람도 직업이 없는 마당에 이게 과연 가능할까?

이런 불평등을 개선할 단초는 내부적으로 조금씩 자라고 있기는 하다. 흑인과 히스패닉의 인구가 크게 늘어나면서 이들의 정치적 입김도 강해졌다. 결국 형량을 줄이고, 수형을 다른 처벌로 대신하려는 노력은 조금씩 현실화되고 있다. 2007년 대법원은 마약 소지에 대한 인종적 차별을 막기위해서 "sentencing guideline"을 정했고, 2009년 오바마 행정부는 연방법의 "crack-powder disparity"(백인들이 쓰는 마약인 powder cocaine코케인에 대한 형량은 가볍고 흑인들이 쓰는 싼 마약에 대한 형량은 무거운)를 없애는 시도를 했다. 투표권 박탈(felony disenfranchisement)에 대해서도 논의가 되고 있다. 약 1/8의 흑인들이 투표를 할 수 없고, 그것이 그들의 정치적 지위를 더 약화시킨다. 1997년 19개 주가 이법을 완화했고, 비록 아직 갈 길이 멀긴 해도, 약 5백만이 투표를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런 저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형법적 정의의 개선을 위해서 갈 길은 멀어 보인다.

경제적 비용을 논하기 앞서, 이렇게 숫자로 보이는 불평들을 용인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다. 이런 일이 생긴 이유는 결국 어설픈 비용-편익 분석과 인종적 편견에 의한 정책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쉬웠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흑인은 소수였으니까. 하지만, 그 많은 노력중의 일부는 오바마처럼 기득권을 버리고, 소위 "운동"에 투신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오바마가 당선되었을 때, 많은 흑인들이 흘린 눈물은 이런 현실을 알아야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남은 건 고용시장과 인플레이션


어제 발표된 미국의 ISM 제조업지수와 미국의 주택시장 지표를 보면 미국의 경제지표가 부진한 고용지표와 낮은 인플레이션만 아니면, 향후의 상당한 정도의 회복을 시사해줌을 알 수 있다. 비록 ISM이 10월 55.6에서 11월 53.6으로 떨어졌지만, 대부분의 수치가 여전히 견조하다. 특히, 고용 부문을 보면, 향후 고용지표도 나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는데, 이는 최근에 나온 주간실업청구건수의 호조로도 확인된다. ISM의 호조는 경기가 순간적으로 바닥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오면서 대부분의 기업들이 재고를 지나치게 소진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 때문에 생긴다. 이 효과가 얼마나 큰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큰데, 비관론자들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으로 보고, 나같은 사람은 상당히 큰 여파가 있을 것으로 본다.

어쨌든 어제 나온 지표로 보면, 제조업의 고용부진은 슬슬 바닥을 본 것 같다.

잠정주택지표와 기존주택지표를 보면, 주택시장의 계속적인 회복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무엇보다도, 전년동월비가 아니라, 전월비로도 플로스로 반전한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비록, 기존주택판매는 GDP에 반영되지는 않지만, 전체 주택판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50%가 넘는다. (거주용 부동산은 상당한 회복기조에 있지만, 상업용 부동산의 부진과 건설지출과 같은 신규 비지니스는 여전히 부진하다. 결국 재고가 다 처리되어야 이런 쪽의 회복이 본격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이런 지표들의 호전에도 불구하고, 낮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연준은 금리인상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목요일에 있을 버낸키의 증언은 이를 확인해줄텐데, 만약 조금이라도 낮은 금리에 대해서 불편한 모습을 보인다면, 시장은 패닉할 것이다.

Tuesday, December 01, 2009

이혼의 경제학


Vanity Fair가 Jon & Kate plus eight의 Jon & Kate Gasseline 부부에 대해서 냉소적인 기사를 "The Unreal Rise of Jon and Kate Gosselin"란 제목으로 실었다. 전례없이 미국의 거의 모든 타블로이드 신문을 수 주 동안 장식했던 이 부부의 이야기는 너무 전형적이어서 엽기적이다.

평범한 부부가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낳는다. 인공수정을 하면 필연적으로 여러 쌍동이가 수정되기 때문에 선택적인 사산을 시켜야 하는데, 독실한 기독교인인 존과 케이트는 그걸 거부하고, 전부 8명의 쌍동이를 두 차례에 걸쳐서 낳는다. 이 아이들과 이들 부부가 사는 모습을 "존과 케이트와 여덟아기"란 리얼리티 쇼로 방영하는데, 공전의 히트를 친다. 워낙 특이한 설정이었는데다, 이들 아기들이 굉장히 귀여웠던 탓이다.

문제는 이들이 회당 출연료가 치솟고, 케이트의 책이 히트를 치면서, 부부사이가 나빠졌다는 것이다. 결국 케이트는 자신의 보디가드와 염문을 뿌리고, 그게 파파라치들에게 들켜버린다. (웃기는 건, 그게 사실무근이란 걸 보디가드가 주장하는데, 본인이 직접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대변인을 통해서 한다) 원래 다소 진상 캐릭터였던 케이트는 돈이 생기면서 성형과 미용을 통해 환골탈태를 하는데, 그 와중에 동정을 받던 존도 알고보니 꽤 몰래 놀았다, 뭐 이런 흔하고 흔한 이야기다.

굳이 아까운 시간에 이 기사에 관해 쓰는 이유는 이들 부부의 이야기가, 내가 쓰고 있는 "이혼의 경제학"에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결혼할 때는 비슷했던 부부가, 갑자기 어떤 이유로 갑자기 환경이 확 변해버리면 같이 있던 배우자에게 만족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양쪽 다 좋아져도 그 모양인데, 한쪽이 너무 앞서 나가버리면, 다른 한쪽에게 여전한 사랑을 느끼기란 여간해서는 쉽지 않다.

왜 미국인은 반개입주의 성향을 갖는가?


New Republic의 John Judis가 "Anti-Statism in America -Why Americans hate to love government"에서 미국인들의 뿌리 깊은 반정부개입주의에 대해서 언급한다.

먼저 10월 8일에 실시한 여론 조사를 보자. 오바마가 추진하는 의료보험개혁안의 세부 내용에 대해서 여론 조사를 하면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다. 하지만, 오바마의 의료보험개혁안을 찬성하느냐 물으면, 반대가 찬성보다 더 많다. 그 이유를 여러가지 따져보지만, 결론은 하나. 정부가 의료보험을 좌지우지하는 게 싫다는 것이다. 즉, 미국인들은 정부의 도움을 원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정부를 좋아하지 않는다. (Americans are looking to the government for help, but they still don’t like the government) 게다가 이런 미국들의 성향은 의료보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금융위기 이후 금융산업을 규제하는 일에도 미국인들의 반감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토머스 제퍼슨과 앤드류 잭슨이 가졌던 소위 "Lockean liberalism"은 남북전쟁을 커치면서 자유방임(laissez-faire)이 미국의 번영을 위한 최선이라고 믿는 자유시장 보수주의로 변질된다. 그 뒤 19세가 말의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 시기에 이것은 다시 왼쪽으로 갔다가, 대공황과 듀딜을 거치면서 왼쪽에 대한 반감이 더 심해지면서 1965년도가 되면 대다수의 미국인들은(자신들이 자유주의자라고 믿는 16%는 그나마 대부분 흑인과 유대인이다) 자신들이 보수주의를 원한다고 믿게 된다.

물론 자유주의와 진보주의자들이 이러한 추세에 맞서서 개혁을 추구하고 성공한 적이 있기는 했다.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의 첫번째 임기,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Roosevelt)의 첫번째 임기, 린든 존슨(Lyndon Johnson)의 처음 2년, 그리고 리차드 닉슨(Richard Nixon)의 첫번째 임기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러 저러한 이유로 시장이 붕괴된 다음이다. 그럼, 당연히 떠올리게 되는 것은 어떻게 오바마가 정권을 잡게 되었는가, 일 것이다. 물론 서브 프라임과 리만이 무너지고 시장이 붕괴된 다음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시장이 회복되고 경기가 조금씩 좋아지는 모습을 보이자, 오바마의 의료보험개혁안이 통과되는 건 벌써부터 쉽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이 다수당인 의회지형도는 매우 유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경험으로 보자면, 오바마와 민주당이 취해야 하는 전략은 의료보험개혁이던 금융시장개혁이던 정부가 제도를 쥐고 흔들 것이란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이다. 설령 그게 옳은 일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경기가 좋고, 시장이 잘 기능할 때는 사람들이 우파적 성향을 갖고, 그것이 붕괴될 때 좌파적 성향을 갖게 되는 것은 놀랍지 않다. 그리고, '후불제 민주주의'를 보면 유시민도 그걸 잘 인식하고 있는 듯 한데, 그걸 현실정치에서 어찌 풀어내는가는 좀 다른 문제다.


위험에 처한 제국


하버드의 경제사학자인 Niall Ferguson이 뉴스위크에 기고한 "An Empire at Risk"에서 그가 펼친 주장은 아래 글에서의 논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재정적자를 늘리고 그게 지나치게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결국 두 가지 방법밖에는 없다, 는 것이다. 1) 부도를 내든지 아니면 2) 돈의 가치가 떨어뜨리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달러가 기축통화기 때문에 부도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따라서, 연준이 통화를 찍어서 인플레를 유발해서 부채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싶은 유혹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라는 것이다. 이 경우, 채무자들이 곤란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퍼거슨도 바보가 아니니까, 지금 논점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란 것 쯤은 알고 있다. 지금처럼 고용시장이 나쁘고, 노조가 교섭력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수요측에서 인플레이션이 생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만, 향후에 인플레이션이 생기고 명목 이자율이 높아지면, 부채를 상환해야 하는 가계의 부담도 커질 것이고, 원래 역사는 그런 경로를 밟아서 강대국이 쇄망했다는 주장을 펼친다.

퍼거슨은 이 문제를 갖고, 경기부양의 강도를 더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크루그만과 공개적인 논쟁을 한 적이 있다. 크루그만의 "너 바보 아니냐"는 태도에 퍼거슨이 발끈했지만, 퍼거슨의 문제제기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 이 시점에서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빈사상태에 빠진 경제를 강력한 재정정책으로 살려서, 회복된 경기가 미국의 재정을 회복시키는 방법(클린턴의 8년 세월 동안 이룩했던 재정회복) 뿐이란 게 크루그만 입장이었고, 그것에 계속 의문을 제기하는 퍼거슨은 크루그만 눈에는 "경제학의 기본도 모르는 자" 쯤으로 보였을 것이다. 약한 재정정책은 재정만 나쁘게 만들고, 경기를 장기적인 침체에 빠뜨리며, 보통 사람들의 채무상환 부담을 더 늘린다. 따라서, 크루그만 같은 사람들에게 재정정책을 쓰느냐 안 쓰느냐는 논점이 아니다. 그 정책이 올바른 디테일을 갖고 있느냐는 좀 다른 문제겠지만.

두바이 사태


두바이 사태가 어떻게 진정될 것인가. 이것은 1) 국가부도의 시작인가 2) 상업 부동산 거품 붕괴에 불과할 뿐인가 3) 동떨어진 이벤트에 불과할 뿐인가. 크루그만은 2)와 3)의 어느 쯤인가에 서 있다.

두바이 사태를 낙관하는 이들은 두바이의 부채를 아부 다비가 해결해 줄 것이라 믿는다. 문화적 정치적 사촌이 정서적으로 해결해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두바이가 이지경이 되도록 왜 아부 다비가 방치했는가, 하는 부분인데, 향후 처리 비용이 더 커짐에도 불구하고 아부 다비가 두바이의 모라토리움을 방치했다는 사실이 초기의 불확실성을 키운 것도 사실이다. 아부 다비가 가진 잉여자금은 7천억불이고, 두바이가 가진 해외채권은 모두 1000억불이다. 해결하려면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아부 다비가 두바이의 부채를 해결하는 방식은 채무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부 다비의 입장에서는 "reschedule"을 유도하면, 자신들이 여유가 있을 때까지 늦춰서 갚으면 그만이니까.

두바이의 인구는 140만명이다. 그런데 대외부채는 1000억불. 1200억불로 알려진 UAE의 전체 대외부채의 거의 대부분이다. 한 가구당 부채가 250만불이다. 이것이 과연 한 도시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의 부채인가.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이런 글로벌한 버블이 두바이 때문에 한방에 꺼질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큰 그림으로 보면, 글로벌 자산 버블이 꺼지려는 것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막은 상태다. 즉, 민간의 레버리지를 정부의 레버리지로 바꿔놓은 것이다. 정부는 미래로부터 재정을 끌어서 지금의 수요를 뒷받침하고 있다. 정부는 은행(가계의 빛을 뒤집어 쓴)의 채무를 보증해주고, 그 돈은 자산시장으로 흘러 들어가서 가격을 지지해 주고 있다. 이런 기본적인 골조에 이상이 가려면, 정부의 지불 능력에 회의를 품거나(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정부가 나서서 자금을 회수해야 한다. 후자가 현실화되려면 결국 중앙은행이 출구전략을 시행하면서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지금 인플레이션 압력은 심하지 않고, 연준은 당분간 적극적인 금리인상에 나설 생각이 없다. 결국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시화될 때까지 자산 버블, 특히 신흥시장의 자산버블은 커져갈 것이고, 바꿔 말하면, 한쪽의 리스크는 점점 커질 것이다. 물론, 시간이 그다지 남지 않았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이번 사태가 국가 부도사태의 시작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루비니가 대표적인 비관론자다.

왜 명문대학에 가기가 어려워졌는가

스탠포드 경제학과의 Caroline Hoxby 교수의 "The Changing Selectivity of American Colleges"은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우선, 왜 미국의 명문대학에 들어가기가 그토록 어려워졌는가? 글로벌화로 전세계의 인재들이 미국의 명문대학을 노린다. 따라서 이제는 로컬 대학에 만족했던 미국 학생들도 명문대학을 지원한다. 결과적으로 1962년에 상위 5%에 속하는 대학에 들어가려면 입학시험 성적이 상위 10%에 들어야 했던 것이 2007년에는 상위 2%에 들어야 하게 되었다. 반면 그 밑 대학들은 오히려 들어가기가 더 쉬워졌다. 더 재밌는 설명이 뒤 따른다.

Hoxby에 따르면 하버드 등의 명문 대학의 경우, 학교에 내는 돈보다 학교에서 받는 편익이 더 커졌다. 명문대학이 학생 한 명 당 졸업까지 쓰는 비용은 1967년부터 2007년까지 연 13% 늘어난 반면 학비는 고작 연 6% 상승했다. 재단이나 동창들로부터의 기부금으로 등록금보다 더 많은 편익을 베풀기 때문이다. 명문대학의 등록금이 엄청나게 비싸보이지만, 편익에 비하면 별 것 아니란 뜻이다. 그건 졸업 이후에 받게 되는 급여와는 완전 별개의 문제다. 따라서, 재단의 튼튼한 사립학교를 가는 건 괜찮은 선택이란 뜻이 된다.

이 논문이 한국 대학에 주는 함의는 뭘까?

결과적으로 한국의 경우에도, 명문대 가기가 더 어려워졌다. 대신 대학 일반에 가기는 더 쉬워졌다. 전체 대학정원은 학생수에 비해서 늘었지만, 명문대 입학의 방법 자체가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한국 명문대들도 미국 명문대들과 경쟁하기 위해서 학교의 질을 급격히 높였다.

연말까지 bull flattenig


Fixed Income Monthly - November 2009: A Year-End Bull Flattening (Summary by Swarnali Ahmed, Francesco Garzarelli, Michael Vaknin)에서 골드만 삭스는 이렇게 주장한다."지난 수 개월 동안 미국 채권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불 스티프닝. 채권 금리는 3.4%에서 20비피 내외에서 움직였다. 산업쪽의 지표는 좋고, 물가는 안정되어 있고, 설비는 아직 남아 돈다. 내년까지 정책 금리인상이 없다고 보니까, 3-6개월 채권을 사서 들고 가는 게 좋다 주장해 왔다. 이제 연말이 되면서, 발행도 줄고, 인플레 우려도 줄고, 국채매입 중단에 대란 우려도 줄면 채권이 강세를 보일 것이다. 3월 만기 10년 선물을 118-06에 사서, 116-00에 스탑. 이익실현은 112-00."3%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