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December 15, 2009

인간의 유형

얼마전 한 후배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자존감 혹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가, 에 대해 논쟁했다. 후배는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다, 는 입장이었고, 나는 그런 사람은 많다, 는 입장이었다. 스노볼을 보면 워런 버핏이 B부인이라고 부르는 로즈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 부인은 제정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혈혈단신으로 건너온 여자다. 그녀가 어떤 식으로 미국으로 왔는지는 책에 자세하게 (그러나 몹시 건조하게) 묘사되어 있다. 중국을 거쳐 화물선에 몸을 싣고 천신만고 끝에 온 그녀는 수 십년 후, 자신의 가구점 제국을 이룩한다. 그녀가 소위 대형 할인가구점의 개념을 도입하여 가구를 팔자, 그녀의 가게 때문에 매출이 줄어든 백화점들은 화가 단단히 났지만 그녀에게는 철학이 있었다. 그 철학이란 "사람들이 자기를 불쌍하게 여기는 것보다 자기를 미워하게 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었다.

버핏은 그녀의 가구회사를 인수한다. "버핏은 단지 또 한명의 비범한 인물을 자기 목록에 추가한 것만이 아니었다. B부인이 가지고 있던 불굴의 의지, 그녀가 걸었던 고난의 역사, 그리고 그녀의 비범한 성격이 지녔던 힘 등이 버핏을 경외심으로 사로잡았다"고 스노볼은 쓰고 있다. 재밌는 것은 괴팍하기 짝이 없는 그 노부인이 회사를 넘긴 이후 손자들과 불화하자, 홧김에 또 다른 가구회사를 세워버렸다는 것이고, 문제는 그 회사가 너무 잘 되었다는 것이다. 버핏은 부리나케 달려가, 손자와 할머니를 화해시키고, 그녀의 매장을 빌리는 값으로만 500만 달러를 지급하겠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아흔아홉 살 노인을 상대로 비경쟁 조항에 싸인하게 만든다. 어떻게 보면 어처구니없는 노릇이었지만, 철저하게 현실적인 버핏은 99살의 할머니도 치명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불공평한 시스템의 희생자라고 쉽게 생각해버린다. 그런 생각은 너무나 유감스럽다. 왜냐면, 너무나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들의 대부분은 이 더럽게 불공평한 운명의 희생자일 것이다. 이러한 운명을 제도적으로 개선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총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 노력은 계급간의, 인종간의, 그리고 성별간의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연대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적인 차원의 노력 이전에, 우리는 그러한 운명을 개선하기 위한 개인적 노력 또한 기울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을 존중해야 한다. 왜냐면, 그러한 노력없이는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주체적인 삶 없이는 어떤 제도적 도움이 있다고 해도 인간은 행복해질 수 없다. 사회적인 불의와 폭력을 개인적 노력만으로 극복하라는 이데올로기의 허구를 밝히는 노력과 개인적 노력으로 사회적 불의와 폭력과 운명의 불공평함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동등하게 높게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구체적으로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문제의 근원적 심각성은, 그 방법을 누구도 가슴에 와닿게 가르쳐 줄 수 없다는 데 있다.

그것은 마치 김태희에게 연기하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없는 것과 같다. 스스로 깨닫지 않는 한, 누구도 어떤 언어와 방법을 동원해도, 그걸 가르쳐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자. 사람들은 커피 전문점에서 일하는 걸 우습게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시간을 때우고, 시간당 수입을 벌어갈 뿐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다르게 행동하고 생각한다. 왜 이 시간대에 사람이 몰리는지, 왜 특정 성별이 많은지, 왜 특정 컵이 없어지는지, 왜 특정 제품이 잘 팔리는지, 왜 특정 아가씨에게는 웃어주는 남자가 많은지 그리고 그게 커피 판매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왜 특정 매장은 잘 되는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원동력은 살아야겠다는 본능 이전에 호기심이다.

강훈이란 사람이 있다. 요새 한창 많이 생기고 있는 커피 베네라는 커피 체인점의 사장이다. 그가 신세계 백화점의 일개 직원일 때, 스타박스를 도입하기 위해 미국으로 파견되어 연수를 받는다. 외환위기 때문에 도입을 꾸물거리는 백화점을 뛰쳐나와 "할리스"라는 커피 집을 차린다. 그것을 2백억인가에 팔고, 그는 3년을 쉰다. 물론, 동종업계에서 일하지 못하게 한 계약관계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계약관계가 끝나자 커피 베네를 시작한다. 마치 99살의 할머니 B 부인처럼, 그는 커피 베네를 시작한다. 한예슬의 얼굴을 한 커피 베네가 궁극으로 망할지 성공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떤 쪽이든, 그는 신세계에 남아 있는 것보다는 훨씬 만족스러울 것이다. 그는 이미 홀리스로 벌만큼 벌었고, 그는 커피 산업에 관한 전문가다. 그의 머리속에 들어 있는 건 누구도 훔쳐가지 못한다.

사람들은 취직을 하려고 목을 맨다. 회사에서 짤릴까 전전긍긍한다. 당연한 일이다. 인류의 99%는 그렇게 산다. 그걸 비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평생 어떤 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자신이 일한 산업에 대한 총제적 이해가 없어서, 짤릴까봐 전전긍긍하는 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미래가 슬퍼서가 아니라, 그렇게 덧없이 산 과거가 슬퍼서다. 도대체 지난 수 십년 동안 어떻게 그 힘들고 지루한 삶을 버텼을까?

7 개의 댓글:

  1. 언제나처럼 좋은 글 잘 읽엇습니다. 정말 공감가는 말씀들로 가득차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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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잘 읽었습니다만, 링크에 나와 있는 기사에는 카페베네의 사장이 '강훈'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김선권은 카페베네의 오너라고 하는군요. 별로 중요한 오류도 아닌데 괜히 지적질 하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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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익명/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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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요즘 글이 점점 더 좋아지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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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정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제 싸이 월드 미니 홈피의 일촌 공개 전용 다이어리에 스크랩 해 가도 될런지요?

    출처와 작성자, 이 블로그 주소도 같이 하단에 포스팅 하겠습니다. 원하시면 제 미니홈피 주소도 메일로 남겨드리구요.

    윤허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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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Lee/
    미니홈피 주소까지 공개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출처만 잘 밝혀주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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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12.1.1 잘 읽고 갑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계를 잘 이해하는것 진정한 성공의 단초는 거기에서부터 출발 하지 않을까 합니다.. from es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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