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une 19, 2015

마지막 글

2009년 12월 처음으로 포스팅 했던 블로그를 닫고 새로운 곳으로 옮깁니다. 트레이딩, 책읽기, 글쓰기 등 모든 개인적인 작업이 다른 블로그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블로그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제게는 아주 소모적이 되어버렸습니다. 당연히 글도 자주 쓰지 않게 되었고. 그래서 모바일 버전을 만들어 유료 블로그를 개편하면서 그곳에 한 귀퉁이를 빌려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블로그를 열었습니다. 몇 개의 글을 천천히 올려보았는데 제게는 훨씬 편안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제 글을 행여 좋아하셨던 분들이라면 그곳에서 제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회원 가입만 하면 자유롭게 읽고 댓글을 달 수 있습니다. 물론 일정 기간이 지난 유료 블로그의 글들도 볼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블로그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blog.kimdongjo.com
http://kimdongjo.com/blog

결과적으로는 페이스북이 질주하고 블로그가 따라가는 시대에 홈페이지형 블로그를 고집하는 흐름이 되어 버렸지만 사적이고 편안한 느낌이 들어 저는 만족합니다. 지난 5년 간 썼던 글들은 그대로 놔둘 예정이고 새로운 블로그로 옮기지 않을 겁니다. 벌써 5년이란 시간이 지났다는 게 놀라운 뿐입니다.

블로그에 쓴 첫 번째 글은 <생각이냐 마음이냐>입니다. 두 번째 글은  <아메리칸 쉐프, 존 파브로>입니다. 그리고 이 글이 이 블로그의 마지막 글입니다.



Tuesday, June 09, 2015

메르스와 박원순

김동조와 신기주의 팀블로그 <잡담>에 새 글 <박원순과 메르스>를 포스팅 했습니다. 이틀 연속으로 포스팅하긴 처음인데 두 사람의 견해가 이번처럼 다르기도 처음인 듯 합니다.

메르스와 박원순

제로 금리를 허하라

김동조와 신기주의 팀블로그 <잡담>에 오랜만에 새글을 포스팅 했습니다.

제목은 <제로 금리를 허하라>

Thursday, May 28, 2015

정치인의 말

1.
문재인이 안철수에게 혁신위원장을 제안했다. 문재인은 안철수를 너무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너무 잘 알았던 것일까. 안철수는 제안을  거부했다. 안철수는 아마도 혁신이 성공하면 혁신의 결과는 문재인이 가져가고 혁신이 실패하면 그 책임은 온전히 자신이 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안철수의 셈법은 틀렸다. 옳은 선택의 결과는 옳은 선택을 한 자가 온전히 갖는다. 혁신이 옳은 것이라면 온갖 협잡과 방해에 의한 방해는 혁신하는 자에게 전혀 방해물이 되지 못한다. 협잡과 방해야 말로 혁신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옳은 방법으로 혁신하다가 협잡과 방해에 의해 실패하는 것이야 말로 정치인들의 꿈이어야 한다. 그런 꿈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꾸는 것이고 안철수에게는 그런 꿈이 없는 듯 하다. 안철수가 그럴 것으로 미리 알아서 문재인이 혁신 위원장을 제안한 게 아니라면 문재인의 제안은 실패한 것이다. 안철수는 이제 더 멀리 가버렸다. 문재인은 선한 것인가 무능한 것인가 나는 혼란스럽다.

2.
노무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6주기를 맞아 유족 인사말을 하는 도중에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하나는 나라 걱정. 노무현 대통령 사후 7년 한국은 편안하지 못하다. 거의 모든 면에서 한국 경제와 한국 사회는 퇴행중이다. 그의 지적은 온당하다. 둘째는 그 자리에 참석한 김무성 대표에 대한 비판. 나는 김무성 대표 과거 언행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해서는 안 되는 발언들을 너무 많이 했다. 거기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많은 발언들이 포함된다.

나는 노건호의 나라걱정에 동의하고 지지한다. 지금 이 나라 정치인들은 해야될 말을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너무 많이 한다. 토론은 없고 선언만 있으며 근거는 없고 성토만 난무한다. 나는 노건호의 김무성 비판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김무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신, 나라면 천정배와 정동영을 적나라하게 잘근잘근 비판했을 것이다. 나는 무소속으로 광주와 관악에 출마한 그들을 이해할 수 없고 그들에 온정적인 문재인 대표에 동의할 수 없다. 특히 야당에서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가 무소속으로 출마를 한 정동영의 모습을 보면 너무나도 좌절스럽다.

3.
석탄일 전후로 연휴 기간 동안에 김대중 자서전을 다시 읽었다. 김대중이란 인물을 대단하게 평가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그의 언어 때문이다. 그 책은 사실을 '취사'하고 있지만 적어도 그의 언어는 온전히 그 자신의 것이다. 그래서 그 문장들은 힘과 감동이 있다. 정치인의 언어가 점점 힘을 잃는 이유는 자신의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판에 막힌 말을 한다. 진짜 화가 나야하는 사안에 대해서 자신의 관점이 없기 때문에 화를 내지 않는다. 분노하지 않는다. 진짜 이해해야 하는 대중의 모순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대신 자신이 분노해야 하는 현상의 모순을 이해한다. 현실은 모순 투성이인데 정치 현장은 시끄럽기만 하다. 불길이 없다.

이해와 인내와 사랑

1.
택시를 탈 때가 있다. 택시를 타면 습관적으로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라고.

그런데 열 명의 택시 기사 중에서 절반 정도는 내 인사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과연 그런 일이 있을까 싶지만 현실이 그렇다. 아무 반응도 보지 않는 기사들이 절반 정도 된다. 그런 경우 내가 목적지를 말해도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내릴 때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영수증을 달라고 할 때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행위만 있지 언어는 없는 공간이 된다. 무례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무례는 거리에서 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비슷한 일이 내가 사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서도 일어난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주민들의 절반 정도는 역시 내 인사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내게 먼저 인사하는 사람은 내가 사는 라인에 딱 세 가정. 윗집에 사는 남자와 같은 라인에 사는 미국인 그리고 여자 군인 이렇게 셋 뿐이다. 딸을 데리고 탄 내 또래 남자는 내 인사를 그냥 씹어버리고 아무 인사도 하지 않고 딸을 데리고 내렸다. 초등학생 딸은 무심하게 열심히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2.
어쩌면 오늘 내가 이용한 택시 기사의 행동은 합리적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택시 고객은 단골이 아니다. 어쩌면 평생 볼 일이 없는 고객이다. 내 택시, 우리 회사를 이용하려는 충성심 따위는 없다. 친절함이 에너지를 요구한다면 내 친절함은 나의 이익을 위해 불필요하다.

그러나 내가 사람들의 무례에 대해서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은 이런 합리적 이유를 믿어서가 아니라 무례한 택시기사들과 본격적으로 말을 섞어 본 다음부터다. 인사도 하지 않는 그들과 말을 섞을 생각을 한 것은 도대체 그들 머리 속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그런데 내가 깨달은 사실은 그들이 특별히 나쁘거나 특별히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저 피곤하고 귀찮았을 뿐이고 인사를 하면 대응하기 어려운 수줍은 사람들이었다. 막상 이야기해보면 상당히 유쾌한 사람도 많았다.

3.
나는 이제 가급적 택시를 타지 않는다. 가능한 내 차를 갖고 다닌다. 사람들의 무례에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란 것을 확인한 다음부터 그들의 무례를 감당하는 것이 더 싫어졌다. 하지만 일단 택시를 탈 일이 생기면 여전히 먼저 인사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동네 주민에게도 계속 먼저 인사한다. 내 인사를 받지 않고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아도 계속 인사한다. 그들의 무례를 지적할 생각은 없고 그들이 또 무례할 것이라고 예단해서 내가 인사를 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지만 그 경험이 내 행동을 제약할 이유는 없다. 다만 가급적 택시를 타지 않을 뿐이다.

4.
인간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하는 행동에는 나름의 '맥락'이 있다. 그 맥락은 이해하고자 한다면 다 이해할 수가 있다. 내가 택시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그들을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과정을 겪으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해에는 에너지가 든다. 내가 대상을 '사랑'할 때 나는 기꺼이 내 에너지를 사용한다. 그것 자체가 이미 사랑이다. 따라서 사랑하는 대상을 사랑하는 행위에는 대상의 '모순'을 이해하는 '에너지'가 포함된다. 이해가 전제되면 대상의 모순은 참을 수 있다. 이해가 전제되지 않으면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갖고 있는 모순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순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모순을 인내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잠깐 동안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들들을 사랑한다. 나는 이해도가 높은 편이어서 그들이 저지르는 '만행'의 대부분을 이해하는 편이다. 내가 그들을 이해하는 이유는 내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내가 곧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들이 아니라 딸이라면 내 딸에 대한 나의 사랑은 이해가 결여된 훨씬 맹목적인 사랑이 될 것이다. 맹목적인 사랑의 맹점은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고 맹목적인 사랑의 장점은 그렇기 때문에 열정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엄마가 아들을 사랑하는 방식은 그래서 아빠가 아들을 사랑하는 방식과는 철저하게 다르다. 사랑은 있지만 이해는 없고 그래서 인내심도 별로 없다. 그래서 엄마와 아들은 서로 소리 지른다. 아빠와 아들은 소리 지르는 대신 치고 받는다. 이해는 있지만 인내는 없어진 부자 관계도 세상에는 많기 때문일 것이다.


5.
이해없이 예측은 불가능하다. 아들에 대한 이해없이 아들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상에 대한 애정없이 온전한 이해  역시 불가능하다. 세상에는 불가능한 것 투성이다. 

Friday, May 15, 2015

북바이북 강연

5월 19일(다음 주 화요일) 상암동의 동네서점 북바이북의 초청으로 북토크를 합니다. 게스트로 신기주 기자. 제목은 <'장기보수시대'에 '나는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회비는 음료수를 포함해 1만원이네요. 자세한 내용은 여기.

오늘 금통위

2시 45분 현재. 코스피 선물은 -1% 시원하게 하락 중. 고점이 266이 넘었으니까 고점에서는 대략 -1.6% 하락. 니케이는 하락하는 듯 했으나 100포인트 넘게 반등하며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중. 코스피 선물의 하락은 -7500개를 매도한 외국인들이 주도 중인데, 금통위가 끝난 후 기자회견에서 이주열 총재는 특유의 화법으로 호키시한 톤을 유지. 아마도 이 양반의 오늘 발언 중 압권은

"환율 때문에 수출이 부진한 것 아닌가?"란 질문에 "수출 부진에는 경기순환 요인과 구조적 요인이 있다며 중국의 수입대체 전략의 영향과 국내 주력 수출 산업의 경쟁력이 상대국인 후발 주자들의 약진으로 기술간격이 축소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그런 현상은 절대 단 2년 만에 심화될 수 있지 않기 때문에 그냥 금리를 내리기 싫어서 하는 변명으로 보면 될 듯 하다. 그렇다면 중앙은행은 왜 금리를 내리기 싫을까 생각해보면, 금리를 내렸을 때의 결과에 대한 판단이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결국 지적 무력감에 근거한 자신감 부족. 그러면 현상 유지(status quo)가 최적의 선택이 된다. 문제는 총재의 최적의 선택이 한국에게 최적의 선택은 아니란 것